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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논평]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행착오의 전철을 밟았다

#1006 강태중,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24.01.04
지난해 말 교육부가 내놓은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을 비판한다. 비판은 ‘수능’ 개편에 국한했다. 수능 ‘과목체계’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런 개편을 어떤 논리로 정당화하고 있는지 정리하고, 그런 방안과 정당화 논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지적했다. 수능이 개편되면 ‘통합적·융합적 교육’을 유도하게 되고 더 공정해진다는 교육부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개편안, ‘이번에는’ 하고 기대했었는데

 

2028학년도 대학 입학에서부터 적용될 대입제도가 결정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게 되는 학생들, 즉 현재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그 첫 적용 대상이다. 이번 ‘입시 개편’1이 완성되는 데는 4년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투입되었다.2 제도 개혁에 신중한 다른 나라 사례에 견준다면 긴 시간을 들였다고 할 수 없을 테지만, 우리나라에서 이제까지 대입제도 개편에 이만큼 긴 시간을 들였던 적은 없다. 그것도 “미래 교육에 부합하는 형태로” 제도를 준비하겠다는 교육부 장관의 약조와 더불어 투입된 시간이었다. ‘혹시 이번에는’ 하고, 바람직하게 개편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걸 만했다.

 

개편에 기대를 걸만했던 이유는 시간이 제법 길게 투자되었던 데만 있지 않았다. 그 개편이 학교 교육과정과 그 이수 양식을 바꾸는 작업과 연계되어 이루어진다는 점도 바람을 키울 만했다. 많은 논란으로 널리 알려졌듯이, 이번 대입제도 개편은 이른바 ‘고교학점제’가 불러온 것이었고, 고교학점제는 다름 아닌 2022 개정 교육과정을 뒷받침하는 교과 이수 양식이었다. 대입제도가 학교 교육과정 현실과 제대로 맞물리게 갖추어질 계기가 만들어졌던 셈이다. 입시가 ‘교육과정 운영의 파행’을 낳는 현실은 우리 근대 학교 교육사를 관통하는 고질이었다. 이런 마당에 교육과정과 그 운영 양식을 새롭게 바꾸는 과정 초기에서부터 대입제도가 상응하도록 구상된다는 사실은 이번 개편이 고질적인 구태를 벗을 절호의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기대하게 했다.

 

기대를 부풀리기만 했을 뿐, 교육부는 과거와 다름없이 보잘것없는 결과를 내놓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교육부는 허언만 거듭했을 뿐, 대입제도 개편에 큰 힘을 기울이지 않았다.3 결국, 으레 하던 대로 겨우 1년 남짓한 시간을 소비하는 상투적인 절차를 거쳐,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논란과 질책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안을 급조해 내는 데 머물렀다.

 

 

‘통합형·융합형 수능’으로 개편?

 

교육부의 브리핑 언어를 빌리면,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수능을 ‘통합형·융합형’으로 바꾸는 데 있다.4 개편에 대한 교육부의 말 꾸밈만 보면 그럴싸하다. 그러나 뜯어볼수록 확정안의 내실은 허약하다. 좋아지는 데가 거의 없어 보이는데, 교육부는 어이없는 논리로 개편을 정당화하며 진실을 가리고 있다. 어쩌면 교육부는 진실 자체를 살피지 못하고 그렇게 강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정부 때문에 더욱 암담해진다. 수능 개편안의 내막을 살펴보자.

 

현재의 수능을 ‘통합형·융합형 수능’으로 바꾼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시험과목 선택을 배제한다는 것과, 이른바 문·이과 구분의 여지도 없앤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어떤 흐름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했건(또는, 어떤 진학 진로를 계획하고 있건), 모든 수험생이 똑같은 수능을 치도록 한다는 것이다([별첨 표] 참조).

