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 교과서 이야기, 환상적이기만
| 환상에 젖은 거창한 구호들이 정책을 호도하고 있다. 정부가 늘어놓는 AI 디지털 교과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과장되며 거짓되기까지 하다. 맹목적인 홍보에 정신 팔려 정부는 자각하고 있지 못하지만, 이런 이야기와 정책들이 학교 교육을 근본적으로 망칠 수 있다고 짚는다. |
장밋빛 전망
“잠자는 교실이 깨어날 것입니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을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모든 아이가 행복하게 학교 교육을 받게 될 것입니다.”
꿈같은 이야기이다. 교육부에서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을 주창하면서 한 말이다. 국민은 얼마나 곧이듣는지 모르겠다. 교육부는 작지 않은 예산을 잡아 이미 ‘혁신’을 시작했다.
입법부 수장도 행정부 이야기를 거들었다. 지난 4월, ‘디지털 기반 공교육의 혁신에 관한 특별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 ‘제안 이유’로 아래와 같은 말을 넣었다.
공교육 현장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학생별 맞춤형 교육이 선도적으로 제공된다면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고 교육격차를 해소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아울러 학생별 학습 진도·이해도 및 성취도 등의 분석자료가… 제공되므로 교원이 … 전문성과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
정부는 ‘시대’ 유행을 흘려버린 적이 없다. 무슨 ‘비전’이니 ‘전환’이니 이름하는 정책 문서에 으레 기워 넣어 왔다. 실속 없는 정책을 유행어로 포장해 파는 데 정부는 이력이 붙었다. ‘세계화·정보화 시대’, ‘제3의 물결’, ‘지식정보사회’, ‘제4차산업혁명’ 등과 같은 조어들이 지난 30여 년 쓰여 왔다. 이제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이고 AI의 시대란다. ‘디지털 전환’이 공교육 혁신의 길이란다. 과연 그럴까?
‘AI 디지털 교과서’가 다급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내년부터 사용해야 한다. 교육부가 시한에 맞추도록 채찍질하고 있다. 디지털 교과서는 ‘공교육 디지털 전환’의 핵심 수단이다.
교육부 계획과 전망에는 장밋빛이 가득하다.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선, 무엇보다도, ‘학생 맞춤형’ 수업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광고한다. 맞춤형 수업 덕에 학생들은 ‘자기주도 학습’에 몰입하게 된다고도 떠벌린다. ‘AI 조교’가 도와줄 터라, 교사는 또한 ‘인성교육’에 더 신경 쓸 수 있게 된다고도 덧붙인다. 얼마나 믿을 만한 이야기일까?
AI 디지털 교과서, 만들 수 없다.
교육부가 꿈꾸는 AI 디지털 교과서는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축적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자원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그 어느 것도 없다.
먼저,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AI 디지털 교과서에 담을 모든 교과 내용에 대하여, 학습 과정(sequence)을 인과적(因果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도, 학생마다 학습 경로가 다를 터이므로, 개인차까지 감안할 수 있는 지식이어야 한다. 학생 개개인에 맞춰 교과를 가르칠 AI라면 그런 지식을 장착해야 한다. 수업 중에 학생이 어느 지점에서 곤란을 겪으면, 학생이 왜 어려움을 겪는지, 학생에게 특정한 원인을 짚어내고 또 학생에게 맞는 처방을 내려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AI가 그런 지식을 갖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쉬운 길은, 개발자가 그런 지식을 알고리즘으로 번안해 AI에 넣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다. 그런 지식 자체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갖게 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교과의 교육 이론들이 얼마나 박약하며 단명한지 떠올려 보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을 넣어줄 수 없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기계(AI)가 스스로 ‘학습’하게 하면 된다. 최근 각광받는 인공지능들은 ‘기계학습’으로 똑똑해졌다. 그런데 기계학습에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의료 영상 판독 AI가 판독 오류를 줄이려면 수많은 영상을 학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부가 선전하는 수준으로 AI를 키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업과 학습 사례를 ‘분석하게’ 해야 한다. 수많은 학생의 수많은 학습 시행착오 사례가 필요하다. 그런 데이터베이스가 우리에게 있을 리 없다. 다른 나라에서 수입할 수도 없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EBS와 협력을 약속하고, 과거 학력평가 데이터들을 활용하겠다고 수선 피우고 있다. 그 정도 대비로는 어림없다. 요컨대, 교육부는 만들 수 없는 AI 디지털 교과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대전환’을 공상하고 있다.
