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알게 되는 것들
| “언제나 관계에서 약자인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아이들을 챙기고, 관계를 엮어주고, 힘을 내게 격려하는 것이 교사의 몫이기 때문에 여행은 마치 관계의 뜨개질과도 같다.” (본문 발췌) |
1. 여행을 떠나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 짬을 내어 센터에서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 25명과 그 가족 6명으로 이루어진 대식구들이 파주 마을을 방문했다. 그래도 준비를 해주는 분들이 따로 계셔서 혼자서 인솔을 맡았지만 그럭저럭 이틀을 잘 보내고 올 수 있었다.
그렇다고 어려운 점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지난 주초부터 앓기 시작한 감기를 결국 떨쳐내지 못한 탓에 여행 당일 아침에도 열이 펄펄 오르고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혼자 인솔인 것도 걱정인데, 몸살기를 느끼며 여행을 시작해서 걱정을 많이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준비해 간 활동 일부도 결국 포기를 해야 했다. 밤마다 작은 목구멍 속으로 공기가 들락거리는 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는 답답한 가슴을 치며 며칠을 벌써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지경이었다. 여행은커녕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서 제발 이 기관지 속 좀 어떻게 해달라고 간청을 하고 싶을 정도로 기침을 심하게 해대고 있었다. 변덕스런 날씨로 많은 아이들이 환절기 감기를 앓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행이 끝난 지금은 잘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몸은 힘들었지만, 이틀 동안 아이들과 보낸 즐거운 순간들을 생각하면 값어치 있는 시간이었다. 더욱이 함께 가셨던 어머니와 할머니, 동생들과 아이들의 관계를 잠시 엿볼 수 있었던 것도 나름의 소득이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여행을 좋아할까? 아이들 대부분은 그렇지만 당연히 꼭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함께 갈 단짝이 없다는 이유로 참여를 원치 않는다. 특히 여학생들이 그런 경우가 더 많다. 누구와 숙소를 함께 쓰고, 누구와 차량에서 함께 앉을지 등등을 예민한 문제로 다루기 때문에 여행을 가기 전부터 신경전이 대단하다. 언제나 관계에서 약자인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아이들을 챙기고, 관계를 엮어주고, 힘을 내게 격려하는 것이 교사의 몫이기 때문에 여행은 마치 관계의 뜨개질과도 같다.
거기에 부모님들이나 다른 가족들까지 가세를 하면 당연히 더 힘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혼자서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을 이틀 동안 온전히 돌보기도 벅찬 일이어서 결국 가족들도 함께 가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물론 교사들 한두 명이 함께 가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리되면 주중의 돌봄 부담이 너무 커진다. 따라서 그런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피하고 싶다. 게다가 교사들만 간다면 하루 종일 교사들이 조금씩 쉴 틈 없이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아예 방전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차라리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 거기에 이런 외부의 엄격한 눈이 항시 함께 하고 있다면, 혼자인 교사도 함부로 정도를 넘어가진 않을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도 더해 두었다.
2. 우리 함께 떠나요!
학기 초에 이루어지는 여행에는 아직 덜 익은 여러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은 낯설고 덜 익은 이런 요소들은 예측을 어렵게 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게 한다.
그런 덜 익음의 예로 우선 학교를 갓 입학한 1학년 아동들을 표본적 사례로 들 수 있다. 올해 파랑새에는 모두 6명의 1학년들이 입소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 절반인 3명의 아동들이 이번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중 1명은 할머님께서 함께 가시게 되어 안심이 되었다. 사실 입학을 한 지 불과 한 달여가 지난 시간이라 1학년들이 과연 여행을 함께 갈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아동들이 참여를 하겠다고 나서서 은근 걱정도 되었다. 자기관리는 잘 해낼 수 있을지, 또 밤에 가족들을 찾지 않고 잘 잘 수 있을지 여러 가지가 불안하고 염려되었다. 뭣보다 안전 문제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내심 말리고도 싶었다. 하지만 이미 나선 아이들을 두고 가기도 뭣해서 일단은 함께 가기로 하였다.
