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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논평] 교육부는 교육을 걱정하는가? –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논평

#969 강태중,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23.10.10
“이 상태로는 대입제도와 학교 교육의 미래가 열릴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입제도라는 제한된 판의 장기를 두기보다 교육이 무엇이고 학교가 어떤 곳인지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한다.” (본문 발췌)

 

 

개편의 ‘핵심’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시안)의 핵심은 두 가지를 바꾸는 데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과목 체계’와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신 평가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교육부의 언어를 빌리면, 전자는 “통합형•융합형 수능 과목 체계로 개편”하는 것이고, 후자는 “고교 내신 5등급 체제로 선진화”하는 것이다. 이 외에 중요한 변화는 없어 보인다.

 

대입제도 개편을 염두에 두고 그동안 이루어져 온 논란을 돌아볼 때, 수능 과목과 내신 등급제 외에도, 어떻게 바뀔지 세간에서 궁금히 여겼을 다른 제도 요소들은 사실 많다. 정시의 비중은 계속 유지되거나 커질지,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은 또 어떻게 되며 그 전형에 사용되는 ‘스펙’ 자료들은 어떻게 규제될지, 논술전형은 계속 유지될지, ‘주요 대학’의 수시 전형에 으레 걸리는 ‘수능 최저’ 요건은 여전할지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현안’에 앞으로 변화가 없을 수 없을 텐데, 교육부는 ‘Q&A’ 붙임 자료로 정시 비중이 ‘현재와 동일’하다고 간단히 언급하고 있을 뿐 달리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필경 앞으로 논란을 거치며 제법 바뀌게 될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교육부는 아직 뚜렷한 자각이 없는 듯하다.

 

 

개편 시안의 주요 내용

 

먼저 수능 과목은 어떻게 바뀌는가?
과목 선택의 여지를 없앤다. 모든 수험생은 모든 과목에 필수로 응시하게 된다. 국어와 수학의 경우, 현재 ‘공통 + 선택’의 구조로 되어 있지만, ‘공통’ 부분을 버리고 ‘선택’ 부분을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일반선택’ 교과로 대체하여 하나로 묶었다. 수능 응시 과목에 비추어 이른바 문•이과를 구분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교육과정상의 교과로 정리하면, 국어는 ‘화법과 언어’, ‘독서와 작문’, ‘문학’ 등이 시험 범위에 포함되고, 수학은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 등이 포함된다. ‘탐구’(사회, 과학, 직업) 영역은 교육과정상 ‘공통과목’인 교과로 범위를 한정하여 묶었다. ‘사회’의 경우 ‘통합사회1’과 ‘통합사회2’, ‘과학’의 경우 ‘통합과학1’과 ‘통합과학2’, 그리고 ‘직업’의 경우 ‘성공적인 직업생활’이 그 범위이다.

 

‘고교 내신’을 5등급 체제로 바꾼다는 뜻은 무엇인가?
‘상대평가’에 근거한 9등급제와 ‘절대평가’에 근거한 5등급제와 3등급제 등이 섞여 있는 현재의 학교생활기록부 평가 기록 체제를 ‘절대평가’에 근거한 5등급제로 바꾼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개편이 ‘순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절대평가’라는 시안에는 ‘상대평가 병기’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등급을 교과별 성적(100점 만점)에 따라(90점 이상 1등급, 80~89점 2등급 등을) 부여하는 ‘절대평가’ 기록과 점수 순위에 따라 부여하는 ‘상대평가’ 기록을 학교생활기록부에 병치시킨다는 뜻이다. 5등급 상대평가의 경우, 순위대로 10%, 24%(누적 34%) 32%(누적 66%), 24%(누적 90%), 10%(누적 100%)를 구분하여 등급을 매긴다. 실제 대입전형에서는 상대평가 등급이 큰 힘을 가질 것이다. 어쨌거나 대학에 제공될 자료는 두 종류 석차 등급이 병기된 학생부이다.

