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안중에 없는 교육 부문 대선 공약들
| 정권을 유지하거나 교체하려는 일념에서 발림수들만으로 포장한 공약은 바로 버리는 게 이롭다. 그것들은 전제부터 틀렸고, 필경 교육을 바로잡기보다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 교육에 대해 새롭게 논의하고 교육 문제부터 새롭고 올바르게 짚어내는 작업부터 시작하겠다고 ‘열어 놓는’ 약속이다. |
‘교육 공약’들이 교육을 무시
선거 공약을 검토하거나 평가한다면 으레 후보나 정당 사이의 우열을 갈라 이야기해 주리라 기대할 테다. 이 글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이유는 두 개이다.
우선, 내놓은 공약들이 지리멸렬하다. 정부가 새롭게 출범하려면 정권의 기간에 견지할 교육정책의 지향 또는 체계를 마땅히 갖춰 지니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약들에는 그런 심지(心志)가 들어있지도 않고 짐작해 보기도 어렵다. 후보들이 모두 교육을 어디로 끌고 갈지 내다볼 도리가 없다.
둘째로, 지리멸렬한 대로, 나온 공약들끼리라도 견주어볼 수 있지 않겠느냐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나열한 공약들은 파편적이며 ‘근본’이 없다. 후보의 ‘색깔’이나 ‘표심’ 계산에 따라 낱낱으로 뿌려져 있을 뿐, 교육 가치를 내포한 문제의식이나 철학을 담지하고 있지 않다. 정부가 들어선 후 공약이 파생할 교육정책이 지속 가능할지부터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성과’를 낳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교육적이기나 할지 회의하게 된다.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적어도 상대적으로는, ‘지리멸렬하고 근본이 없다’는 비판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을 듯하다. 교육정책 노선을 선명하게 표명하고, 세부 공약을 그 노선에 일관되게 구성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경쟁이 아닌 행복의 교육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으며, “입시경쟁 완화”와 “입시로부터 자유로운 전인교육” 등을 표방하는 정책을 약속하고 있다. 교육을 오롯이 고려한 공약 체계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다른 후보들과 구분하여 상찬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 점을 흔쾌히 추켜올리지 못하는 것은, 그의 공약들도 근본이 무르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뒤에 더 논의하겠지만, 예컨대, “대학 교육 대전환”의 이름으로 “서울대학교 학부 폐지”를 공약하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유행하는 속설에 의존하면서, 세부 공약들은 교육을 정곡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요컨대 이번 대선 ‘교육 공약’들은 교육을 다루고 있지 않다. 후보(정당)들이야 나름대로 교육 문제를 고심해서 공약을 내놓았다 말하겠지만, 잘못 짚고 있다. 그들에게 교육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고 비난받아 마땅한 공약들만 내놓았다.
서울대 여럿 만들기 또는 공동학위제, 아니면 대학 평준화?
서로 자신 것이 낫다고들 아웅다웅하고 있지만, 대선 후보들은 사실상 서로 큰 차이 없는 ‘교육 공약’을 내걸고 있다. 이를테면, “서울대 10개 만들기”나 “서울대와의 공동학위제” 또는 “서울대 학부 폐지”와 같은 구호 아래 있는 정책들이 그렇고, “AI 인재 양성”이니 “과학기술인 우대”니 하며 열거하는 정책들이 그렇다. 서울대학교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가 교육 경쟁을 격화하고 사교육비 부담도 키우기 때문에 ‘대학 평준화’의 ‘교육정책’이 필요하다고들 외치며, AI가 미래의 ‘밥줄’이기에 관련된 분야의 대입 정원을 늘리고 관련된 분야로 인재들을 끌어야 한다고들 외친다. 언뜻 듣기에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런 외침에는 교육에 대한 사려 자체가 없으며, 그만큼 공약들은 실속 없다.
후보 대부분이 들먹인, 이른바 대학 평준화 공약을 보자. 서울대를 없애거나 서울대와 견줄 수 있는 대학들을 여럿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서울대라는 교육기관이 교육을 어떻게 얼마나 잘하는지는 관심 없다. 서울대에 뒤지지 않을 대학을 만든다면서, 대학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또는, 어떻게 될지) 고심한 기미가 없다. 평준화 공약에서 대학 교육 내면에 대한 고려는 필요한 일이 아니었던 듯하다.
