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⑱] 은유, 뇌의 강력한 학습 도구
|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
사랑은 험난한 여정이다. 그 길에는 수많은 울퉁불퉁한 고비가 있고, 행선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관계는 막다른 길에 이르고, 연인들은 헛바퀴만 돌리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결국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글은 사랑을 ‘여정’에 비유하는 흔한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 이 은유는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비유에서 연인 사이의 관계는 ‘차량’에 해당하며, 연인은 그 안에 함께 탄 ‘동승자’이다. 함께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여행의 ‘행선지’로,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울퉁불퉁한 고비’, ‘막다른 길’ 등으로 표현된다. 이처럼 은유는 사랑이라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누구나 쉽게 경험하는 물리적 경험에 빗대어 설명함으로써, 사랑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George Lakoff1, 2014).
은유, 언어 학습의 핵심
그렇다면 ‘은유(metaphor)’란 무엇일까?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글을 읽고 그의 강의를 듣기 전까지 나는 은유를 문학적 장치, 즉 시인이나 소설가가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며, 내가 맡은 영어 수업에서는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은유가 언어의 핵심 요소이자, 우리가 언어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배우는 거의 모든 것은 뇌의 작동 원리 중 하나인 “함께 발화되는 것은 함께 연결된다(Things that fire together, wire together.)”에 기반한다. 개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 우리 자신의 눈, 귀, 털에 관련된 신경 회로들뿐만 아니라, 달리기와 관련된 운동 감각 회로까지도 활성화된다. 이런 경험이 몇 차례 반복되면 이 모든 요소가 함께 활성화되기 때문에, 결국 서로 연결되어 ‘개’에 대한 심적 모형(mental model)2이 형성된다. 이후 ‘개’라는 단어를 배우게 되면, 그 단어와 관련된 음성(oral), 청각(aural), 어휘(lexical) 처리 회로들 또한 이 심적 모형과 연결된다. 이것이 바로 뇌가 학습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함께 활성화되는 것들은 서로 연결된다.
그리고 아무리 정교한 사고라고 해도, 그 바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은 우리가 세계와 맺는 신체적 감각 경험과 운동 경험을 통해 형성된 가장 단순한 신경 회로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추상적인 사고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공정’이라는 개념을 신체의 균형 잡기 경험을 통해 이해한다. 우리가 시장 경쟁을 ‘전투’로 표현하는 것도 자신이 직접 경험한 투쟁과 싸움의 기억에서 비롯된다.
생각해 보자. 우리는 왜 가격이 비싸질 때 이를 ‘올라간다’고 말할까? 왜 내려간다거나,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간다고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늘 증가를 ‘위쪽’과 연결 지을까? 이처럼 ‘커지면 위쪽으로 올라간다’는 은유는 우리 언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다른 언어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레이코프는 우리가 어떻게 이 은유를 갖게 되었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아기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니가 유리컵에 무언가를 따르는 모습을 보았고, 그럴 때마다 컵 속의 수면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또는 아버지가 책을 책상 위에 쌓을 때마다 책 더미가 높아지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양(amount)’과 ‘수직성(verticality)’이라는 두 기본 스키마(schema)가 반복적으로 동시에 활성화되면서, “함께 활성화되는 것은 함께 연결된다”는 원리에 따라, 이 스키마들이 서로 연결되어 강력한 1차 은유가 형성된다. 이러한 1차 은유는 더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재사용되어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예컨대 “소송으로 인한 집중 ‘포격’으로 하늘 높이 ‘치솟던’ 대통령의 인기가 타격을 입었다”라는 문장에서 ‘치솟던’이라는 표현은 ‘위쪽으로 상승한다’는 1차 은유를 바탕으로 하며, ‘포격’이라는 표현은 하늘을 나는 무언가를 공격해 떨어뜨리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식으로 1차 은유들이 결합되어 복잡한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2차 은유로 확장된다. 2차 은유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이미지’를 통해 ‘인기’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의 상승과 하락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따라서 은유는 단순한 문학적 장치를 넘어, 우리가 언어를 이해하는 근본적인 방식이다. 만약 은유가 물리적 경험을 반영한 스키마들의 군집으로 모든 언어에 내포되어 있다면, 언어 수업에서 뇌의 은유 활용 방식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요즘 깊이 고민하고 있다.
