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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사설] 교육을 간과한 의료 문제 논의는 무의미하다

#1041 편집실, <교육 제4의 길> 편집진 2024.04.04
“지금과 같은 교육 풍토에서는, ‘지방’과 ‘필수’를 멀리하며 ‘서울’과 ‘수가’(酬價)를 좇는 상식을 버릴 의사는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교육을 지금처럼 이야기해선, 아이들을 ‘혼’을 갖춘 삶의 주인으로 키울 수 없다.” (본문 발췌)

 

 

의과대학의 입학 정원 문제는 참 오랫동안 부침해 왔다. 문제가 최근 다시 부상했고, 총선의 회오리까지 가세해, 아귀다툼의 양상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나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의사들, 양쪽 모두 ‘합리적인’ 이유라고 연일 고성의 포를 쏘아대며 공방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그 언사들에 ‘계산’과 위선이 덮여 있음을 모르지 않으며, 바른 결정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도 않을 듯하다. 절대적으로 의사가 부족하고, 특히 ‘지방 의료’와 ‘필수 의료’의 기초가 무너져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점을 수긍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 대책을 찾는다면, 진정(眞正)한 대안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 세간에 돌아가는 이야기에선 빼놓아 선 안 될 문제가 빠져 있다. 정부와 의사들은 물론이고, 언론이나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작 핵심인 문제를 제쳐 두고 있다. 의사를 키워내는 ‘교육’의 과제는 이미 해결된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의대생이 갑자기 늘면 실험 실습이 부실해진다는 등의, 이미 나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정도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점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훨씬 더 근본적인 교육 문제를 간과하고 있고, 이런 어리석음은 이번에만 보이는 게 아니라고 지적하고자 한다.

 

교육의 맥락에서 지금 어떤 이야기들이 돌고 있는가? 예컨대, 수학 ‘3등급짜리’도 의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될지 모르며, ‘서연고’ 자연계 입학생의 40% 정도가 의대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2,000명 증원 계획의 대학별 배분이 발표되고 나서는, 강원지역이 의대 진학에 가장 유리하고 ‘부울경’ 지역이 불리하다는 식의 ‘분석’들도 난무하고 있다. ‘입시 전문가’네 ‘컨설턴트’네 하는 사람들은 물론, EBS에 해설차 출연한 ‘공교육 전문가’란 교사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 증원을 반대하며 그 이유를 외치는 의사들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의사들의 실력이 떨어진다’, ‘누가 3등급짜리 의사들에게 진료받으려 하겠느냐’는 식의 발언들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마치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모두 의과대학에 입학하겠다는 일념으로 한 줄의 점수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듯이 전제한다. 그리고 의사의 ‘실력’은 고등학교 졸업 때 점수로 결정되고 마는 것인 듯 이야기한다. 양식을 가졌다면 모두 웃을 어이없는 논리들이다. 그런데도 신문 방송 구분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이야기들이 한결같다. 어떤 학생이 의사(의학)의 진로를 잡아야 하고, 대학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미래 의사의 자질을 가늠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합의한 바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 들 정도이다. “수능 4문제만 틀릴 자신이 있으면” 의대로 진학해야 한다는 식의 암묵적 합의 말이다.

 

이런 양상은 그런데 의대 진로에 대해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인기가 의과대학 못지않았던 교육대학에 최근 지원자가 줄어들었을 때 하던 이야기들도 사실 다르지 않았다. 교육과 생애 진로 일반에 대해, 으레 그러려니 대체로 수긍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가정에서도 그렇고 사회에서도 그렇다. 수능 등급이 충족되는데 의대에(‘좋은’ 대학에) 지원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모두 의아해한다. ‘서울대 점수’인데 ‘하고 싶은’ 전공을 찾아 다른 대학에 지원하려 해도 ‘왜?’하는 반응에 부딪힌다. 교육을 받고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이 점수 순으로 한 줄로 걸어가는 과정이나 다름없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 순서는 미래의 직장과 ‘벌이’의 위계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계속 교육을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까? 이대로라면, 원만한 타협으로 의대 증원이 적절히 이루어진다고 해도 더 나은 의료 복지를 기대할 수 없다. 정원을 늘려서 미래의 의사 수를 늘리기만 하면, 그리고 ‘수가 조정’을 잘하고 졸업생들의 일부를 ‘지방’에 묶어 두기만 하면, 의료 문제는 모두 잘 풀릴 것이라 기대한다면 너무 순진하다. 궁극적인 문제는 어떤 의사가 양성되느냐에 있다.

 

교육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여겨 틀리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정의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마음의 틀을 갖춰 가면서, 삶의 가치를 구축해 가는 과정이라 보아도 마찬가지이겠다. 어려서부터 이런 과정을 밟지 못해도 아이들은 훌륭한 의사로(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의대 진학이 만인의 교육 성공 지표라는 교육관이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한대도 훌륭한 의사 수는 정원이 느는 만큼 늘어날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의사의 수를 아무리 늘려도, 지금과 같은 교육 풍토에서는, ‘지방’과 ‘필수’를 멀리하며 ‘서울’과 ‘수가’(酬價)를 좇는 상식을 버릴 의사는 크게 늘지 않을 것이다. 의사 경우 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성인의 삶이든, 우리 사회가 교육을 지금처럼 이야기해선, 아이들을 ‘혼’을 갖춘 삶의 주인으로 키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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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제4의 길> 편집진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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