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이의 어려움을 쉽게 생각하는 미신을 경계하며
| “이 글을 통해 최근 IB 교수학습에서 방법적 도구로 유행하는 개념 기반 교육과정이 지식의 위계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면서 교육 현장으로 퍼져가는 교육 흐름을 경계하고자 한다.” (본문 발췌) |
김새로나 선생님이 지난 6월 초에 <교육을바꾸는사람들>에 ‘개념적 이해와 실생활 연계를 위한 인지 부하 조정의 필요성’을 제목으로 칼럼을 쓰셨다. 이 글은 김새로나 선생님의 칼럼에 대한 비평으로, 글에 나타난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한 최근 IB 교수학습에서 방법적 도구로 유행하는 개념 기반 교육과정이 지식의 위계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여기면서 교육 현장으로 퍼져가는 교육 흐름을 경계하고자 한다.
개념적 지식을 높이는 수업과 평가는 삶과 연계한 학습을 위해 필수적
교육전문가나 OECD 교육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교육기구 등은 학생들이 학습에서 탐구역량(개념적 이해)을 기르도록 강조한다. 즉 수업에서 사실적 지식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렇게 학습한 지식을 개념화를 통해 이해하는 사고 방법 또한 기르도록 하고 있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사실적 지식의 학습만으로는 각자의 삶에 닥친 개별적이고 다양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탐구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흐름에 대해 많은 교사들은 4차 산업 혁명,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한 후에 등장했다고 여기지만 실제는 다르다. 그보다 한참 전인 1990년대부터 서구 교육계에 본격 유행하면서 교육학자들은 학교에서 사실적 지식 위주의 정보나 내용을 가르치는 것과 대비되는 개념적 지식을 근간으로 하는 사고 방법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물론 수업에서 이 둘을 한꺼번에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까지 많은 교수나 교사는 교과 수업에서 역사, 물리학, 지리학 등을 가르칠 때 교과 내용 중심으로 가르쳤고 학습 또한 교과 내용의 이해에 초점을 두었으므로 사고 방법에 대해서는 간접적 또는 암묵적으로 가르쳤다. 교육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으로는 사고 방법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거나 학생들이 사고 방법을 전혀 터득하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고 방법을 직접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었다. 특히 논증에서 이유와 결론을 찾아내는 기술, 가정을 찾아내고 평가하는 기술, 표현이나 생각을 분명하게 하고 해석하는 기술, 주장이 신뢰할만한지를 판단하는 기술, 설명을 제시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술, 추론하는 기술, 여러 유형의 논증을 평가하는 기술, 논증을 제시하는 기술 등이 주로 다뤄졌다.
개념적 이해의 목적은 불확실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인 전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전이 능력은 위에서 제시한 여러 사고 방법 중에서 추론 기술을 의미하지만, 추론 기술은 다른 사고 방법과 밀접하게 관련지어져 있어 다른 사고 방법에 능숙할 때 잘 발휘될 수 있다. 그 예를 대학 입학 논술전형 문제에서도 볼 수 있는데, 다음은 연세대학교 2023년 대입 논술전형에 출제된 문제이다.
제시문 (가)
제시문 (나)
[문제] 제시문 (나)를 바탕으로 기술에 대한 제시문 (가)의 주장을 설명하시오. |
제시문 (가),(나)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제시문 (가)에서 묵자는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유용한 것을 만드는 기술이 훌륭하고, 기술은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고 이롭게 하는 의로운 일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시문 (나)에 따르면 기술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순수한 이론을 수립해 지성의 계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그럴 때만이 인간에게 번영을 주며, 섣불리 응용해서 당장의 이익과 성과를 얻으려고 사용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므로 옳지 않다고 한다.
문제에서는 제시문 (나)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의 주장을 설명하라고 했으므로 응시자는 (나)에서 설명된 옳은 기술과 그른 기술에 대응하는 (가)의 내용을 서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의 묵자의 주장에 대해 추론할 수 있어야 한다. (가)에는 응용 기술과 순수 기술의 사례가 제시되는데 사람을 해치는 공수반의 운제, 구거 등의 무기 기술은 전쟁에 승리하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응용 기술이 적용되었으며, 공수반이 순수하게 자연 이치를 알고자 새가 나는 이치를 탐구하고 고안하여 만든 나무 까치는 순수한 기술이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제시문 (나)의 관점에서 묵자는 기술 사용에서 방어 기제나 수레바퀴처럼 이로움을 주는 응용 기술을 추구하였으므로 그 행위는 옳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로 보듯 사고 방법으로 설명과 추론은 밀접하다.
