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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SKY 캐슬’, 다시 이야기 ⑥ : ‘해피 엔딩’?

#446 한닦, 교육자 2019.04.22

‘SKY 캐슬’이 엔딩 이야기

 

청취율이 높았던 만큼, ‘SKY 캐슬’의 결말에 대한 관심도 매우 뜨거웠습니다. 어떻게 이야기가 맺어질지 추측과 기대가 무성했었는데, 정작 최종회가 방영된 뒤 사람들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다고 반응했습니다. 마지막 편을 ‘재촬영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이 제기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말이 ‘허무하다’고까지 평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강한 욕망과 집착을 보이다가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해서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냐고들 헛웃음 쳤답니다. 예술의 시각에서도 비판적이었습니다. 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속물적 폐부를 드러냈던 사실주의적인 진지함이나, 자살과 살인의 사건들로 점철시켰던 비극의 구도를 뜬금없이 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끝에 가서 밑도 끝도 없이 ‘계몽 드라마’로 변질됐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결말에 대한 평가가 어떻건, 이야기 매듭 자체가 ‘해피 엔딩’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드라마 안에서 사람들이 모두 착해지고 행복해졌다는 뜻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전말을 조금 스케치하면 이렇습니다.

 

‘예서’ 엄마(‘한서진’)는, 딸의 서울대 의대 진학에 누가 될까 싶어, 예서 ‘코디’의 살인 범행에 대해서마저 눈감으려 했었다. ‘예서’의 동급생인 ‘우주’가 그 살인 누명을 쓰고 있는데도, 그리고 고교시절 친구인 우주 엄마(‘이수임’)가 무릎을 꿇고 울며 도와달라고 사정했는데도, 그랬다. 그랬던 예서 엄마가 끝에 가서는 코디를 경찰에 고발하고, 자신이 잘못 생각했었다며, ‘우주’네에게도 용서를 구한다. 아이들 성적에만 매달리던 생각도 바꾸어서, 마지막 회에 와서는 골칫거리로 여겼던 둘째 딸 “‘예빈’이가 정말 장점이 많더라”고 말할 정도가 된다.

 

오직 병원장 자리를 향해 의사 노릇을 했던 ‘예서’ 아빠(강준상)도 뒤늦게 “빈껍데기 같은 인생”을 살았다며, 병원에서 사직한다. ‘예서’네는 SKY 캐슬을 떠나 ‘대치동’에서도 먼 곳으로 이사한다.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어떤 짓도 마다않던 ‘예서’ 역시 엄마의 개과천선에 동조하며, 학교를 자퇴하고 “널널하게” “자기주도학습”으로 검정고시와 수능을 준비하기로 마음먹는다. 매우 이기적이던 태도도 바꾸어, 서로 앙숙처럼 굴었던 ‘기준’과도 요약 노트를 공유하며 함께 공부하기로 한다.

 

자녀들을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려놓기 위해 폭압적으로 닦달하던 ‘차민혁’ 교수는 “엿 같은 피라미드 얘기”를 더 이상 안하기로 약속하며, “애들 믿고 기다려주는 진짜 아빠 노릇”을 하기로 한다. 하버드 대학에 다닌다고 속였던 딸이 나중에 ‘클럽’을 열겠다고 포부를 밝히는 데도 찬동하며, 그 날을 위해 딸에게 춤까지 배운다.

 

‘예서’와 공동 수석으로 명문 ‘신아고’에 입학했던 ‘우주’는, 살인 누명을 경험한 후, “성적, 대학 이런 거 정말 아무 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며 학교를 그만둔다. “자신을 탐색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긴 외국 여행을 떠난다. 고아 출신인 아버지(‘황치영’)가 “힘이 없는 사람에게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며, “일단 [고등학교] 3년 잘 마무리하고 대학도 가본 후에” 결정하라고 말리지만, ‘우주’는 이렇게 답한다. “힘은, 내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보다,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뭘 위해 사는지, 그게 선명할 때, 그게 뚜렷하고 확실할 때 나오는 거 아니에요?” 이 말에 부모는 수긍한다.

 

‘우주’가 자퇴하고 학교를 나설 때는, 같은 반 친구들도 함께 ‘땡땡이’를 친다. 수업하던 교사가 “니들은 인간이기 이전에 .. 고3”이라고 소리치고, “스카이 못 가면 사람 아니다”라고 주입하는 데 반항하며, 학생들은 풀던 문제지를 날려버리며 교실을 박차고 나간다. 그런 학생들에게 교사가 “너희들 이러면 수행평가 다 빵점 줄 거야! 대학 못가? 스카이!”라고 외치지만, 학생들은 “학교 때려치는 애도 있는데 뭐 우리가 하루 학교 재낀다고 뭔 일 나겠냐?”고 반응한다.

