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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극단주의에 대처하는 학교의 자세

#1277 전종옥, 양서중학교 교장 2025.04.30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능력주의와 학벌,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살펴본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통해 공동선을 기르는 최초의 만남이 공교육(학교)에서 이뤄지길 바란다.                                        

 

 

놀랍지만, 올 것이 왔다

 

(기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법원 청사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담을 넘어 청사 안으로 들어가, 소리를 지르며 서부지법 유리창을 깨기도 했습니다. 일부 지지자들은 소화기를 뿌리며 물건을 던졌고,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들은 경찰을 향해서도 플라스틱 의자와 담배 재떨이, 경광봉 등을 던졌고, 경찰 방패를 빼앗아 경찰관을 폭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1

(KBS뉴스 2025.1.19.)

 

건대 양꼬치 거리 한복판서 혐중 시위한 윤석열 지지 극우 청년들2

(MBC뉴스, 2025.04.18.)

 

주로 온라인에서 떠돌며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던 이들이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난장판을 벌였다. 12·3 내란 사태 이후 거리로 몰려나온 극단주의 세력은 ‘빨갱이’, ‘죽이자’와 같은 말을 끊임없이 내뱉더니 급기야 여기까지 왔다.

 

대형 사고나 재난이 발생 전에 여러 차례 징후가 나타나듯, 극우의 혐오나 폭력적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심각한 전조가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 단식 때 폭식으로 맞서고 ‘시체팔이’라고 조롱하던 이들이었다. 사회적 비난은 있었으나, 그로 인해 무슨 처벌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구에서는 이슬람사원 건축 부지 앞에서 돼지고기 파티를 벌이기도 했으며, 석가탄신일에 조계사 앞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찬송가를 부르던 개신교 무리도 있었다. 오로지 자신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극단주의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선을 넘었다. 그들은 광장을 차지했다며 환호했다. 혐오와 폭력을 내장한 극단주의가 온라인에서 나와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일부 종교인과 정치 세력이 그 힘을 등에 업으려 시도하고,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외면해서도 안 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전직 대통령이 사리사욕을 위해 계엄을 선포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급발진 덕분에 대한민국에 혐오 가득한 선동과 폭력이 득세할 수 있는 판이 활짝 열렸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극단주의에 빠져들었고, 현실 정치에 적극 뛰어들 수 있었을까? 표현의 자유의 한 양상일 뿐이니 그냥 내버려두어도 될까?

 

 

극우의 생존 전략과 알고리즘

 

현대의 극우는 전 지구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지역과 국가의 특수한 조건 속에서 복합적으로 형성된 결과다. 따라서 극우에 대한 대응도 단순히 해외 사례를 참고하는 것을 넘어, 한국 현실에 맞는 분석과 감시, 대응이 필요하다.

 

극단주의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흔히 ‘단호한 대처’와 ‘공존 모색’을 제안한다. 처음엔 ‘단호한 대처’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억압한다고 쉽사리 사라질 것이었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공동체 안에서 포용을 통해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려면, 먼저 극우 포퓰리즘의 발생 원인과 작동 원리부터 이해해야 한다.

 

극우 포퓰리즘이 최근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데는 사회적 불평등 심화가 연료가 되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사회 응집력과 신뢰를 약화시키며, 이는 가난한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할 뿐 아니라, 부유층도 자신이 저소득층으로 추락할까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극우가 빈곤층뿐 아니라 부유층을 포함한 다양한 소득 집단에서 나타나는 이유다.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는 자본과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이 필연적이었기에, 각국 저임금 노동자들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극우는 이 상황을 ‘을과 을의 가짜 대결’로 단순화하고, 외국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 따라서, 극우를 막아내려면 그들을 불러낸 구조적 불평등이 시정되어야 한다. 그들을 강하게 비판한다고 해서 극단적 해법을 내세우는 목소리가 잦아들지는 않는다.

 

극우가 세력을 키우는 핵심 전략은 사회적 갈등을 인위적으로 증폭시키는 데 있다. 가짜뉴스와 알고리즘을 통해 허구적 갈등을 마치 실재하는 현상이나 사회적 위험처럼 꾸민 뒤, 종교나 유사 언론 등을 동원하여 ‘위기’로 만들어낸다. 그들은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어 특정 집단을 국가와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며, 공포와 불안을 조장해 사람들을 동원한다. 선거가 조작되었다느니, 헌법기관을 중국인이 장악했다느니, 아무개가 당선되면 나라를 통째로 넘긴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정보가 사실로 둔갑한다. 이 불안감이 이주자, 중국인, 성소수자와 같은 ‘외부자’에 대한 비난과 혐오로 발전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나 집단을 추종하게 만든다.

