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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사인 내 멘토는 누구인가

#1139 전종옥, 양서중학교 교장 2024.11.06
“요즘 멘토링은 상호주의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추세이다. 꼭 교사 자격증을 갖고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만 교사인가? 난 크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졸업생 속에서 내 교육 멘토를 만났고 또 만날 테다.” [본문 중에서]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유래했다는 ‘멘토’는 상담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의 의미로 쓰이는데, 보통 스승이라고 하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떠올리지만, 멘토는 동갑내기 친구나 심지어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멘토(mentor)에서 나온 멘토링(mentoring)은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갖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지도와 조언을 하는 것이다. 즉, 멘토링이란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멘토가 멘티(mentee, 조력을 받는 이)에게 지도와 조언을 하면서 실력과 잠재력을 개발케 하는 것이다. 멘토인 선배나 전문가는 멘티의 역할 모델이 되기도 하고 개인적, 사회적인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예전엔 멘토링이 위계적 관계였으나 요즘은 상호주의적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더 중시하는 추세이다.

 

 

교사들의 멘토링

 

멘토(링)이 교사와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교사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하는 일이다. 가장 먼저는 자신의 교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배움, 지적 성장을 이끌어 간다. 학생들이 알아야 할 것을 제시하고, 그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여 더 잘 알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교사 자신의 언행을 통해 학생들에게 본을 보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공동체 생활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각급 학교를 졸업할 즈음엔 학생들의 진학과 진로 선택을 위한 정보와 맞춤형 체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쌓은 지식, 정보와 경험, 능력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스스로 자기 앞길을 헤쳐 나가기 위해 오늘도 학교에 오고, 교사를 만난다. 교사란 어느 때는 보호자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길잡이이기도 하며, 학생들과 같은 눈높이로 늘 동행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멘토르가 있었다면, 학생에게는 교사가 있다.

 

그렇다면, 교사는 학생들의 멘토 되기만 할 것인가? 더 좋은 교사가 되려면 그 역시 멘토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교사에게는 어떤 멘토가 있을까? 원하는 배움을 이끄는 것은 물론이요, 대체로 수시로 소통하며 맘 편히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일 테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방향 설정에 중요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주며, 간혹 필요한 경력 쌓기 및 관리에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이처럼 교사들도 누군가를 역할 모델로 삼거나, 멘토가 될 만한 이를 수시로 만나며 생각과 경험을 주고받는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 지식과 임용을 준비하며 쌓은 배움만으로는 교육을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꾸준히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성찰과 자기 연찬을 거듭하여야 한다. 초보 교사일 때만이 아니라, 경력이 쌓이면 그에 상응하는 멘토가 필요한 법이다. 교사들은 창의적인 수업을 하는 교과 교사나 학급 활동을 다양하고 생동감 있게 운영하는 동료를 멘토로 삼는 경우가 많다. 최근엔 평가를 체계적으로 하거나 프로젝트 수업을 잘하는 교사, 회복적 생활교육을 실천하는 교사와 이루어지는 멘토링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시도 교육청도 그런 상황을 반영하여 연수를 마련하기도 한다. 몇몇 사례를 보자.

 

신규 교사를 위한 멘토 / 멘토와 함께하는 교육자료 개발 / 교사 간 멘토-멘티 체제 구축 / 퇴직 교장들 후배 교사 위해 멘토 된다1

다문화교육 담당 교원 역량 강화 워크숍 / 학생상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 AI활용 수업 사례 나눔 연수 / IB 탐구·실천팀 역량 강화 직무연수

 

아예 연수 제목에 ‘멘토’를 넣어서 운영하기도 하지만, 굳이 넣지 않았어도 멘토링이 이루어지는 연수 공문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멘토링의 확장 버전 만들기

 

37 = 35 + 2. 나와 관련이 있는 수식 중 하나다. 내가 학교 선생으로 살아온 세월의 35는 중학교 국어 교사의 삶이었고, 덧붙은 2는 잠시 다른 일, 교장을 하고 있는 시간이다. 그동안, 난 누구를 멘토로 살아왔던가. 특별히 어느 한 사람을 멘토로 삼아 지내오지는 않았다. 그때그때 본보기로 삼을만한 교사가 늘 옆에 있었고, 다른 사람이 한 활동이나 방법을 내 몸에 맞게 바꾸어 사용하고 활용한 것이 전부이다.