 

수능의 ‘영역’은 과거와 다름없다.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탐구(사회·과학, 직업), 제2외국어/한문의 영역 구도는 유지된다. 다만, 영역 안에서 주어졌던 ‘선택과목’이 사라지고, 시험 범위(교육과정의 해당 과목 범위)가 좁혀진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위계를 두고 말하면, 과거보다 ‘하급’ 수준의 과목들로 시험 범위가 줄어든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2~3학년 단계에서 이수하게 되는 ‘상급’ 과목들이(수학의 ‘미적분Ⅱ’, 사회의 ‘세계사’, ‘정치’, ‘경제’, 과학의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등이) 대거 시험 범위에서 빠진다. 흔히 돌아다니는 용어를 빌려 말하면, 문·이과생이 공통으로 이수하게 되는 과목들보다도 낮은 수준인 과목들로 수능 범위가 좁아 들게 된다.

 

진로(특히, ‘문·이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수험생이 같은(선택 없는) 시험을 치도록 만들려고 할 때, 시험과목을 하급 수준으로 좁히는 대안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공통의 과목들은 교육과정상 진로 갈래가 나뉘기 전에(대체로 고등학교 1학년 수준에서) 이수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낙착을 본 대안에 대해 교육부는 “통합적·융합적 교육을 유도하는 공정한 수능”을 만드는 대책이라고 정당화했다. 선택과목이 사라지면 “선택과목 유불리를 해소”하게 될 터이니 공정해진다는 것이고, 문·이과 분기 이전 단계의 과목으로 범위를 낮추어 잡으면 “실질적인 문·이과의 통합을 구현해 사회·과학 분야의 기초소양을 바탕으로 한 융합적인 학습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불리를 해소’해서 공정 수능?

 

과연 교육부 말처럼 수능은 공정해지고 융합적인 학습을 유도하게 될까? 먼저, 공정해진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재 수능은 부분적으로 시험과목의 선택을 허용하고 있는데5, 이 때문에 수험생들은 서로 유리한 과목을 찾아 전략적인 응시를 하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또 수능의 난이도나 특정한 과목의 응시 집단도 해마다 오락가락하니, 과목 선택에 따른 유불리는 말 그대로 ‘천운’에 달리게 된다. 유불리의 방향이 수험생들의 전략을 따라가건 ‘하늘의 조화’를 따라가건, 선택에 따라 점수 유불리가 갈리는 사태는 피할 수 없다. 교육부는 이 사태를 공정하지 못하다고 규정하면서, 문제의 진원일 ‘선택’을 아예 없애버리는 대안을 채택했다. 선택의 조건 자체를 없앴으니, 선택에 따른 유불리도 사라지는 것이고 수능은 공정해진다는 논리이다.

 

교육부의 논리가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지적이 가능하겠지만, 두 수준에서 간략히 짚고 넘어가자.

 

우선, 표피적인 수준에서 보자. 교육부가 계산한 것과 같이, 수능 과목 구성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니, 과목 구성을 수험생들에게 맡기지 말고(과목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고), 모든 수험생에게 똑같은 구성의 시험을 치게 하는 것이 수능을 더 공정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수능과 같은 시험을 포함해서 어떤 게임에서든, 특정한 규칙은 언제나 어떤 참여자에게는 유리하고 다른 어떤 참여자에게는 불리하기 마련이다. 참여자의 선택을 없앤다고 해서 참여자 속성에 따라 갈리는 유불리 현상 자체가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유불리 양상이 달라질 뿐이다.

 

이번 개편의 한 요소를 두고 예상해 보자. 수학 시험에서 ‘심화’ 부분을 배제하는 게 이번 개편의 요체 가운데 하나이다. 이렇게 규칙을 바꾸면, 현재 수능과 비교할 때, 2028학년도에 어떤 다른 일이 벌어질까? ‘미적분Ⅱ’나 ‘기하’ 같은 심화 과목에서 상대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수험생이 불리해질지 모른다. 그 과목들이 시험과목에서 빠지게 되면서 점수 차이를 벌릴 여지가 지금보다는 줄어들 터이기 때문이다. 좀 더 집단을 늘려 예상해 보면, 여학생들에게는 유리해질지도 모른다. ‘심화 수학’에서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성적을 얻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과목이 사라진 시험에서는 남학생 우위 경향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같은 예상은 물론 빗나갈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선택을 배제한다고 해서 유불리 현상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나타나기 마련으로, 유불리 양상이 달라질 뿐이다. 그렇기에 유불리 현상이 ‘해소된다’는 교육부 말은 틀렸다. 과목의 선택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유리하고 불리한 사람들의 구성이 달라질 뿐, 여전히 수능은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것이다. 다만, 과목 선택이 있을 때는 유불리 양상이 밖으로 쉽게 드러나는 데 비해, 선택을 없애면 그 양상이 어느 정도 숨겨질 수는 있다. 전자의 경우, 선택에 따라 수험생들을 확연하게 구분해서 비교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게 구분해 비교할 범주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수능 개편은 유불리를 해소하는 방안이 아니라 그것을 숨기는 방안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하다.

