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운동의 독점 시장 해체에 따른 교원 단체들의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다
오는 12월에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설립신고를 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교원노조는 (이하 새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을 탈퇴한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서 결성하는 단체라고 한다. 우리나라 현행법에 교원노조의 설립은 자유이며, 실제로 전교조 이외에도 한국교원노동조합, 자유교원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 등의 군소 교원노조들이 있으니, 새 노조 설립 그 자체가 큰 뉴스거리는 아니다. 또 전교조 역시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단체이니 일부 교사들이 전교조를 탈퇴하여 새노조를 세우는 것이 큰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이 필요 이상으로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까닭은 이른바 진보성향의 교원단체가 처음으로 쪼개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원단체는 진보는 전교조로 모여 있고, 보수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을 위시하여 한교조, 자유교조, 대한교조 등으로 흩어져 있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이제 진보 역시 복수의 노조가 설립되어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전교조는 자유교조, 대한교조 등 다른 교원노조들의 설립 때와 달리 새노조의 설립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지난 9월 27일에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다른 노조에 가입하면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는 내용의 규약을 신설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노동자가 동시에 두 개 이상의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 현행법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복수노조 가입 허용은 기업이 몇몇 매수된 노동자들을 이용하여 어용노조를 먼저 설립해서 알박기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유교조, 한교조, 대한교조 등이 설립될 때는 가만 있다가 크게 보아 같은 편이라 볼 수 있는 새 노조가 등장하자 복수 노조 가입 시 제명이라는 강경책을 내어 놓았다. 그동안 보수노조와 전교조는 동시 가입해도 되었지만, 이제 진보노조에는 동시가입 하면 안 된다는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 셈이다.
이러한 전교조의 강경대응에도 불구하고 새 노조를 설립하려는 교사들은 동시가입이 좌절되자 아예 전교조를 탈퇴하고 새 노조 설립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새 노조를 대표하는 한 인사는 “전교조가 사업운영이나 의사결정과정에서 비민주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조합원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다”라고 말하면서 “시대의 다양한 교육현장의 요구들을 담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 노조 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양한 교사 노조의 설립과 가입을 촉진하고, 이렇게 설립된 다양한 교사노조들이 사안에 따라 선의의 경쟁과 단결을 통해 교육노동운동의 저변을 넓혀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혹자는 새 노조가 여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던 배경에 보수언론들의 다소 불온한 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는데,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의심이다. 전교조가 공무원 노조처럼 두 동강이 날 수도 있다는 보수진영의 희망 때문에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새 노조에 대한 기사와 인터뷰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진영, 보수언론의 희망은 당분간 단지 희망사항에 그칠 전망이다. 이들의 희망과 달리 새 노조 설립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교사들은 100여명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규모는 전교조가 그동안 존재를 무시하다시피 해왔던 한교조, 자유교조 등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이며, 교원노조법에 따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최소 정족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전교조에서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그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새 교조의 설립은 전교조가 균열을 일으킨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교조 측에서는 반민주적인 퇴행을 겪고, 교육운동에 대한 탄압이 가속화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전교조라는 중요한 진지를 무너뜨리는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새 노조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판도 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새 노조의 설립이 전교조 균열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결과에 가깝기 때문이다. 새 노조 때문에 전교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교조에 이미 심각한 균열이 났기 때문에 새 노조까지 나오는 것이다. 구명보트에 승객이 옮겨 타는 까닭은 선박이 침몰할까봐 두려워서이지 선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교조라는 거함이 침몰위기라는 사실은 지난 10년간의 전교조 조합원의 변동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전교조 조합원은 4만 명이 넘는다. 전국 교사들 중 10% 이상이니 적은 수는 아니다. 그런데 10년 전만 해도 조합원 수가 9만 명이 넘었고, 10만 명 돌파도 시간문제라고 했다. 거의 교사 셋 중 하나가 전교조 조합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9만여 명을 정점으로 해마다 조합원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10년만에 정확히 반토막이 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전교조를 탈퇴한 교사들이 갈만한 다른 교원단체가 없었기 때문에, 전교조 탈퇴와 더불어 교육운동에서도 이탈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조는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이렇다할 변화 시도도 없었으며, 심지어 “껍데기는 가라” 식의 반응까지 보였다.
그동안 전교조는 반토막이 되어도 아직은 상당한 규모의 조직이라는 점, 남아있는 조합원의 ‘미워도 다시 한 번’ 식의 헌신성, 그리고 진보 성향의 교사에게 전교조 외에는 교육운동을 펼칠만한 별다른 조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기대어 연명해왔다. 전교조 주요 활동가들이 ‘교육 운동’보다는 ‘노동 운동’이나 ‘정치 투쟁’에 더 집중하는 것이 불만스럽더라도 전교조가 교육 운동을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라도 하기 위해서는 전교조에 적을 둘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진보교육운동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왔던 셈이다. 이런 독점 시장에서는 아무리 규모가 작더라도 경쟁업체가 진입에 성공하는 순간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제 진보교육운동의 독점시장은 무너지고 있다.
아직 미약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미 실천교육교사모임이 만들어져서 수백 명의 교사들을 모았고, 1년 이내에 1000명을 넘어설 기세다. 그런데 이제 노동조합의 자격까지 갖춘 새 노조까지 등장했다. 고립된 실천을 넘어 교육운동을 하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전교조 이외의 선택지들이 계속 제공되고 있다. 새로운 선택지는 이들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물꼬가 트인 이상 계속해서 새로운 교원 단체들이 만들어질 것이며, 회원 확보를 위해 경쟁할 것이다. 이제 진보교육운동이라는 판이 본격적인 자유경쟁시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독점에 길들여진 전교조라는 공룡도 뼈를 깎는 혁신 없이는 그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교육운동의 선의의 경쟁이다. 하지만 이 경쟁이 선의의 경쟁이 될지, 아니면 얼마 안 남은 기존의 조합원들을 서로 갈라 치려는 이전투구가 될지는 새로 진입하는 교원단체들이 얼마나 교사들의 열망을 잘 담아내고,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교육 비전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 이들이 현재 전교조에 대해 팽배한 불만을 통한 반사이익 이상의 것을 내어놓지 못한다면, 혹은 내어놓는 것들이 속되거나 진부한 것들이라면 그나마 얻은 반짝 관심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며, 전교조의 위축이 곧 교육운동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교육은 딱 부러지는 정답을 찾기 어려운 복잡하고 민감한 영역이다. 따라서 진보교육운동 역시 정답이 없다. 교육을 더 좋게 바꾸고, 그 혜택이 특히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의 학생들에게도 골고루 주어져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에만 동의한다면, 그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에는 여러 갈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교육운동을 하고자 하는 교사들에게는 이 갈래들 중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에서 헌신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 하나의 선택지를 주고 ‘대동단결’을 강요하는 단체나,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부실한 대안을 가지고 마치 중요한 선택지라도 제공한 것처럼 교사들을 기만하는 단체는 결국 심판받을 것이며 심판 받아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사회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중학교에서 24년간 사회를 가르쳤고, 서울대, 상명대, 방송대 등에서 강의하였다.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에서 정책연구를 담당했고, 현재 계간 우리교육 편집위원이다. '학교라는 괴물', '그많은 똑똑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의 교육 비평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거짓말로 배우는 10대들의 경제학', '세상을 바꾼 질문' 등의 청소년 교양서들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