‘서울대’를 많이 만들자는 식의 공약은 결국 대학 ‘간판(졸업장)’의 가치를 평준화하자는 것이다. 대학 안에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며,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어떤 교육의 과정을 거치게 될지 걱정하지 않는다. 대학 졸업장들 사이의 ‘불평등’이 줄어들고,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경쟁이 누그러지기만 한다면(사실 이럴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대학 교육은(그리고 그 이전에, 대입을 겨냥하는 초중등 교육은) 어떻게 되든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암묵적 전제 위에 있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초중등 교육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이니 정답 주의 교육이니 하는 말로 일컬어지는 초중등 교육의 문제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등교육에서도 사태는 다르지 않다. 교육이라면 의당 정답보다는 질문을 찾도록 이루어져야 하고 답습보다는 창의를 추구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 대학 교육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수준 미달’이었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는 거듭 무시하거나 방치하면서 대학별 졸업장의 평판 평준화만 노리는 것이라면, 그런 획책을 일컬어 ‘교육 공약’이라 인정하긴 어렵다.
미래 먹거리를 위한 AI 인재 양성?
‘AI 인재 양성’과 같은 공약도 교육을 도외시하긴 마찬가지이다. 후보들은 학과를 만들고 정원을 늘리기만 하면 인재 양성이 자동으로 될 일인 듯 떠들고 있다. 후보 서로 간에 논지의 큰 차이가 없다. 이런 공약의 ‘순진함’은 어떻게 보아야 할지 난감하다. 빈정거려져 마땅해 보인다. 진정한 인재를 얻으려 할 때 필요한 건, 학과나 정원이 아니라 교육의 진정한 변혁이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AI 인재에 대해서도 수준을 구분해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일단 인공지능 개발의 첨단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인재를 두고 생각해 보자. ‘AI 부문 최강국’이니 ‘3대 강국’이니 하며 후보들이 공약을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세계 정상급’일 인재라면, 공약이 꾀는 것처럼, 돈이나 예우 또는 특별한 훈련 등과 같은 ‘외재적’ 요인이나 기회로 더 잘 키워지거나 더 많이 양성될 가능성은 없다.
어느 부문에서건, 탁월한 인재는 결국 개인 안에서 솟는 동기와 희열로 빚어진다. 기본 지식이나 기술은 물론 소극적인 학습 과정을 밟으며 습득하겠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고 또 그 물음에 매달려 울고 웃는 과정에서 인재들은 정련된다. 즉, 국가 수준에서는, 대학 또는 대학원 교육이 그런 정련의 과정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인재다운 인재를 얻을 수 있다. 당연히 초중등 과정에서도 ‘내재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어야 그런 ‘몰입’의 진로에 도전할 학생들이 생겨난다. AI 인재 공약들에서 이런 요건들에 대한 인지의 낌새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공약들은 ‘인재 양성’이란 과제가 교육을 ‘일반적으로’ 제대로 하는 과업과 다른 것인 양 취급한다. 인재를 키우려면 직역(職域)에 따라 훈련이나 교육 과정을 ‘특수하게’ 마련해야 하고, 그런 진로로 유인하는 ‘인센티브’ 또한 인재 확보에 필수적이라 여긴다. 말하자면, AI 인재는 ‘이과’ 영역에서 양성되어야 하고, 이과 교육이 우대되고 강화되어야 확보될 수 있다는 식이다. 교과 교육의 전통 아래 모든 교과를 충실히 가르치는 일과 사뭇 다른 조치가 필요하리라는 통념에 안이하게 매달려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개발 역사 자체가 증언해 주듯이, 그 발전은 ‘이과’ 영역에 국한된 사건들이 아니며 이과 역량만 핵심적으로 발휘되어 온 과정도 아니다. 더욱이, AI와 인류의 공존과 관련한 철학적 사회적 난제들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AI 인재는 수학이나 과학을 넘어 인문 사회적 상상력을 한껏 갖추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탁월한 AI 인재를 얻으려면, 학과 개설이나 정원 확대를 외치기 전에, 초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이 과연 교육다운지부터 살펴야 한다. 지금 터져 나오는 공약의 말을 따라간다면 AI 인재는 지금보다도 얻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AI 인재가 단순히 인공지능을 직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일꾼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저출산’과 ‘지역 소멸’이 교육으로 해결해야 할 교육 문제?
공약들이 교육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는, ‘교육 현안’을 다루는 양을 보면 더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역시 후보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내놓고 있는 공약에서 볼 수 있는데, ‘저출산’이니 ‘지역 소멸’이니 하는 문제가 최우선의 교육 현안이다. 이것들을 명백히 교육 문제라 간주하며, 또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로 여기고 있다. 이를테면, 교육비(특히 사교육비나 ‘돌봄’ 비용) 부담이 출산을 꺼리게 한다며 그 비용이나 부담을 덜겠다고 공약하는가 하면, ‘지역’에서 대학이 죽으면 지역 사회 자체가 소멸한다며 대학을 ‘살리겠다’ 공약한다. 교육 부담을 덜어주고 대학을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국민이 마다할 이유는 없을 테다. 그러나 그런 공약이 교육을 어디로 끌고 갈지는 걱정해야 한다.
