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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⑮]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 이해하기

#1273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일본 간사이대학교 교수 2025.04.30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교실에서 마주한 문화적 충격

 

내가 처음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나를 당황하게 만든 일이 정말 많았다. 당신도 한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교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부터 말하자면, 학생들이 스스로 답을 찾기보다는 서로 답을 공유하고 있었다. 두 학생이 제출한 과제 보고서가 똑같은 게 아닌가! 나는 당연히 그것을 부정행위로 보고, 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누가 쓰고 누가 베꼈는지는 상관없이 모두에게 ‘0점’을 주었다. 또 한 학생에게 답을 물으면, 질문을 받은 학생은 항상 다른 학생을 돌아보며 일본어로 무언가를 이야기한 뒤에야 대답했는데, 그 모습이 정말 거슬렸다. 나는 생각했다. “이건 너무 예의 없는 행동 아닌가! 스스로 답을 찾아낼 생각은 안 하고 친구들에게서 답을 얻으려 하다니, 그것도 교사가 보는 앞에서!” 미국인인 나로서는 그런 행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도 일종의 부정행위로 간주했고, 그 점을 분명히 지적하곤 했다.

 

 

교육과정을 넘어: 규율, 책임감, 학습 능력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마 당신도 이런 문제들에 공감할 것이다. 시험 강박, 학원(사교육), 비판적 사고 대신 주입식의 기계적 암기, 실제 의사소통과 동떨어진 어학교육, 그리고 억압적인 교육 방식들 말이다. 교육자이자 저널리스트인 구세웅 씨도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전 세계는 한국을 교육의 모범으로 볼 지도 모른다. 학업성취도평가와 같은 국제적인 시험에서 한국 학생들은 최상위권을 차지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는 이미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타이거 맘1(Tiger Moms), 학원, 극도로 권위적인 교사들이 지배하는 한국 교육은 뛰어난 학업성취를 이루는 학생들을 배출하지만, 학생들의 건강과 행복을 희생시키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이 모든 교육 방식은 사실상 학대나 다름없다.” (2014)

 

위의 기고문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학교 시스템의 여러 측면은 영어권 국가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러한 관행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더 넓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한 교과 지식만이 아니다. 어쩌면 교육 시스템 전체를 하나의 체계로 보고, 그 안에서 의례, 관행, 실천들이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살펴보면 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세계에서 특히 3차 산업(서비스)과 4차 산업(IT, 연구, 교육)이 발달한 국가에서는 어떤 지식, 스킬, 태도가 가장 필요할까? 우리는 학생들에게 미래 직업에 꼭 맞는 지식을 가르칠 수는 없지만,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과 필요한 정보를 찾는 방법은 가르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스킬과 태도가 중요할까?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규율(discipline)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자리에 오를 사람은 무절제하고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이어야 한다. 수업을 빼먹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은가? 아니면 자신의 분야를 깊이 탐구하는 의사를 원하는가? 회사의 미래를 최소한의 일만 하는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아니면 자기 시간을 더 들여서라도 일을 확실하게 끝내는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어쩌면 입시를 통해 평가해야 할 것은 특정 과목의 세세한 지식이나 거의 쓰이지 않는 문법이 아니라, 바로 규율, 책임감, 학습 능력일지도 모른다.

 

 

숨겨진 교육과정과 교실 문화

 

실제로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와 같은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강의 계획서는 겉보기와 다르다. 교과서에 적힌 내용 외에도 우리는 학생들에게 시간을 엄수하고, 언제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지어는 글쓰기, 바르게 앉는 법, 단정하게 옷을 입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있다. 엘리엇 아이즈너(Eliot Eisner)는 이를 ‘숨겨진 교육과정2(hidden curriculum)’이라 불렀는데(1994), 이는 공식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요구되는 엄격한 규율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벗어나면 보통 창피를 당하거나 벌을 받는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내가 똑같은 보고서를 제출한 학생들에게 0점을 준 이유는 바로 이 ‘숨겨진 교육과정’ 때문이다. 즉,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학생으로서 요구되는 규율을 준수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서였다. 비록 그 교훈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당시에는 나조차도 명확히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숨겨진 교육과정은 수업을 포함한 우리의 교육 활동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예를 들어, 교사가 지목하지 않았는데 먼저 답을 외치는 학생을 우리는 ‘버릇없는 행동을 한다’고 여길 수 있고, 질문을 했는데도 답하지 않는 학생을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다’거나 ‘수줍음이 너무 심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숨겨진 교육과정은 학교의 공식적인 목표와 종종 충돌한다. 내가 자란 미국 지역의 학교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검색하던 중, 한 중학교의 사명 선언문이 다음과 같은 문구로 구성된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학생들이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학습자가 되도록 장려하는 안전하고 지지적인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데 전념한다.” 이와 유사한 사명은 다른 학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학습자를 만드는 것. 그러나 이들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조금이라도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모습을 보이면, 예컨대 교사가 지시한 지문이 아닌 학생 자신이 찾은 다른 지문을 읽는다거나, 교사의 지시를 따르기보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 제안한다면, 그 학생은 아마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예가 적절치 않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독립적이고 자립적인’이라는 말의 의미를 얼마나 폭넓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학교는, 또 교사들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독립적인’ 학습자가 아니라 ‘의존적인’ 학습자를 양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점의 변화와 교실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

 

