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⑦] 문제 행동의 이면 : 보이지 않는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이해
| 학습과학은 뇌가 학습하는 원리에 관한 기존의 인지·신경과학 연구를 교수학습 실천과 연결합니다.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 교육계에서 학습과학을 실제 수업에 적용한 사례 및 아이디어를 소개합니다. 그 첫 시리즈로 쉽고 재밌는 ‘켈리 박사의 학습과학 실천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
문제 행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
수년 전 일본 규슈 순회강연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문제 학생 다루기’에 관한 발표를 했다. 핵심 메시지는, 학생을 변화시키려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교사로서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는 것, 요컨대 관점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 마에카와(前川) 선생님은 수업 중간에 매번 나갔다 오는 학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업 중간쯤에 번번이 한 학생이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허락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요청을 거절할 수 있겠어요?” 물론 “수업 전에 갔어야지!”라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선생님도 있겠지만 마에카와 선생님은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을 내보내 줬고 그 학생은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했다. 베테랑 교사들은 그런 상황에 익숙하다. “보나마나 뻔해요. 저런 학생들은 대개 수업을 빠져나가려고 화장실 핑계를 대죠. 어쩌면 스마트폰을 보면서 담배를 피울 수도 있어요.” 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훌륭한 선생님은 우리처럼 성급히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마에카와 선생님은 먼저 그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생활기록부를 살펴보던 중 그 학생이 심한 치질을 앓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치질이라니! 도넛 방석을 가져오기는 너무 부끄럽고, 90분 동안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너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도중에 화장실에 가서 잠깐이라도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우리 모두의 표정이 부드러워졌고, 찡그린 표정에서 연민 어린 미소로 바뀌었다. “아, 가여워라! 맞아요, 생각해 보니 그렇게까지 태도가 나쁜 학생이 아니었어요. 그 학생을 돕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요?” 우리의 시각은 그 작은 정보 하나로 완전히 바뀌었다.
신체적 고통 vs. 심리적 고통: 다른 듯, 그러나 같은
그때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는데 그게 바로 뇌 전문가들이 말하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외부로 드러나는 신체적인 장애나 신경학적 장애를 가진 학생에 대해서는 항상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내부에 감춰진 심리적 장애에 대해서는 전혀 다르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 수업 중에 바보같이 보일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 계속된 실패로 인해 무기력에 빠진 아이, 수업시간에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 이 아이들 모두가 심리적 장애를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아이들을 의지가 부족하다거나 노력하지 않는다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의 심리적 어려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 자신이 마치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처럼 손가락질하며 아이들의 행동을 쉽게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 고통이 신체적 고통보다 덜 심각한 것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을까?
사실, 뇌의 관점에서 볼 때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성자기공명영상) 연구는 심리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 이 두 가지 유형 모두에서 동일한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거절이나 실연과 같은 심리적, 사회적 고통은 비록 자극이 각기 다른 부위에서 발생하더라도 신체적 고통을 느끼게 하는 뇌의 동일한 영역을 활성화한다(Laslocky, 2013; Singh, 2015). 실연은 중독과 관련된 영역도 활성화한다. 요컨대, 심리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은 어느 쪽이든 관련 위험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동일한 신경 경로를 공유하도록 진화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학생들이 겪는 거절, 실패, 수치심 등으로 인한 심리적, 사회적 고통을 경시하는 것일까? 또 그들의 회피 행동을 도덕적 의지 부족이나 노력 부족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것일까?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면서 말이다. 심리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은 어떤 면에서는 동일한데도 왜 심리적 고통에 대해서만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일까?
이해와 공감: 문제 행동의 효과적 도구
내가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학생이 신체적 상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심리적 성향도 선택할 수 없으며,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며 수년 동안 부모에게 야단맞은 아이는 잠재의식 속에 공부를 불쾌하고 고통스럽고 피해야 할 것이라는 심성 모형(mental model)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심성 모형에 부여된 정서적 가치는 평생 우리를 조종한다. 성난 개를 피하게 하고, 좋아하는 빵집으로 향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강렬한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활동을 저절로 억제하고 회피하는 것은 의도와 상관없이 거의 본능적이다. 실제로 심리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만큼이나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이 동등한 억제력을 갖는다는 개념의 함의를 생각해 보자. 과제를 완료하지 않은 학생에게 화를 내거나 비하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강화한 적이 있는가? 나는 종종 그랬다. 과제를 수행하지 않은 학생이 몹시 불쾌함을 느낄 만큼 자극한다면 다음에는 과제를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논리가 합리적일까? 이러한 접근 방식을 지지하는 근거가 있을까? 나의 공격적인 태도로 인해 과연 몇 명이나 바뀌었을까? 피상적 겉모습이 아니라 진정으로 변화된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몇몇은 있겠지만, 훨씬 많은 학생이 영어를 더 싫어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어야 한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교육 인본주의자들은 그렇게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학생들이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징계의 수위를 조정할 수는 있다. 감점이나 벌점이 ‘학교 정책’이라는 시스템에 의한 것이며, 결코 학생들에 대한 경멸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연민은 분노만큼이나 행동을 수정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나는 학생이 과제 제출에 어려움을 겪을 때면 수업이 끝난 후 만나자고 제안한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그렇게 자신을 지지해 주는 코치가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라도 기존의 관점을 바꿔보자. 치질 때문에 수업 중간에 나가야 했던 학생에게 연민을 느꼈던 것처럼, 수업이 지루해서 혹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등 여러 다른 이유로 수업 중간에 나가려는 학생들에게도 연민의 감정을 가져보자.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학생과 마찬가지로 심리적으로 불안하거나 나약한 학생에게도 깊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자주 강조되지만 실제로는 거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원칙, 다시 말해 ‘모든 학생에게 골고루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주라’는 원칙을 실천하자. 교사로서의 역할은 학생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문제 행동에 대해 먼저 교사 스스로 자신의 대응을 돌아보고, 감정을 조절하며, 적절한 지지와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학생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깊이 이해하고 지원하는 교사가 되는 것이야말로 문제 행동 개선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 이 칼럼은 코리아테솔(Korea TESOL)의 ELT 잡지 <The English Connection>(Summer 2020 Volume 24, Issue 2)에 영문으로 실린 커티스 켈리(Curtis Kelly) 박사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원본은 https://koreatesol.org/content/english-connection-tec에서, 더 긴 버전은 <MindBrainEd Think Tanks>(mindbrained.org)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ference>
• Laslocky, M. (2013). This is your brain on heartbreak. Greater Good Magazine, Greater Good Science Center at UC Berkeley. Retrieved from
https://greatergood.berkeley.edu/article/item/this_is_your_brain_on_heartbreak
• Singh, M. (2015). Breaking up is hard to do, but science can help. Podcast on National Public Radio. Retrieved from
https://www.npr.org/sections/health-shots/2015/01/13/376804930/breaking-up-is-hard-to-do-but-science-can-help
커티스 켈리(Curtis Kelly)는 교육학 박사이며, 일본 간사이대학교(Kansai University) 영어과 교수이다. 인생 사명은 "교실에서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 인기 있는 강연자이자 작가로서 500회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했으며, 35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다. 대표적 저서로는 『Significant Scribbles(중요한 낙서)』(Longman), 『Active Skills for Communication(능동적 의사소통 기술)』(Cengage), 『Writing from Within(내면으로부터의 글쓰기)』(Cambridge) 등이 있다. 뇌과학과 언어교육을 연결하는 무료 잡지 <MindBrainEd Think Tanks>의 구독을 독자들에게 적극 권유한다. ctskelly@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