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톺아보기⑦ – ‘사교육비 경감’과 ‘공정한 수능’의 꼬임 : 정책의 부조리
| ‘사교육비 경감’과 함께 ‘대입제도의 공정성 강화’는 정부가 외쳐 온 핵심 정책 구호이다. 후자의 구호 아래 강구되어 온 정책이 전자의 구호와 관련해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 들여다보았다. 상보적이고 상승적이어야 할 마련이지만, 정책 노선들이 서로 부딪쳐 부조리한 양상을 보인다고 확인했다. 공정의 담론이나 공정성 강화 정책이 부실할 뿐만 아니라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피상적이고 분절적인 정책 관성의 문제를 지적한다. |
불공정한 사회, 공정을 갈구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사람들이 학교 교육에 한결같이 ‘공정’을 주문하는 것은 이 때문인 듯하다. 교육이 불공정한 현실을 고착시키지는 말길 바라는 듯하다. 정치 성향이 달라도 교육에서 공정성이 으뜸 가치이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정치 색깔이 다르면 서로 사귀거나 결혼하지도 않겠다면서 말이다.1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시절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대입제도가(특히, 수시전형이) “특권층 대물림” 통로가 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끓는 와중에 소집되었던 ‘교육개혁 관계장관회의’(2019년 10월 24일)에서였다.
교육에서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국민의 절실한 요구입니다. …국민의 관심이 가장 높은 대입제도부터 공정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단순한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국민의 요구대로 누구나 쉽게 제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입시 전형을 단순화하는 과제와 사회 배려 계층의 대학 교육 기회를 확대하는 과제도 일관된 방향에서 추진해 주길 바랍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서 수시 비중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정시가 능사는 아닌 줄은 알지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차라리 정시가 수시보다 공정하다’라는 입시 당사자들과 학부모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현직 대통령도 비슷한 맥락에서 ‘공정 수능’을 역설했다.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 2023년 6월 15일,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교육개혁 및 현안 추진 사항’ 보고를 듣는 자리에서였다. 이 말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고, 당시 얼마 남지 않았던 수능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발언이 뜬금없기는 했지만, ‘공정’에 집착하는 데서는 일관성을 보였다. 이때 발언은 2022년 대선 공약에서부터 밝혀 온 생각의 일단을 보여준 것이다. 대선 공약집에서는 아래와 같은 공언을 찾아볼 수 있다.
[공정사회 01] 부모 찬스 없는 공정한 대입제도를 만들겠습니다.
▸ 대입제도의 투명성⋅공정성 강화로 부모 찬스 차단하고 사교육 등 외부요인 최소화
▸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선발하는 정시 모집인원 비율을 확대하고 전형 제도도 단순화
두 대통령의 생각이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발언 내용은 다른 데가 없어 보이지만, 속 생각은 다르게 느껴진다. 전임 대통령은, 정시 확대가 바람직하지만은 않겠지만, 국민의 뜻이니 받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뉘앙스를 풍긴다. 반면 현 대통령은 정시 확대를(또는 수능을) 공정한 방향이라 믿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여론 흐름에 편승하는 게 낫다는 뉘앙스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정책 방향을 좌우하기 마련인 대통령들이(정치 이념이 다른데도) 교육(특히 대입 제도)에서 공정성을 앞세우는 데서는 차이가 없다. 이런 합치는 여론을 의식해 만들어진 것이란 점에서, 학교 교육에서 공정성을 앞세우는 생각이 우리의 통념이라 방증해 주기도 한다.
공정한 대입제도, 획일성, 객관성, 투명성을 지녀야 한다고 봐
공정이라는 용어(가치, 개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나 맥락에 따라 뜻이 다양하게 갈린다. 엄밀한 논변에서는 공정/공평(equity/fairness)2, 평등(equality), 정의(justice) 등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무성하게 논란한다. 정부에서는 공정이란 말을 흔히 쉽게 사용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뜻으로 쓰는지 명료하게 정리한 바는 없다. 때때로 정책 대안을 이야기하는 중에 암묵적으로(조작적으로) 정의(定義)를 내비칠 뿐이다.