이 문제의 풀이에서 보듯이 (나)를 요약하여 개념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가)를 설명할 수 없다. 이처럼 교실 안에서 배운 교과 지식과 기능을 개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삶의 현장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개념적 지식을 높이는 수업과 평가가 삶과 연계한 학습에 필수적인 전제라고 볼 수 있다.
삶과 연계한 학습과 실생활과 연계한 학습의 차이를 간과해
김새로나 선생(이하 존칭 생략)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된 삶과 연계한 학습이 몇 가지 문제를 지닌다고 비판한다.
| 삶과 연계한 학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한 측면이 있다. 그 탓에 과도한 광폭의 전이를 요구하는 과제의 형태로 학생들에게 제시될 위험이 있다. 나아가 학습에서 지식의 유용성이나 교과 지식과 각자 삶과의 연계성 여부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개인적 경험으로 볼 때 지식을 이해하였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나아가 실생활과의 연결고리가 없는 지식은 없으며 교과 지식이나 순수학문의 경우에는 연결고리가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도 실생활과의 연결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지식의 유용성을 단기 활용성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고교학점제가 도입된 이후 과목 선택에 있어서 실제로 자신이 흥미를 갖고 있는 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경향이 심화되었다.
김새로나 <개념적 이해와 실생활 연계를 위한 인지 부하 조정의 필요성; 4∼11쪽> |
삶과 연계된 학습을 이해하려면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온정덕 교수(이하 존칭 생략)의 입장을 학리해석(學理解釋)으로 참고할 필요가 있다.
| 삶과 연계한 학습을 지향한다는 것은 학습자에게 실생활 맥락 속에서 교과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생활 맥락이나 실생활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깊이 있는 학습을 위해 학습자를 몰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탈 맥락적인 상황에서 학습자는 교과 내용을 전이 가능한 형태로 학습할 수 없다.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맥락, 즉 실생활 맥락 속에 있을 때 자신이 학습하고 있는 내용을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학습한 내용은 학교 밖에서도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온정덕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 개발 방향 주요 내용> |
온정덕은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삶(생활)과 연계한 학습을 지향하는데 그 의미는 학습자에게 실생활 맥락 속에서 교과 내용을 활용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 대한 근거로 학습자가 학습에 몰입하게 함으로써 학습 내용을 깊게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이 점에서 김새로나는 온정덕의 글을 오해하고 있다. 온정덕은 교과에서 배움을 높이기 위해 교과 학습에 각자의 구체적 삶을 연계하고 적용하는 과정이 수업 방법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즉 교수자는 수업이 학생 각자에게 의미 있는 수업이 되도록 방법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다만 김새로나의 지적이 전혀 무가치하지는 않다. 김새로나는 교육과정 총론에 명시되었듯이 ‘수업에서 삶과 연계된 학습’으로 충분한데 주도적 개발자로 참여한 온정덕이 ‘삶의 영역을 실생활 맥락으로 제한’함으로써 유·초·중등 교육이 지성, 감성, 시민성을 기르기 위해 나아가야 하는데도 지배계급이나 특정한 권력자가 경제적 효율성이나 자신의 주관적 신념에 초점을 맞춰 지식이 전이되도록 해석되는 위험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이 점에서 온정덕이 2022 개정 교과 교육과정에서 삶과 연계한 학습을 지향한다는 문구를 위와 같이 해석한 것은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생활과 실생활이라는 용어의 의미 차이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간과한 성급한 해석이라고 본다.