 

다른 모든 ‘캐슬’ 가정에서도 각성과 화해가 이루어진다. 대립하던 부부들이 서로 손잡고 격려하면서, 아이들을 공부로 몰기보다 “사랑을 듬뿍” 주며 키우기로 마음 모은다. 3대째 의사 가문을 만들어 내라고 닦달하던 시어머니(‘예서’ 할머니)도, 모든 계획이 틀어졌지만, 며느리와 함께 식사하며 전에 없이 따뜻한 마음을 표시한다.

 

이야기로 보면 과연 해피 엔딩이라고 할 만합니다. 등장인물들이 안고 견뎌야 했던 부담이나 상처들이 무난하게 정리됐고, 인물들 사이의 불편했던 관계들도 모두 해소됐습니다. 모두들에게 편안한 마무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학교교육에 관련시켜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야 할 것입니다. ‘SKY 캐슬’의 ‘엔딩’은 ‘해피’이지도 않고, 아직 끝맺음이 된 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째서 그런지 생각해보기 위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들을 보면, 아래와 같이 흐릅니다.

 

‘예서’네가 이사나간 그 집에는 또 다른 의사 가족이 들어온다. 그 가정의 엄마인 ‘민자영’은 다른 엄마들과 인사차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전 치과의산데 애들 교육 때문에 1년 전에 그만뒀어요. 워킹맘의 아이들은 극상위권 유지가 어렵다잖아요?” 그리고 이야기를 이렇게 이어간다. “근데, 입시 코디네이터라고 들어보셨어요? 우리 첫째 애가 중1인데, 본격적으로 대학입시 준비 좀 해보려고요.” 이전에 ‘예서’ 엄마가 보여주었던 행태를 판박이처럼 보여준다. 아이들 교육과 대입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기존 ‘캐슬’ 엄마들은 물론 ‘또?’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달관한 듯, 답한다. 자기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려고 안달하지도 않고, 대입에 연연하지도 않는다고. 그런 엄마들에게 ‘민자영’은 “천연 기념물이네” 하며 의아해한다.

 

엄마들의 이런 상견 장면은 은행의 ‘설명회’ 장면으로 이어진다. VVIP 고객에게 ‘입시 코디’를 연결해주는 설명회(‘예서’ 엄마가 코디를 구했던 바로 그 설명회)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설명회 장면이 사라지듯 바뀌면 섬뜩한 ‘김주영 쌤’(‘SKY 캐슬’ 이야기의 ‘악의 축’이었던 ‘예서’의 코디)의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이게 드라마의 마지막 컷이다.

 

 

과연 해피 엔딩?

 

‘SKY 캐슬’이란 드라마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현실로 환치해서, 등장인물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면, 그런 끝맺음이 어떤 ‘엔딩’인지 느껴볼 수 있을 터입니다.

 

교육에 관한 한 ‘SKY 캐슬’의 핵심적인 캐릭터인, ‘예서’에 대해서부터 상상해보겠습니다. 이제 그녀는 검정고시와 수능을 준비하게 됩니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할 정도였고 3년 과정을 사실상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통과하는 데는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입니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수능 점수를 얻는 게 남은 과제이고 어려움일 것입니다. 말 그대로 극상위권의 점수를 얻어야 합니다. 아마도 아래와 같은 모습 또는 전략으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하루 최소 12시간 공부하고, 주말이라고 쉬지도 않을 것이다. 기출문제를 그것도 반복해서 풀어보는 것이 공부의 근간이다. ‘EBS 교재’를 암기하게 될 정도로 거듭 풀어보고, 문제의 패턴과 풀이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연결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한다. 가능하면 시간을 덜 들여 풀 수 있는, 그리고 실수하지 않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하루 일과는 애초부터 수능 당일의 시간표에 적합하게 짜서 생활한다. ‘예서’가 ‘자기주도’로 공부하겠다고 했었지만, 마음을 바꿔 ‘재수학원’에 등록해 ‘유명 강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위 가상 시나리오는 수능 점수가 매우 높았던 수험생들의 공부 ‘후기’들을 참고하여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극상위권’ 학생들의 수능 공부 일상이 물론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 속성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상 종일,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EBS 교재를 중시하며, 필요하면 ‘개념적인’ 이해나 보충을 위해 학원에 등록하거나 ‘인강’을 듣는 것입니다. 특히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나름의 훈련을 거듭합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극상위권’ 학생이 결국(‘엔딩’ 이후) 다시 이렇게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면, 과연 전보다 더 행복하게 된 것인지 되물을 만합니다. 과연 그런 ‘공부’가 진정한 공부인지도 되물어야 합니다. 수능에서 몇 문제를 놓치게 된다 하더라도, 매일 문제만 풀게 만들기보다 다른 문화생활이나 여가를 누리게 허용하는 것이, 이야기를 더 행복하게 매듭짓는 길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볼 만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바꾼다면, ‘예서’의 ‘역량 개발’이 크게 달라지고 그녀의 미래가 크게 달라질까요? ‘SKY 캐슬’이 진정 ‘해피 엔딩’ 드라마였다면, 적어도 교육에 관한 한(그리고 ‘예서’에 대해서는), 이런 반문들을 해소해주었어야 할 것입니다. 이복자매의 죽음까지 결부됐던 풍파에서 벗어나, ‘예서’가 ‘널널하게’ 대입을 준비하게 된 것만으로 ‘해피 엔딩’의 조건을 채우기엔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입 수험생의 고난(불행)은 ‘예서’의 일상에 여전히 남아 있고, 종국에 그녀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고난을 무릅쓰는 노력이나 희생마저도 과연 의미 있는 것이 될지 의구가 남습니다. 적어도 교육적으로는, ‘예서’에 대한 ‘SKY 캐슬’의 ‘엔딩’이 결코 밝지 않고 여전히 암울해보입니다.

