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의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1.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끓고 있다. 정부도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근본적인 방안”을 찾으라고 했으니, 머지않아 정부의 대안이 나오긴 할 모양이다. 사회에서는 수능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 볼 계기를 만났다.
2.
수능 문제 자체를 생각해보기 전에, 수능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우리 교육정책의 고질적인 관성을 하나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번 수능 논란과 대응에서 보듯이, 우리 교육정책 과정에서는 사건이 터져야 비로소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문제’가 터지지 않으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정책은 흐른다.
사실 이번에 불거진 수능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도 터졌고 또 논란이 됐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계속 터질 것이라고 예견돼오던 문제였다. 문제 오류나 정답 시비는 이미 수차례 겪었었고, 수능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그런 문제는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건 늘 지적되어 왔다. 이른바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하는 ‘난이도 조절 문제’도 거의 매년 갑론을박해온 것이다. 이번 사건이 과거와 다른 데가 있다면, 그 크기가 커졌고 거푸 일어났다는 정도 뿐이다.
이미 겪었고 또 예견되기도 했던 문제를, 더 큰 문제가 터질 때까지 우리는 왜 계속 묵과해 왔는가? 의제를 설정하는 우리 정책결정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우리 정책 과정은 전문적이거나 ‘점잖은’ 문제제기를 늘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향이 있다. 그런 문제는 대중이 주목하지 않는 사안이라 ‘지지율’에 크게 영향 주지 않을 듯하고, 정책으로 대응하기에도 성가신 데가 많아 골치 아프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수능 출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은 이제까지 대체로 전문가들이나 교육계 인사들에게서 나왔다. 정부는 이런 지적에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왔다. 교육계 안에서야 호들갑 떨 일일지 모르지만, ‘밖’에서는 실감하지 않을 사안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대책을 세우려면 예산이나 다른 시험 관리 비용 문제가 수반되므로, 그런 문제를 의제로 삼기가 더욱 성가셨을 것이다.
우리 정책과정은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대중(여론) 편향적이다. 정책의 부문들은 다양한 속성을 지닌다. 경제처럼 그 형편이 밖으로 잘 드러나고 또 세속적인 관심을 끄는 부문이 있는가 하면, 교육처럼 그 문제나 성과가 묻혀있기 십상이고, 이에 대한 걱정은 당사자들이나 하면 될 것으로 방기되는 부문이 있다. 교육 부문과 같은 경우, 우리 정책 여건에서는 결국 문제가 곪아 터져야 비로소 주목을 받게 된다. 이번 수능 사태가 그런 경우이다. 조용히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사전에 제대로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번과 같은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수능은 없어졌거나 존립하더라도 지금 것과 다른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능에 대해 이제까지 관심을 기울인 바는 ‘사교육비’ 문제에 관련해서가 대종이었다. 사교육비 줄인다고 수능을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었다. 이렇게 외현적인 관심에서 빚어진 정책들은 교육(수능) 안의 문제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킨다. 교육의 여러 제도나 장치들은 으레 본질적인 역할을 염두에 두고 고안되는 것인데 비해, ‘사교육 정책’과 같은 방안들은 그 본질(예컨대, 수능의 경우, 교육적인 평가)보다 ‘파생’ 작용(예컨대, ‘사교육 유발 가능성’)에 초점을 둠으로써 종종 본질을 훼손할 수 있는 대책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객전도의 정책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이루어질 정부의 시도에서도 바라는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3.
구태의 정책 관성을 벗고 수능을 근본적으로 검토하려면, 무엇보다도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의 틀을 초극해야 한다. 출제 오류나 난이도 조절 등에 국한하여 수능 문제를 논란하는 구도로는 수능을 ‘근본적으로’ 다루지 못한다.
4.
수능 문항이나 답지 오류 문제는 출제와 검토 과정을 엄밀하게 관리하면 물론 그 오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문제가 자주 발생하지 않았던 것도 시험 관리에 엄청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제 해결책으로 거론되고 있듯이, ‘봉쇄형’ 출제 검토 양식에서 벗어나 ‘문제은행’을 구축해서 운영한다면 오류 가능성을 더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수능 논의는 이런 정도의 대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범주의 해결책은, 다른 더 효과적인 대안들이 구안된다 하더라도, 수능의 표피적인 문제들에 대한 것들일 뿐이다. 그런 문제에 집착하는 시각으로는 좀 더 내면에 자리 잡은 수능 근본 문제를 건드릴 수 없다.
