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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 관심의 사각지대 : 대학

#320 권재원, 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2017.10.25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드센 교육열은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오바마의 연설에도 ‘한국의 부모들은’ 하고 구체적으로 인용될 정도였다. 최근에는 과열 양상까지 보여주고 있다. 학부모들의 과열된 관심은 시험문제 하나하나마다 따지고 항의하며, 조금이라도 자녀가 불이익을 받는다 싶으면 집요하게 민원을 넣고, 생활기록부 기록 내용을 고쳐달라고 행정소송까지 내는 수준까지 갔다. 이들에게 교사와의 통화를 녹음하는 건 예삿일이며, 심지어 아이에게 수업을 녹음시키는 경우까지 있다. 이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지극한 관심으로, 학교와 교사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잠시도 거두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극성스럽던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한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시기가 있다. 바로 자녀가 대학생이 되는 순간이다. 그들의 관심은 어디로 갔을까? 혹시 대학생이라면 이미 성인이니 독립심을 길러주기 위해 쿨하게 관심을 끊은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서른이 다 된 자녀가 직장을 선택하려 하거나, 배우자를 정하려 할 때에도 시시콜콜 간섭하고 통제하려 드는 게 우리나라 부모들이다. 자녀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자녀의 독립을 쿨하게 인정하는 부모가 그렇게 많을 리 없다. 그렇다면 대학교 교육이 워낙  훌륭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까? 학부모들은 초중고와 달리 대학을, 교사와 달리 교수를 깊이 신뢰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더더욱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정부가 투입하는 예산 규모로 보나, 학생들이 납부하는 학비 규모로 보나 가성비가 형편 없다. 항상 OECD 최상위권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초중등교육과 달리 우리나라의 대학 평가는 중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건 대부분의 학부모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 여러 직업에 대한 국민 신뢰도 조사 결과에서도 초중고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대학 교수보다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밥통 교사 퇴출 운운하는 사회적 목소리는 요란하게 들려와도, 철밥통 교수 퇴출 운운하는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철밥통 교사 퇴출 운운하는 목소리는 주로 학부모들에게서 나오고, 철밥통 교수 퇴출 운운하는 목소리는 주로 학생들한테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무관심 속에서 대학교에는 온갖 추태들의 천태만상이 펼쳐진다. 이미 정년을 확보하고, 호봉도 충분한 교수들이 고의로 폐강을 유도해서 수업 없이 한 학기를 놀고 먹는 어이없는 일까지 드물지 않은데, 이런 사실들은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학부모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수 있는 일들인데 말이다.

 

그 많은 극성스러운 학부모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관심은 왜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수증기처럼 사라져버렸을까? 간단하다. 이들의 교육열은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이미 성패가 결정되고 목적과 가치를 실현해버렸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익히는지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학부모들은 초중고 교사들에게는 자녀들의 실력을 입학 전보다 월등하게 높여주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대학교 교수들이 입학 전보다 월등하게 실력을 높여줄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 입학 서열과 함께 이미 실력의 서열도 완성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대학교 교원이라면 이런 현상을 치욕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교육이란 학생의 역량을 키우는 작업인데, 이렇게 입학과 함께 운명이 결정되었다고 보는 관점은 대학에서의 교육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학부모 뿐 아니라 학생들도 대학에서 그 분야의 지식과 소양을 배우고 익혀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공계의 몇몇 학과, 의약학계열 정도나 그럴 뿐,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대학에서 받는 교육을 연결짓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은 대학교육이 아니라 별도의 사교육을 통해 준비하고 있다. 심지어 교원양성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교육대학, 사범대학 학생들조차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대학이 아니라 노량진 학원가에서 비싼 돈을 들여가며 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무상으로 제공되는 초중등교육과 달리 대학은 엄청난 학비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엄청난 학비를 그냥 허공에다 뿌리고, 그걸로도 모자라서 중고등학교 때보다도 더 많은 사교육비를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런데 공짜로 받는 초중등교육에 대해서는 사교육만도 못하냐며 쌍심지를 돋구며 갑질을 하던 학부모들이, 그 수십 배의 학비를 내고 있으니 갑질할 자격이 차고도 넘칠 대학에 대해서는 순한 양처럼 잠잠하다. 교수들의 이런 저런 악행이 언론에 보도되어도 잠잠하다. 교수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계속 터져 나와도, 심지어 학생에게 인분을 먹이는 천인공로할 짓거리를 벌인 교수가 나와도, 이게 교수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까지 나가지 못하고 기껏 개인적 일탈로 치부되면서 비슷한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쳐, 삶의 모든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교육이 성공했다고 믿는, 그리고 대학 입학이야말로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편협한 관심과 열의 때문에, 가장 비싸고, 어쩌면 삶과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교육기관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이 관심의 사각지대 속에서 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은 초중고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혹사와 학대에 방치되고 있으며, 교수들은 그들의 실력 이상의 권력과 발언권을 누리며 사회 곳곳에서 나라를 망치고 있다. 이 어이없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텐가? 소수의 성실하고 양심적인 교수들이 오히려 별종 취급을 받고, 아직 교수가 되지 못한, 혹은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 교수들이 침묵의 카르텔을 요구받는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텐가? 오바마도 두려워하는 한국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순간, 필요한 곳에서 터져주었으면 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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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교육교사모임 고문 권재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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