 

 

공정 이야기 전에 짚어보아야 할 것은?

 

유불리 문제가 해소되느냐 않느냐는, 개편안의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이슈이다. 누구에게 유리해지고 누구에게 불리해지는 결과만으로는 ‘공정’의 여부를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유불리 해소’를 통해서 수능을 공정하게 만든다고 억설하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얘기했듯이 유불리 해소가 이루어지지도 않지만, 설사 해소된다 해도 그 점이 공정한 수능을 만들게 되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 충분조건은커녕 필요조건도 되지 않는다.

 

교육부의 억설은 모든 수험생에게 규칙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그것이 모두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정하다는 전제에서 나온다. 그러나 공정은 규칙을 모두에게 똑같게 만든다고 확보되는 가치가 아니다. 공정이란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공적 제도라면, 규칙의 획일성 이전에 그 정당성을 우선 담보해야 한다. 제도 자체가 온당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아무리 획일성이 강하더라도 공정에 값할 수 없다. 따라서 수능 개편안이 수능을 더 공정하게 만드는지 따져보려면 먼저 그것이 바람직한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수능 개편안은 과연 바람직한가? 아니면, 적어도 기존 수능에 비해 더 바람직해지는가? 이 문제에 답하려면 시험이 바람직한지 따질 준거부터 설정해야 할 터인데, 합의하기 쉬운 사안은 아니다. 수능에 대한 기대가 다양한 만큼 제안될 준거도 다양할 것이다. 그래도 다음 두 수준의 준거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하리라 짐작한다. 하나는, 시험으로서의 타당도(validity)이다. 말하자면, 수능은 ‘대학 수학 능력’을 평가하게 되어 있는 시험이므로, 실지로 그 ‘능력’을 제대로 재는지가 준거가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좀 더 일반적인 수준에서, 교육의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숱하게 지적되어 온 문제를 두고 말하면,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뒷받침하는지를 준거로 삼을 만하다.

 

수능은 대입전형 자료를 생산한다. 당연히 ‘대학 입학 자격’을 가늠하는 데 유효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수능에 대해 공정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시험이 타당하지 못하다면, 그것이 ‘통합형’이건 ‘선택형’이건 관계 없이, 입시로서의 가치 자체를 잃는다. 좀 더 넓게, 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수능은 학교 교육과 대학 교육을 잇는 다리인 셈이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결산하는 지점에 있고 또 앞으로의 진로로 연결하는 기능을 지닌 만큼, 학교 교육 전반에 대해 합목적적 지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수능이 학교 교육의 본지(本旨)를 그르친다면, 수능이 공정하다 아니다 따져보는 일 역시 더 이상 의미 없다. 학교 교육의 진정성을 살리는 한에서만 그 시험의 공정성을 따질 명분이 산다. 수능이 교육을 해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과목 체제로 이루어져 있건 상관없이, 대학입시로서 자격을 박탈해야 마땅하다.

 

 

수능이 ‘대학 수학 능력’을 재기는 하는지?

 

이상과 같은 논지의 두 준거를 받아들이고 보면, 안타깝게도, 수능은 이미 존립 의의를 잃고 있고 그것을 회복할 길도 막연해 보인다. 먼저 타당도라는 준거에서 보면, 수능 점수는 ‘대학 수학 능력’이라는 능력(construct)의 차이만을 드러내야 한다. 수능 점수가 그 능력이 아닌 다른 요인들에 영향을 받는다면 수능은 더 이상 ‘대학수학능력시험’일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그 점수는 다른 어떤 것을 재는 것이고, 교육부가 주장하는 대로 공정성을 운위할 명분도 사라진다.