 

이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주요한 이데올로기는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이다. 이 ‘우월감’은 사람들을 모으는 역할도 하고 불법 행위도 정당화한다. 자신들은 모두 ‘애국자’이기에 태극기를 들고 행진하며, 또 국가 재정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하여 가난한 이들조차 보편적 복지정책에 반대하고 긴축정책에 찬성한다. 이는 다시 불평등을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극우가 기생하는 토양이 된다. 이쯤이면, 정말 답이 없다.

 

이런 정치의 극단화를 가장 반기는 이들은 누구일까? 입만 열었다 하면 민생과 국민을 들먹이는 특권층 네트워크의 일원들이다. 대중의 불안과 위기의식을 증폭시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으로 활용하며, 총리, 장관, 국회의원, 장군, 판사, 검사, 교수, 목사, 언론인 같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 위선적 엘리트가 한국의 진짜 극우들이다. 이들은 과거 향수를 소환하고, 불평등의 심화와 정치 및 경제 파탄을 오히려 상대 집단의 탓으로 돌리며 ‘적’들에 대해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불평등 감소에는 관심도 없이 대립만을 부추기고, 신앙을 끌어들여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기름을 부음으로써 사회의 구조적 결함과 자신들의 잘못을 회피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발판으로 삼는다.

 

누가 그들에게 기회와 자리를 보장했는가? 왜 평범한 사람들이 그들의 농간에 놀아나는가? 거기엔 부와 지위의 대물림과 학벌 능력주의가 단단하게 맞물려 있다. 대학 진학률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지금까지 학교는 무얼 했느냐고 교육에 그 책임을 묻는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극단주의를 부추기는 능력주의와 학벌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국정농단으로 감옥에 있는 최은순의 딸 정유라가 했던 말이다. 전·현직 실세 관료들의 자녀들도 비슷한 경로로 좋은 자리를 찾아갔다. 이런 방식으로 명예와 권력을 차지한 괴물들이 도처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들이 대대로 고위 관직에 앉고, 유력 정치인이 되어 국정을 농단한다. 왜곡된 선민의식으로 무장하고, 엘리트 의식에 빠져 우리 사회를 지배하려 한다.

 

그들의 엘리트 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관건은 부의 대물림을 바탕으로 학벌 능력주의에서 성공을 거둬 기득권 카르텔에 진입했느냐 여부다. 자신은 재능과 노력한 결과로 세속적 성공을 거두었으니 지배 엘리트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고,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능력주의’ 신화다.

 

김누리 교수는 능력주의의 신화에 갇힌 경쟁 중심의 교육 방식이 파시즘 재생산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3 한국은 단순한 독재와는 다른, 전체주의적 지배를 통해 모든 구성원을 파시스트로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구조라고 본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교육 체계도 학생들에게 성적과 경쟁을 우선시하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기에, 학생들에게 파시스트적 요소를 내재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을 양성해야 하며, 상호 존중과 다양성을 지닌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는 약간 다른 견해도 있다. 서울교대 권정민 교수는 수험 경쟁에 기반한 서열화를 비판하면서도,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얼마든지 시민 의식이 강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교육 문제를 하나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도 안 되고, 학습자를 수동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더 무게를 두어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허용해야 하며, 직업 선택의 도구로 전락한 대학 교육도 민주적 가치와 비판적 사고를 함양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4

 

능력주의 신화가 성적 지상주의, 결과 중심의 교육과 단단히 결합하여 우리 교육의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단순 성적으로만 평가하고, 거기에 최대의 보상과 명예를 안겨주는 사회에서 학생들이 시험에 나올만한 지식 획득에 힘쓸 뿐, 공감 능력이나 배려,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힘쓰지 않는 것은 나름 합리적 선택이 된다. 나아가 공화국 시민으로서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시민성, 즉 협력과 연대의 정신은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명언일 뿐이다.