‘맞춤형 학습’? 학교 교육 쪼그라뜨려
AI 디지털 교과서를 만들 수 없다는 문제를 ‘정도’의 문제라고 접어놓고 보자. 덜떨어진 AI라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러서고 보자. 좀 미숙한 AI를 고용하게 되더라도, 학교 수업이 지금보다는 더 맞춤형으로 변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이때 문제는 좀 더 근원적인 것이다. ‘맞춤형’이란 구상 자체의 문제이다. 교육부가 그리는 맞춤형으로 교육은 나아지는가? 크게 의심스럽다.
AI 디지털 교과서로 가능해지리라는 ‘학생 맞춤형’ 수업은 어떤 것일까? 교육부 자료들에 따르면, AI가 학생 수준(‘준비도’)에 맞춰 과제를 제시하며 학습(수업)의 경로를 향도하게 된다. AI가 없다면, 한 선생님이 여러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 ‘획일적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이나 수업 내용이 쉬워 지겨운 학생은 방치되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를 AI 조교가 완화해 준다는 것이다. 학생마다 적절한 수준의 과제를 주며, 학생의 속도에 맞게 학습을 조정할 수 있다. 결국 모든 학생이 성취감과 도전 의식을 느끼며 (즐겁게) 학습에 달려들게 된다. 교육부가 펼쳐내는 시나리오이다.
교육부 각본은 논리적으로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피상적인 논리 밑에 심각한 결함이 숨어있다. 맞춤형을 구현하기 위해서 AI는 각 학생의 수준을 진단하게 된다.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성취 기준까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평가해야 한다. 이 작업에서 AI는 ‘기계적’일 수밖에 없다. 기계적인 만큼 AI가 이끄는 수업은 뒤틀리고 변질될 수 있다.
덧셈을 가르친다면, 어린이가 과정을 만족스럽게 마쳤는지 AI는 어떻게 판단할까? 문제를 여럿 풀게 하고 80% 이상에 정답을 낼 때 다음 단계로 올라가게 하면 될까? 60%가 더 적절한 선일까? AI는 ‘전문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교육과정의 이수/미이수를 가르는 임계점수는 AI에 ‘프로그램’으로 주입하게 될 것이다. AI는 주입된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를 뿐이다.
기계일 뿐인 AI는 명시적이고 계량적인 단서에 맹목적으로 의존한다. 수업에서 학생들이 내비치는 암묵적이고 정성적인 ‘뉘앙스’를 읽지 못한다. 시험 답안에 드러나지 않는 학습 동기나 불안감 같은 것을 포착할 수 없다. 79점과 80점의 차이에 대해서도(합격/불합격을 가르며) 실제 의미보다 과장해서 취급할 것이다.
주어진 학습 과제에 대해 학생이 AI에 입력한 반응은 채점하지만, 그 반응 뒤에 숨겨진 암묵적 정서나 태도는 배려하지 못한다. 외현적인 반응을 채점하더라도, 그것의 양을(빈도, 정답률 등을) 헤아릴 뿐, 성질은 못 살핀다. 밖으로 드러난 모습은 같더라도, 그 반응에 이르게 된 맥락은 학생마다 다를 터이다. ‘오답’으로 단일하게 분류된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학생에게 같은 성질인 것은 아니다.
결국 AI 디지털 교과서가 이끄는 맞춤형 학습은 교육을 편협하게 쪼그라뜨릴 것이다. 교육의 암묵적이고 개성적인 측면을 도외시하고, 양적 측정이 어려운 사회 정서적인 측면들도 무시하게 될 것이다. AI의 맞춤형 수업은 점수로 진단하기 쉬운 인지적 측면에 경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양상은 빙산에 비유할 만하다. 교육의 진상(眞相)은 다분히 잠재적이다. 드러난 부분보다 숨겨진 부분에 대체로 자리한다. 교육을 학생에게 맞춘다면, 드러난 ‘일각’보다 바다 밑에 숨겨진 ‘밑동’에 대해 맞추어야 할 터이다.
AI로는 학생 개개인에게 마땅한 교육을 추구할 수 없다. AI의 ‘맞춤’은 획일적이고 행동주의적이다. AI에는 학습 목표가 설정되어 있기 마련이고, AI 수업은 그 목표에 ‘효율적’으로 다가가는 과업이 되도록 프로그램되기 마련이다.1 명시적이며 계량적으로만 설정되는 목표에 교육 가치가 충실하게 실릴 리 만무하고, 효율성을 앞세운 수업 진도에 인격적이고 윤리적인 배려가 담길 리 만무하다. AI가 이끄는 수업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맞춤형이 아니다. 속도는 개인에 맞춰 조절할지 모르지만, 가는 길(교육)의 도정과 방향을 유연하게 절충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주도 학습’에 ‘주도(主導)’는 없어
AI의 맞춤형 수업이 옹색한 것인 만큼, 그것이 북돋우리라는 ‘자기주도 학습’도 기대할 게 못 된다. AI가 수준 맞게 과제를 제시하며 이끌면, 학생들이 싫증내거나 포기하지 않고 혼자서도 공부하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동기를 얻는다는 것과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것, 정책의 요점은 이 둘이다. 이때 동기는 과연 바람직하며, 혼자 하는 학습은 온전한 모습일까?