 

안된 일이지만, 수능의 역사가 30년을 넘기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해 보지 못했다. ‘대학 수학 능력’을 제대로 정의하고 그 정의에 합당한 도구(시험)를 만들었는지, 검증해 보지도 못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란 이름도 실지로 시험이 대학 수학 능력을 잰다는 사실이 확인되어서 붙였던 것이 아니다. 처음 수능을 도입할 때 낯선 명명에 따르는 혼선이 그나마 작아서, 편의상 그 이름을 선택했을 뿐이다. 사정이 이런 마당에 수능 점수가 대학 수학 능력을 제대로 표시하는지 엄밀하게 확인할 길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수능에 관련된 오랜 체험을 바탕에 둔 심증은 가지고 있다. 수능의 타당도에 대한 의심은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수능의 출제 포인트나 문항 패턴 그리고 응시자 특성의 분포 등 고득점 전략을 고안하는 데 유용한 정보들은 이제는 뻔하다고 할 만큼 누적되었고 파헤쳐 졌다. 수능 점수는 그런 ‘기출 분석’을 토대로 구축된 수험 기술이나 풀이 훈련 프로그램 그리고 ‘족집게’라는 고가(高價) 정보 등이 좌우하고 있다. 그것들을 많이 사서 이용할 수 있는 학생들이 수능 득점에 유리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수능 대비를 위해 학교보다 학원에 의존하는 게 낫다는 통념을 의심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만나보기 어렵다. 최근 늘고 있는 ‘N수생’들이 자신의 ‘대학 수학 능력’을 사실 이상으로 ‘세탁’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런 통념에 힘을 보탠다. ‘잡음효과’(construct-irrelevant variance)로 이름할 수 있을 이런 양상은 수능의 타당도가 무너진 현실을 실감하게 한다.

 

이런 잡음효과가 이번의 개편안으로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될까? 장담에 가깝게 예언할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2028학년도 수능이 지금보다 더 타당해지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30년 넘는 수능 개발과 개편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정책 당국이 수능의 타당도를 높이기 위해 고심하지 않는다. 타당도에 대한 우려의 기미를 개편의 역사 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개편 과정에서도 여전하다. 당장 불거진 논란, 즉, ‘문·이과 유불리’니 ‘사교육 카르텔’이니 하는 피상적인 ‘불’을 끄는 데 급급했다. 이런 시도로는 100년을 쌓아도 타당도를 높일 수 없다. 다른 한편, 위에서 얘기했듯이, 타당도를 무너뜨리는 사교육 서비스는 시간이 갈수록 풍부해지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날이 정교해진다. 그 과정에는 필경 AI까지 동원될 것이다. 정부가 입시 준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세세하게 제공하는 입시 정보들은 정작 의도한 ‘수요자’들보다는 사교육 업체가 더 ‘값지게’ 이용하고 있다. 사교육의 지략이 느는 만큼 수능의 타당도는 무너질 터이다.

 

 

수능이 학교 교육을 해친다면?

 

거듭 말하건대, 수능이 필요한 타당도를 지니지 못하는 한, 그런 수능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 공정성을 키우겠다는 정책 자체가 설 자리는 없다. 시험의 공정성은 그 시험의 공적 가치를 전제할 수 있을 때라야 논의할 만한 것이다. 그렇기에 앞에서 제안했던 두 번째 준거, 즉, 수능이 기본적으로 바람직한지 살피기 위해 그것이 학교 교육의 진정성을 해치지는 않는지 주목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첫 번째 준거(타당도)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도(수능의 타당도를 의심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육부가 거론하는 방식으로 수능의 공정성을 논의하는 것이 의미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수능이 학교 교육을 본지에서 벗어나도록 오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육부 장관도 인정하고 있다. 수능 과목 체제를 개편하여 공정하게 만들겠다는 발상이 터무니없는 것이란 점을 좀 더 일반적으로(둘째 준거에 근거해서) 확인하는 일은, 그래서, 정책결정자도 무심코 인정한 학교 현실을 간략히 살피는 것으로 갈음해도 될 듯하다.