 

‘시험형 인간’이 되어버린 학생들은 정답 찾기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다. 모두가 극단적 개인주의에 빠져 교실은 입시 전쟁터가 되고, 성공과 실패는 오직 자신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라는 믿음을 뿌리 깊게 새기게 된다.

 

이런 사회 시스템과 교육 환경에서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낸 이들이 가득한 사회와 거기에서 성공한 이들에게 권력과 명예가 주어지는 사회는 전체주의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김누리 교수의 지적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큰 틀에서 우리 교육은 다양성, 협력과 공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다만, 사회의 전반적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교육적 시도가 지닌 한계 또한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시도 자체를 등한시할 일은 아니다. 권정민 교수는 학습자의 능동성과 교육 태도와 방법의 전환, 대학 교육의 자기 반성을 통해서도 우리가 극단주의와 능력주의 신화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구체적인 학교를 보자. 전통적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지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결과 중심의 평가가 지닌 영향력이 막강하긴 했지만, 학생들은 교실 밖에서 얻는 경험과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서도 변화와 성장을 거듭한다. 학생들은 교육과정에 참여할 때 끊임없이 자기만의 필터링을 시도하며, 교육과정이 지닌 여백과 행간을 어떻게 읽고 채워넣느냐에 따라 교육적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요컨대, 교육은 교실 안팎의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복잡계’이며, 그것이 학생의 배움과 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세상의 어느 학교도, 어떤 교사도 학생들에게 극단주의에 빠지거나 파시스트가 되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학생 중 일부는 그러한 생각과 행동에 빠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자기 확신이 지나치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는 것, 자기가 판단한 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이 극단주의자나 파시스트가 되기 십상이다. 정답을 잘 찾아내는 교육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학생, 그것을 삶의 무기로 삼아 세속적 성공을 얻은 이들일수록 능력주의 신화를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확신하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능력주의를 무기 삼아 흑백논리가 힘을 얻고, 극단주의가 자리 잡기 딱 좋은 조건이 형성된다.

 

능력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생각하지 않는 백성’을 만든다는 사실이다.5 한번 그걸 받아들이고 나면, 승리자는 우연이나 행운, 공동체의 도움 없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패배자는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책하도록 강요받는다. 「시험 능력주의」의 저자 김동춘 교수는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임금과 자기 발전의 기회를 제공”받고, “인간다운 삶과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왜곡된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아직 머나먼 길, 가 보지 않은 곳이지만, 우리는 흘러 흘러 그 바다를 꿈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각국이 ‘민주시민교육’으로 간 까닭은

 

영국은 다른 북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민주시민교육’이 다소 늦었다. 1997년 집권한 노동당 토니 블레어 내각은 이민자에 대한 혐오 문화의 확산과 청소년 범죄의 증가, 그리고 총선 투표율이 평균 71.4%였던 반면, 18-24세 청년 층 투표율이 54.1%로 역사상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것에 자극을 받아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토니 블레어 내각은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과 학교에서 민주주의 가르치기’ 보고서, 즉 ‘크릭 보고서’(Crick’s Report)를 채택6하였다. 이어, 2000년에 ‘민주시민교육’을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반영하고는 2002년부터 학교 교실에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시민성’(citizenship) 교과를 독립 교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5년 노동당이 재집권하면서 고든 브라운 총리 역시 ‘민주시민교육’에 더욱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청소년 범죄가 현저히 줄었으며 청소년 투표율 또한 크게 증가하였다.

 