 

‘예서’와 함께 공동 수석으로 입학했던 ‘우주’의 경우도 앞날이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는 살인 누명까지 썼던 험한 상황에서 벗어나, 학교와 대입이라는 굴레까지 벗어 던져버리고, 긴 여행길에 오릅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그의 마지막 ‘근황’은 ‘예서’의 휴대전화로 전송된 사진에서 보입니다. 사진 속에서 그는 매우 홀가분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외국 청년들과 ‘점핑’하고 있습니다.

 

‘우주’의 즐거운 여행은 곧 끝날 것입니다. 그의 기대대로 여행이 “자신을 탐색할 시간”이 될지 모릅니다. 현실에선 가능성이 거의 없긴 하지만, 여행 결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뭘 위해 살지”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떤 깨달음을 얻고 돌아오건, ‘우주’는 대입 문제에 다시 당면해야 할 것입니다. 대학에 진학하고자 한다면 ‘예서’가 겪어야 할 일상을 비슷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대학에 진학하는 게 의미 없다 여기고 다른 길을 택한대도, 행복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고등학교 중퇴자인 ‘우주’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일자리는 우리 사회에 ‘알바’밖에 없습니다. 다른 도움이 없다면, 알바의 ‘착취’와 ‘속박’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어렵사리라도 생계만 유지하는 것이 ‘꿈’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한국 사회는 ‘배경’이 없는 사람에게 매우 야박합니다. ‘캐슬’에 사는 ‘우주’의 경우, 물론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의 도움을 바탕으로 어쩌면 ‘대안적인’ 길을 통해 ‘장인’의 반열에 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성취를 이루는 데 따라붙는 고난은 어쩌면 하고 싶었던 일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그 고난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할 때의 희열을 모두 갉아먹어버리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학벌’ 없이(‘중졸’의 학력으로) 한국 사회에서 한 ‘자리’를 획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감안하면, ‘우주’의 꿈은 어떤 분야가 됐든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예상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부모의 도움으로, 그가 일상적으로 여유 있게 살아갈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긴 여행을 통해 어쩌면 깨달았을 ‘자아’를 온전하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주’의 경우에도, ‘엔딩’ 이후에 결코 무난하거나 행복한 미래가 열려있지 않습니다.

 

‘SKY 캐슬’의 다른 아이들이나 가정의 경우에도 미래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진학이나 시험 점수를 위한 ‘공부 아닌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교육’이 달리지는 바 없을 것이고, 성적이나 대학이 대수냐고 ‘신 포도’ 이야기하듯 하면서도 석차나 학벌에는 구애되기 마련인 일상 역시 달라지는 바 없을 것입니다. “아이 교육시키기에 최적”이라는 소문을 듣고 ‘캐슬’에 이사 들어온 ‘민자영’의 가족도, ‘캐슬’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이사 나간 ‘예서’네 가족도, 여전히 한국 사회가 정의하는 교육의 의미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높은 점수 얻고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거역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풀던 문제지를 던져버리며 ‘땡땡이’ 쳤던 ‘신아고 정독반’ 학생들도 모두 다시 학교로 돌아가 문제 풀기에 매달릴 것입니다. “스카이 못가면 사람 아니”라고 외치는 교사에게 수행평가 잘 받을 요량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SKY 캐슬’이 끝나고 난 뒤에도 이런 일상이 계속될 터에, 그 드라마의 끝을 ‘해피 엔딩’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해피 엔딩’이 아닌 더 깊은 이유

 

‘SKY 캐슬’이 ‘해피 엔딩’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은, 두 가지 사실을 두고, 더 근본적으로 부연해두어야 할 것이라 여깁니다.