 

수능 과목과 내신 석차 등급제를 개편한다는 대안 외에, 교육부는 두 가지 안을 더 추가하여 내놓고 있다. “이권 카르텔 근절”과 “교사의 평가 역량 강화”가 그 이름이다. 먼저 것은 수능 출제위원의 구성이나 출제 참여자들의 비행을 단속하겠다는 방안이고, 뒤의 것은 “모든 교사가 전문적인 평가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겠다는 방안이다. 이 둘은 더 거론할 가치가 없어 보인다. 대입 부정과 비리를 단속하는 작업은 제도 변화에 으레 따라와야 하는 것이고, 교사의 평가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말은 이전에도 실속 없이 늘 되뇌어져 오기만 한 것으로, 그 상투적인 언급은 교원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통념만 암암리에 강화하면서 교원의 권위만 깎아내려 왔다. 이런 방안은 정치적이고 습관적인 모면의 방책일 뿐이다. 대통령이 즐겨 쓰는 ‘카르텔’이라는 용어를 굳이 들여와 통치자의 뜻을 받들고 있다는 제스처로 삼고 있는 것이거나, 제기될 게 뻔한 ‘절대평가’의 신뢰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단순히 말로 때우는 행태 정도로 보인다.

 

 

실망스러운 대입제도 개편 시안

 

교육부가 내놓은 시안은 매우 실망스럽다. ‘교육’부가 정책 행위에서 교육을 안중(眼中)에 두고 있지 않다. 발표문에는 교육개혁이니 수업 혁신이니 하는 낱말들이 흩어져 있지만, 학교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대입제도는 어떻게 학교 교육에 이바지해야 하는지 고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교육부는 목전의 논란에 빠져 정치적인 면피책을 찾는 데만 골몰한 듯하다.

 

발표문에서는 대입제도가 학교 교육에 끼치고 있는 심대한 악영향에 대해 교육부가 염려하는 기미를 전혀 읽어볼 수 없다. 무지한 것인지 나 몰라라 하는 것인지 알 길 없으나, 학교 교육이 대입에 코 꿰어져 휘둘리는 현실에 대한 정책적 고심을 찾아볼 수 없다. 시안대로 간다면, 대입제도는 학교 교육을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반교육(反敎育)’의 수렁으로 몰아갈 것이다.

 

우선, 교과 공부의 현실을 보자. 얘기를 꺼내는 게 새삼스러울 만큼, 우리나라 대다수 학생은 학교와 집 그리고 수많은 학원에서 입시(시험) 위주로 공부하고 있다. 그럴 형편이 못 되는 학생은(특히, 집안 도움이나 학업 기초가 부족한 학생은) 학교에 다닐 이유조차 찾지 못한 채 사실상 ‘학교 밖’에 버려져 있다. 이들은 공부를 이어갈 최소한의 기회마저 잃은 상태이다.

 

입시 위주 공부란 어떤 행태인가? 지식의 통달에 다가가는 과정을 촘촘히 밟는 공부가 아니다. 정답을 쉽게 찾는 길로 질러가거나 문제 풀이 중에 실수하지 않을 전략을 익히는 데 여념이 없는 ‘훈련’이다. 이런 ‘공부’가 사고력의 깊이를 더해주지 못하고 창의력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들먹일 필요는 없을 터이다. 공부한 결과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보다 질문을 품게 되는 것이 더 가치롭다는 얘기도 이제는 진부해졌다. 지속되어 온 경종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모든 학교는(적어도 고등학교는) 입시 위주 교육에 매달려 있다. 이런 사태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교육부나 정책결정자들이 모르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은 학교가 입시 위주 교육에 더욱 매진하도록 부추길 대안만 담고 있다.

 

교과 공부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의 인격 함양과 시민으로서의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대입제도는 학교 교육을 심각하게 훼손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는 세속적 성공(특히, 원하는 대학 진학)을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곳일 뿐, 인간과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적 참여를 예비하는 곳이란 염(念)을 지닐 리 없게 대입제도가 만들어 왔다. 삶의 ‘진로’ 모색은 오직 대입 전략의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 여기게 만들어 왔고, 사회 공동체 일원으로서 지니는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내가 대입 경쟁에서 살아남은 후에나 생각해 볼’(결국, ‘승자독식’의 세태를 지속시키는 규범 안에서의) 문제 정도로만 여기게 조장해 왔다. 교육부의 시안은 이런 현실을 문제 삼기는커녕 오히려 강고하게 굳힐 참이다.

 

 

“대입의 핵심은 수능 시험과 고교 내신”?