공정이란 개념을 모호한 상태로 두고도, 이야기를 대입제도로 좁혀보면, ‘공정성’이 어떤 변혁을 통해 확보되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들이 모이는 구석은 있어 보인다. 의견이 모아진다고 해서 변혁안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고, 그 안에 대한 이견이 완전히 해소된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대입제도 개혁을 이야기할 때 일반적으로 전제하는 ‘공정한 제도’가 어떤 것인지 대강 유추해 볼 수 있다.
대입제도를 공정해지도록 개편하자고 할 때, 대안들은 현재 대입제도의 틀과 경계를 전제하고 모색하는 게 일반적이다. 전형 자료나 방법, 전형 시기, 전형 관련 주체들의 역할 등에 관련해서 ‘구조적인’ 변혁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수시와 정시 전형이 존속한다고 전제하며, 각 전형 시기에 학교생활기록부와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핵심 전형 자료로 쓴다는 전제도 여전하다.
기존의 대입제도 틀을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 덮어두면서, ‘공정성’ 추구는 대체로 정시 전형(수능 중심 전형) 쪽으로 기운다. 수능 점수를 전형 자료로 삼는 정시 전형이 학교생활기록부를 활용하는 수시 전형에 비해 공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수시(특히, 학생부 종합전형) 대 정시(수능 중심 전형)’의 대치로 이루어졌던 공정성 논란이 어느 한쪽의 결정적인 ‘승리’로 정리되지는 않았다. 2010년대 말 ‘정시 확대’를 둘러싼 논란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 대립은 팽팽했고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그러나 당시 70%를 넘었던 ‘주요 대학’의 수시 비중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숙의 판결’을 받았었다. 이 판결은 아직도 유효해 보인다. 대입제도가 공정해지려면 정시 비중이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적어도 정책에서 우세하다. 지금 정부는 ‘주요 대학 정시 40% 이상’이라는 이전 정부의 기준보다 더 나아간 확대를 공약해 놓고 있기도 하다.
공정성 논의에서 수시 대 정시 또는 ‘수능 대 학종’으로 세워진 대립 구도는 상대적으로 거시적이다. 전형 제도 안으로 한 차원 들어가면, 수시와 정시 안에서 미시적으로, 전형 자료와 전형 방식을 더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논란이 불거진다. 이때 공정을 지향해 모이는 논점은 세 가지 관념으로 정리할 수 있다. 획일성(표준화), 객관성,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획일성을 요구하는 생각은 전형이 하나의 잣대로 이루어져야 공정하다는 데 있다. ‘한 줄 세우기’가 ‘여러 줄 세우기’보다 공정하다는 인식이다. 정시(수능)가 수시(학교생활기록부)보다 공정하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여러 줄 세우기’는 2000년대 초반 ‘학교 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표방하며 내건 개혁 기치였다. 당시 학교생활기록부를 보강하며 수시 전형을 확장했다. 이런 개혁 흐름에 대한 반작용이 2010년대 후반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으로 나타났다. 공정의 이름으로 ‘정시 확대’가(또는 ‘정시 복원’이) 요구된 것이다. 대입 경쟁자들의 우열을 단일한 표준에 따라 사정(査定)하는 게 공정하다는 인식이 작용했다. 전국 모든 수험생에게 획일적인 표준이 되는 수능 점수가 학교와 수업집단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 학생부 기록보다 공정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이때 표준의 타당성 문제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교육 성취나 대입 자격을 표시하는 데 수능 점수와 학교생활 기록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하고 바람직한지는 문제 삼지 않는 것이다.