사교육비를 지원하고 돌봄의 책임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은 과연 교육을 어디로 끌고 갈까? 공약들은 사교육을 어차피 지속된다고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다. 사교육은 돈이 들어서 문제이지 ‘교육’ 자체로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인식이다. 아이 돌봄의 책임을 학교에 떠맡기는 공약에서도, 그렇게 학교 부담을 늘릴 때 학교 교육에 어떤 파장이 일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만만한 공공기관인 학교를 활용하는 게 당장의 상책이란 꾀를 냈을 뿐이다. 공약이 주목하는 ‘문제’는 사실 모두 교육 문제가 아니다. 돈 문제이고 ‘아이 낳는’ 문제이다. 이 문제들이 교육과 무관하다는 뜻이 아니다. 교육 내면의 이상(異狀)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교육은 비용 부담이 커서 문제이기 이전에 그 성질이 교육적이지 않아서 문제이다. 교육이 사람을 만드는 과업인 데 비해 사교육은 ‘득점’을 우선 노린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그 본질 문제가 보일 터이다. 사교육의 이런 근원적인 속성은 들여다보지 않고, 표면의 사교육비 부담만 문제 삼는 공약이 교육을 바르게 이끌 리 없다.
그리고 모두 알듯이, 학교 안에는 여러 교육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은, 이 점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 않으면서, 국가 위기라며 ‘저출산’의 해결을 이구동성으로 학교에 떠안기려 한다. 이런 행태에서 교육에 대한 고심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지적하는 데 대해 필경 발끈할 것이다. 학교 교육이 어떻게 돌아가든, 양육(돌봄) 부담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 소리 지를 것이다.
어떤 문제가 우선이어야 할지는 깊이 따져보아야 알게 될 터이다. 만약에, 학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저출산의 사태가 오늘날 같지 않았으리라면 어쩔 텐가. 공약을 비판하기 위해 가설을 억지로 지어낸다고 퇴박할지 모르지만, 엄밀히 고찰할 때, 우리 교육 난맥의 역사가 출산율의 오르내림에 무관하지 않음을 보게 될지 모른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교육을 해칠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를 교육 아닌 다른 문제 해결에 동원하려는 공약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지역의 대학들을 살리겠다는 공약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학을 지역 경제의 도구로 취급하는 한, 역시 대학 교육 자체의 문제를 보고 있지 않다. 대학생들이, 재학 중에 그리고 졸업 후에도 가능한 한 많이, 지역에 머물도록 꾀어내는 것이 공약의 핵심이다. 그들이 대학에서 어떤 교육을 받게 될지는 일차적으로 안중에 없다. 지역을 살리는 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 과제 해결에 대학을 동원하려는 발상에서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차적이라는 뜻이다. 그런 공약이 대학 교육을 발전시킬 가능성은 당연히 흐리다.
교육 부문은 걸핏하면 다른 영역의 ‘위기’ 해결에 동원된다. ‘제국(帝國)’에 늘 착취당하는 ‘식민지’ 꼴이다. 교육이 인격을 다루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다루는 사업이어서, 국사(國事)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해결책으로 꿰맞출 수 있다. 모든 게 결국 ‘사람’의 문제이니 말이다. 실지로는 교육이 해결책이 되지도 못하고 결국 교육만 무너지는데도, 꾸준히 동원된다. 이런 임기응변의 ‘국사 운영’은 결국 교육을 망가뜨리고 나라를 망가뜨린다. 이번 교육 공약들 역시 그럴 위험의 전조를 보인다.
‘대전환’의 교육개혁을 도모하자?
교육 부문 공약은 다른 부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도 빈약하다. 언론이나 교육계에서는 이 점을 비판한다. 중요한 교육 의제를 소외시켰다느니, 교육 문제가 ‘벌집’ 같아서 표를 잃을까 소극적이었다느니 비난한다. 그러나 ‘대전환!’을 외치며 쏟아내는 것과 같은 ‘공약 패키지’가 교육 부문에 없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다.
선거 공약은 그 맥락상 이해타산의 야합에서 나오기 십상이다. 이번처럼 예정에 없던 선거를 치르게 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 정당 행태로 보아, 교육 문제를 꾸준히 연구하며 정책대안을 다듬어왔을 리 없다. 갑자기 닥친 대선의 계기에, ‘준비된’ 공약을 내놓은 정당은(후보는) 과연 없었다. 으레 그렇듯, 눈앞의 ‘현안’에 대해 근시안적으로(득표에 유리하도록) 고르고 계산한 약속들로 급히 꾸렸다. 이렇게 꾸려진 공약이라면, 야심만만할수록 결국 낭비나 해로움만 낳을 것이다.