 

내게 낯선 길과 새로운 길을 제시하며 꾸준히 영향을 미친 이를 꼽으라면, 해마다 자신만의 새로운 우주를 열어준 학생들을 첫손가락으로 꼽고 싶다. 그들이, 굳이 따진다면, 내 멘토이다. 나는 주로 학생 멘토들로부터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교육활동을 할 것인지 지시와 지침을 받아 일해왔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높고 역동성 포착도 쉽지 않은 10대들의 우주, 학교 공간에서 어느 한 사람, 하나의 특성을 멘토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멘토는 만남을 거듭해 온 아이들(이젠 죄다 어른)이다. 개인적인 관계보다는 대체로 집단적으로 관계를 맺고 이어져 왔다. 이 멘토링의 특징은 누군가 우월한 지위나 능력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연령대는 좀 달라도 엇비슷한 눈높이, 관계의 일정한 지속, 서로의 다양한 필요 때문에 진행해 온 멘토링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멘토들

 

# 하나

 

1988년, 대학을 졸업하고 3월 초에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군부 독재자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어이없는 일을 당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대표자를 직접 선거로 뽑아야 한다는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시기였다. 당시 대부분의 중·고 학생회는 학급 대표들이 모여 뽑는 간선 학생회였는데, 내가 부임한 중학교는 3학년을 중심으로 직선 요구가 일어났다.

 

부임 1주일밖에 안 된 햇병아리 교사이긴 했지만, 나도 생각이 같은 몇몇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직원회의에서 발언하려다 막히는 해프닝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윽박지르며 학생들을 주저앉히려는 학생부(생활지도부) 교사들에게 항의하며 당당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꺼내고 밀고 나갔다. 아쉽게도 바로 직선제 학생회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훗날의 값진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어쭙잖게 아이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생각으로 교단에 선 내가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깨우친 첫 경험이었다.

 

# 둘

 

4년째 되는 스승의 날이었다. 당시엔 개혁적인 교사단체를 중심으로 시작한 ‘촌지 거부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현금을 학교로 보내는 학부모는 많이 줄어있긴 했다. 하지만, 법에 저촉되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도 자녀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을 기대하고 학교로 무엇이든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스승의 날’이었다. 카네이션 한 송이, 손 글씨 편지 등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집에서 챙긴 꽃다발과 화장품, 넥타이, 양주를 들고 오는 아이도 제법 있었다. 마음이 있어도 제 용돈으로 선생님에게 선물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괜시리 죄인이 되고 마는 날이기도 했다.

 

그날, 운동장에서 학급 대표가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간단한 기념식을 마치고 교실로 향하는데, 한 아이가 하얀 편지봉투를 불쑥 내밀었다. 아이들 눈도 많은 곳에서 내민 봉투가 민망하여 어쩔 줄 모르는데, 그 아이가 걱정 말고 열어보라고 한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현금은 없고 짤막한 글이 적힌 편지가 있었다. “저는 남들처럼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선물을 사고 싶지 않았어요. 나중에 제가 돈 벌면 그때 스승의 날 선물을 할게요.” 이런 내용이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의 속내가 이러하구나. 이 마음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나왔다. 그 아이는 나중에 요리를 배워 음식점을 차렸고, 나와 당시 친구들을 자신의 가게로 불러 술과 저녁을 대접했다.

 

# 셋

 

가장 빈번하게 교류를 하는 이들은 나랑 바로 밑 띠동갑(용띠) 아이들이다. 중3 담임 때부터 학교 안팎에서 꽤나 자주 같이 생활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면 2박 3일 일정으로 기차와 버스를 타고 내소사, 월악산 등지로 여행을 떠났고, 일요일을 잡아 당일 산행도 했다. 몇몇은 내 자취방에 몰래 들어가 비디오를 빌려다 보기도 했고, 학년말엔 손 그림을 그려 넣고 타자를 쳐서 어엿한 학급 문집을 뚝딱 만들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이 불법 딱지를 붙인 노조에서 일하던 내 정체를 눈 밝게 알아보고는 담임을 보호하려 늘 마음을 쓰면서 어디에서 났는지 ‘강경대 열사 추모’ 리본을 잔뜩 구해와 학교에 퍼뜨려 날 교감 선생님 감시망에 밀어넣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날 자신들의 ‘나와바리’에 늘 끼워주었고, 우리는 교실에서보다 교실 밖에서 더 많이 만나고 세상 공부를 했다. 그들은 대입 재수를 하는 와중에 내 결혼식에 축가를 불렀고, 난 마흔 넘은 한 아이의 결혼식 주례를 서기도 했다. 제자 찬스를 쓰라며, 구단에 연락하여 학생들 프로야구 단체 관람(무료)도 2번이나 주선했다. 아이들 가족에 궂긴 일이 생기면 모여 슬픔을 나누었고, 몇 아이를 먼저 저승으로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세월이 갈수록 내가 저들의 선생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친구 같다는 생각이 더욱 커져만 갔다.