객관성을 강조하는 것은 정실(情實)이나 편견이 작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관식’ 시험이나 자료(기록)의 ‘정성적’ 평가는 사정관(평가자/채점자)의 이해관계나 편견에 휘둘릴 수 있다고 경계하는 인식이다. ‘객관식’ 시험인 수능의 점수는 주관적으로 생성되고 활용되는 학교생활 기록보다 공정한 전형 자료로 여겨진다. 객관성을 요구하는 공정의 인식에는 대입전형 주체들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학생부 종합 전형을 ‘밀실’ 또는 ‘깜깜이’ 전형이라 경계하는 경향에서 볼 수 있다. 전형이 공정해지려면 부정부패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연결돼 있다. 이런 생각에서는 대학의 재량을 인정하거나 사정관의 전문적인 판단을 용인하는 제도들을 견제한다. 외부 감시의 눈길이 닿지 않으면 부정부패의 여지가 커진다고 여기며, 전형 기관이나 평가자들에 대한 불신을 전제하고 있다. 역시 수시 전형보다 정시 전형이 공정하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수능은 국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또 그 점수는 간명한 숫자로 드러나므로 투명성에서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반면, 학생부 전형에서는 많은 교사와 사정관들의 재량이 작용하는 만큼, 그 ‘내부’를 확인할 길 없다고 의심한다. 획일성과 객관성을 요구할 때와 마찬가지로, 투명성을 확보하자면서도 그 과정에(교사나 사정관들을 불신하고 그들의 재량을 제한하면) 전형 자료나 전형 방식의 속성이 어떻게 뒤틀릴지는 염려하지 않는다.
‘공정성 강화’는 수능의 ‘고부담’ 속성 강화로 이어져
공정을 앞세우는 정책 구상은 요컨대 수시보다 정시, 학생부보다 수능을 우위에 두는 통념을 따르고 있다. 전형의 실제에서 획일성, 객관성, 투명성 등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입장이 꾸준히 유지된다면 실지로 대입제도는 어떻게 변해 갈까?
공정성 강화 이야기가 구조적 변혁까지 가지는 않으니, 기존 대입제도 구도는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수시와 정시로 나뉜 전형 시기가 유지될 것이며, 각 시기에 학생부 중심 전형이나 수능 중심 전형의 양식을 핵심으로 삼는 체제도 유지될 것이다. 수시와 정시의 모집 정원 비중은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한 만큼, 그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특히, ‘주요 대학’에 대해서, 정시 비중은 현재 ‘기준선’으로 받아들여지는 40%를 밑돌지 않게 규제할 것이다.
정시 비중이 유지되는 만큼 수능의 위상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수능의 위상은 단순히 모집 정원의 상대적 비중에 달린 것으로 보아선 안 될 것이다. 비중에만 주목하면, 수시가 정시보다 더 크게 점유한다는 점에서, 수능의 위세가 상대적으로 대단치 않다고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수능은 상대적으로 ‘상층’의 대입 지원자들에 더 관련된다. 잠재적 고득점자들에게 더 영향력을 지니는 시험이 되며, 그 위상은 그만큼 더 강화될 것이다.
수시전형에서 수능은 흔히 합격의 기본 요건(‘수능 최저 기준’)을 규정하는 데 쓰인다. 그리고 이런 요건을 적용하는 대학은 ‘우수대학’이라 구분되며, 최저 기준을 두는 곳은 그런 대학 안에서도 경쟁이 더 치열한 모집 단위이다. 높은 점수대의 지원자들이 수능에 더 관련된다는 뜻이다.
정시의 경우, 수능은 ‘N수생’에 더 관련된다. N수로 대입 경쟁력을 높인다는 전략은 수능에만 해당하는 것이다. 학생부는 N수에 따라 바뀔 리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더해, N수생이 재학생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시에서도 역시 수능은 ‘우수’ 지원자들의 전략적 요충이 되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정리하고 보면, 공정성을 강조할수록, 앞으로 대입에서 수능의 전략적 가치는 더 높아지리라고 예상하게 된다. 수능의 ‘고부담’ 속성이 더욱 강화되리라고 짐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득점을 노리는 수험생들이 더 많이 그리고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준비하는 시험이 될 테기 때문이다.
한편, 사교육은 일반적으로 고부담 시험(high-stakes test)과 결부되어 있다. 특히 국가 수준의 표준화 시험이 상급 학교/대학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 사교육은 강하게 일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공정’의 이름으로 수능의 비중을(수능에 걸린 이득을, 즉, 고부담 속성을) 키운다면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하는 꼴이 될 것이다.