학교에서도 교사들은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을 회피하지 않고 논쟁적인 수업 주제로 끌어들였다. ‘크릭 보고서’는 학생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회 현안을 교사가 적극적으로 다룰 것을 강조함으로써, 보수당 정권이 추구한 ‘좋은 시민’(good citizen)을 넘어서 사회 문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독일의 ‘교육’은 학습자를 대상화하여 ‘만들어지는 존재’(Erziehung)로 보기보다는 학습자 스스로가 자신을 주체화하고 능동적으로 학습하여 ‘만들어가는 존재’(Bildung)로 보는 생각을 기본 철학으로 삼고 있다. 즉, 학습자는 스스로 정치적 이슈를 비롯하여 자기 삶과 관련된 문제들을 다양한 관점과 논쟁하면서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자기 성숙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정치교육’(Politsche Bildung)이라 부르는 민주시민교육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정착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통일 이후 사회 통합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은 공공영역, 민간영역, 정치영역에서 다양한 정치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때, 독일은 1968년 학생운동을 거치며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에 정치적 도구화를 방지하고 이념적 갈등 해소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1976년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서 좌우를 망라한 교육학자, 정치학자들이 모여 독일 정치교육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를 도출했다. 강압적인 교화나 주입을 금지한다는 ‘강제성 금지’, 사회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에서도 논쟁적인 것으로 다룬다는 ‘논쟁성 유지’, 그리고 학생들의 ‘정치적 행위능력 강화’라는 세 원칙은 독일 정치교육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아, 이후 독일 번영과 통합의 근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며 네오나치나 극단주의, 인종주의가 등장하며 정치교육이 반드시 삶의 태도에서도 민주주의자들을 길러낸 것은 아니라는 비판에 부딪혔다. 지식과 이론 중심의 정치교육에 대한 반성 속에, 2000년대 독일에선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함께 ‘민주주의 배우기와 살아가기’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중간 결과물로 2005년 ‘마그데부르크 선언’7을 발표한다. 이 선언은 “국가와 헌법의 민주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주주의를 사회의 형식이자 삶의 양식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들은 극단주의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다양한 방식의 ‘민주시민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도 그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주춤할 필요는 없다. 무릇 교육적 효과란 개개인의 내면에서 ‘시나브로’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일어나는 것이기에.

 

 

우리도 지금보다 더 강하게

 

이제 우리의 시민교육을 살펴볼 차례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우리의 민주시민교육은 완벽한 진공상태였다. 아니, 학생들에게 노골적인 상명하복의 수직적 위계를 금과옥조처럼 강요하는 형국이었다. 그나마 조금씩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과 김대중 정부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 덕분으로, 일부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먼저, 학교의 시민교육을 내용 면에서 강화하자는 흐름이 하나 있다. 조금 더 세분화하면, 민주시민교육을 별도 교과목으로 두고 직접적으로 교육하자는 의견과 현 교육과정의 틀 안에서 모든 교과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하자는 두 가지 목소리로 다시 나뉜다.

 

전자는 시민교육 교과를 중심에 두고 범교과 학습 주제를 그 교과에 통합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2000년 ‘민주시민교육’을 국가교육과정으로 채택하고 이듬해부터 독립 과목이자 공통필수과목으로 ‘민주시민교육’을 시행했던 영국의 사례8와도 유사하다. 후자는 별도의 교과를 새로 만들지 않고, 기존 교과를 민주적인 내용과 방법으로 채우는 교과 재구성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으로,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gebildet)되는 것’9이라는 관점에서 ‘정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교과에서 행해야 한다고 보는 독일의 사례와 유사하다. 둘 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일 테니, 무엇이 더 바람직한 방식인가 하는 논쟁보다는 각 나라나 사회가 처한 구체적인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채택하면 될 일이다.

 

다음으로는, 교과 내용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배움의 태도, 방법의 변화에 무게 중심을 두려는 흐름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결과 중심의 교육보다는 과정 중심의 교육에 무게를 두고 개개인의 성장만이 아니라 협력적 배움을 강조한 것이다.

 

‘혁신 교육’을 내건 교육청을 중심으로 시작된 협력 교육은 모둠활동을 비롯한 학생들의 공동체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이제는 전국의 학교, 교사들이 협력적 배움을 실천하고 있다. 또, 교사들도 자발적으로 교원학습공동체를 조직하여 자신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동료성을 키우며 협력적 실천을 해나가고 있다.

 

모둠활동을 비롯한 협력적 배움은 어떤 질문이나 주제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토론과 실험 등을 거쳐 최종 보고서나 발표로 이어지는 프로젝트 학습, 그리고 다양한 토의·토론의 활성화로도 이어졌다.

 