생활과 실생활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생활(生活)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행하는 필수적인 활동이다. 의식주 활동 외에도 일, 여가를 취하고 상호 작용에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 즉 직업 생활과 사적 생활, 사회생활 등의 모든 것을 말한다. 예컨대 의, 식, 주, 여가, 노동, 신앙, 교육, 경제 등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유형의 활동에서 무형의 활동까지를 모두 포괄하며 경제적이든 비경제적이든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실생활은 다르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기여하더라도 이론이나 상상이 아닌 실제의 생활, 즉 구체적인 경험적 활동으로 인간 활동을 제한한다. 그러므로 실재에 기반을 두지 않아 타당과 부당을 논할 수 없는 활동은 배제된다. 예를 들어 ‘신은 존재하는가?’ ‘이데아는 실재하는가?’ ‘수의 세계는 존재하는가?’를 주제로 하는 활동은 경험적인 실생활 측면에서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무관한 추상적 사고 활동으로 탐구 활동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실에 기반하지만 주로 허구를 다루는 문학이나 형이상학을 다루는 철학 등의 교과는 교육과 학습 활동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다. 나아가 교육과 학습에서 실사구시라는 명분으로 탐구활동을 경제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 치우쳐서 수행할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학생들의 의식과 태도를 경제적 가치에 몰입시키게 하고 지속하게 할 위험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물신주의로 치닫는 현실을 보더라도 유·초·중등 교육이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은 응당 바람직하지 않다.
전이는 고차원적인 유용한 사고 활동이지만 결코 쉽지 않아
김새로나는 학습(지식)의 전이는 쉬운 사고 활동이 아닌데도 교과 내용을 실생활 맥락에서 수행(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온정덕의 해석이 전이가 용이한 작업인 것처럼 착각하게 될 문제를 지적한다. 김새로나의 의견을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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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생활 맥락에서 교과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안내는 추상적인 개념에 구체성을 덧입힘으로써 이해를 촉진시키지만 교사들이 과도한 광폭의 전이를 요구하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고 이러한 과도한 광폭의 전이를 요구하는 과제는 학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이의 어려움은 작업기억의 한계로 설명할 수 있다. 작업기억은 소화해 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정보가 작업기억으로 진입할 경우, 즉 작업기억에 과부하가 걸리는 경우 학습자는 학습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잘못 해석할 위험이 높아지고, 학습 효과와 효율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전이는 유비 추론을 통해 이루어지며 유비 추론은 매우 많은 작업기억 용량을 요구하는 복잡 다단한 인지과정이다. 즉 유비 추론에 의해 이루어지는 지식의 전이는 풍부한 유관 배경지식이 인출에 유리한 형태로 장기기억에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 학습자의 경우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정보처리과정이다.
학생이 지식을 이해했을 때만이 전이가 가능하다. 즉 학습 목표에 해당하는 교과지식 및 기능에 대한 풍부한 배경지식이 장기기억에 구축되지 않은 학생에게 성급히 광폭의 전이 과제를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면 학생이 전이 과제를 수행하지 못하고 학습 목표에 해당되는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조차 실패할 수 있다. 즉 실생활 맥락을 통해서 삶과 연계를 꾀하는 광폭의 전이 과제에 대하여 교사가 학습 초기에 낮은 난이도의 과제를 충분한 비계와 함께 제공하고 동일한 지식을 반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맥락의 구조화된 연습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학생은 지식을 전이하여 활용하는데 실패하는 것은 물론 그 이전에 해당 지식을 이해하는 것부터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즉 전이는 기초지식을 탄탄하게 한 이후에 요구되어야 한다.
앤 맥키, 주디 루파트, 앤서니 마리니의 저서인 <가르치기>를 보더라도 학습의 전이는 일반적으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로 간주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교육에서 가장 난해한 문제 중 하나이다. 얼마나 전이가 어려운지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는 전이가 성공한 사례를 보고하는 연구 결과에 비해 무척 많다. |
김새로나의 의견에 적극 공감한다. 학습은 뇌의 구조를 바꾸는 메커니즘이며 작업기억과 장기기억의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인지적, 정의적 활동이므로 김새로나의 의견처럼 학습자의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는데도 교수자가 실생활 맥락이라는 측면에만 주목하여 기계적으로 학습자에게 전이 과제를 제시하면 학습자의 작업기억에 인지 과부하만 일으킬 뿐이다. 즉 우리의 뇌는 사고하기 위해 디자인되어 있지 않으며 기억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전전두엽과 해마를 연결하는 작업기억 시스템에서 작업기억 용량을 초과하는 정보처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이에서 배경지식의 중요성은 전이가 갖는 특성 때문에 나타난다. 전이는 유비 추론이라는 사고 방법으로 유용하지만 매우 위험스러운 귀납추론이다. 위험스럽다는 것은 유비를 통해 내린 결론을 신뢰할 수 없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추론은 두 대상 사이의 유사성을 근거로 일상에서 자주 사용된다. 유비 추론은 주어진 대상이 다른 대상과 몇 가지 점에서 비슷하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그 특성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그런 다음 주어진 대상과 다른 대상이 비슷한 점이 많으므로 주어진 대상에 나온 어떤 특성이 다른 대상에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예를 들어보자:
| 많은 사람이 흡연과 폐암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그 직접적 인과관계에 대하여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담배에는 적어도 16가지의 발암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런 물질들이 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흡연과 폐암의 관계를 밝히려는 실험이 여러 가지 장애 요인, 이를테면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 실험에 소요되는 엄청난 액수의 비용, 장기간의 시간 등의 장애 요인이 있어 실험 자체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은 밀폐된 용기 속에 쥐들을 집어넣고 담배 연기를 주입한다.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담배 연기를 흡입한 쥐들 중에서 일정한 정도의 비율로 폐암을 비롯한 폐 질병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 과학자들은 인간에게도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
이 글에 나타난 유비 추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쥐와 사람은 생리적으로 유사하다. 장기간에 걸쳐 담배 연기를 흡입한 쥐는 일정 비율로 폐 질환을 일으켰다. 그러므로 장기간에 걸쳐 흡연을 한 사람도 일정 비율로 폐 질환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유비 추론을 통해 내린 전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는 따져봐야 한다. 유비 추론은 귀납추론이므로 강한 논증이 될 수도 있고 약한 논증이 될 수도 있다. 즉 비교되는 대상 간에 유사성이 많을수록 전이로 인해 내린 결론을 신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추운 겨울에 홍길동이 소유한 자동차가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다면 같은 제조사, 같은 모델, 같은 연도에 나온 차를 구입한 이몽룡의 차도 시동이 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린 결론은 비교적 잘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회사, 모델, 연도가 아니라 차의 색깔이나 창문 수가 같다는 특징을 들어 그런 결론을 내렸다면 약한 논증으로 그 결론은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유비 추론은 결론을 받아들이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유비 추론이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배경에는 실제 직접 관찰이나 실험이 불가능하거나, 사건이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고 처음 일어난 생소한 사건에 대해 판단해야 하거나, 새로운 원리를 교육할 때 유용하기 때문이다.
이로 보듯 유비 추론을 잘하려면 전제로 주어지는 대상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전제로 주어진 대상이 교과 내용인 사실적 지식, 절차적 지식, 개념적 지식이라면 이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만 전이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안다는 뜻이 아니다. 그게 참인지를 증명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참인지의 여부는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거하여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참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배경지식은 필수적이다. 요컨대 교과 내용을 기억하고,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전이의 방법인 유비 추론 방식을 알고 있어도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이나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뜻이다.
주어지는 대상에 대한 참(진리)을 판단하는 기준은 실생활과의 관련 여부에 관계없이 그 세부 기준에 따라 참과 거짓이 달라진다. 참 지식 즉 진리를 정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첫째, 대응설이 있다.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이 사실이나 상황과 대응하여 진리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어진 대상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라고 되어 있으면 과학적 사실에 대응되기 때문이다. “오늘 날씨가 맑다”도 마찬가지이다. 실제 날씨가 맑으면 주어진 대상은 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응설은 주어진 대상이 처음 나타나는 사실이나 상황이라면 참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그것과 대응되는 사실이나 상황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정합설이 있다. 정합설은 어떤 신념 혹은 판단을 꼭 경험할 수 없어도 다른 신념 혹은 판단과 모순되지 않고 논리정연하다면 진리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유비 추론은 정합설과 밀접하다. 예를 들어 “태양은 지구와 비교하면 약 3천 배 정도 크다.”라고 했을 때 이 판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배경에는 태양의 크기를 직접 측정해 보지 않았어도 지구의 크기를 알 수 있는 등 인정된 지식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옳다고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구의 크기를 정확하게 알아야 할 때만이 정합설에 근거하여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전제가 참인지를 입증하지 못하면 주어진 대상에 대해 내린 결론을 신뢰할 수 없다. 셋째, 실용설이 있다. 진리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므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만 진리라고 보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참인 이유는 과거의 이론보다 천체의 운동을 폭넓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주도학습이 창의성을 기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실제로 자기주도학습을 해보았을 때 창의성이 길러졌다면 그 판단은 참이고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용성을 일반적 기준으로 쓰는 것은 위험하다. 핵물리학이 원자폭탄으로 제국주의 일본을 항복시켰다는 점에서 진리이지만 약 10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약 18만 명에 달하는 부상자를 낳게 했다는 점에서는 거짓이 된다.