 

# 넷

 

2022년 겨울, 서울 종로2가 인사동 골목에 우리는 서 있었다. 난 교사에서 교장을 하겠다고 학교를 옮겼고, 졸업한 아이들은 고1을 다니고 있었다. 갑작스런 출연 제안이 들어와 몇몇에게 연락을 했더니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뚝딱 모였다. 오로지 중3 때 국어 수업을 같이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호출을 당했음에도, 무슨 비밀결사라도 되는 듯 모여 지난해 수업 장면을 떠올리며 모의재판을 준비했다. 그렇게 다시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모의재판이 교실이 아닌 시민들의 무대에 올랐다. 전혀 다른 곳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어도 우리는 같은 배움의 길 위에 서 있다는 믿음이 서로를 엮어낸 것이리라. 그들이 고3이 되었다. 올해가 끝날 무렵, 우리는 어딘가에서 저녁을 먹으며 서로를 밀고 끄는 새로운 배움, 멘토링을 또 설계하고 있을 것이다.

 

한 지역에서만 37년을 근무하였기에 졸업한 아이들과 연락이 닿기 쉬웠고, SNS가 일상이 되면서 먼 곳에 사는 아이와도 수시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자주 보는 사람일수록 할 얘기가 더 많아진다더니 해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한두 번은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저녁(실은, 술!) 자리가 쉬 끝나질 않는다.

 

수업을 위해, 시간표 때문에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졸업을 하고도 유지하는 이 관계는 무엇일까? 단지, 아이들 사는 곳과 내 근무지의 일치 때문에 맺어진 관계를 넘어 의식적인 시도와 집착을 통해 지독한 우연을 탄탄한 필연으로 바꾸어 내는 작업, 이것이 교육이고 멘토-멘티의 관계, 즉 멘토링일 것이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시간이란다.”
“그러나 네가 나를 기르고 길들이면 우린 서로 떨어질 수 없게 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되고 난 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될 테니까.”
“나를 길들여줘.”
여우가 말했다.
“하지만 넌 그것을 잊어서는 안 돼. 넌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넌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난 나의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잘 기억하기 위해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생 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한 장면이다. 여기에 교육의 핵심적인 장면이 담겨 있다. 우린 어떻게 소중하고 귀한 관계가 되는가? 그것은 서로를 위해 ‘시간의 소비’가 있어야 한다. 비록 뽑기를 통해 우연히 한 교실에서 만났지만, 같이 공부하며 생활한 시간이 쌓이며 의미 있는 관계가 된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되려면 ‘서로를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친구라면 ‘언제까지나 책임’을 지는 관계가 될 것이다. 왕자와 여우의 멘토링은 사막에서만이 아니라, 교실 안팎에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인연(因緣)’이라고 했던가? ‘인(因)’은 결과를 낳는 내적인 원인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는 과정에서 씨앗 자체가 ‘인’이다. 또, ‘연(緣)’은 인을 돕는 외적인 원인으로 씨앗이 싹트고 자라기 위해 필요한 햇빛, 물, 토양 등이 ‘연’에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인은 각자의 안에 자리 잡았던 것, 우리가 만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연은 지독한 우연으로 만나 실낱같은 끈을 튼튼한 동아줄로 만들어내는 과정일 테다. 그렇게 인연이 결합하여 다시 강한 ‘인’을 만들고, 거기에 또 다른 ‘연’을 엮어나가 새로운 ‘인연’을 완성하며 교사와 학생의 인연이 멘토링이 되는 것일 테다.