교실 문화는 근본주의 종교만큼이나 규범적이고 엄격하며 통제적일 수 있다. 우리는 교실 문화가 요구하는 올바른 가치관, 태도, 행동을 학생들이 내면화하도록 가르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하지만 대개는 교사 자신도 이러한 숨겨진 교육과정을 무의식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경쟁이 치열하고, 협력이 필수적이며,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오늘날의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가치와 행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 사회·교육 시스템의 숨겨진 교육과정이 다른 시스템에 적용될 때 혼란과 좌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 교사들은 이러한 상황을 자주 겪는데, 일본에서 처음 강단에 섰을 때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의 교육 기준으로는 ‘버릇없는 행동’처럼 보인 일본 학생들의 그 태도가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똑같은 과제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영어 질문에 일본어로 답을 논의했던 학생들은 그저 자신들의 사회·교육 문화권에서 배운 대로 적절하게 행동했을 뿐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데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 친구 프레드 앤더슨(Fred Anderson)의 발표가 그 계기였다. JALT3(Japan Association for Language Teaching, 일본언어교육학회)에서 열린 그의 발표 주제는 내가 전혀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던 사회언어학(sociolinguistics)이었다. 원래는 들을 생각이 없었지만, 발표 자료를 옮겨 준 뒤 그냥 자리에 남아 듣기로 했다. 그런데 그 발표는 내가 꼭 들어야 했던 내용이었다. 프레드는 일본의 교실 문화에 대해 말하면서, 여기에는 나름의 숨은 규칙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본 학생들은 선생님이 지목하기 전까지는 수업 중 발언하지 않도록 교육받으며, 반드시 단 하나의 절대적인 정답만 말해야 한다고 배운다. 따라서 수업 중에 대답하는 것은 단순한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전체 학급이 공유하는 일종의 ‘합의’처럼 여겨진다. 만약 그 답이 기대한 정답이 아닐 경우, 해당 학생은 수치심을 느끼고 교사와 급우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런 맥락을 생각해 보면, 내가 질문을 던졌을 때 학생이 다른 친구들과 먼저 답을 확인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던진 질문들은 여러 답이 가능한, 다소 애매한 질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 학생들에게는 답변하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 행위였다. 더욱이 내가 기대했던 개별 학생과 교사의 상호작용보다는, 합의를 중시하는 일본의 교실 문화 때문에 이 학생들은 먼저 답을 확인해야 했던 것이다. 즉, 학생이 답을 몰라서 급우들에게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발표하기 전에 답을 협력적으로 검토한 것이다. 이런 행동은 일본 문화에서는 적절한 방식이었다. 두 학생이 똑같은 보고서를 제출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미국인 교사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는데, 그가 학생들을 꾸짖자 그들은 “아니에요, 선생님. 우리는 이 보고서를 같이 썼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과제 보고서가 똑같았던 이유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즉, 일본의 교실 문화에서는 그러한 공동 작업이 학습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오히려 학습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실제로 표절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우리의 관점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만약 교육 시스템이 단 하나의 절대적인 정답만 강조하고, 개별적인 의견은 거의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를 무조건 표절이나 부정행위로만 볼 것이 아니다. 맥락을 고려해 이해한다면 멘토링의 한 형태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구 교육의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서구 교육의 가치 중 일부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이 학생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학생들 또한 자신들만의 숨겨진 교육과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입하려 했던 가치들은 학생들이 자신의 사회·교육 문화권에서 익혀온 가치들과 정반대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조언은, 학생의 행동 때문에 감정적으로 격해질 때, 가령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는 잠시 멈추고 왜 그런지 이유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학생이 아니라, 어쩌면 나 자신에게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Spring 2023 Volume 27, Issue 1)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

 

• Eisner, E. W. (1994). The educational imagination: On the design and evaluation of school programs. Prentice Hall.

• Koo, S. (Aug. 1, 2014). An assault upon our children. The New York Times, Sunday Opi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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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타이거 맘(Tiger Moms)- 교육열이 높고 자녀 교육에 있어 매우 엄격하고 강압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부모를 일컫는 말로 주로 아시아계 부모를 지칭한다.
  2.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 학교에서 배우는 공식적 교육과정과는 별개로 학교의 분위기, 교사의 행동, 상호작용, 규칙 등 학교생활을 통해 은연 중에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가치관, 태도, 행동 양식을 포함하며, 학생의 인성 및 사회성 발달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비공식적(onofficial)/ 비형식적(informal)/ 잠재적(latent)/ 구조화되지 않은(unstructured)/ 계획되지 않은(unplanned) 교육과정 등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3. JALT(Japan Association for Language Teaching, 일본언어교육학회)- 일본 내 외국어 교사를 위한 비영리단체로 영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교육의 연구와 실천을 지원하며 학회, 워크숍, 학술지 발행 등을 하고 있다.
일본 간사이대학교 교수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커티스 켈리(Curtis Kelly)는 교육학 박사이며, 일본 간사이대학교(Kansai University) 영어과 교수이다. 인생 사명은 "교실에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작가로서 500회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35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Significant Scribbles(중요한 낙서)』(Longman), 『Active Skills for Communication(능동적 의사소통 기술)』(Cengage), 『Writing from Within(내면으로부터의 글쓰기)』(Cambridge) 등이 있다. 뇌과학과 언어교육을 연결하는 무료 잡지 <MindBrainEd Think Tanks>의 구독을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ctskell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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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궁금이 수정 삭제

    저의 지인 중에 남편을 따라 아이와 셋이 주재원으로 외국에 나가 살았는데 아이가 7살부터 4학년 때까지 외국인 학교에 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1년 후에 다시 주재원 신청을 하고 나간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아이가 한국 학교에 적응이 안되서라고 하더라고요. 한국에 오자마자 남들처럼 학원 등록하고 보내려 했는데, 아이가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건 아니었는데 한국 학교에서의 교육 방식, 성적주의, 그 외 규칙들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때는 그런가보다..했는데, 이 글을 보니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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