하여튼 전이가 타당한 전이가 되려면 그 어떤 진리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전이하려는 학습자는 전이할 때 필수적인 배경지식이 충분해야 하며, 그 내용 또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학습자가 전이에 급급하면 문제 해결을 하지 못할뿐더러 오판으로 인한 치명적인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나아가 이런 전제를 강조하는 까닭은 전이가 유용한 추론 방식임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개념 기반 교육과정, 사실적 지식의 기반이 없으면 속 빈 강정에 불과해
전이와 관련하여 개념 기반 교육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그러기 전에 지식의 유형에 대해 살펴야 한다. 개념 기반 교육과정은 지식의 유형을 변환하는 사고 활동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지식에는 명제적 지식과 방법적 지식이 있다. 명제적 지식은 ‘…인 것을 안다’로 표현되는 지식이다. 즉, 어떤 사실이나 이론, 원리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으로, 대체로 진(眞)‧위(僞)를 구별할 수 있는 문장인 명제로 되어 있다. 명제적 지식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물은 100℃에서 끓는다.’와 같은 사실적 지식이 있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지식 대부분으로 그것이 사실이든, 원리이든 혹은 이론이든, 개념이든 사실로써 구성된 명제에 기초를 두고 있다. 둘째, 논리적 지식이 있다. 예를 들어 ‘처녀는 시집 안 간 여자이다.’와 같이 설명 부분의 요소들이 이미 주어 의미에 내재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지식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기보다는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 간에 의미적 관계를 나타내는 지식이다. 논리적 지식을 관계적 지식이라고도 한다. 셋째, 가치나 규범을 나타내는 규범적 지식이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는 가장 인도주의적인 사회제도이다.’와 같이 평가적 문장으로 되어 있으며, 도덕적 판단이 이에 해당된다. 이외에 비명제적 지식으로 방법적 지식(절차적 지식)이 있다. 이 지식은 실제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지식이다. 예를 들면 ‘수영을 할 수 있다.’거나, ‘피아노를 칠 수 있다.’와 같은 지식이다. 이로 보듯 지식의 위계에서 사실적 지식을 기반으로 개념적 지식이, 개념적 지식을 기반으로 절차적 지식이 있다.
개념 기반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전이 능력을 기르고자 하며 교수학습에서 전이에 상당한 가치를 부여하면서 사실적 지식(구체적 지식)을 개념적 지식(추상적 지식)으로 바꾸고 이를 수행을 통해 활용하는 교수학습 방식이다. 즉 개념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의 상호작용으로 비판적 사고를 기르려는 교수학습법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이 배워서 알게 된 사실적 지식을 개념적 지식으로 바꾸고 절차적 지식을 통해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도 옮겨 와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수학습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수업은 사실적 지식을 개념적인 지식으로 바꾸도록 하는 역량, 즉 사고 방법에 초점을 맞춰 이루어지곤 한다.
이런 절차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학습과는 무관한 미신이 등장하게 되고, 그 미신이 학습에 끼치는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다음은 이찬승과 데이지 크리스토 툴루의 글로서, 이는 사실적 지식의 가치를 둘러싸고 유행하는 미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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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자나 학습자가 교육활동에서 사실적 지식에 대해 경시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적 지식에 대한 학습을 경시하면 개념적 지식 또한 길러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학습자에게 실제의 학습이 이루어질 수 없게 할 뿐더러 나아가 지속적인 학습을 기피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충분한 사실적 지식에 대한 학습 과정 없이 개념적 지식으로 변환하는 과정에만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교사 연수나 개념적 지식만이 지식의 근간이라고 여기면서 사실적 지식 학습을 소홀하게 여기는 최근의 한국 교육 풍토는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비판받아 마땅하다.
교사가 개념 기반 교육과정으로 수업 설계를 했고, 개념적 지식을 끌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사실적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를 들고자 한다.