 

한 라디오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교육부 장관은 이런 말들을 했다. “실제로 우리 학교의 수능 중심의 … 수업이라는 것이 정말 창의적인 수업하고는 거리가 멀거든요. … 암기 중심의 수능 시험 준비 중심의 [수업]이 아니고 […] 수업 시간에 좀 더 창의적으로 아이들이 정말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죠.” 장관의 발언은 ‘심화 수학’을 수능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수학 수업에 특정해 나왔지만, 그 뜻을 다른 과목에까지 일반화시킨다고 해서 본의가 왜곡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능 시험 준비 중심’의 수업이 수학에 국한될 리는 만무할 테니까 말이다. 요컨대 우리가 확인해야 할 초점은, 학교 수업이 수능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경향은 학교 교육의 본지에 어긋나는 것인지에 있다. 교육부 장관도 암묵적으로 수능으로 인한 학교 교육의 ‘파행’ 사실을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장관의 이야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입시가(수능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시험도) 학교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근대 학교의 온 역사를 통해 듣고 보아왔다.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진부해졌다.

 

 

이번에도 시행착오의 전철을 밟았다

 

정리해 보자. 수능은 ‘대학 수학 능력’을 제대로 잰다고 보기 어렵고, 또 수능은 학교 수업의 표적으로 작용해 교육 자체를 ‘비정상화’하고 있다. 이런 수능의 과목체계를 이번의 개편안대로 바꾼다면, 과연 수능은 더 공정해지고 학교 교육은 통합적·융합적으로 바람직하게 변화해 갈까? 이렇게 묻는 것 자체에 대해 대체로 냉소할 듯하다. 2028학년도 수능 개편안이 “통합적 융합적 교육을 유도하는 공정한 수능”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교육부의 홍보나 해명은 실로 공허하다.

 

수능은 존재 가치를 이미 잃었다. 그런 수능을 놓고, 그 근본 틀에 손을 댐이 없이, 과목 개편 정도로 공정성을 살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토대 없다. 반복해 말하건대, 수능의 공정성 이야기는 수능의 공적 가치를 전제할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 이 점을 두고 교육부는 이렇게 강변할지 모른다. “이번 안대로 개편하면 수능의 가치(이 글에서 말한 대로라면, ‘타당도’와 ‘학교 교육 정상화’)가 되살아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공정성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런 대응 해명 정도가 아마도 개편안 정당화를 위해 남아있는 마지막 보루일 것이다. 그러나 이 보루마저 버틸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두 가지를 더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듯하다.

 

우선, 수능의 역사는 이번 개편안과 같은 시도의 실패를 이미 기록하고 있다. 수능이 도입되던 매우 초기의 일이다. 애당초 수능은 ‘범교과적이며 심층적인 사고력’을 측정할 수 있는(그래서 학교 수업도 그런 능력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시험이 되도록 개발해 도입되었다. 교육부가 이번에 사용한 말로 하면, ‘통합적·융합적’ 학습과 수업을 유도하기 위한 개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런 수능은 도입되자마자 ‘학교에서 준비시킬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결국 수능은 교과 중심의 ‘과목 체제’로 개편되었다. 이후 수능은 여러 번의 개편을 거쳤지만, 교육부의 말대로, ‘분절적인’ 체제를 꾸준히 유지해 왔다. 이번 개편을 정당화하는 교육부의 언사는 사실상 수능 개발 초기의 취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이번 개편 이야기가 소수 영역에 국한되고 과목 분절 체제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초기에 비해 더 소극적이고 제한적일 뿐이다. 어쨌거나, 그런 개편의 취지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점은 오래전 시행착오로 이미 확인했다. 이번 개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고 강변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더 근본적으로, ‘입시 준비 위주 교육’이 횡행하는 한, 학교 수업이 융합적으로 변하고 ‘고차원적인 사고력’을 기르게 된다는 기대는 접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번 개편으로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이번 개편으로 수능의 “교과간 벽을 허물고 공정성[을] 확보”함으로써 “미래사회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기르는 교육을 선도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수능의 과목 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그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말인데, 실로 안이한 낙관이다. ‘입시 준비 위주’의 경향을 색원(塞源)할 개혁 없이는, 입시 득점을 위한 전략적이고도 옹졸한 수업과 학습(훈련)의 구태를 깨 낼 수 없다.6

