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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이 고교교육에 기여하고 있는가

#875 김경범, 전 서울대학교 교수 2023.02.28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은 고교교육이 아니라 교육부에 기여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사업이다.” / “정부 정책의 모순은 대학에 지원하는 돈으로 얼렁뚱땅 해결되지 않는다.” (본문 발췌)                                                                           

 

 

대학은 교육부에 잘 보여야 교육부가 나눠주는 돈을 받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이런 현실은 전혀 놀랍지 않고 새삼스럽지도 않다. 오래전부터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은 돈 앞에서 얼마든지 교육부에 잘 보일 준비가 되어 있다. 등록금은 십여 년 전부터 동결되어 있고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는 급감하여, 대학의 생존은 정부 지원금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 재정은 점점 더 나빠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부 돈에는 명분과 정도가 있는 법이다. 교육부의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 얘기다. 폐지하거나, 명칭을 바꾸고 지원 및 선정 기준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교육부는 2월 17일 “대입전형과 고교교육과정 간 연계를 강화하고, 대입전형 운영의 공정성과 책무성을 높이기 위해” 「2023년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올해는 3년 단위(2022~2024년) 사업의 2차 연도로서, 지난해 선정된 전국 91개 대학에 575억 원이 지원된다. 이 사업의 시작은 2007년 입학사정관제 시범사업이었고, 당시 예산 총액은 20억이었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이 도입되면서 예산은 크게 늘어서 현재와 같은 정도에 이르렀다. 이 예산은 초기에 주로 대학이 입학사정관을 고용하는 비용으로 대부분 지출되었고, 일부는 고교-대학 연계 활동과 공동 연구 그리고 홍보와 전형 운영에 활용되었다. 하지만 학교 밖 활동을 반영하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면서 입학사정관제는 사라졌고, 대신 박근혜 정부에서는 2014년부터 학생부종합전형을 실시했다. 그리고 사업 명칭도 지금처럼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으로 바꾸었다. 교육과정, 학생 주도 수업, 학생부 기록과 평가를 놓고 대학과 고등학교가 밀접하게 대화하고 연계하라는 취지의 사업이다. 그러니까 학생부종합전형과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은 하나의 정책 세트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 생겼다. 서울 16개 대학이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에 참여하려면 2023학년도(나중에 2022학년도로 변경) 정시모집에서 정원의 40%를 선발해야 하는 조건이 신청 자격으로 부과되었다. 그 이전에 국가교육회의는 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시 30%를 권고했지만, 약 1년 뒤 정부는 정시 선발 인원 기준을 정원의 40%로 높였다. (단, 비수도권 대학은 학생부교과전형 비중이 30% 이상이면 교육부의 정시 확대 요구를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법무부 장관 자녀의 대입 논란이었다. 그 사건은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던 시기에 있었고, 이미 대입제도도 달라지고 학생부 기재요령도 달라졌다. 하지만 사회 여론은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평가의 공정성을 의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정치권의 공정성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즉 정치적 상황이 정부의 대입 정책을 바꾸었고, 정치적 개입의 수단이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이었다.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이 정시 확대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명약관화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정시 확대가 고등학교 교육에 기여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수시모집을 없애고 모든 학생을 수능으로 선발해야 마땅하다. 지난 정부가 16개 대학의 정시모집 인원을 40%로 늘려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대입 전형의 공정성이 높아졌는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고등학교 4학년, 5학년, 6학년 학생보다 오히려 더 불리해졌다. 2023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합격자 중 고3 학생은 41.1%로 정시 확대 이전보다 줄었고, 어쩌면 연세대와 고려대의 경우에는 정시모집 합격자 중 고3 학생 비율이 30% 내외일 수도 있다. 공정한 입시라면 고등학교 4학년 이상 학생에게 일정 점수를 감점해야 형평에 맞지 않을까. 정시 확대는 여론의 화살을 잠시 돌리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일이 현 정부에서도 일어났다. 이번 이슈는 수능에서의 문·이과 유불리 문제였다. 현 정부가 들어온 후 처음 발표한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은 수능 문·이과 유불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뭔가를 내놓은 대학, 이른바 이과 학생의 ‘문과 침공’에 대한 해소책을 마련하는 대학에 더 많은 정부 지원금을 줄 예정이다. 언론은 특히 올해 평가지표를 일부 조정하여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에 맞는 전형 운영 여부에 10점을 배정했다는 점을 ‘문과 침공’ 해소를 유도하려는 것으로 풀이했다. 이런 상황은 지난 1월 교육부 장관이 여러 대학의 입학처장을 모아놓고 ‘문과 침공’에 대한 해소책을 마련하도록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새 장관이 들어오고, 새로운 장관의 생각을 반영하려고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을 다시 소환한 것이다. 교육부는 재정 지원을 미끼로 돈이 궁한 대학의 자존심을 농락하고 있다.