공정성 강화책, 결국 사교육 조장하며 부조리 드러내
앞에서 대통령의 언급에서 보았듯이, 수능은 쉽게 출제되어야 공정한 시험이 된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 시험이 어려워질수록 사교육에 의존해야 할 필요가 커지고, 사교육 자원이 없는 ‘취약 집단’을 불리하게 몰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런 통념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검증 여부와 관계없이, 공정 수능과 쉬운 수능을 묶어 생각하는 관성은 ‘쉬운 수능’ 쪽으로 제도 변화를 이끌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이미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서 나타났다.
그렇지만 수능을 쉬워지게 만든다고 해서 사교육이 줄어들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쉬운 수능 역시 공정의 이름 아래 주장되지만, 사교육은 그 탓으로 오히려 더 불거질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소위 객관식 시험은 깊이 있는 실력을 측정하는 데 취약하다. 비판적인 사고력이나 심층 분석과 종합력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 수능의 이런 한계를 그대로 두고 출제만 쉽게 하도록 강요하면, 엉뚱한 부작용이 생겨난다.
쉬운 수능은 문항의 난도(難度) 스펙트럼을 좁히게 되는데, 그 결과로 지식(실력)의 깊이를 변별하는 데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어떤 내용 요소에 대한 지식 측정이 1~10의 난도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교육과정상 합당하다고 가정해 보자. 가능한 모든 평가 방식을 동원할 수 있다면 1~10의 난도 스펙트럼을 평가에서 온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식 시험은, 말하자면 깊이 잠재한 실력까지 측정해 내지는 못하므로, 예컨대 1~6의 난도 범위에 측정이 국한된다. 이런 상황에서 쉬운 출제를 강요하게 되면, 측정할 수 있는 난도 범위가 더 좁아 들게 된다. 가상적으로 1~4 단계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교육과정이 기대하는 원리대로 지식의 깊이를(실력을) 측정하려는 문항만 가지고는 수능이 변별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 이르면 수능 출제가 변질될 수밖에 없다. 변별은 수능의 으뜸 존재 이유이다. 변별력을 확보해야 하는 수능의 책무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력을 교육원리대로 평가하려고 고집해서만은, 쉬운 수능 사태에서, 충분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다른 방향에서 변별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럴 때 흔히 나타나는 편법이 있다. ‘속도 시험(speed test)’을 고안하는 것이다. 답을 찾는 데 깊은 사고나 창의력이 필요하도록 출제하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출제하면 ‘불수능’이 되고 불공정한 수능이라 지탄받을 터이므로) 단순히 시간이 많이 소요되도록 출제하는 편법을 쓸 수 있다. 이런 편법을 채택하면 물론 시험의 질은 떨어진다. 실력을 온당하게 재지 않게 된다. 그러나 변별력을 확보하려면 달리 도리가 없을지 모른다.
물론 추론이고 가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수능에 관한 모든 데이터가 공개된다면 검증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추론을 연장해 보면, 쉬운 수능은 결국 사교육의 효능을 강화해 주게 된다. 시험이 진정한 의미의 실력을 측정하는 데 한계를 지닐수록, 그 시험에서 성적은 ‘수험 요령’을 터득한 정도에 좌우되게 된다. ‘정석대로’ 학습하기보다 요령을 훈련하는 게 이득이 클 수 있고, 우수한 학생인 경우, 교과 내용을 충실히 학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문제 풀이 요령까지 습득해야 고득점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최근으로 올수록 사교육 시장에서 ‘실전 모의고사’ 풀이가 핵심적인 상품으로 부상했다. 이 상품의 요체는 바로 수능 문항을 빠르게 풀어내도록 요령을 체득시키는 데 있다. 이런 상품이 사교육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데는, 사교육 부담을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시험 과목 수를 줄이고 과목 선택 여지를 늘려온 ‘개혁’이 무관하지 않다. 또한 수험생의 시험 준비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수능 출제와 문항 구성에 대한 온갖 정보를 공개해 온 정책도 마찬가지로 작용했을 것이다.
시험이 쉬워지도록 만드는 정책이 수험생이나 교육에 이익을 주지만은 않는다. 어쩌면, 공정의 이름으로 그런 정책을 추구하면서 대입제도는 오히려 더 불공정해지고, 결과적으로 사교육에 더 의존하도록 오도해 왔을지 모른다. 이런 부조리가 왜 벌어질까?