한 예로, 서울시교육청의 ‘공존형 역지사지 토론수업’도 깊은 사고와 다양한 생각을 펼치기 위한 형식의 배움 방식이다.10 이 수업은 토론 주제에 관하여 팀별로 논의한 후 입론, 반론, 최종발언 등의 1차 토론을 거친 뒤, 다시 찬반을 바꾸어 같은 방식으로 2차 토론을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전체 합의안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 수업은 학생들이 지식을 배우는 것을 넘어, 실제 삶에 필요한 토론 역량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협력을 배우며 극단주의가 발붙일 곳을 차츰 줄여나가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토론 수업의 모태가 된 것이 미국의 교차조사토론(CEDA)11이다. 형식이 엄격하고 시간 제한이 있는 경쟁 형식의 토론이지만, 승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대개 경쟁 토론은 승부를 가리기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논제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와 토론 과정에서 서로의 주장과 근거에 대한 교차조사를 통하여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배려과 규칙의 중요성을 배우는 데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오류가능성’이다. 누구의 의견도 완전할 수 없고, 자신의 주장을 진리라고 강요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근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다. 탄핵 재판에서 잘못 이해되었던 ‘계몽’의 본래 의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나왔다. 즉, 계몽된다는 것은 따져 묻는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든, 지휘관이든, 유명 유튜버든, 종교 지도자든,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의 말도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며, 오류를 저지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여러 생각들 속에서, 만사를 의심해 가면서, 근거 없는 주장을 하나씩 배제해 나가는 다소 지루한 과정을 통해 세상을 운영하자는 것이 민주주의다. 토의와 토론, 협력적 배움은 이 지루한 과정을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하여 일생을 관통하여 삶의 원리로 삼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 어떻게 극단주의가 발붙일 수 있으며, 감히 누가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을 시도하고 부추길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의 민주시민교육 수준과 상황은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 3월 18일~26일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는 전국 교사 736명이 참여하였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학교 민주시민교육이 어느 정도 되고 있느냐’는 물음에 ‘매우 잘 되고 있다’란 응답은 4.9%에 그쳤고, 부정적인 응답은 44.9%(‘되고 있지 않다’ 33.8%, ‘전혀 되고 있지 않다’ 11.1%)로 나타났다. ‘민주시민교육의 걸림돌’에 대해 가장 많은 교사들은 ‘헌법상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지적했다. 응답자의 96.9%(‘매우 그렇다’ 77.5%, ‘그렇다’ 19.4%)가 이 문제로 인해 민주시민교육이 위축된다고 답했는데, 이는 현행 헌법 제31조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된다’는 글귀를 ‘(교사 등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해야 한다’고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뜻이다.12

 

이에 정치권도 나서기 시작했다. 극우와 가짜뉴스 판을 치는 현실 속에서, 강경숙 의원은 학교시민교육지원법을 발의하였다. 이를 통해 “교육부장관이 종합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학교 교육과정에 민주시민교육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법적 기반 마련에 앞장서며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하고 토론하며 성장하는 배움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13

 

현행 교육기본법은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을 교육이념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윤석열 정부 초기인 2022년 9월, 자체 부서인 민주시민교육과를 없애 버렸고, 지난 5년 사이 민주시민교육 예산도 1/7로 대폭 축소되었다. 올해 교육부의 민주시민교육 예산은 6억 원이었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AI 디지털교과서 예산은 초기 비용만 4,067억 원이었다.

 

 

시민교육의 새로운 관점

 