수능의 문제는 답지가 잘못 만들어지고 ‘복수 정답 처리’가 불가피해지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수능의 문제는 시험 양식 그 자체에 있다. ‘오류’를 문제 삼는 입장에서는, 이를테면 선다형의 문항 형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문제 삼았던 ‘단편적 학력 평가’의 주범인 선다형 문제를 당연히 유지시켜야 할 것으로 받아들인다. 좀 더 근원적으로는, 선다형 문항에서 정답의 답지를 명명백백하게 규정할 수 있다는 ‘인식론’에 대해서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정답시비는 답지를 잘못 만들어서 일어나는 것으로 철석같이 믿는다. 시비의 가능성이 선다형 문항의 속성 그 자체에 붙박여 있다는 데는 결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이런 수준의 논의를 펴면서 수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과장이다. 근본적으로 검토한다면, 수능에 전제되어 있는 교육관과 인식론을 문제 삼아야 한다. 선다형 문항으로 잴 수 있는 학력이나 학업성취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은 이제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선다형 문항을 재고하지 않는가? 국가 수준의 시험 관리상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언제까지 교육적 폐해를 모른 체 넘길 것인가?
나아가서, ‘교과서’니 ‘EBS 연계’니 하며 시험(지식)의 맥락을 제한하지 않는다면, 문제에 대한 정답 시비는 수많은 문항에 대해 일어날 수 있다. 이의제기가 있는 소수 문항에 대해서만 가능한 시비가 아니다. 특히 연구와 결론(주장, 가설, 이론)의 상대성을 용인하는 게 일반적인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는, 정답이란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있을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교과서에 인쇄된 대로, EBS 교재에 박힌 대로 ‘정답’을 고르라고 제한하는 경우에나 시비를 차단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각도로 진리를 탐구한다는 견지에서 보면, 하나의 문제에 ‘정답’은 으레 여러 개 있기 마련이다.
이런 ‘인식론적’ 시비를 피하려면 문항에서 정답지와 오답지를 선명하게 구분해야 할 터이다. 그래서 문항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문항은 ‘사실적인’ 지식(맞고 틀리고가 분명한 것)을 묻는 데 그쳐야 하거나, 매력 없는(‘정답’의 근처에도 가지 않는) 오답지로 선다형의 구색만 갖추는 꼴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딜레마가 수능의 속성 자체에 들어 있는데도, 정답시비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수능이면 문제없는 수능이라는 듯이 수능 대책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수능을 재검토한다는 의미는 무색해진다.
5.
소위 난이도 조절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논지의 지적을 할 수 있다. 현재 수능 논의는 ‘변별력 상실’을 문제 삼고 있다. 전국 응시자들의 순위를 뭉쳐지지 않게 변별해주지 못한다면 수능은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골몰하는 입장에선 수능의 변별력이 양보할 수 없는 요건이다. 이상적인 수능이란 첫째에서 꼴찌까지 동점자 없이 변별해낼 수 있는 시험이다. 정작 변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려가 없다. 0.1점 차이든 10점 차이든 변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수능의 문제는 변별력 자체보다 변별의 의미에서 찾아야 한다. 변별은 제대로 이루어질 때 의미 있는 것이다. 키를 가지고 변별해야 할 때 몸무게를 가지고 변별하면 안 되듯이, 숫자(점수)로 차이가 난다고 해서 그 숫자의 의미도 살피지 않고 그냥 변별에 사용하는 것은 맹목의 짓이다. 100점 만점의 수능 원점수를 기준으로 볼 때, 보수적으로 예상한다 하더라도, 예컨대 5점 정도는 운에 좌우되거나 측정 오차 범위에 드는 크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수긍한다면,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점수 차이가 생기기만 하면 등급을 가르고 당락을 가르는 데 문제없다는 입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2015학년도 수능을 ‘물수능’으로 규정하고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비판하는 논의에선 맹목적으로 변별을 요구하고 있다. 수능 점수를 이용하여 등급을 가르거나 당락을 결정할 때 긋게 되는 ‘커트라인’의 의미를 숙고하지 않는다. 그 선은 타당하고도 공정하게 그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 선 위아래로 예컨대 10점 범위 안에 있는 학생들이 진정한 실력에서는 실지로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이런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논의의 관성을 유지한다면, ‘변별력 있는 시험’을 추구하며 ‘난이도 조절’에 성공할 수 있는 수능 방안을 계속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런 모색의 결과가 수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될 리 만무하다.
6.
수능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의 이번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단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현재 드러내고 있는 문제 인식이나 ‘연구’ 계획 그리고 이를 둘러싼 주변의 논란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에 다가갈 만한 틀(안목)이 보이지 않는다. 비유컨대, 내면의 심각한 병인(病因)을 그대로 두고 표피에 연고 바르는 수준에서 ‘문제 해결’을 매듭지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 이런 걱정이 기우로 드러나길 바란다.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