 

글 머리에 요약했듯이, 시안은 수능 과목과 내신 등급제를 개편하는 데 그치고 있다. 교육부가 그렇게 ‘방향’을 잡은 이유는 “대입의 핵심[인] 수능 시험과 고교 내신(학생부), 두 개의 큰 축”을 바꾸는 것이 개편의 전부라고 여긴 데 있다. 수능과 고교 내신을 대입의 불가결한 요소로 삼는 통속의 프레임을 교육부가 흔들림 없이 떠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 자체를 문제 삼을 통찰 또는 기개(氣槪)가 교육부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 프레임의 폐해는 수십 년 동안 누누이 지적되어 왔다. 교육부나 정책결정자들이 그런 지적에 귀 닫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 대입제도는 학교에서의 모든 학습과 활동의 기록 그리고 학교 교육을 마무리하는 시험(수능)의 성적까지도 대입이라는 ‘인생 경주’의 코뚜레로 변질시켜 놓고 있다. ‘인생’이 걸린 경쟁을 판가름하는 입시 ‘점수’의 고삐에 매여 학교 교육이 총체적으로 끌려다니도록 제도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학교 교육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점수 올리는 책략에 눈 팔지 않고 초연하게, 말하자면 ‘교육적으로’, 학교 다니는 것은 그야말로 ‘순진한’ 사람들이나 할 짓이 된다. ‘학교보다 학원이 백배 낫다’는 말이 두말할 나위 없는 ‘진실’이 된다. 이런 전도된 진실을 우리 대입제도는 바로잡기보단 보증해 왔다. 이를테면 정부는 학교가 학원이 파는 서비스를 학원 못지않게 무료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독려해 왔다. 이번의 개편도 그런 독려에 박차를 가하는 데 모아져 있다.

 

 

수능과 내신을 버리면 정말 안 될까?

 

수능은 정말 버릴 수 없는(아니면, 적어도 근본적으로 고치면 안 되는) 대입제도의 요소인가? 결코 그럴 리 없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이름은 명실상부한 것이 아니다. 처음 그 시험을 개발할 때는 교육부가 ‘대학교육적성시험’이란 이름을 붙였었다. 그 이름이 생경하다는 논란이 일자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바꾸었다. 1991년 일이다. 그 ‘정의’(定義)는 “대학 교육 수학에 필요한 학업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통합교과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내용에 맞춰 고차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는 발전된 형태의 학력고사”라고 내려, 이름과 구색을 맞추었다. 시험의 성격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시행되는 두 가지 시험(SAT와 ACT)의 중간 형태라고, 당시에 부연하기도 했다. 요컨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이름은 시험의 성질을 실질로 표시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은 새로 만든 시험이 가져주길 바랐던 성질을 표현하여 기원(祈願)에 부쳤던 것에 불과하다.

 

지난 30년, 수능은 이름만 유지했지, 거듭된 ‘개편’을 통해 처음과는 확연히 다른 시험으로 변질해 왔다. 더 이상 ‘통합교과적’이지도 않으며, ‘고차적인 사고력을 측정’한다고 내세우기도 어렵다. 더욱이 사교육의 ‘발전’은 수능 점수가 ‘능력’보다 ‘전략’에 따라 좌우될 여지를 꾸준히 넓혀 왔다. 이 때문에 수능의 비중이 커질 때 늘 N수생이 증가한다. 수능은 실력을 판가름하는 데서나 경쟁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서나 그 효력을 잃은 지 오래다. 이번 시안대로 과목을 개편한다고 해서 수능의 그런 기본적인 한계가 벗겨질 리 없다. 학생들이 여전히 반교육적인 수능에 매달리도록 거듭 구속하게 될 뿐이다.

 

내신의 석차 등급제를 바꾼다는 시안에 대해서도 수능에 대해서와 마찬가지 얘기를 할 수 있다. 5등급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한다면서 교육부는 굉장한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적 추세에 [맞춰]” “구시대적 평가 체제”를 폐기하는 것이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내신 등급 체계”로 “선진화”하는 것이라 호언했고,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고 협력학습[을] 유도”할 수 있다고까지 얘기했다. 이런 허풍은 공허하며, 정책 문서에 적합하지도 않다. 정부 발표를 읽는 시민으로서 우롱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입 경쟁이 등급 숫자 이전의(더 깊고 넓은) 문제라는 사실을 교육부는 정말 모르는가? 우리나라에서 대학에 잘 가려는 경쟁이 내신 등급 숫자로 조율될 수 있단 말인가? 점수 경쟁이 치열한 상황, 급우를 적으로 삼고 이겨야 하는 상황이 등급 수를 줄인다고 달라질 리 없다. 등급 숫자가 몇 개이든 학생들은 여전히 등급 쟁탈전에 매달려야 할 테고, 등급 숫자가 줄어 내신 변별력이 약해진다고 해도, 그 ‘풍선효과’가 불거져 간 또 다른 요소로 전장(戰場)을 옮겨 싸워야 할 터이다. 교육부의 시안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