다음 내용은 한 교사가 초등학교 4학년 과학수업을 개념 기반 교육과정으로 설계하고 시행한 과정을 블로그에 올린 경우이다. 그 교사 A는 학생들과 함께 과학 과목과 관련해 세 개의 실험을 했다. “첫째, 물을 패트리 접시에 담아 상온에서 7시간 동안 두었다. 둘째, 물을 가열하여 끓였다. 셋째, 물이 끓는 상태에서 10분 더 가열했다.” 그 후에 학생들에게 이 실험을 관찰하도록 했다. 그러면 학생들은 이 실험으로부터 “물을 패트리 접시에 담아두면 물의 양이 줄어든다.”와 “물을 가열하여 끓이면 물의 양이 줄어든다.”는 사실적 지식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사 A는 실험으로 알게 된 사실적 지식을 일반화하여 “물에 열을 가하면 분자 (간)의 인력이 약해져서 더 빨리 증발했다.”라는 명제를 도출했고 이를 개념적 지식이라고 했다.
교사 A가 도출한 서술문은 참과 거짓을 판명할 수 있고, 감탄문이나 명령문이 아니므로 명제적 지식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교사 A가 도출한 개념적 지식을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적 지식으로부터 개념적 지식을 끌어내려면 사실적 지식을 드러내는 명제 간의 관계를 파악하여 대등한 관계인지, 종속적 관계인지, 서로 다른 범주에 있는지 등을 설명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두 명제를 살펴보니, 그 관계는 대등하며 그 의미는 반대 관계에 있다. 그래서 복합 명제를 만들면 “물을 용기에 담아 상온에 두거나 가열하여 끓이면 물의 양은 줄어든다.”는 고차적 사실적 지식을 끌어낼 수 있다.
위의 복합 명제는 개념적 지식이 아니며, 이런 것을 추론적 사고 기술이라고 하지도 않으며 인과적 설명이라고 한다. 물의 양이 줄어든 결과가 구체적으로 무슨 사건(상온에 방치, 가열)으로 인해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그러므로 개념적 지식으로 변환하려면 숨은 가정, 즉 복합 명제를 만들기 전에 사실적 지식을 보여주는 두 개의 단순 명제들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를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집어 넣어줘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학습자는 증발과 끓임(비등)과 관련된 의미를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즉 증발은 상온에서, 끓임은 100도 이상에 기화를 일어나게 하는 자연 현상인데 이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한다. 예컨대 증발과 비등의 정의, 증발과 비등의 공통점과 차이점, 증발과 비등이 물에 끼치는 영향, 물의 구성요소, 물의 화학적 구조 등이다. 그래야만 교사 A가 도출한 명제처럼 증발과 비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인 “(물) 분자 간의 인력이 약해졌다”라는 의미를 숨은 전제로 삼아 개념적 지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교사 A는 “물에 열을 가하면 분자 (간)의 인력이 약해져서 더 빨리 증발했다.”를 개념적 지식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적 지식은 2차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어떤 결론이 숨은 의미를 제시하는 함축을 드러낸 것이다. 즉 제시된 사실적 지식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개념적 지식은 사실적 지식 간의 공통점을 기반으로 하므로 “물을 상온에 두거나 가열하면(전제) 물 분자 간의 인력이 약해지므로(숨은 전제, 이유) 물의 양이 줄어든다(결론).”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후에 물 분자 간에 인력이 약화된 원인이 가열로 인한 온도 변화에 있다고 보고 비등이 증발보다 기화에 더 효과적이라는 2차적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좋다. 즉 숨어있는 함축을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이 있다. 개념적 지식이 1차적이든, 2차적이든 사실적 지식으로부터 개념적 지식을 도출하려면 학습자는 ‘사실적 지식으로 기화, 증발, 끓임(비등)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기화의 원인은 증발, 끓임 이외에는 없다.”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내 말은 사실적 지식에 대한 학습이 개념적 지식을 추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과제여야 한다는 뜻이다. 즉 각 교과에서 배우는 사실적 지식을 충분히 갖춘 상태에서 내용 지식과 긴밀하게 연결시켜 구제적인 맥락 속에서 개념적 지식을 도출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주제에 대해 비판적 사고, 즉 전이 능력을 높이려면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사실적 지식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고 그렇지 않고서는 질적으로 우수한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없다.
