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폐지와 수능 비중 확대가 학교교육을 망치는 이유
교육부는 지금 8월에 최종 발표할 2022학년도 대입전형(수능 체제 포함) 안을 다듬고 있다. 4월 10일 전후로 이 과제를 국가교육회의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한다(동아일보 3월 30일). 이런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학종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의 글이 빗발치고 있고(매경 3월 30일),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서울 청계광장에서 31일 집회를 열고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 반대’, ‘학종 폐지’, ‘정시 확대’ 등을 주장한 바 있다(동아일보 4월 2일). 한편 여당 초재선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더미래연구소’는 대입제도 개편안 보고서를 통해 학종을 폐지하고 모든 대학이 <대학수학능력시험, 내신, 수능+내신>으로 선발 인원을 각각 동일한 비율로 시행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동아일보 3월 30일). 또 한편 교육부 역시 서울의 주요 대학에 2020학년도 대입에서 정시모집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는(매경 3월 31일, 조선일보 3월 31일) 상황이다.
왜 이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으로 불리는 학종의 불공정성 문제를 완화하고 좀 더 공정한 대입전형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선거를 앞두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 때문에 표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정치적 판단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 게시판의 대입전형 관련 국민청원의 내용이나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의 학종 폐지 주장, 여당 더미래연구소의 학종 폐지 제안, 교육부의 정시전형 확대 요청 등이 얼마나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입전형과 수능체제 관련 제안들을 보면 ‘학교교육의 내실화’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어떤 전형 방식이 더 공정한가에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수능이 공정하다는 것은 점수로 변별하기가 쉽다는 것일 뿐 진정한 공정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공정하고(fair) 포용적인(inclusive)” 미래사회를 만들어가려는 가치와 철학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짝퉁 공정이 판을 치고 있다. 오직 국가 교육의 발전은 후퇴하더라도 지금 내 생존에 어떤 대입전형이 더 유리한가, 어떤 제도가 나의 자식에게 더 유불리한가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대입전형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런 경향은 똑 같은 문제를 다루는 일본의 경우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지금 일본은 2012년에 연구를 시작해서 고교교육 및 대학입시 제도 대개혁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대학입시 개혁의 목표를 “육성형 입시”로 규정하고 그 의미를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도 미래의 주역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초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 자립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대입시를 인재육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한국도 대입전형 논의를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과 모든 학생의 잠재력 실현을 목표로 하는 ‘학교교육 내실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대입전형 미래모형에 대해 아래의 3가지 질문을 놓고 사회가 토론해야 한다.
Q1. 2030년(혹은 2022년~2025년) 학교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Q2. 위 Q1.에서 상상해본 바람직한 학교교육과 조화를 이룰 대입전형은 무엇인가?
Q3. 이상과 같은 학교교육과 대입전형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미래 학교교육의 모습은 다양한 힘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런 힘 중에 우리의 미래사회 변화가 주는 시사점, 비전, 이를 달성하려는 노력과 의지도 큰 몫을 차지한다. 현재 한국의 대입전형 논의에는 학종과 수능의 프레임 싸움만 있다. 가난한 집안 자식도, 사교육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수능성적이 좀 낮은 농산어촌의 학생들에게도 성실함과 잠재력이 보이면 고등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관련 종단 연구에 의하면 이런 학생들이 대학 3-4학년이 되면 입학 당시 자신보다 수능 성적이 높았던 학생들을 앞서기 시작한다고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수능보다는 한 학생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학종이 필요한 것이다.
대입전형에 관한 현재의 “납득하기 어려운” 여론을 반영해 2022학년도 대입전형 체제를 결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종을 폐지하고 수능 위주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스럽다. 또 다시 학생들을 선다형 문제 풀이 기계로 만들고 고3교실에서 교사는 EBS 강의를 틀어주는 일이 계속될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오늘의 학생들에게 필요한 자질과 능력(예: 비판적 사고력, 탐구정신, 도전정신, 실패를 두려워 말고 실패를 통해 배우기)은 수능시험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미래사회는 지덕체(智德體)를 조화롭게 갖추되 지(智)의 경우 관찰, 자기평가, 포트폴리오평가, 커리어 패스포트 등으로 평가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이미 주요국들은 그런 평가를 정착시키고 있다.
대입전형 관련 교육부의 바른 판단과 역할이 절실하다. 교육부의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는 당장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교육의 문제를 사적 이해를 강하게 반영하는 여론에 맡겨 결정하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교육부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일본의 교육 및 고교대학 연계 대학입시 대개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미래 일본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상이 고교와 대학이 다를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고교와 대학이 새로운 학력 3요소(기초 지식·기능의 확실한 습득, 살아가면서 마주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고력·판단력·표현력, 주체적으로 학습에 임하는 태도와 인간성)를 공히 새로운 교육목표로 받아들이고 모든 교육적 활동과 노력의 방향을 이와 정합시키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20년부터 서술형을 포함한 새로운 수능 ‘대입공통시험’을 통해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한다. 이는 ‘대입시험-고교 학습활동’을 완전히 일치시키려는 전략이다.
끝으로 학종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린다. ‘목욕물이 더럽다고 아기까지 버리지 말라(Don’t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는 서양 속담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미래의 학교교육에서는 정성적 평가가 더 강화될 것이다. 수능과 같은 객관식 표준화 시험의 용도는 매우 제한적일(예: 자격고사)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학종 경험은 소중하다. 학종의 폐지가 아니라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문제해결의 바른 방향이다. 당분간 수능의 병존도 필요하다. 단, 조건이 있다. 수능에 고등사고력을 평가할 수 있는 서술형 문항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고등사고능력과 같은 역량을 잔뜩 강조해놓고 수능에서 이를 평가하기 위한 문항 개선은 논의조차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 일본이 도입하기로 한 서술형 문제와 개선된 객관식 문항을 보라. 사고력·판단력·표현력을 매우 우수하게 또 정교하게 평가한다. 평가 지침도 매우 우수하다. 수능의 비중을 높이자는 주장을 하려면 수능을 바칼로레아, 아비투어, IB 같은 시험을 지향하기 위해 당장 서술형을 포함시키자는 주장을 함께 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의도와 상관없이 잘못된 주장과 잘못된 가설(assumption)을 통해서 학교교육의 변화를 가로막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할 일을 서슴지 않고 있다. 정말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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