 

왜 학교생활기록부라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왜 그 모든 기록을 대입전형 자료로 옭아매야 하는가? 교육부는 이렇게 자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해오던 대로 수능과 학생부 전형을 유지하고, 그것들에 대해 일어났던 논란에 대해서 적당히 대응하면 개편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이후 학생부를 대입전형 자료로 엮게 되면서, 학교 교육은 ‘대학입시’만 칠 때보다도 더 황폐해져 왔다. ‘공부’뿐만 아니라 온갖 ‘활동’(‘스펙’)까지 대입에 ‘반영’하면서, ‘학교 재학’의 일체는 대입에 고삐 잡힌 꼴이 되었다. 성적과 스펙을 부풀리기 위한 ‘교육 부패’도 덩달아 기승부리게 되었다. 이렇게 번연하고 심각한 문제를 나 몰라라 하고 교육부는 고작 등급 숫자와 수능 과목만 만지작거렸다.

 

 

개편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을 게 대입제도 문제의 요체

 

대입제도가 개편되면 변화가 없지는 않을 터이다. 2025학년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지금까지와는 꽤 다른 전략으로 대입 경쟁에 달려들어야 할 것이다. 노력을 쏟아야 할 과목이 달라지고, 전형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제도가 바뀌어 새로운 ‘컨설팅’이 필요해질 터라 필경 사교육비는 조금 더 들여야 할 것이다. 한편, 달라지지 않을 부분은 더 지대하고 익숙하다. 학생들은 여전히 수능을 위해 문제 풀이를 거듭해야 할 것이고, EBS 수능 강의와 그 교재에도 또한 크게 의존해야 할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적용되면서 수강 과목을 선택할 여지가 넓어진다지만, 과목을 선택하면서는 흥미나 적성보다 예상 등급부터 따져보게 될 것이다. 학생부 기록을 부풀리고 미화해야 하는 전략도 여전히 구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고질적인 교육 문제는 제도 개편에도 흔들림 없이 학교에 똬리 틀고 남아 있을 것이다.

 

요컨대 교육부는 대입 경쟁이 극심한 현실은 모르는 체하고, 그런 현실을 그대로 두고는 바뀌어도 의미 없는(표피적인) 수능 과목과 내신 등급제만 건드렸다. 결국 대입제도 개편은 이번에도 ‘조삼모사’ 행태에 그치게 될 것이다. 대입 경쟁에 임하는 전략은 달라지겠지만, 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로 부패해 가는 경향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수험생들은, 전에 선택이 있던 수능이 아닌, 선택이 없는 수능을 일률로 치게 되겠지만 수능을 대비하는 강도나 속성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내신 경우도, 5등급제 아래에서 교육부 주장대로 석차 경쟁이 완화된다 해도, 내신이 그만큼 변별력을 잃는다는 뜻일 테니 다른 변별 요소에 대한 대비책으로 옮겨가야 할 뿐이다.

 

 

교육부의 궁색한 논리와 빈약한 근거

 

시안이 피상적이고 궁색한데도 교육부는 이런저런 합리화의 논리를 늘어놓고 있다. 발표 문서 이곳저곳에 체계 없이 흩어져 있지만, 그 논리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수능에서의 유불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때 유불리 문제란 수험생마다 응시 과목이 달라서 일어나는 문제를 가리킨다. 탐구 영역의 선택이 득점 전략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점을 문제 삼는 점도 있지만, 국어와 수학에서 논란돼 온 이른바 문•이과 유불리 문제를 더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주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능에서 선택과목을 없앨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험생 모두 같은 시험을 치게 되면서 과목 선택에 따르는 유불리는 사라지게 된다는 논리이다. 교육부는 심지어 그래서 이번 시안이 수능의 공정성을 높이게 된다고까지 주장한다. 시험 자체의 타당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예컨대, 수능 점수가 사교육에 좌우된다면) 교육부가 말하는 공정성은 무의미하다. 그래도 문서에서 능청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다른 하나 논리는, 내신 등급제에서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2025년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서 내신 등급은 공통과목(1학년, 9등급)과 선택과목(2, 3학년, 5등급)에 달리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되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논의와 결정은 꾸준히 혼선을 빚어오고 있었다. 제도 개편을 계기로 교육부는 5등급제로 획일화하여 매듭짓는다는 것이다. 등급을 매기는 방식을 두고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 하는 논란도 있는데, 두 방식을 병용하는 방식으로 미봉했다. 이런 시안을 두고도 교육부는 자화자찬했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제도를 ‘선진화’하는 것이고 수업 혁신을 가져올 것이며, 내신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게 된다고도 억설했다. 낯간지러운 견강부회이다. 내신 등급제의 향방과 무관하게 수업은 입시 위주로 뒤틀리기 마련인 현실에서, 미봉에 그치는 5등급제가 어떻게 수업의 혁신과 평가 공정성을 낳는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