인간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어느 한순간도 확신과 완벽한 존재로 살아갈 수 없다. 즉, 평생 배움을 계속해야 하는 존재라면, 어떤 배움이 이어져야 할까? 능력주의, 극단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교육에 참여하는 주체, 공동체 성원의 다양성과 복잡도를 높이는 방법이 필요하다.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질 수 있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교사 집단을 구성하는 데에도 성별, 정치, 종교, 인종, 문화적 다양성이 필요하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교사의 삶과 만남으로써 교사 집단 내부는 물론이요, 학생들의 교육과정에 더 많고 깊은 철학과 역사, 경험이 스며들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의 다양성 강화를 위해서는 거주지 중심의 근거리 배정만을 고집할 일도 아니다. 학부모의 민원 제기에 벌벌 떨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 모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것이 더 나은 교육방법이 될 수 있도록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 이른바 ‘이방인’의 존재가 우리 사회, 학교 구성원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배움의 과정에서 다양한 취재원을 활용하여 팩트체크를 강화해야 한다. 공동체 성원의 다양성과 복잡도가 높아지면, 다양한 관점, 접근법, 방법론이 각각의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펼쳐질 수 있는 좋은 조건이 형성된다. 어느 한쪽으로 과몰입하고 쏠리는 현상이 약해지면, 그곳에서 낡은 것의 파괴와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 터. 이러한 접근 방식을 꾸준히 배워나간다면 편견이나 극단주의 사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일은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숙의(熟議)와 숙론(熟論)의 문화를 뿌리내리는 일이다. 사건이나 현상, 주제에 접근할 때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더 옳은가로 접근하는 태도를 키워야 한다. 이는 극단적 개인주의나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제대로 길러지기 어렵다. 그리고 빠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기도 어렵다. 공동체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각자의 관점과 생각, 경험을 한 자리에 내놓고, 이를 어느 것이 더 좋은가 하나하나 판단하고 합의해야 하기에 기나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일단 판단과 결정이 내려지면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합의한 것이기에 그 어느 결정보다도 더 힘차게 추진될 수 있다. 그리고 극소수의 의견에 휩쓸려 편견이나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위험성도 크게 줄어든다.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옛것들과 이별하기 위해,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후진 발상이나 생각, 행동과 단호한 결별을 할 수 있도록 다정한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는 모든 세대와 계층이 함께 해내야 하는 주요한 책무다. 소년들이 자라서 청년이 된다. 소년들의 억울하다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살피고 토론하고 함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아야 하는 이유다. 억울함의 맥락을 잘 풀어헤쳐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탄력적으로 다루어야 한다.14 각자가 지닌 고유성과 개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관계의 틀과 내용을 만들어내는 연습을 교실에서 집에서 학원에서 훈련하고 공부해야 한다. 극단주의가 급성장한 시대, 학교 교육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순 없지만, 해결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영국 드라마 ‘소년의 시간’(Adolescence)은 여성혐오 수위가 도를 넘어서고 왜곡된 남성성의 장으로 바뀌고 있는 10대의 교실과 문화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꼭 소년이 아니어도, 우리는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일상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지금 10대들의 문제(또는 극단주의)는 스마트폰, 또래문화, 교육제도, 가족관계 등 한두 개의 원인으로 분석할 수 없으며, 단순명쾌한 해결책도 나올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15 즉, 소년의 실패는 개인적 실패가 아닌 사회적 실패이며 부모는 자녀의 내면을, 학교는 학생의 갈등을, 사회는 온라인 위험과 청소년 소외를 외면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 각 부문이 자기 역할을 분명히 수행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습 능력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최상위권이었지만, 또래 친구와의 관계나 정서적 자아 같은 비학습적 영역에서는 하위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16 아이들을 성적 지상주의, 왜곡된 능력주의로 내몰았던 우리 교육의 당연한 성적표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삶의 영역에서 온 시민들이 공동의 공간과 공공장소에서 만날 것을 요구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다른 의견에 관해 타협하며 우리의 다름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공동선을 기르는 방법이다.17 나는 사람들이 공동선을 기르는 최초의 만남을 공교육(학교)에서 갖게 되기를 바란다.

 

 

학교가 광장을, 광장이 학교를 만든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우리 사회에 상상초월 충격파를 던진 12·3 내란 사태는 그 수괴였던 대통령을 헌법재판소에서 파면함으로써 1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우린 그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비상계엄과 내란을 막아내고 내란 수괴를 파면한 시민들에게서 한국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와 희망을 보았다. 우리가 얻었던 것을 간략히 정리하여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어떤 광장을 만들 수 있게 해야 하는지 마중물로 삼으려 한다.

 

1. 국회 장악을 시도하던 장갑차와 특전사 군인들의 총부리에 맨손으로 맞선 시민들, 이에 대한 군인들의 소극적인 대응과 망설임의 몸짓
2. 문자 그대로의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굴하지 않고 남태령, 한남동, 광화문 등에서 123일 동안 응원봉을 흔들며 흥겹게 탄핵 촉구를 외친 청년·시민들
3.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장애인, 비정규직 등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당당한 자리와 끈끈한 연대로 채워진 무대와 광장
4. 수구 언론의 방해에도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은 민주노총과 전농
5. 모든 K-팝 노래의 시위 사용 : 불후의 명곡인 ‘다시 만난 세계(소녀시대)’와 ‘위플래시’, ‘질풍가도’, ‘아모르 파티’, ‘아파트’, ‘빙고’ 등에 추임새 ‘윤석열 탄핵’ ‘파면 파면 파면해’와 민중가요의 절묘한 앙상블
6.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머와 해학과 개성 넘치는 깃발 부대
7. 민주공화국, 헌법과 법률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인식이 매우 높아짐.
8. 혐오 발언, 비속어 없는 발언과 쓰레기 전혀 없는 집회 현장
9. 선결제, 핫팩과 먹거리 나눔, 포장마차의 자발적 지원 등 다양한 동참
10. 비상행동, 촛불행동 단체의 완벽한 집회 지원

 

대략 이런 10가지가 2025년 이후 최고의 민주시민교육 교재가 될 듯하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제법 있었음을 반드시 기억해 두자.