 

고질적인 입시 준비 중심의 경향은 입시(수능)의 구조나 속성 때문에 생겨나고 굳혀지는 게 아니다. 오랫동안 지적되고 또 수긍되어 왔듯이, 그 원인은 입시 ‘안’에 있지 않고 ‘밖’에 있다. 입시에 온 생애 기회를 걸어야 하는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도록 강제하는, 우리 문화와 관습 그리고 사회제도가 그 원인이다.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현실이다. 그런 사태를 우리는 유교 전통이니 학벌주의니 ‘공정 경쟁’이니 하는 말로 설명하고 으레 그러려니 받아들인다. 정책으로 어떻게 달리 건드려 볼 도리가 없는 ‘상수(常數) 요인’이라고 흔히 체념한다. 이렇듯 체념이 유지되는 한, 입시에 목숨 걸어야 하는 현실을 바꿀 길을 새롭게 낼 방도는 없다. 아무리 입시를 부수고 재건축해도, 학교 교육과 학생 공부는 다시 바뀐 시험 위주로 돌아가게 된다. 거대하게 옥죄는 틀을 놔두고는, 그 안의 입시를 손본다고, 대입전형이 더 공정해지고 학교 수업이 더 교육적으로 바뀔 리 만무하다.

 

이번 개편을 두고는 교육부가 ‘제대로’ 바꾸겠다고 거듭 천명했었다. 제법 긴 시간을 두고, 교육과정과 이수 방식도 바꾸면서 함께 연계하여, 대입제도를 ‘미래형’으로 개혁하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공언했다. 그렇지만 ‘확정안’은 매우 실망스럽게 나왔다. 기대가 지나쳐서 실망이 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강조하건대, ‘입시’를 구속하는 거시적인 틀을 바꾸지 않는 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전철(前轍)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틀을 건드리길 기대하는 것은 여전히 지나친(순진한) 것이었던 셈이다. 결국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도 착오의 역사를 한 겹 더 쌓는 데 그쳤다.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면

 

이 글과 같은 비판에는 ‘도대체 틀을 건드리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는 반문이 으레 따른다. ‘틀’이란 것을 이제까지 제대로 건드려 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그것이 어떤 구조와 성질을 지녔는지 일러줄 지식도 축적되어 있지 않다. 구체적인 ‘개편’ 대안을 당장 제안할 수 있는 형편은 당연히 못 된다. 대입제도의 구태를 깨는 일이 어떤 작업이 될지, 공부와 논의를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일의 방향이 완전히 오리무중이지는 않다.

 

두 방향을 겨냥해 우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하나는, 학교에서의 수업과 활동을 진학 전형 자료 생산 과정이 되도록 꿰맞추고 있는 모든 지침이나 제도 그리고 관행을 폐기하는 방향이다. 이를테면, 학교에 내리는 다양한 수능 대비 지침과 학교생활기록부 제도, 그리고 대입 안내 위주의 진로지도 체제 등을 원천적으로 버려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적어도 제도상으로는, 대입제도의 굴레(regime)에서 학교를 온전하게 독립시켜야 한다. 학교는 전형 자료를 생산하도록 만들어진 장치가 아니다. 그러면 대입전형은 어떻게 하느냐, 가정에서는 어떻게 대입에 대비할 수 있겠느냐 등등 수많은 이의를 제기할 줄 모르지 않는다. 이 방향을 제안하는 것은, 그 수많은 걱정과 요구에 대응하는 과제는 학교 교육을 바로 세우는 과업에 대해 부차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방향은 범사회적이다. 입시 성적이나 학교 내신성적이 지니는 영향력, 특히 대학 진학이나 성인으로 성장한 후의 기회에 대한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업이나 일의 종류에 따르는 수입이나 위신 등의 차이를 최소로 줄이는 방향이다. 담백하게, 사회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이다. 이 제안에 대해서는 첫째 것에 대해서보다도 더 많이 그리고 격렬하게 이의를 제기하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불평등이 사회적인 폭력이라는 점은 거듭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수능 점수가 낮다고 급우를 ‘벌레’ 취급하는 밈이 대학가에 번지는 사태에서, 우리 사회의 ‘점수 신화’가 인류의 금도(襟度)를 벗어났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불평등이 심화된 사태에서는 교육이 그 불평등의 악(惡)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게 마련이다. 불평등이 커지고 점수 맹신이 맹렬한 사태를 그대로 두고 교육과 대입제도의 정의(正義)를 기대하는 것은, 사막에서 물을 끌어들이지 않고 벼를 키울 수 있으리라 희망하는 꼴이다.