기억 교육과 주입식 교육은 다르며 뇌는 사고와 기억 중에 기억이 우선
이처럼 수업과 학습에서 사실적 지식을 강조하니까 교수자 중에 일부는 주입식 교육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는 기억 교육을 주입식 교육으로 착각한다. 또는 둘을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둘은 전혀 다르다. 기억 교육은 사실적 지식을 의미 있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이지만 주입식 교육은 사실적 지식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교육이다. 단순 기계적 암기에 의한 지식의 축적은 정보 간에 부호화하거나 장기기억에서 인출하는데 비효율적이고 전이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지식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수자는 기억 교육을 통해 사실적 지식을 관계적으로 이해하는 수업을 설계하고, 학습자는 그런 학습을 해야만 사실적 지식은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피상적 지식이라도 이런 지식조차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도 없다. 현실에서 이런 점을 애써 부인하려는 교수자를 보면 안타깝다. 나아가 그런데도 수업에서 교수자가 사실적 지식을 의미 있게 가르치고 학생들이 배우도록 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개념 기반 교육과정이 전이에 효과적이고 개념적 지식으로 변환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면 타당한 개념적 지식을 도출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인지 과부하로 인해 교수자가 학습자를 배움의 길로 인도해야 하는데도 오히려 그 길에서 도피하게 만들 뿐이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인지심리학과 교수인 다니엘 윌림햄이 “뇌는 생각을 위해 디자인되지 않았으며 생각의 수고를 덜기 위해 디자인 되었다.”라고 말한 의미를 잊지 않아야 한다. 이 점에서 사실적 지식의 이해와 기억을 AI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행위로 대체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과학과 동떨어진 사변에 불과하다. 이런 미신을 받아들이면서 개념 기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고 하면서 사실적 지식을 경시하는 행태로 진행되는 연수나 학습 훈련은 학습자에게 전이 역량인 비판적 사고를 길러 줄 수 없다. 속된 말로 ‘콩을 심고 팥이 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과 수업에서 아직 사실적 지식도 충분하게 학습하지 않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학생들에게 개념 기반 교육과정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과정이 얼마나 전이 능력을 기르게 할지도 의심스럽다.
개념 기반 교육과정은 성인 취업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 초·중·고 교육과정에 적절한지 의문
개념 기반 교육과정은 원래 초·중·고 학생의 수업에 적절한 교수학습법으로 등장하지도 않았다. 개념 기반 교육과정의 근간인 백워드 설계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백워드 설계는 포디즘,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과 밀접하다. 즉 포스트 포디즘에 부응하는 지식과 기술을 갖춘 노동자를 학교에서 양산하기 위해 개발된 교육과정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생산방식의 변화를 살펴야만 개념 기반 교육과정이 학교급과 무관하게 무소불위의 교육과정으로 가치를 지니는가를 판단할 수 있다.
포디즘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본주의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도입한 생산방식으로 ‘획일적 대량 생산’, ‘낮은 임금과 저렴한 원자재 가격’, ‘넓은 상품시장’을 특징으로 한다. 이 방식은 소위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열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효율적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비해 자본주의 국가의 전반적인 소득수준을 크게 높아지게 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자본주의는 위기에 직면한다. 선진국에서 기업 이윤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1973년 중동에서 시작된 석유 파동은 치명적으로 포디즘을 위협했다. 기업의 이윤은 자본주의 역사상 전례 없이 줄었으며, 투자는 위축되었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당시 유럽의 실업률은 1960년대 2.2퍼센트에서 1970년대 4퍼센트, 1980년대 9퍼센트였으며, 미국은 1960년대 4.7퍼센트에서 1970년대 6.4퍼센트, 1980년대 7.1퍼센트로 늘어났다. 또 친환경적이지 않은 대량 생산은 온실 효과 등 ‘생태환경의 위기(Ecological Crisis)’로 발전했고 화석 에너지를 원자력 에너지로 대체하려고 했지만 원자력 발전소 신축을 반대하는 여론 때문에 그 효과는 미미했다. 더구나 포디즘은 경영자나 상층 노동자만이 작업을 기획, 설계했고 다수 노동자는 설계된 직무를 따라 상품을 생산해 왔으므로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저항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 또한 평균 소득수준이 상승하자, 취향이나 기호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상품에 대한 구매를 더 이상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생산된 상품은 점점 팔리지 않았으며, 실업자는 늘어났고, 경기 침체의 그늘은 깊어졌다. 정부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상품 가격을 낮춤으로써 소비를 늘리려고 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의 포디즘에 대한 믿음은 여전했고, 더 많은 빚을 지더라도 확장적으로 경기부양을 하면 실업은 해결되고 경제성장도 지속될 수 있으리라 낙관했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정부가 시장에 돈을 푸는 등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을 했는데도 높은 실업률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1970년대 중반에 이르자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최악의 경제문제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다.