 

1. 국회의 계엄 해제와 탄핵 소추 투표에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은 국회의원들
2. 내란을 ‘계몽령’이었다는 해괴한 발언으로 국민을 호도하려던 자들
3. 혼란을 틈타 한몫 챙기려는 극우 유튜버, 사이비 종교인 등
4. 성조기 부대의 망언 – 금치산 선언 : 부정선거로 졌다. 중국인이 선관위 장악했다. 헌재 연구관에 중국인이 있다
5. 노골적 여론 조작 시도 : 편향적 설문조사 공표. 극우 개신교 청년층 신자 발언대 세우기
6. 하라는 일은 안하고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며 혼란을 부추긴 대행들
7. 자신은 계엄을 몰랐거나 반대했다며 발뺌하거나, 증언-진술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한 자들

 

2024년 겨울에서 2025년 봄으로 이어지는 ‘빛의 광장’에서 우린 더 따스한 세상, 더 아름다운 학교를 꿈꾸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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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https://www.youtube.com/watch?v=BNzUON9jWa4 (KBS뉴스, 2025.01.19.)
  2. https://www.youtube.com/watch?v=rU0xo8BMuLc (MBC뉴스데스크, 2025.04.18.)
  3. https://www.youtube.com/watch?v=qQwHEQzJRJ4&t=11s
  4. https://www.youtube.com/watch?v=jzkqBFkd7H8
  5.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417쪽.
  6. https://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357 (한겨레:온, 2023.04.17.)
  7.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899092.html (한겨레신문 2019.06.24.)
  8. https://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569 (한겨레:온, 2022.10.23.)
  9. <독일의 학교교육>(정기섭, 살림터). 353쪽
  10. 서울시교육청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seouledu2012/223475564844
  11. https://eiec.kdi.re.kr/material/clickView.do?click_yymm=201512&cidx=1559
  12.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5975 (교육언론 ‘창’, 2025.04.01.)
  13.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6136 (교육언론 ‘창’, 2025.04.25.)
  14.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90047.html (한겨레신문, 2025.04.02.)
  15.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90047.html (한겨레신문, 2025.04.02.)
  16. https://www.sedaily.com/NewsView/2GROONPM0S/GK01 (서울경제, 2025.04.27.)
  17.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와이즈베리) 353쪽.
양서중학교 교장 전종옥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5년 동안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고전 소설 여행』(공저), 『선생님과 함께 가는 현대 소설 여행』(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세계문학) 서평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양서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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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1. 전종옥 수정 삭제

    [흑백 민주주의④]“협소한 공정 논란 벗어나려면, 모두가 모두를 돕는 ‘관계적 존재론’ 발전시켜야”
    ‘우리 시대의 공정론’ 연구하는 애리조나주립대 김정희원 교수
    https://www.khan.co.kr/article/202101202115005

    ‘공정’과 ‘능력주의’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헤친 글.

  2. 궁금이 수정 삭제

    계엄 사태 이후에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우리 교육의 문제점으로 풀어본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우리 학교의 줄세우기 교육이 만들어낸 엘리트들의..(일부의 문제겠지만) 비뚤어진 특권의식, 전체주의가 신념화되고 혐오와 차별을 만들고 기타의 문제점들을 생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분명, 많이 변하고 있고 다양한 시도 중에 있지만, 우리 교육이 학생을 입시와 성적순으로 평가하는 것에 의지하고 있는 이상 참 쉽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발적인 참여로 자유로운 토론, 다양한 의견 교류 이런 것을 생활화 시키는 법이 없을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어릴 때부터 습관화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도 요즘 초등학교도 수업시간을 빼서 자치조직 (동아리 비슷)을 만들어 꾸려 가보고 이런 시도도 하는 것 같던데, 아무튼..뭔가 노력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3. 전종옥 수정 삭제

    드라마 『소년의 시간』, 외로움은 어떻게 정동이 되는가 (기후정의를 위한 독립언론, 미디어G)

    https://www.mediagree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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