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 흔들려도 한 번 더
| 본 글은 2022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내 꿈, 민들레로 피어나다>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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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거 왜 해야 돼요?”
“선생님, 그냥 포기할래요.”
해솔이(가명)와 ‘키다리샘’ 수업을 하며 수없이 들었던 말이지만, 맥이 빠지고 ‘역시나 다시’라는 생각만 든다.
처음 해솔이를 만났던 것은 작년 해솔이 담임 선생님의 부탁으로 ‘키다리샘’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다. ‘키다리샘’은 학생 맞춤형 지도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학생의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으로써, 정서적으로나 학습적으로나 어려움을 겪는 해솔이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처음 해솔이를 봤을 때 해솔이는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 무미건조함, 그 자체였다. 수업 중 답을 알려주고 그대로 따라 말해 보라고 시켜도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아이로 통하던 해솔이. 관심을 보이기만 해도 청개구리처럼 도망가고, “저에게 관심 끄세요.”라고 말하며 반항적인 태도를 고집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생각해 보니 불우한 가정환경과 학업 결손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상처를 많이 받았고,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닫은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런 반항적인 모습이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갖고 봐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을 굳게 먹고 ‘해솔이와 한번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수업을 시작했다.
해솔이는 학습된 무기력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상태였다. 실패에 익숙하다는 태도로 수업에 임하였다. 수업 내용이 어렵든 쉽든 어차피 못 풀 거라는 생각이 있는 학생이었기에, 매시간 나는 장난스러운 말 한 마디도 조심해야 했고, 학생이 틀리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성공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학습 진도와 문제를 재구성해야 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마다 플래너에 ‘내가 해냄’이라는 도장을 스스로 찍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나아진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였다.
정서적으로 힘든 학생을 가르친다는 건 내게도 힘든 일이고 고된 과정이었지만 조금씩 실력이 향상될수록 해솔이의 표정은 달라졌다. 매사에 냉소적이고 타인과의 교류에 회의적이던 아이였는데, 요새는 장난꾸러기 모습도 보이면서 따뜻한 진심을 표현하기도 하며 180도 다른 모습으로 학교생활 중이다. 등교 시간 전 이른 아침에 진행되는 수업에 한 번도 무단으로 지각이나 결석을 한 적 없었으며, 매회 부여되는 숙제를 미룬 적도 없을 만큼 배움에 성실하고 적극적이다. 작년에는 교실에서 책 읽기를 반항적으로 거부하던 아이였는데, 올해는 당당하게 친구들 앞에서 교과서를 읽는다. 그런 모습을 보니 학생에 대한 대견함과 나 스스로도 교사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달까. 해솔이의 또 한번의 큰 도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짜증나게 왜 해야 돼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날따라 그 한 마디가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과제가 힘들면 늘 반항적으로 변하던 해솔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괜찮다’, ‘무뎌지자’, ‘나는 교사다’라는 말로 스스로 되뇌이며 해솔이를 어른스럽게 타이르던 나였음에도. 그날따라 해솔이의 태도는 너무 상처가 되었고, 내가 고민하고 노력한 모든 시간을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우리 수업 그만할까?”
나도 모르게 마음속 혼란스러움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내가 내 욕심에 아이를 힘들게 하고 있는 건가, 정규 수업이나 잘하면 되는데 신규 교사의 과한 열정인 걸까. 해솔이의 성장을 보며 스스로 칭찬하며 외롭고 힘들지만 견뎌왔는데. 내 감정이 지나치게 이입된 탓인지 해솔이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이 아이를 더 이상은 책임지고 성장시킬 수 없겠다는 두려움이 나를 에워쌌고, 이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날 이후 2주 동안 ‘키다리샘’ 수업은 중단되었다. 표면적으로는 학사 일정으로 인한 중단이었지만, 2주의 시간 동안 나는 어떻게든 수업을 회피하려 했다. 해솔이를 볼 때면 불편했고, 서러웠다. 고작 중학생, 이 어린 아이에게 어른이고 교사인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비참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감정에 숨어있을 수는 없었다. 수업이 중단되던 시간 동안 정규 수업 시간에도 아이는 내 눈치를 보고 있었고,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과감히 그만두거나 모든 걸 초심으로 되돌리거나.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강렬했지만 직면하기로 다짐했다. 나는 교사다. 나는 이 자명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때에 읽었던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라는 책을 펴서 천천히 다시 읽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이 신뢰 관계에 매우 의존한다면, 이런 신뢰 관계는 어디에 의존하고 있을까? 분명히 그것은 자신의 ‘내면 풍경을 점검’할 수 있는 교육자의 역량에 달려있다. … (중략) … 신뢰 관계는 공감과 헌신, 동정과 인내 같은 인간의 마음 활동과 용서할 수 있는 능력 위에 세워진다.
책 속 내용이 내 마음을 울렸고, 현재 해솔이와의 수업에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지속되어 온 ‘키다리샘’ 수업을 통해 우리는 심적으로 가까워졌지만 진정한 신뢰 관계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의 무례함을 용서하고 먼저 다가갔다. 수업 시작 전 우리는 솔직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해솔이가 힘들어하는 과제를 왜 계속 줄 수밖에 없는 것인지, 교사인 내가 이 수업을 통해 해솔이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때론 반항적인 해솔이의 태도를 보며 나는 어떤 감정이 드는지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해솔이는 차분하게 듣고 있었고 이전보다는 성숙한 모습으로 수업에 다시 참여했다. 해솔이가 변화한 만큼 나도 변화했다. 지금까진 학습 목표 성취에만 집중하며 수업했다면, 이제는 해솔이의 마음과 실력을 함께 성장시킬 수 있는 수업을 하기 위해 고민한다.
말의 힘은 세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된다.’라는 마가렛 대처의 말처럼 결국 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된다. 해솔이에게 사람은 언제나 뒤처질 수 있으나 주저앉지 않고 스스로 다독여 준 후 다시 일어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중화중학교 교사로, 2021년 서울시교육청이 실시한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글을 게재하였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금 제 첫 교직을 시작할때의 마음과 앞으로 용기를 갖고 더 정진해 나갈 마음을 다시금 품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