이 현상은 단순하지 않다.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포디즘의 일시적 위기’일 뿐이라는 낙관적 현실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 즉 곳곳에서 머지않아 자본주의 시스템이 파산할 것이라는 경고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국가와 자본가들은 포디즘을 대신할 새로운 생산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유연생산체계라 불리는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을 잇달아 도입하여 체제적 위기를 극복했다.
포스트 포디즘은 조직에서 기획과 실행이 분리되지 않고, 자본가와 노동자들은 협업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며, 고용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생산방식이다. 이를테면 자동차 공장에서 획일적 생산 방식을 보여주던 컨베이어 벨트는 사라졌으며, 포디즘처럼 기계를 써서 부품을 조립하고 상품을 분류했지만 최종 조립은 숙련된 노동자가 직접 처리했으며, 노동자가 협업적으로 작업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직무를 수평적으로 조정했으며, 각 작업팀은 생산과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더 크고 넓은 자율권을 누리도록 했다. 공공 부문 역시 포스트 포디즘을 도입하여 직무 수행에서 효율성을 높여 나갔다. 그러므로 노동시장에서 포디즘 체제와 다른 새로운 능력이 취업자나 예비 취업자에게 요구되었고, 이 능력을 개발하는 역할이 학교의 교육과정으로 편성되어 운영되었다. 즉 백워드 설계모형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물질적인 축적 방식이 바뀜에 따라 교육에서 나타난 수업방식 변화로서 자본의 이윤추구에 기여하는 양질의 노동력을 학교에서 재생산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 수업 대상은 대학생 위주였다.
| 1970년대와 1980년대 비교적 실무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현장에 들어간 학생은 점점 커지는 우려의 대상이었다. 전통적으로, 학생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성인이 성공적으로 노동하는데 필요한 것에는 엄청난 단절이 있었다. 1990년 Elizabeth Dole(당시 미국 노동부 장관)은 SCANS(필수기능 성취에 관한 장관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현장의 요구를 검토하고 젊은 사람들이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할 준비가 될 수 있도록 학습을 구조화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여러 가지 일을 요청받았다. 그들은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마음의 습성을 정의해야 했다. 이것은 학생이 직장을 준비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작업하는 데 필요한 특성을 포함했다. 위원회는 또한 숙달의 허용 수준을 제안하고, 교사가 이것을 평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이러한 숙달을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도록 요청받았다.
백워드 설계와 수업 전문성 (Harriet lsecke, 46쪽) |
교수자들이 간과하지 않아야 할 사실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고등학생의 뇌는 특히 학습과 밀접한 대뇌 피질의 전전두엽은 아직 미성숙한 탓에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거나 형성하는 사고 작업이 쉽지 않으며, 이는 자연스러운 발달이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미 성숙한 뇌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사실적 지식을 학습한 교사의 시각으로 추상적 개념을 비교적 쉽게 끌어낼 수 있다고 보고, 나아가 일부 교사에게는 그것마저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사실적 지식이 대부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우리 아이에게 개념 기반 교육과정을 밀어붙이면서 개념적 지식을 도출하라고 요구하는 수업 설계는 학교급과 인간의 발달을 고려하면 부적절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교수자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 아이들이 미성숙한 뇌와 적은 기억된 사실적 지식을 갖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개념 기반 교육과정을 통한 수업 설계가 적정한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교육을 전공하여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예탁결제원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전주 완산고등학교에서 사회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 교육청 사회문화 집필 위원, KDI 경제교육교재 집필 위원,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자문단, 충남 지방공무원 임용시험 출제위원, 전북 및 전남 교육연수원 강사, 전북대학교 교사 연수 강사, <새전북신문>, <열린 전북>, <전북교육신문>, 인문 웹진 <아홉시>, 네이버 비즈니즈 블로그 <인터비즈>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교육저널인 「교육 제4의 길 」에 칼럼을 쓰고 있다. 저서로 <미래 교육의 불편한 진실, EBS, 2021>, <학교 속 문해력 수업, EBS, 2022>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