 

글쓴이의 방향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무방하다. 다른 방향들을 두고서라도 이야기를 시작하자. 턱없는 정책들을 허황하게 정당화하며 개혁의 실패를 한없이 되풀이하기보다는, 개혁이 진척될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득한 길이지만 꾸준히 가면 밝은 미래에 가닿을 수 있을 길로, 이제라도 첫걸음을 떼는 게 낫지 않겠는가.

 

 

[별첨 표] 개편에 따른 수능 과목체계의 변화

영역 2027학년도까지 수능 2028학년도부터 수능
국어 공통+ 2과목 중 택1

• 공통:독서, 문학

• 선택:화법과작문, 언어와매체

공통(과목: 화법과언어, 독서와작문, 문학)
수학 공통+ 3과목 중 택 1

• 공통:수학Ⅰ, 수학Ⅱ

• 선택:확률과통계, 미적분, 기하

공통(과목: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통계)
영어 공통(과목: 영어Ⅰ, 영어Ⅱ) 공통(과목: 영어Ⅰ, 영어Ⅱ)
한국사 공통(과목: 한국사) 공통(과목: 한국사)
탐

구

사회

·

과학

17과목 중 최대 택2
• 사회: 선택 대상 9과목

한국지리, 세계지리, 세계사, 동아시아사, 경제, 정치와법, 사회·문화, 생활과윤리, 윤리와사상

• 사회: 공통

(과목: 통합사회)

• 과학: 선택 대상 8과목

물리학Ⅰ, 화학Ⅰ, 생명과학Ⅰ, 지구과학Ⅰ, 물리학Ⅱ, 화학Ⅱ, 생명과학Ⅱ, 지구과학Ⅱ

• 과학: 공통

(과목: 통합과학)

직업 1과목(선택 5과목 중 택1) 또는

2과목(공통+ 선택1과목)

• 공통:성공적인직업생활

• 선택:농업기초기술, 공업일반,
상업경제, 수산·해운산업기초, 인간발달

• 직업: 공통

(과목: 성공적인 직업생활)

