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교육발전특구’와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2.0’, 교육을 어디로 끌고 가는가?
Ⅰ
정책은 종종 ‘특별’을 재단하여 ‘선도 모델’을 내세우는 틀로 만들어지곤 한다. 문제를 안고 있는 많은 ‘일반’ 대상 가운데 소수를 선별하여 특별 범주로 지정하고, 이들만 ‘예외적으로’ 지원하여 선도 모델로 키우는 형식이다. 특별 범주에 들지 못해 남겨졌던 다른 많은 일반 대상은 나중에(특별한 지원 없이) 선도 모델을 따라 발전할 것으로 전제된다. 작년 말 ‘지방시대’라는 구호 아래 발표되어 진척되고 있는 ‘교육발전특구’라는 이름의 정책이 바로 이런 장르이다.
특구 정책은 “지방정부와 대학, 산업체 등 기관들이 함께 지역의 교육 발전을 통합적으로 지원하고 교육을 통해 지역발전을 견인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자체, 교육청, 대학, 지역 산업체 등 지역 단위 기관들이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공교육 틀 내에서 지역의 교육력을 제고”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고, “지역 인재의 양성 및 정주를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이다. 말하자면, 아이를 낳아 키우고 교육하는 일이 ‘지역’에서 만족스럽게 이루어지고, 성장한 청소년도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 인재’로서 지역 사회의 지속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사회(생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적인 정책이다.
구체적인 대안들은 지역의 관련 주체들이 협력하여 보육과 교육의 전 영역에 걸쳐 구상하도록 열어 놓았다. 그 자세한 내용은 특구가 지정되면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추진계획’에 적어놓은 ‘성과 지표’에 비추어, 실지로 대안들이 어떤 지향을 가질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성과 지표는 세 단계(유아•돌봄, 초•중•고, 대학)에 맞춰 설정되어 있는데, 각각 “출산율 상승”, “학업 성취도 상승과 사교육비 감소” 그리고 “지역 인재 전형 비율 확대와 지역 인재 취업률 상승”이다. ‘지역’에서 출산을 꺼리거나 자녀 교육(특히 대입 준비)을 위해 수도권으로 이사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대학 졸업 후에도 지역에서 양성된 인재들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책 취지를 드러낸다. 이런 취지에 맞춘 대안들을 만들어 제시하는 지역들이 특구에 선정될 것이다.
Ⅱ
세간의 관심은 ‘지역 명문 학교’가 만들어질지에 쏠려 있다. 특구 정책에 담긴 여러 대안 가운데 유독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2.0’이 주목받고 있다. 언론의 반응을 둘러보면, “지역 명문 학교 키울 ‘교육 특구’당 최대 100억 지원”이라고 반색하는 기사(동아일보)가 있는가 하면, “특권 학교 난립 우려도”라고 경계하는 기사(한겨레)도 있다.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2.0’이란 대안은 교육부가 지난해 6월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의 하나로 내놓았었다. 2010년 도입했던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제도에 ‘2.0’이란 꼬리를 붙여 재활용하는 것이었는데, 대통령 직속의 지방시대위원회가 ‘종합계획’에 교육발전특구의 안을 넣자, 거기에도 붙여 넣었다.1
명문 학교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자율형 공립 고등학교(자공고)에 ‘우수’ 학생이 쏠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지정되는 자공고(2.0)는 2010년대 것보다 더 큰 폭의 자율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특히 두 가지 혜택을 눈여겨 볼 만하다. 우선, 신입생을 넓은 지역에서(광역시나 도에서) 독자적으로 선발할 수 있다. 우수 학생을 모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게다가, 교육과정 운영에서도 융통할 여지가 더 커졌다. 말하자면 수업 과정을 ‘입시 위주’로도 꾸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고등학교에는, 이른바 자사고나 특목고를 선호하는 보통 경향대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모여들 가능성이 있다.
실지로 정부는 자공고 2.0의 대안을 교육발전특구의 ‘미끼’로 삼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작년 10월 말, 지방시대위원회가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교육부가 교육발전특구의 대안을 곁들여 설명한 자리에서, 한 기자와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아래와 같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질문> … 교육발전특구에 대해서 … 인재들을 지역에 정주시키는 걸 목표로 한다고 하셨는데, 사실 한국 현실에서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는 입시에 도움이 되는 학교이고…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서울의 좋은 대학에 … 가는 것이 보통일 텐데,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어떤 전략으로 인재들을 지역에 정주시키실지 궁금하고요. …
<답변> … 가장 좋은 질문을 해주셨는데, 수도권 대학하고 경쟁할 수 있는 대학이 그러면 지방에 있느냐, 이게 전제가 되겠죠. 그럼 현실적으로 수도권 대학하고 경쟁할 수 있는 대학이 의학 계열 대학은 이미 …더 뛰어난 대학들이 지방에 있고, … 지방대학육성법에 따라서… 지방에서는 지역인재 전형을 40% 이상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또, 수도권 대학하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일부 지방에 한두 개 학과씩은 전공별로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반도체라든지 전기라든지 전자 쪽, 이런 쪽의 인력도 지역인재 전형을 통한다면 그렇게 가능하고요. …
정부는, 지역의 ‘교육•정주 여건’을 마련하는 데서, 대학 진학과 취업에 대한 전략적인 지원을 중요하게 고려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의대나 ‘반도체 또는 전기 전자 쪽’(특히 채용을 전제하는 ‘계약학과’ 쪽) 진학이 쉬워질 수 있게 만든다면, 인재 유출도 사그라들 테고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라 계산한 것이다. 자공고는 말하자면 정부의 계산에 호응하는 학생들이 ‘지역 인재’가 되기 위해 모여들게 할 유인책으로 조성된 셈이다.