 

# 다섯

 

요즘 주로 만나는 학생들은 이른바 ‘알파 세대’(2010 ~ 2024년 출생)이다. 아직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고, 이들과는 또 어떤 멘토링이 이어질 수 있을까 아직은 안갯속이다. 한데, 한 가지 희망의 근거를 보았다. 내가 복도를 지나가는데 어떤 1학년 학생이 날 보더니 ‘종옥쌤’ 하고 부르는 거다. 그래 그렇게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위계를 넘어서는 곳, 그곳에서 멘토링이 시작될 테니까.

 

 

내 새로운 멘토를 기다리며

 

약속 시간이 다 되어 집을 나선다. 잠시 후, 아이들 대여섯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 16년 전에 중3 담임을 했던 ‘내 나이 –30’인 아이들이다. 가족과도 못 해본 4컷 사진을 두 번이나 찍었다. 한 교실에서 같은 시간표대로 살다가 지금은 저마다의 시간표를 짜서 지낸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했던 지난날, 요즘 각자 하는 일을 떠들며 나누다가 앞으로 할 일로 서로의 멘토-멘티가 될 것이다. 꼭 교사 자격증을 갖고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만 교사인가? 난 크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졸업생 속에서 내 교육 멘토를 만났고 또 만날 테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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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https://www.j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54119 (황희원 기자, 전북중앙. 2023.11.13.)
양서중학교 교장 전종옥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5년 동안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쳤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고전 소설 여행』(공저), 『선생님과 함께 가는 현대 소설 여행』(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세계문학) 서평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양서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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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1. 교사 수정 삭제

    이런 내용을 고민하고 계시다는 것만 봐도 이미 좋은 멘토이시네요. 학교의 교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시고 그들과 서로의 멘토가 되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모 지역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만나온 교장선생님들은 대부분 멘토와는 거리가 먼 분들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현 학교의 교장이란 분이 평소 자신이 교수활동을 하실 때 수업시간에 수많은 자습시간을 주고, 심지어는 학교에서 그 자습시간 동안 게임도 하게 해주었던 분이 교장이 되고서는 ‘교사는 수업으로 증명해야 한다. 자습은 절대 안된다’라고 부르짖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서글픈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그런 분들도 참 많습니다. 아무쪼록 위의 바람과 많은 교직과 인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분들과 교류를 하시어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1. 전종옥 수정 삭제

      한 번 더 생각하고, 되돌아보며 말하고 행동해야겠습니다. 내로남불이거나 역지사지를 전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입은 적게 열고, 귀는 쫑긋 세우며, 교장도 한 명의 교사임을 새겨야겠습니다.

  2. 김은정 수정 삭제

    내 아이들에게 나도 멘토가 되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 갈수록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서도 라포 형성이 잘 된 상황이라면 굳이 부모가 꼭 멘토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처럼 저도 내 아이들이 나의 멘토가 될 수도, 아이들을 키우는 또 다른 학부모님들이 멘토가 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이해하니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침에 있어서 좀 더 수월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맞아,그렇지라고 호응까지 됐습니다
    솔직한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1. 전종옥 수정 삭제

      저도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멘토보다는 멘티로 살아온 시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게 더 열심히 잘 살아온 증거라고 자부하기도 합니다.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끊임없이 배우며 사는 삶, 얼마나 신이 납니까!

  3. 박원기 수정 삭제

    선생님 목동중학교 다니실때 학생 박원기 입니다 기억나시는지요 치악산 여행도 같이 가고 밤낚시도 갔었었는데..
    교장선생님이 되시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참교사셨었는데.. 그립습니다

    1.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수정 삭제

      댓글과 관심 감사합니다. 댓글 내용을 필자이신 전종옥 선생님께서 확인하실 수 있도록 전달드리겠습니다^^

    2. 전종옥 수정 삭제

      원기 검색 실력이 제법인데. ‘교바사’ 누리집에서 날 찾아내다니. 목동중 2학년 때였나? 너희들 몇몇 데리고 밤낚시 가서 라면도 끓여 먹고 그랬었지. 이젠 너도 40대 중반쯤 되었겠구나. 학교장은 수업 교사만 하다가 잠시 다른 경험도 해보고 싶어서 시도한 거고. 이제 임기가 열흘 가량 남았다. 8월말로 마치고, 9월초가 되면 근처에 있는 중학교에 가서 수업 교사로 다시 돌아가 두 학기(12달)을 보내고 정년퇴임을 하려고 한다. 연락처는 인스타나 페북에서 내 이름 검색해서 친추나 선팔하면 될 거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엊그제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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