 

시안을 정당화하는 교육부의 논리도 궁색하지만, 그런 논리를 뒷받침한다고 제시한 근거들도 교육부 작업이 빈약하고 편향됐음을 드러낸다. 교육부 발표 문서는 시안이 합당하다는 근거를 보여주기 위한 ‘붙임’ 자료 두 개를 달고 있다. 하나는 내신 5등급제가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적이라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학부모 인터뷰와 설문조사 결과도 시안을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허술하다.

 

먼저, ‘내신 평가방식’에 대한 외국 사례 자료를 보면, 5등급제가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교사의 전문적 평가를 전제하는 방식이다. 교육부가 시안으로 내놓고 있는(교사의 평가 역량을 미덥게 여기지 않는) 5등급제와는 판이한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 시안이 외국의 사례들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증거 자료로 제시하고 있다.

 

학부모 의견 자료 역시 시안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에는 너무 자의적으로 모아졌다. 인터뷰의 경우, 소위 표적집단면접(focus group interview) 결과라면서, “교육정책에 관심이 많고 중학생 자녀가 있는” 학부모 11명을 대상으로 했다고 적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그 학부모들이 선택 없는 수능이 공정하다는 의견을 냈고, 내신 평가 방식으로는 학년별 차이를 없애되 상대평가 요소는 유지하는 게 낫다고 얘기했다. 이런 의견은 ‘부모 입장’의(사적인) 계산에서 나온 것이고, 인터뷰 대상에 미루어, ‘상층으로’ 편중된 것이라 해석해야 할 것이다. 공교육 제도가 “교육정책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 의견대로 끌려가야 하는지는 신중히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공교육 제도는 오히려 ‘교육정책에 관심을 둘 형편이 못 되는’ 학부모들을 더 비중 있게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교육부의 인터뷰 행태는 공공(公共)의 이념을 망각한 것이다.

 

설문조사 경우도 더 많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기는 했지만, 조사에서 나올 수 있는 의견 범위는 사전에 한정해 버렸다. 수능과 내신만 건드리는 제도 개편을 전제하는 조사였고, 그것도 교육부가 선택지로 제시한 대안들에 대해서 동의 수준만 표시하게 하는 조사였다. 교육부의 설문 프레임을 초월하는 의견은 깡그리 무시된 셈이다. 이런 조사는 의견을 물었다기보다 유도했다고 비난받을 만하다. 시안 발표 문건은 정부가 정책 결정을 위해 밟아야 할 과정을 마땅하게 거치지도 않았다고 의혹하게 만든다.

 

 

교육부 개편 시안에 미래는 없다

 

교육부가 거창하게 공표했지만 시안의 미래는 밝지 않다. 당장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한 논란부터 꽤 시끄러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수능 과목이 개편되는 데 대한 반대가 만만찮을 것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반대는 수학, 과학, 사회 영역 등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전과 비교해 수능 과목들이 모두 ‘공통’이나 ‘일반’ 수준으로 낮춰지는데, 해당 모든 영역에서 교육적 중요성이 깎이는 것이라 여겨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다. 이런 예상을 감안해 시안은 수학의 경우는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 과목을 외국어/한문 시간에 선택으로 추가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타협 여지를 열어 놓았다. 이 정도로는 수학 영역 안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듯하다. 과학 영역과 동조하면서, 특히, 수학과 과학의 가치가 부각하는 산업 경제 담론에 편승하며, 완강하게 저항할 듯하다. 이런 저항은 이전에도 성공했었다.