Ⅲ
교육발전특구나 자공고의 방안은 실제와 이상에서 모두 빈약하다. 정부가 공언하는 효과 자체를 거둘 수 없고, 더 근본적으로, 정책의 바탕인 관념 자체가 뒤틀려 있어서, 교육을 회복할 수 없게 망가뜨릴 위험이 있다. 정부가 힘주어 홍보하고 있는 세 포인트를 톺아보자.
첫째, 상향적인 다양화 정책인가? 지역에서 계획을 세우면 중앙에서 지원하는,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정책임을 정부는 강조한다. 특히, 자공고 2.0에 대해서는 학부모나 학생의 자유로운 학교 선택을 보장하는 ‘다양화’ 대안이라고 광고한다. 이런 언설은 과연 타당한가?
지역에서 계획을 세워 응모하는 형식만 보면 상향식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역이 세우는 ‘계획’은 중앙의 의도를 벗어날 수 없다. ‘상향식’이란 중앙의 말을 순진하게 믿고 ‘독창적인’ 계획을 세운다면 특구 선정에서는 탈락하기 십상일 터이다. 교육부의 ‘선정계획’에 따르면, 심사 항목의 핵심은 “정책 취지에 대한 이해도”에 있다. 정책 취지를 거스르지 말라고 공공연히 지시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상향식은 형식에 그칠 수밖에 없다.
‘다양화’라는 교육부의 홍보도 공허하다. 자공고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때 ‘다양’은 어떤 다양인가? 일반고 학생들에게 주어진 진로라는 것이 ‘좋은 대학 진학’으로 한정되어 있는 현실에서, 고등학교 종류를 한 가지 추가하는 것이 어떤 다양화를 낳을까? 다양화 여지가 있다면, 대학 진학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늘리는 쪽으로 밖에 달리 없다. 결국, 자공고 2.0은 대입 전략상 ‘차별화될’ 고등학교를 더 늘어놓는 방책에 불과하다. 어쩌면 교육부는 실지로 이런 ‘다양화’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 교육의 다양화를 외치며 그런 다양화를 노린다면 음험하다.
둘째, 공교육 경쟁력은 강화될까? 정부는 ‘경쟁력’을 두 측면에서 노리고 있다. ‘사교육비 경감’의 측면과 수도권-지역의 격차 완화 측면이다. 말하자면, 자공고는 사교육 받을 필요를 줄여줄 것이고, 대입 전략상의 수도권 의존도도 낮춰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기대를 아직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광복 이후 거듭된 ‘사교육(과외) 정책’의 실패는 ‘공교육’을 수단으로 삼는 대안이 실효 없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관성에 매달려 있지만, 자공고 2.0 대안이라고 별다르게 효력을 낼 것 같지는 않다.
사교육 수요는 공교육의 ‘기본’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사교육 시장의 ‘마케팅’ 자장(磁場)에 구속되기 마련인 상황이다. 수도권에 대한 의존도도 사교육 시장(市場)과 그 시장이 구축하는 정보 네트워크에 달린 것이다. ‘전국 수준’의 자사고 학생들까지 ‘수도권 정보’에 목말라한다는(적지 않은 학생이 수도권 학원에 들락거린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지역’ 고등학교의 지명도나 진학 실적 정도로 흔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2.0 버전의 자공고는 공교육 혁신을 선도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하건대, 특구도 그렇고 자공고 2.0도 그렇고, 모두, 특별하고 예외적인 ‘모델’을 만들어 성공시키고 그 모델을 확산시킨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이런 발상은 이제 정책 틀의 전형적인 바탕이 된 듯하다.2 자공고 경우에도 교육부는 “공교육 선도 모델을 만들어 일반고로 확산”시키겠다고 말한다.
정부의 발상은 우선 현실에서 좌절될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대로, 우선 대안들이 실속이 없다.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가 없다. 게다가 문제 삼아야 할 점은 더 근본적인 데 있다. 만에 하나 자공고가 ‘모델’로서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그 실천이나 제도적 경험은 일반 학교로 전이될 수 없다. 전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혁신 전파’에 대한 수많은 연구가 방증하고 있다. 저술이나 논문의 대강은 전파가 왜 안 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전파된다’며 거듭 제안되는 처방들이 거듭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어려움을 말해 준다.