뇌 친화적 은유 수업의 실천 사례
약 30년 전, 젊고 다소 괴짜 같던 한 선생님이 관용어(idioms)를 가르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말해준 적이 있다. 그는 학생들에게 관용어를 가르칠 때 그림을 그리게 했다. 예를 들어, ‘열띤 논쟁(a heated argument)’은 두 사람이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서 말다툼하는 모습으로, ‘문제를 해결하다(iron out a problem)’는 ‘문제’라고 적힌 티셔츠를 다림질하는 장면으로 표현하게 한 것이다. 당시 나는 그 아이디어가 터무니없고, 수업 시간을 낭비하는 방식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방법은 여러모로 ‘뇌 친화적’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활동은 신체의 움직임을 동반하고, 이는 학습을 촉진한다. 또한, 재미있기 때문에 학습에 또 다른 동기를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익숙한 신체적 동작, 감각 경험, 은유를 활용해 새로운 추상적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이미 은유가 뇌의 가장 깊은 사고 구조, 마치 ‘내면의 AI’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가 다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관용어뿐 아니라 모든 어려운 어휘를 가르칠 때 이 은유적 그림 기법을 반드시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방금 위 문장을 쓰던 중 문득 내가 과거에 이미 그렇게 가르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예전에 학생들에게 어휘를 가르칠 때 제스처(gestures)를 사용하곤 했다. 예를 들어, ‘공격적’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는 주먹을 쥐고, ‘무질서’라는 단어를 말할 때는 손을 불규칙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그 제스처를 따라하며 단어를 말하게 했는데, 이 방법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제스처와 단어가 완벽하게 일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학생들의 암기율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당시에는 이 방법의 성공 요인이 학습에서 다중감각 입력과 신체 움직임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은유의 힘도 작용했던 것이다. 여러분도 꼭 한번 시도해 보기를 바란다!
제스처나 그림 이외에도, 이야기(story) 또한 은유를 통해 언어를 배우는 훌륭한 방법이다. 이야기에 담긴 언어는 실제 신체 활동과 연결될 수 있고, 이야기 자체가 학습자의 개인적인 은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으며, 대부분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나 도전과 관련되어 있다.
학생들이 자신만의 은유(대개는 직유)를 만들고, 그것을 말하기나 글쓰기에 활용하게 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인 활동이다. 예를 들어, ‘별이 빛나는 밤’을 ‘별들이 담요 위에 흩뿌려진 다이아몬드처럼 펼쳐져 있는 밤’과 같이 바꿔 쓰게 할 수 있다. 또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은유로 표현하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동생이 나를 놀릴 때, 나는 마치 벌집 같다. 겉으로는 조용히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속에서는 온갖 감정이 들끓고, 그 녀석에게 도로 톡 쏘아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언어교육의 보물창고, 은유
이야기가 은유를 담고 있다면, 시는 그야말로 은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시는 언어의 함축성과 상징성을 통해 은유적 표현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아직 이를 수업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좋은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은유가 단순한 문학적 장치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은유는 가장 단순한 사고를 형성할 때에도 뇌가 사용하는 기본 원리이며, 본질적으로는 모든 언어의 기반이 된다. 언어 학습의 관점에서 보면, 은유는 아직 제대로 개발되지 않은 뇌의 풍부한 자원 중 하나이며, 그 잠재력은 실로 엄청나다. 지금까지 우리는 언어라는 강에서 작은 금덩이 몇 개만 채취했을 뿐이지만, 그 바로 아래에는 ‘은유’라는 충분히 활용되지 않은 거대한 금광이 잠들어 있는 셈이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중 누가 그 땅을 파헤쳐 이 보물을 제대로 찾아낼 것인가?
|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Winter 2023 Volume 27, Issue 4)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
• Lakoff, G. (2014). Mapping the brain’s metaphor circuitry: metaphorical thought in everyday reason. Frontiers in human neuroscience, 8, 958.
각주
-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인지언어학의 선구자로, 언어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개념적 은유(conceptual metaphor)’ 이론을 통해 은유가 단순한 수사법이 아닌 인간 사고의 구조적 메커니즘임을 밝혀냈으며, 이 이론은 교육, 심리, 정치 담론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심적 모형(mental model)- 개인이 외부 세계를 이해하고 예측하며 상호작용하기 위해 머릿속에 구축하는 인지적 표상 체계로, 학습과 사고의 기반이 된다. 이는 감각 경험 및 운동 경험을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며, 새로운 정보나 개념을 해석할 때 기초적인 틀로 작용한다. 교육심리학과 학습과학에서는 학습자의 개념 형성과 오개념 이해, 지식 구조화 등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다뤄진다.
커티스 켈리(Curtis Kelly)는 교육학 박사이며, 일본 간사이대학교(Kansai University) 영어과 교수이다. 인생 사명은 "교실에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작가로서 500회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35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Significant Scribbles(중요한 낙서)』(Longman), 『Active Skills for Communication(능동적 의사소통 기술)』(Cengage), 『Writing from Within(내면으로부터의 글쓰기)』(Cambridge) 등이 있다. 뇌과학과 언어교육을 연결하는 무료 잡지 <MindBrainEd Think Tanks>의 구독을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ctskelly@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