9과목 중 택1

선택 대상: 독일어Ⅰ, 프랑스어Ⅰ, 스페인어Ⅰ, 중국어Ⅰ, 일본어Ⅰ, 러시아어Ⅰ, 아랍어Ⅰ, 베트남어Ⅰ, 한문Ⅰ

9과목 중 택1

선택 대상: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아랍어, 베트남어, 한문

제2

외국어/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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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정부는 ‘입시 개편’ 또는 ‘입시제도 개편’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입시’가 ‘입학시험’의 줄인 말이라고 볼 때 적절하지 않다. 정부가 말하고 있는 개편은 ‘시험’에 대해서만 아니라 다른 전형 수단이나 방법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대학입학제도’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쓰는 게 어법상 마땅하다. 정부 문서에서 입학제도라는 말을 버리고 입시제도라는 말을 채택하는 변화는, 교육부의 보도자료들을 살펴볼 때 2017년 말부터 이듬해 사이에 일어났는데, 용어에 대해 신중히 재고해서 이루어진 결정이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인 듯하다.
  2. 2019년 9월 30일, 당시 교육부장관은 교육부 출입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 교육에 부합하는 형태로 2028학년도를 목표로 [대입제도 개편] 논의를 구체화할 예정이다. 전 세계가 미래인재 양성에 들어갔는데 한국의 교육만 과거 주입식 교육에 머물러 있다.” 이 언질을 기점으로 계산한다면, 2023년 12월 말에 확정안이 나온 것은 4년 3개월 만의 일이다.
  3. 2019년에 대입제도 개편의 운을 뗐던 교육부는 ‘2020년도 교육부 업무계획’에 “미래 교육환경 및 정책 변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2022 교육과정’ 및 ‘미래형 수능 및 대입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고 언급했다. 한 해 지나서 2021년 2월 17일 발표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에도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 등 새로운 교육제도를 반영한 미래형 수능 및 대입 방향(’28학년도 대입 적용) 논의 착수”라고 적었다. 다시 아홉 달 지난 2021년 11월 24일에도 교육부장관은 대입 개편 계획을 강조했다. “2025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교육과정이 바뀌면 당연히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하고, 대입에 반영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며, “미래형 대입제도로 개편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2022년 5월 바뀐 정부에서도 대입제도 개편 의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는 “모두를 인재로 양성하는 학습혁명 (교육부)”이 들어 있고, 그 첫 항목이 “대입제도 개편”이다. 여기에는 “미래 교육 수요와 사회 변화를 반영하여 대입제도 개편”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교육부의 대입제도 개편 움직임은 2022년 8월 30일이 되어서야 드러났다. 이날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논의하기 위한” ‘대입정책자문회의’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서 있었던 자문회의 의장의 발언은 대입제도 개편 작업이 비로소 그때야 시작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점을 일러준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보도됐다. “미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미래형 대입제도를 구상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 이때까지도 대입제도 개편을 위해 구체적으로 진척된 바는 없었다.
  4.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은 수능(과목체계)의 개편 외에 ‘고교 내신체제 개편’을 다른 하나의 핵심 방안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후자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내신체제 개편에 대한 논급을 생략해 수능 문제만 다루더라도 이번 개편안의 결함을 지적하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본다. 필자는 개편안에 대해 좀 더 포괄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다. 지난해 10월 10일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저널’에 게재됐던 논평(‘교육부는 교육을 걱정하는가?’)에서였다.
  5. 수능을 현재처럼(선택과목을 품도록) 개편했던 주체도 물론 교육부였고, 더군다나 그런 개편에 대해서도 교육부가 ‘통합형 수능’이라고 정당화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랬던 교육부가 이번에는 과거 결정을 뒤집으면서 다시 ‘통합적 수능’을 표방하고 있다. 정책을 바꾸면서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나 근거가 줏대를 갖추지 못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6. 더욱이, 이번 개편에서마저, 교육부는 입시 준비 위주의 경향을 여전히 부추기고 있다. 이를테면 수능에 대한 “EBS 연계 방식[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학교가 ‘저차원적으로’ 입시 준비시키는 행태를 계속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강태중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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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1. 이수정 수정 삭제

    2028대입제도 개편안에 대해 이런 평가를 기다렸습니다ㅜ 선다형 수능이 더욱 가벼워지면, 정시선택 학생들이 더 증가하고, ebs와 학원의 문제 풀이식 공부에 더욱 매몰되며, 이로 인해 학교의 수업개선과 혁신은 더더욱 설자리를 잃게 될것입니다. 개편안을 보고 학교현장의 교사로서 잠이 오지 않습니다.

  2. 교사 수정 삭제

    교수님의 글 내용 중 마지막 제언 사항 중 학교에서 생산하는 수업 및 활동 관련 산출물들이 입시에서 활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에 완전히 공감합니다. 비록 매우 ‘과격한’ 조치로 보일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완전 ‘폐기’는 아니더라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학교의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말로 하면 교육부가 개정교육과정을 통해 부르짖는 미래형 교육이나 교육 혁신을 기존의 ‘입시’의 바탕위에 새롭게 퍼즐을 맞추는 게임으로 세팅하는 한 그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결국 대학에 가기위해 새로운 방향에 맞도록 정교하게 세팅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본질에서 벗어난 도구주의적 교육행태는 절대로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변화가 없으면 결국 바뀌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다.”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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