어떤 학교가 혁신에 성공했을 때, 그 성공은 구성원의 헌신(실천)과 조직(제도)의 변혁에만 기대어 얻어진 것이 아니다. 학교를 둘러싼 ‘밖’의 구조적 환경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학교의 ‘문화’도 크게 작용한다. 이런 요건들은 사실상 다른 학교로 옮겨질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혁신 전파의 처방들은 대체로 논리적 수사(修辭)에 머물게 된다. 사후에 꿰맞춘 이야기들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정부의 발상은, 이런 선행 논란마저도 의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수사적 언사들보다도 더 안이하다.
선도 모델(자공고)이 일반고의 변화를 이끌 수 없다는 점은 혁신 전파의 일반적인 어려움을 넘어서는, 더 가중된 난점이다. 특구나 자공고는 모두 특별하게 선정되며 예외적인 혜택을 입게 된다. 이런 호조건에서도 이른바 혁신 ‘성공’은 어려운데, 그런 조건이나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일반’ 범주의 지역이나 학교들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예외적으로 생겨난 ‘성공 사례’가 있다 한들, 그 사례를 도대체 어떻게 확산시킨다는 것인가? 특별한 범주에서 배제됨으로써 일반 학교나 지역의 여건은 더욱 나빠지게 된다. 이런 악조건에서 혁신해 내는 길은 특혜에 힘입어 만들어진 ‘선도 모델’의 길과 같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달라야 마땅할 터이다. 정부의 ‘확산’ 논리는 대책 없이 공허하다.
Ⅳ
정책이 발상에서부터 잘못되었다는 점을 정부의 핵심 주장 세 개를 짚어 살펴보았다. 발상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이미 치명적이지만,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정책의 문제는 더 근본적인 데 있다. 그것은 교육을 보는 정부의 관념과 안목이 몹시 빈궁한 데 있다.
교육발전특구에 생길 자공고는 궁극적으로 어떤 교육을 하도록 기대하고 있는가? 놀랍게도 교육부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앞에서도 얘기한 대로, 이번 정책의 목표는 “좋은 학교 육성”이며 ‘성과 지표’는 “학업 성취도 상승과 사교육비 감소”라고, 보도자료에 버젓이 밝히고 있다. 이런 공언이 무슨 뜻인지 조금 풀어보자.
사교육비 감소가 이루어지려면 사교육 받는 것과 진배없는 수업이 학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공고는 입시 위주로 교육해야 할 것이다. 사교육 시장(학원)의 것을 능가하는 효력을 지니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교육’에서 ‘성취도 상승’을 노려야 한다면, ‘점수’에 목매는 전략을 피할 수 없다. 요컨대 “공교육 선도 모델”이 될 자공고는 대입에 필요한 점수를(그것이 수능의 점수든 내신의 점수든) 높이는 데 주력하는 학교이어야 한다. 교육부는 이런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공언하고 있다.
과연 정책은 학교 교육을 바르게 끌고 있는가? 적지 않은 국민이 ‘현실이 그렇지 뭐’ 할지 모른다. 달리 대안이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정부도 이런 세류(世流)를 타고 있는 듯하다. 관료나 정치인들도 나름대로 국민의 생각을 저울질하고, ‘계산’을 마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입시 위주 교육을 공교육의 본분이라 공식 문서에 적어놓을 수 있겠는가. 단순한 무지라 여기기엔 너무 확신에 차 있다.
정부는 우리가 오랫동안 견지해 온 교육 규범을 공공연하게 거스르고 있다. 이 무규범의 사태를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되겠다. 이미 늦었지만, 교육 규범들을 이렇게 뭉개도 되는지 사회 전체가 나서서 논의해야 하겠다. 점수만 노리는 입시 위주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규정했던 교육관은 시효를 다했는지, 인격 함양이나 전인 교육이라는 가치는 이제 폐기해도 무방한지, 돌이켜 성찰해야 하겠다. 지금의 정책과 교육이 과연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지 논구해야 하겠다.
각주
-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2.0의 방안도 ‘특별’의 범주를 따로 구획해 ‘일반’에 대한 선도 모델로 삼는 틀을 취하고 있다. ‘지방시대 종합계획’ 아래 붙여진 ‘교육발전특구’의 방안에 따라 붙여져, 위아래로 모두 같은 양식으로 엮여있다.
- 경쟁 공모를 거쳐 모델을 키우고 그 성공 사례를 전파한다는 정책 틀은 사실 정권이나 정부가 위험을 ‘외주화’하는 전략일 수 있다. 정책을 잘못 펴서 비난받고 정권마저 빼앗기게 되는 ‘위험’을 줄이려는 획책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럴듯한 구호와 요건을 걸어 지자체나 기관들에 정책경쟁 응모를 시키고, 그 가운데 일부를 선정 지원하면서 평가하고 책무성을 묻는다면, 정부나 정권은 비난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패의 책임을 외주 받은 자치체나 기관에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나 정부는 국정과제를 부지런히 수행하고 있다는 외양을 홍보하면서, 실책이 가져올 실권(失權)의 위험은 줄일 수 있다. 돈과 자율을 주고 지원했건만 시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색내며 남을 질책만 하면 되는 꼴이다.
<교육 제4의 길> 편집실에서는 논급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하여 적절한 형식으로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