AI 디지털 교과서를 주면, 학생은 어떻게 공부에 매달리게 될까? 교육부 얘기는, 문제를 풀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는 너무 쉬워서 푸는 게 의미 없었거나 너무 어려워서 포기해야 했었다. AI가 학생 수준에 맞는 과제를 주게 되면, 약간의 노력으로 과제를 해결해 내게 되고, 성취감과 도전 의욕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동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동기는 ‘점수’에서 비롯된다. 점수를 높일 수(문제를 풀 수) 있게 되면서 공부에 달려들게 된다.
AI가 유도해 조성하리라는 동기는 덧없다. 그것은 점수(정답)가 쓸모를 지니는 한에서만 동기이다. 점수가 등급을 높이고, 상급학교 진학을 가능하게 하는 동안만 학습 의욕의 바탕이 된다. 점수의 효용이 사라지면 동기는 증발한다. 교육의 평생 지속성을 전제할 때, 이런 동기를 학교 교육의 단계에서 키울 이유는 없을 터이다. 이 동기는 ‘외재적’이라는 점에서, ‘자기 주도’라는 이름에 값하지도 못한다. 자아의 밖에 있는 힘(‘외재적 동기’)에 종속된 학습을 자기주도 학습이라 부르는 것은 걸맞지 않다.
교육부 말대로라면, ‘자기주도 학습’은 시키지 않아도(동기를 가지고) 한다는 미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의 개입 없이도(AI만 가지고) 혼자 힘으로 해 나아간다는 미덕도 지니고 있다. 동기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지적했는데, 이 후자의 미덕(혼자 힘으로 하게 된다는 점)에 대해서도 심각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역시 점수에 의존한다는 문제이다.
점수는 ‘자기주도 학습’의 동기에 힘을 불어넣는 기능도 하지만, 그 방향을 잡아가는 조타(操舵) 기능도 한다. AI가 이끄는 방향은 다름 아닌 점수를 높이는 방향이다. 교과 내용 위계를 따라 오르며, 학생으로 하여금 거듭 정답을 찾아 점수를 획득해 가도록 유인한다. 이런 경로의 학습은 ‘질문’이 이끄는 자기주도 학습과 극명하게 대조될 수 있다. 이때 대조는, 말하자면, 시험 점수를 높이게 돼서 얻는 기쁨과 지적 호기심을 스스로 해결해서 얻는 기쁨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점수 상승이 주는 기쁨에는 학생의 창의적/비판적 사고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 수업에서 주어졌던 지식의 조각들을 시험 문제라는 퍼즐에 맞춰 기억해 낸 정도의 기쁨이다. 평가 제도가 그 기쁨을 뒷받침한다. 반면, 질문을 해결한 기쁨에는 학생의 적극적인 탐구와 지식 재구성이 앞선다. 이 기쁨은, 일차적으로, 수업(교과서)의 이야기가 자신이 믿던 것과 다른 데서 오는 모순을 해소하며 얻게 되는 것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수업에서 얻은 지식을 나름대로 궁굴려 세우게 된 가설을 마침내 검증해 낸 희열일 수도 있다. 학생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어떤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할까?
교육은 정답을 가지고 주어진 길로 유인하는 일이 아니다. 학생의 마음에 질문을 부풀리는 일이다. 닳고 닳은 금언이지만, 인류의 교육사를 관통하며 강화되어 온 정언 명령이다. 교육은 교과서적인 정답에 회의하는 사람, 주어지는 정답에 오히려 불편해지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교육은 정부의 정책 안중에 없다. 정부는 AI 디지털 교과서로 교육을 혁신하겠다며, ‘혁명’이라는 언사까지 서슴지 않으며, 진정한 교육을 몰아내고 있을 뿐이다.
‘사람’ 교사에게 의존해서라야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사람 교사에 의존해 온 교육이 부실해서 AI를 동원하려는 것이라고 정부는 항변할 터이다.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일 뿐이라고 조금 물러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용납할 수 없다. AI의 환상에 빠져, 정부는 그것이 ‘트로이 목마’인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대로 AI 디지털 교과서를 들이면, 교육의 정통이 무너진다.