두 번째는 1학년은 아니지만 센터에 갓 입소한 아이들의 경우다. 3월 학기 초가 지나면 센터의 입소는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해서 연말이 되기 전까지는 거의 입소 없는 퇴소만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므로 학기 중간에 이루어지는 입소는 보통 전학에 의한 경우가 많고, 학교 등에서 입소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긴급한 경우임을 암시한다. 4월에 들어온 아이도 그런 경우로 학교 사회복지사의 요청으로 입소를 진행하고 있지만, 외국인인 아동은 체류지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센터를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입소 완료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새로 입소를 한 아동은 아직 교사들과도 관계가 충분히 맺어지지 않은 상태라 어떤 특징을 가진 아동인지 아직 정확한 이해를 충분히 못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여행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센터에 오면 쭈뼛거리고 어색해 하는 게 역력해서 여행보다 센터 적응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도 아이들과 사귀고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행 전날 갑자기 자신도 여행을 함께 가고 싶다고 부탁을 해온다. 어머니께서 아동을 돌보느라 얼마나 애를 쓰고 계신지 대충 알고 있는 상황이고, 아동이 여행을 가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푹 익어질 수만 있다면 적응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부랴부랴 함께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황망한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첫날은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잘 적응을 하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아이는 “배가 아프고,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나마 아침밥으로 다행히 무난한 미역국이 나와주어서, 속도 달래고 마음도 달래서 어찌어찌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다. 그나마 달래면 달래는 줄 알고 그쳐주어 다행이지, 거기서 한 발만 더 나갔더라면 진땀을 빼야 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너무 익숙한 졸업생 아이 문제다. 졸업생들은 센터를 졸업하고 약간의 분리의 과정을 거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속 시원히 제 갈 길을 가지만 몇몇 아이들은 그런 과정이 남다르기도 하다. 이번 졸업생 중에도 그런 아이가 한 명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졸업생이 여행 소식을 듣고 아이들 편에 은근히 자기도 함께 가게 해달라고 바람을 전해 온 것이다.
형의 부탁을 들고 온 고학년 남자 아동들도 부탁을 안 들어주면 어쩌나 싶어 아주 눈이 반짝인다. 그런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결국 허락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여행 문화를 만들고 싶은 교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혀 달갑지 않은 결정일 수도 있다. 과거를 한 번에 극복하고 싶은 것은 언제나 교사들의 성마른 욕심일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낯선 미래에게 문을 열어준다.
마지막으로는 앞서도 언급을 한 가족분들이다. 이번에는 어머님 다섯 분과 동생 한 명이 동행을 하였다. 그 중 할머님 한 분과 어머님 한 분은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가본다. 그나마 다섯 분이 모두 중국에 계시다가 한국으로 이주해 온 탓에 모두 중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하실 줄 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인 상황이다. 특히 어머님 두 분은 아예 한족으로 한국어 사용이 많이 어렵다. 그러니 우선 서로 말이라도 통하면 서로에게 좋은 동행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부모님들이 함께 가시는 여행에서는 그 품을 얼마나 내주시는지가 늘 관건이다. 내 아이에게 관심과 마음이 가는 게 당연한 일일 터인데, 그런 마음을 얼마나 잘 넓혀서 내 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조화롭게 대하실까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동생까지 함께 가는 경우라면 동생이 함께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어머님은 동생을 잘 챙기실지 그런 것도 살짝 마음이 쓰이는 게 사실이다. 가능한 상황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필요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하려 애쓰겠지만, 입장과 문화의 차이를 잘 극복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었다.
3. 즐거운 여행을…
이 모든 악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비까지 쏟아지는 날씨마저 한몫을 했지만 모두들 좋았다고 한마디씩이다. 아주 좋은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니고, 아주 좋은 경험이 제공된 것도 아니지만 모두들 여행이 주는 우연과 낯설음을 잘 타고 넘었던 듯하다.
1학년들은 모두 각자 마음에 드는 형과 누나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씩씩하게 어울려 노는 아이는 씩씩하게, 귀여움을 받는 아이는 귀엽게,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는 하고 싶은 소리 다 해가며 잘 놀았던 듯하다. 엄마가 보고 싶고 갑자기 낯설음이 느껴져 울먹거렸던 새 입소 아동도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식당 앞에서 주저앉아 밥도 못 먹겠고, 배가 아프고, 엄마가 보고 싶다던 아이를 달래준 것은 뜨듯한 미역국이었다. 몇 번을 권했더니 몇 술 뜨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밥까지 말아서 두어 그릇 먹고 나더니 기운을 좀 차리는 듯했다. 아직은 툭하면 눈물이 그렁하지만 그래도 조금 있으면 제 자리를 잘 잡을 듯하다.
졸업생 아이는 그래도 나은 모습을 보여주어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좋은 형의 모습을 조금씩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을 보니 어쩌면 곁에 남아주는 걸 고마워해야 할 순간이 곧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이 많은 아이가 있는 걸 남다르게 보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도 해본다.
어머님들은 적절한 도움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도 함께 먹이려고 가지고 왔다면서 먹을 것이며, 멀미약이며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모습에 감사했다. 곁에서 가만 지켜보니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아이들을 지키시는 듯했다.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넘치게 많아서 아이들이 버거워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분들에게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그 사랑을 거두지는 못하시리라, 그러니 차라리 아이들에게 적절히 감사 인사를 올리고, 어른들을 잘 안심시켜 드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해 보자는 새로운 생각도 하게 되었다. 또한 제 어머니를 두고 내 곁에서 마지막 점심을 함께 먹어준 동생도 고맙고 기특했다.
내 기관지는 아직 몸부림을 치고 있다. 폐는 노력 중이다. 하지만 감기의 위용을 아직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감기 덕분에 힘을 쑥 빼고, 꼭 해야 할 말만, 필요한 행동만 가려 하는 여행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한 수 덕분에 여행을 나름 잘 다녀올 수 있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현) 구로파랑새나눔터지역아동센터 시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