‘평준화’ – 새로운 표제어와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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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준화’ |
한국 교육 정책의 맥락에서 ‘평준화’는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견지해야 할 지향을 일반적으로 나타낸다. 학교나 대학들이 ‘일류-삼류’, ‘명문-비명문’, ‘우수-일반’ 등의 위계적인 범주로 나뉘고, 그런 구별에 상응하는 사회적 평가나 차별이 취업과 사회관계 등 일상 전반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는 전제에서, 학교 사이의 차이를 없애려는 정책 방향을 가리킨다.
실제 정책에서 평준화는 입학생 선발 과정에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점수)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로 흔히 번안된다. 이를테면, ‘무시험 입학’이나 ‘추첨 전형’과 같은 이름의 제도로 도입된다. 지원하는 모든 학생에게 입학을 개방하든가, 입학을 제한해야 하는 경우, 우열을 판가름해 선발하지 않고 무작위로 골라 입학자를 결정하는 식이다. ‘중학교 무시험 진학’,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등으로 불렸던 입학제도 개혁들에서 역사적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평준화’ 요구는 오늘날도 팽배해 있다. 중등 교육 수준에서 서열화 문제가 다소 완화된 지금은 고등교육 단계에서 평준화를 요구하는 경향이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평준화가 어떤 실지로 대안으로 구현되어야 할지 세밀하게 제안하는 구상한 제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전에는, 개괄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획득한다면(또는, 대학 입학 자격을 취득한다면) 어떤 대학이든 원하는 대로 진학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제안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구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최고’ 수준으로 대학들을 ‘상향 평준화’해야 한다는 제안들이 유행이다. 그러나 그런 대안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정책화한 사례는 없다.
평준화 요구가 학교나 대학들의 학생 선발에 개입하는 데 집중되면서, 궁극적으로 평준화 정책이 어떤 교육 성과나 사회적 여파를 가져올지 헤아려 보는 논의는 거의 없다. 논리로만 보면, ‘평준화된’ 교육 기회를 누리는 모든 개인에게 으레 동등한 교육 결과가 일어나길 기대(전제)하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결과의 평등’은 현실에서 상상할 수 없다. 특히, 고등교육 단계의 경우 그것이 종착 교육이라 전제하면, 교육 결과는 취업에 연계될 수밖에 없다. 과거 경직됐던 공산사회가 아니라면, 요컨대 사회 분업이 평준화될 수는 없을 것이며, 따라서 취업 진로별 위계가 불식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위계는 결국 교육 체제로 되먹임되어서, 어떤 양식으로든 고등교육의 서열 구도를 재구축할 것이다. 즉, 사회 구성원이 갖게 되는 직업의 위계가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 한, 그리고 교육과 취업의 고리가 완전히 부서지지 않는 한, 대학 평준화 시도는 사회 지위 평준화나 대학 서열 파괴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대해서만 아니라, 그 이전에, 평준화 시도가 고등교육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평준화는 으레 ‘일류’ 교육기관의 위상을 허무는 데 집중하게 될 텐데, 보통 그런 고등교육기관은 학문과 기술의 첨단 지평을 열어 나가는 사명을 지고 있게 된다. 이른바 ‘연구중심대학’으로 기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기능은 학생 선발 단계의 개방(평준화)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학부와 대학원을 구분하는 방안으로 그런 영향을 완충하려는 보완적인 제안들이 없지는 않으나, 어떻든, 고등교육 기관 사이의 분업에는 계층화(서열화)가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피할 수 없이 파생될 마련인 계층화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엄밀한 구상을 세우지 못한다면, 평준화 시도는 정치적 구호로 남아 고등교육만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더욱이 대학의 서열은 교육제도로보다는 사회 문화적으로 규정되는 바가 커서, ‘교육개혁’으로 서열 파괴를 노리는 접근 자체가 온당한지부터 따져야 할 것이다.
<교육 제4의 길> 편집실에서는 논급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하여 적절한 형식으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