대선 공약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과제’로 탈을 바꾸게 된다. 말하자면 대통령 임기 안에 이행해야만 할 ‘국민과의 약속’으로 승격된다. 공약은 결국 교육정책을 규정하기에 이른다. 공약이 잘못됐거나 부실해도 그 구속력은 흔들리지 않는다. 공약에 꿰인 정책인 한, 맹목적으로 추진된다. 바로 그런 사태가 지속되어 우리 교육정책의 역사는 착오로 점철되어 있다.
교육 발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공약은 현안에 대한 해결 기약이 아니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서든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서든, 교육을 오직 세속적인 타산의 대상으로 여겨 만든 공약, 더욱이 정권을 유지하거나 교체하려는 일념으로 발림수들만으로 포장한 공약은 바로 버리는 게 이롭다. 거듭 이야기해 왔듯이, 그것들은 전제부터 틀렸고 그래서 교육을 바로잡기보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교육은 세속의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사업이지만 세속을 초월하도록 북돋우는 공력(功力)이다. 이 평이하고 숭고한 교육의 의미는 언젠가부터 내던져져 있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 후보’의 약속은 그 순전한 의미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 교육에 대해 새롭게 논의하고, 교육 문제 자체를 정곡으로 짚어내기 위한 작업부터 시작하겠다고 ‘열어 놓는’ 약속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작해서 언제 ‘교육 발전’을 보겠느냐 다그칠 줄 안다. 이제라도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교육 문제를 계속 덧내고 키우며 한없이 가자는 것인가 되물을 수밖에 없다.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정권 탈취’라는 말이 다소 거북합니다. 국민의 선택 결과로 선출되는 대통령이니, ‘탈취’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서 무엇을 누가 탈취한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네요.
선생님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여, 필자의 확인을 거쳐 “정권을 유지하거나 교체하려는”이란 표현으로 수정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이준석 교육공약은 교육에 진심으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데요…?
어떤 점에서요…? 주장에는 논거와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주장만 있는 진술인 것 같아서 여쭤봅니다.
이준석 교육공약은 교사의 소송을 국가책임제로 해주겠다, 디텐션 제도로 수업방해 학생을 따로 지도하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이미 지금도 법령과 학칙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것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운영하는데 교직원들의 어려움을 고민한 흔적이 없는 것은 아쉽습니다.
또한 수학교육국가책임제를 한다고 했습니다만, 기초학력보장법에 따라 현재도 하고 있습니다. 또한 KBS뉴스 기사에 따르면 이준석 후보는 매년 전국 단위로 초4~중3 수학성취도 평가를 실시, 평가 결과로 수준별 분반 수업을 실시, 수학 전문 보조 강사를 배치한다고 했습니다만, 이 중에 보조강사 배치는 이미 할 수 있습니다.
이준석 후보가 고민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알겠으나, 학교 현장에서 이미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는 것들이 많아 아쉽습니다.
그럼 다른 후보들은 무엇을 주장하느냐 살펴보면 현장에 와닿는 세부적인 공약보다는 큰 덩어리의 공약이 많기는 합니다. 이준석후보가 세부적인 공약을 마련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이미 마련되어 있고, 수학으로 줄 세우기 하는 것은 저는 반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고민했다면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보 캠프에서 정책을 마련하는데 부족함이 많다고 느낍니다.
네???
수포자를 없애겠다면서 초4부터 똑같은 시험을 치르게하고,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누고, 한 달에 한번 성취에 따라 반을 옮기고…”전수평가 줄세우기” 방식의 교육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수 많은 선진국에서 이미 실패한 방식이고 시험을 위한 교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교육현장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도 다 아는 사실인데요….
진심으로 고민한 흔적의 결과가 이런 수준의 공약이라면 너무나도 실망입니다.
또한 교사소송 국가책임제며 디텐션 제도에 대해서도, 교사2님이 쓰신 글에 대부분에 동의합니다. 교권 보호에 대한 교사들의 절박함에 공감하고 있는 부분은 평가할만 하나, 정작 이준석 후보의 공약은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고, 또한 이미 도입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 셈입니다. 정치적 수사에 불과해보입니다.
표를 위한 허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교사를 지킬 수 있는 실천 방법을 얘기해야죠…
한마디 더하면, 이준석 후보는 그동안 서울대 10개만들기, 서울대 공동학위제 와 같은 다른 후보들의 공약은 거짓말이 될 것이다라고 줄기차게 비판만 할 뿐, 정작 본인은 지역대학을 어떻게 육성할지, 고등교육 전반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공약도 내놓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후보가 교육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하는것부터가 어불성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