 

현 정부의 ‘문과 침공’ 해소는 그래도 뭔가를 하려고 했다는 모습을 보이기 위한 일종의 ‘립 서비스’로 보인다. 교육과정에서 문과와 이과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되었고, 특히 2015 교육과정은 문·이과 통합을 지향한다. 현재 수능도 지난 정부가 2015 교육과정에 맞추어 설계했다. 현 정부가 교육과정에 없는 문·이과라는 용어를 소환하여 왜 ‘립 서비스’를 하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정부의 변명은 타당하지 않다. 문·이과가 없는 교육과정, 문·이과가 없는 수능, 정시 확대, 이 모든 것을 정부가 만들어 놓고, 갑자기 대학에 문·이과 유불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현실에는 문·이과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주장을 정부가 할 수는 없다. 정부 의도대로 문·이과는 해체되는 수순을 밟고 있는데, 그게 문제이니 다시 되돌리자는 얘기를 어떻게 정부가 하겠는가. 게다가 정부도 그리고 대학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수능 필수 응시과목 폐지, 탐구영역 변환표준점수 통합 산출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렇지만 교육부 장관이 요구했으니 관료들은 이를 관철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했을 것이고, 돈이 걸려 있으니 대학은 이에 따르는 시늉이라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혹하고 참담하다.

 

「고교교육 기여 대학 지원사업」은 고교교육이 아니라 교육부에 기여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교육 개혁이 대학 자율에 기반한다고 했으나, 이는 단지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정시 확대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시 확대와 새 교육과정은 양립할 수 없으며, 이러한 정부 정책의 모순은 대학에 지원하는 돈으로 얼렁뚱땅 해결되지 않는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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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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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EdinKim 수정 삭제

    고교교육 지원사업으로 검색했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잘 읽었습니다.

    정부도 대학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바꿀 수 없는 건 국민 여론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국민들은 저자 분께서 소속된 대학교를 포함한 ‘인서울’ 대학교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학교가 교육부의 입맛에 맞추어 개편하고 지원받는 게 마냥 실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거시적으로는 벚꽃이 지는 순서대로 대학교가 통폐합되는 실정에 이 기조대로 간다면 지방 청년이 없어지게 되죠.
    그럼 그렇다고 학교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고교교육을 평가한다? 그러면 국민들이 선호하는 ‘인서울’ 대학교들이 우수대학평가를 다 휩쓸어갔을 때, 열세에 놓인 지방대가 망하는 건 자연 수순이라고 봅니다. 가뜩이나 일자리도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방식이 어떻게 되었든 결과론적으로 국민들의 비선호대학이지만, 없어지면 문제가 될 대학들을 돕는 차원에서 이점이 있습니다. 지역 거점 대학이 있어야 고등 교육이 활성화되고, 이를 기반으로 고급 인력이 양성되어 조금이나마 지역인재가 된다는 가정이기에 없어져야 하는 부실대학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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