 

우선, 이 드라마는 ‘사회’를 문제 삼지 않고 ‘개인’을 문제 삼았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비평가들이 ‘SKY 캐슬’을 우리 ‘사회’의 치부와 폐부를 드러낸 드라마라고 해석했지만, 그 연출의 초점은 사회보다 ‘극상층’의 개인들 행태에 있었습니다. 돈이나 정보 네트워크 등, 다양한 ‘자본’을 갖춘 그들이 좋은 교육 기회를 앗아가기 위해 얼마나 기상천외한 전략들을 동원하는지, 그리고 그런 전략을 구사하는 데 얼마나 철면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교육 기회를 유린하고 ‘대대로 캐슬에 살아갈’ 수 있게 길을 터주는 연유가, 도대체 우리 사회 어떤 ‘구조’에서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이야기하는 바 전혀 없었고, 오직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겼습니다.

 

‘SKY 캐슬’은 극상층 사람들이나 우리 교육을 손가락질하거나 가십의 대상으로 삼게 만들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캐슬’ 이야기에 함축된 교육과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의 시사를 주지는 않았습니다. 드라마가 그린 ‘극상층’의 행태를 보며 많은 시청자들은 선망하거나 시샘했다고 하고, 또 일부는 좇아 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반면, 극상층의 부조리한 행태가 어떤 구조적 원인에서 빚어지는지 헤아려 볼 엄두를 내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SKY 캐슬’에 그려진 부조리 행태들을 조장하고 지지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원흉의 구조를, ‘SKY 캐슬’은 그냥 공기처럼 우리 사회에 있는 것으로 묵과하고 있습니다. ‘엔딩’에 이르기까지 그렇습니다. 이 점에서 ‘SKY 캐슬’은 ‘해피 엔딩’의 이야기가 될 수 없습니다.

 

‘SKY 캐슬’이 근본적으로 해피 엔딩의 이야기가 될 수 없는 또 하나 이유는 ‘엔딩 스토리’의 복됨이나 훈훈함이(그런 것이 있긴 하다면) ‘캐슬’ 사람들에게 국한돼 있다는 데 있습니다. 앞에서 정리했던 것처럼, ‘SKY 캐슬’이 해피 엔딩으로 끝맺었다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기쁘고 편안하게 됐다는 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학교에 다니고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고, 자녀들의 성적이 좋아야 부모 구실을 제대로 한 것이라는 인습에서도 벗어나게 됐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거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게 됐습니다. 가족이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즐길 수 있게도 됐습니다. 그러나 냉엄하게 따져보면, 이런 반전의 행태를 아무나 채택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캐슬’에 살 정도의 ‘믿는 바탕’이 있지 않으면, 그런 ‘대안적인’ 진로를 선택하는 데는 대단한 위험이 따릅니다.

 

‘예서’처럼 여전히 명문대학에 진학할 꿈을 가진 상태에서 고등학교를 그만 두는 결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2~3년 정도 다른 걱정 없이 대입 준비에만 전념할 수 있고, 필요하면 사교육 도움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대안이 ‘해피 엔딩’의 스토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교 최우등의 학생이면 아무나 학교를 그만두고 장기간 여행하며 ‘자아를 탐색’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의사이고 엄마가 작가 정도가 되어야 엄두를 낼 수 있는 일입니다. 드라마 속의 다른 아이들이나 가족들을 포함해서 모든 경우에, ‘SKY 캐슬’의 마지막 회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사건들이 ‘행복한’ 결과로 받아들여지려면, 그 인물들이 모두 ‘극상층’이라는 전제를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의 가정이나 사람들은 ‘SKY 캐슬’류의 엔딩 스토리를 실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도, ‘SKY 캐슬’은 해피 엔딩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교육 드라마로 행복을 이야기하려면

 

‘SKY 캐슬’이 진정 행복한 결말을 노렸다면, 적어도 교육에 관한 한, ‘캐슬’의 신비한 이야기나 개인의 개과천선 이야기에 그치지 말았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제도와 습관을 헤쳐 이야기 했어야 합니다. 한 번 즐겁게 보자는 연속극에 대해 웬 ‘진지함’이냐 되받아친다면 물론 할 말이 없습니다. 교육을 붙잡고 ‘해피 엔딩’을 논의하자면 그렇다는 뜻일 뿐입니다. 이런 소이(所以)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자녀를 키우고 학교(대학)에 보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지, 우리가 왜 그런 의미를 살아야 하는지, 시청자들이 스스로 묻게 만들었어야, ‘해피 엔딩’이라고 수긍할 수 있을 것이란 말입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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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한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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