 

사회 영역에서도 못지않은 저항이 예상된다. 수능 범위를 ‘공통’ 수준으로 낮춰서는 고교 과정 자체가 무너진다고 아우성칠 것이다. 내신 성적이 중요한 전형 자료로 남아 있으니 학교 수업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 교육부는 해명하겠지만, 수능의 문화적 교육적 지위를 감안할 때, 저항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다.

 

내신 석차 등급을 5개로 낮추는 시안에 대해서도 이견은 무성할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상대평가 등급을 병기한다면 절대평가라는 표방은 허황하다며 비판할 것이고,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내신의 변별력이 떨어지면 결국 다른 변별 요소가 생겨나,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고 볼멘소리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앞에서 비쳤듯이 이번 시안은 제도상 매우 부분적이어서, 대입제도 전반이 어떻게 돌아가게 되는지 짐작할 수 없게 방치했다. 이를테면, 내신 평가방식 개편이 수시 전형(학생부 종합전형과 교과전형)에 어떤 변화를 낳을지, 수시와 정시의 전반적인 비중은 어떻게 조정되어 갈지, 수능에서 고급 과목들이 제외되면 주요 대학들은 정시에서도 내신을 전형자료로 활용하지는 않을지(그런 움직임은 허용될지) 등, 질문과 그 대답에 대한 이의는 끊임없이 이어질 상황이다.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면, 이번 시안은 더욱 옹졸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글의 표면과 행간을 통해서 드러냈듯이, 이번 개편 시안은 대입제도가 수능과 ‘내신’을 근간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맹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두 개의 전형 자료를 둘러싼 경쟁이 모든 경쟁자에게 획일이기만 하면 대입제도는 공정한 것이 된다는 해괴한 공정의 관념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수능과 내신의 축으로 구축된 대입제도가 학교 교육을 망치고 있고, 학생들은 무의미한 교과 공부에 매달려야 하고 개인과 시민으로서 주체성을 세워 갈 기회도 잃고 있다. 이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놓고는 어떤 제도 개편도 의미 없다.

 

중간에 정권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적어도 정부에게는 이번 시안을 마련할 시간이 꽤 길게 주어졌었다. 고교학점제를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5년 이상 교육부는 ‘미래지향의 대입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물론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1년도 안 되는 시간을 가지고 뚝딱거렸던 이전과는 달리, 제법 미래지향적인 제도 개혁 청사진을 내놓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내놓은 대안은 이전 것들보다도 근시안적이며 좁고 답답하다.

 

 

대입제도라는 껍질보다 교육이란 핵을 보아야

 

학교 교육은 ‘성공’을 향한 개인들의 경쟁을 판가름하며 길을 내는 과정이 아니다. 학교는 교과 공부와 활동을 바탕으로 점수와 등급을 산출해 학생 이마에 부착하는 장치가 아니다. 학교 교육은 대입전형을 위해 있지 않다. 이 말들이 틀렸는가? 교육부의 시안은 틀렸다고 외치고 있다. 학교 교육의 사명은 대입전형 자료를 생산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의 대입 전략을 지원하는 데 ‘올인’해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다. 사실 오랫동안 교육부는 그래 왔다.

 

이 상태로는 대입제도와 학교 교육의 미래가 열릴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입제도라는 제한된 판의 장기(將棋)를 두기보다 교육이 무엇이고 학교가 어떤 곳인지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은 물론 중구난방일 것이다. 생각이 쉽게 모일 리도 없다. 그래도 그 이야기가 없는 상태에서 교육정책과 제도는 백번을 개편해도 무의미하다. 아니, 해롭기만 할 것이다. 우리의 정책과 제도의 역사가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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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강태중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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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1. 교사 3 수정 삭제

    교수님 글을 써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교육부 발표를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육이 희망인 많은 아이들에게, 희망이 꺼져가고 있습니다.

  2. 예비교사 수정 삭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2028 대학 입시제도 개편 시안의 본질적 문제점에 대해 명료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네요..

  3. 초등 아빠 수정 삭제

    비판적이고 이상적인 말씀 뿐이네요. 어떻게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네요. 저도 부모로서 답답하긴 하지만 어떻게 바꾸어도 대입을 위한 경쟁은 계속 될 것이고, 정권이나 정부관계자의 문제는 아닐 것 같습니다. 기술이 발전할 수록 앞으로 계속 일자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공부 외에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어떤 대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없다고 봅니다.

  4. 공부하자 수정 삭제

    바뀌는 내용을 여러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계속 바뀔 수 있도록 전문가님들의 소리를 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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