각주
- 프로그램된 결과로 특정 학생의 학습(수업) 경로가 실지로 어떤 성질의 것이 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할 수 있다. 디지털 교과서의 인공지능이 기계학습을 기반으로 키워진다면, 학습 경로 결정은 확률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AI는 스스로 고심해 판단하지 못한다. 알고리즘의 지시대로 계산할 뿐이다. 학생에게 어떤 과제를 줄지 결정할 때 AI는 계산된 확률에 복종한다. 계산의 바탕은 기계학습에 쓰인 자료이다. 계산 근거와 의미는 명시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AI 디지털 교과서는 누구도 확실히 알 수 없는 근거로 학생들의 학습을 이끌 것이다. 당장 문제가 될 일은 아닐지 모른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필요한 자료가 없어서라도, 디지털 교과서를 기계학습으로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혁신’ 계획 자체가 얼마나 무모하고 어이없는 것인지 명심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섬찟하고 무서운 일이다. 정부가 정책을 고집하는 한, AI 디지털 교과서는 개발되어 나올 때마다 그 알고리즘과 학습 데이터를 공개하여 검증해야 할 것이다. 교육적 윤리적 타당성을 늘 검토해야 할 터이다.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교사로서 이번 AI교과서 강행은 정말이지 개탄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무엇보다, 교육부장관이란 단 1인의 독단적인 결단으로 이렇게 군사작전처럼 진행시키는 과정에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현 이주호 장관은 ‘입학사정관’제 도입때부터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든 관철시키고 마는 독단적인 비교육자 출신 장관이었는데 이번에도 하는 짓이 똑같습니다. 현장에 있는 있는 교사로서 졸속으로 도입되는 AI교과서(상기하신바처럼 그 실체에 대해서는 어떤 단초도 주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는 분명 더 교실을 황폐화 시킬 겁니다.
기본적으로 허황된 교육부의 주장에 부합할만한 AI기술과 데이터(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가 없습니다. 교육분야는 아니지만, 오죽하면 천하의 애플도 타 회사의 AI를 도입해서 신제품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보나마나 교육부 주관으로 한국내의 기업들과 협작해서 만들고 있는 것 같은데, 전혀 효용성 없는 맛보기 식의 디지털 교과서만 만들 것입니다.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정도의 의지도 비판받을 건데 AI교과서라니요. 진짜 어이가 없습니다. ). 만약 AI교과서가 나오면 교실이 어떻게 될까요? 교육부장관인 이주호장관에게 직접 묻고 싶네요. 우리나라와 같이 입시사정을 위한 변별이 교육의 대전제인 국가에서 디지털 교과서로 ‘개별화’교육을 한다고요? 한 교실내에서 학생들이 서로다른 문제를 그것도 혼자서 AI교과서를 붙들고 공부한다는 발상자체가 가당키나 한건지요? 그럼 교사는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들고 골몰할 때 돌아다니면서 뭐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감독관으로 기능하란 건지요? 그리고 디지털 기기보급과 관련한 엄청난 폐해를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라는건지 정말이지 묻고 싶습니다. 현재도 교육청마다 넘치는 교육세로 우후죽순 아무 기준도 없이 디지털 기기를 학교마다 지급한 상태인데,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보관,관리,사용하는지에 대해서 어떠한 피드백도 없습니다. 실제로 현장은 그냥 학생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개인용 기기일 뿐입니다. 교육용으로 사용하는지, 개인취미용으로 사용하는지 제대로된 분석과 연구는 전무합니다. 그런상황에서 또 막대한 예산을 들여 AI교과서랍시고 1인1기기를 또 보급한다? 교육부는 교육예산을 교육청에 나눠주기만 하고 그 예산의 사용에 대해서 책임지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모든 개악적인 상황의 원인으로 상기한바와 같이 독단적인 교육부장관의 책임을 따지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대체 국가교육위원회는 뭐하는 단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육비전을 논한다고 만들어 놓은 단체에서 이런 졸속적인 교육행정을 손놓고 있는게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제발 이 망국적인 급조된 AI교과서 정책은 폐지하고 근본에서 다시 고찰하고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교수님의 탁월한 식견에 깊이 공감합니다. 글을 읽다 보니 출판사에서 AI 디지털 교과서 관련 업무를 하면서 품게 된 문제점이 무엇인지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AI를 활용한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AI 디지털 교과서가 개발되면 공교육 혁신으로 이어지고 사교육 수요가 크게 감소하리라는 주장은 너무 부풀린 사탕발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과학적 원리에는 어긋나지만 꿈의 기계라고 불리는 ‘영구기관’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조금 더 신중히 개발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