정책들이 피상적이고 단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정이니 사교육비 경감이니 하며 실지로 무슨 가치를 추구해 왔는지 깊이 성찰하는 작업이 정책 수순에 없다. 사회의 원성(怨聲)에 맞춰 잡다한 구호와 함께 성급하게 동원한 대책들은 서로 연계 없이 분절되어 있다. 대책들은 다급히 만들어져 허술하기까지 하다.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 정밀하게 풀어 정리해 보아야 할 터이다. 정책의 부조리가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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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교수님의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요구는 결국 수능과 같은 전통적인 표준화시험의 위상을 견고하게 하고 표준화시험이 가져오는 고부담으로 인한 사교육수요는 지속될것이란 말에 공감합니다. 입시가 전제된 한국교육에서 완벽한 정답을 도출하는 것은 근본전제에 대한 변화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부분적으로 시의적절한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부위주의 선발제도가 기존 시험의 부작용을 크게 완화하지 못했고 오히려 입시측면에서 복잡성만 증가시켰기에 국가차원의 표준화 시험을 개선하고 경쟁을 완화시킬 방법(한국은행에서 제시한 지역할당제나 국립대의 서울대화 같은 과감한 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먼저 기존의 학생부 생성과 대입자료에 활용은 교육부나 대학들이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생들의 역량을 높여줄 것이라 안내하고 강력 장려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제대로 검증하고 수정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학생부위주의 입시변경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객관식위주의 표준화시험으로 삼고 그 대척점으로 그와 다른 평가방식을 전개하는것이 해결책인냥 몰아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평가의 역류효과(washback effect)로 생기부작성위주로 공교육을 실행하면 교육과정이 개선된다라고 전제하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는가 반문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현재의 학생부,특히 세부능력특기사항은 여전히 거래적성격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는측면이 강합니다. 기재를 전제한 활동에 대한 동기화의 교육방식은 이미 학생과 교사들에게 상습화되어있습니다. 일례로 아직도 학교의 동아리를 훌어 보면 진로적합성을 보여주기위한 학술동아리들이 태반입니다.(물론 그렇지않은 학교도 있을것이라 가정하지만). 가까운 일본의 동아리와 비교해보더라도 학생 스스로 즐거움을 위해 수행하는 활동이 아니라 생기부적기위한 활동으로 진행됩니다. 또한 생기부 기재내용을 분석한다는 명목으로 어떻게 작성하면 입시에 유리한 세부능력특기상을 만들어낼지 학교차원에서 궁리하는 것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일선 학교들에서는 교사들이 그런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고 어떤 교육을 했다라고 기재되어야 입시에 유리할 까를 따지는, 대체로 주객이 전도된 교육연구방식입니다. )또한 학생부 작성 위주로 전개되는 교육이 사교육을 줄여주었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사교육의 가장 큰 기회는 입시의 평가방식의 변화이며 거기에서 발생하는 ‘정보비대칭’을 활용하여 더 크게 성장합니다. 학생부 위주의 입시전형이 득세한 이후로도 사교육은 계속 성장해 왔고, 오히려 더 세분화되고 정교해 졌습니다.
차라리 대학들이 매우 무책임하게 강조만 하는, 수업개선을 위해서는 수능에서 주관식 시험을 과감하게 도입해야 합니다. 일부 교육청과 학교들이 IB교육과정을 추진하고 있는데, 창의력과 종합적 역량 평가를 위해서 이미 공통적으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주관식 시험을 국가차원에서 과감하게 도입해서 정착시키도록 하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한국은 거의 유일하게 입시용 표준화시험에서 객관식 시험만을 위주로 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학생부 채우는 교육보다 오히려 주관식시험을 수능에 도입하는 것이 학교 교육현장의 교육을 변경시키는 역류효과(washback effect)가 더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명문대의 졸업장효과가 재직기간 전체를 놓고 따질 때 무려 45%정도 된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대학에 대한 기대가 인생에 대한 기대가 되는 현실에서는 사실 입시방식의 변경으로는 지나친 사교육, 과도한 경쟁 등의 고질적인 문제해결은 요원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문제로서 각성하고 교육문제를 위해서 사회 전체의 대전제가 변경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