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수영교육,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난 지금도 수영을 잘하지 못한다. 평영과 배영은 그런대로 흉내를 내지만 크롤이라 불리던 자유형은 호흡이 잘 안 돼 금세 힘이 든다. 한 번도 제대로 된 수영강습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지금 실력으로는 바닷가에 가면 늘 불안하다. 겁이 나서 멀리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물에 빠진 사람을 봐도 구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아서다. 이런 나도 만약 어린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수영레슨을 받을 기회가 있었더라면 지금쯤 물개 뺨칠 수영실력을 뽐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2015년부터 전국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수영교육을 의무화하겠다는 교육부의 최근 발표를 들었을 때 몹시 반가웠다.
호수와 계곡, 강과 바다에서 다양한 수중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수영이 기본이다. 또한 수중사고가 났을 때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다. 흔히 하는 말대로 국영수를 못한다고 죽을 일은 없지만 수영을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나아가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눈앞에서 물에 빠져 발버둥 쳐도 쳐다만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영교육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선 더 그렇다. 내가 교육부의 초등수영교육 전면화방침을 두 손 들어 환영해 마지않는 이유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지금의 수영장시설과 강사인력, 예산상황을 고려할 때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서 전면 실시가 가능할까?
이런 의구심을 말끔히 해소시키는 데 필요한 정확한 데이터는 아직 없는 상태다. 그러나 교육부의 방침과 상관없이 이미 수영교육을 전면실시 중인 서울과 오산의 사례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시군구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수영장 사정은 서울이 제일 낫다. 학교수영장만 해도 50여개에 전체적으론 2백50개가 넘는 수영장이 있다. 덕분에 2011년에 수영교육 전면화를 맘먹고 준비할 때 호텔수영장을 제외한 모든 수영장의 협력을 받고나니 2012년부터 초등3년생 전원에게 수영교육을 실시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체육대학 학생의 자원봉사를 받아 수영강사와 안전요원 확보도 용이했고 이동수단도 다양한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수영장시설에 관한 한 서울은 예외적이다. 일반적인 시군구의 표준에 가까운 것은 오산시다. 오산에는 길이 50미터의 10개 레인을 갖춘 국제규격수영장 한군데가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개 초등학교 2천5백 명의 3학년 학생 전원이 최소 15회, 평균 20회의 수영강습을 받는 데 어려움이 없다. 요령은 하루를 1,2교시, 3,4교시, 5,6교시로 나눠 세 학교가 일주일에 4,5회씩 4주간을 내리 사용하게 하는 것. 이때 50미터 레인을 25미터로 반분해 사용하면 20개 레인이 생긴다. 레인마다 10명 안팎을 받는다면 한꺼번에 200명 정도의 학생을 지도하는 데 무리가 없는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연중 9개월만 운영해도 무려 27개 학교, 5천4백 명을 소화할 수 있다. 오산시에는 초등학생이 2천5백 명만 있을 뿐이므로 초등수영강습시간 중에도 일부 레인은 일반시민이 사용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시군구는 오산시처럼 국제규격수영장을 하나씩 갖추고 있다. 기존시설을 잘만 활용하면 수영장을 새로 짓지 않고도 초등수영교육 수요를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설여건보다는 아이들을 수영장까지 수송해줄 차량과 수영강사를 확보하는 문제가 더 크다. 오산시는 여기서 지혜를 발휘했다. 교회와 성당 등 종교기관이나 공공기관이 보유하는 버스들이 대부분 평일 낮에는 꼼짝 않고 서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런 버스를 무상 지원받아 아이들을 실어 나르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대폭 증원돼야 할 안전요원과 수영강사 역시 자원봉사를 조직해서 돈 안 들이고 해결했다. 초등학생 수영강습시간에는 수영에 자신 있는 많은 노인과 주부들이 기꺼이 수영강습과 안전감시 자원봉사를 해준다. 그 결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불식될 수 있었다. 오산시의 수영교육 전면실시는 이렇듯 교육청과 시청을 넘어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와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초등3년생을 대상으로 한 수영교육 무상제공은 이른바 곽노현표 교육정책의 하나로서 내가 2012년 봄학기부터 서울에서 전면 실시한 것이 국내 최초다. 2013년부터 전면 실시한 오산시나 2014년부터 전면 실시한 성남시에 비해 서울이 1,2년 빨라 ‘전국 최초’의 영예는 서울차지가 틀림없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전국 최고’ 수영교육의 영예는 오산시가 차지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출범당시부터 고작 5회의 수영강습을 제공할 뿐인 서울과 달리 오산에서는 최소 15회, 평균 20회의 수영강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산에서는 무려 80%의 학생들이 25미터를 자유형으로 헤엄칠 수 있는 반면, 서울에서는 고작 10미터 수영을 목표로 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이른바 ‘생애 첫 수영 클라스, 첨벙첨벙 돌고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시작한 사실에 대해 나름 자부심을 느끼지만, 3년째 강습회수가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 내가 몹시 부족한 줄 알면서도 5회 실시를 받아들인 이유는 전면실시 첫해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그 후 횟수가 늘지 않은 걸 보면 지난 2년간 서울교육청이 그저 관성으로 일했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수영은 몸으로 배우기 때문에 한번 배우면 평생 간다. 또 부력이 도와주기 때문에 늙어서도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게다가 어린 시절 알몸으로 장난치며 배우기 때문에 아이들끼리 친해져서 왕따현상을 줄이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수영교육만큼 비용대비 교육효과가 높은 고부가가치 체육교육이 없다. 이걸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저소득층 부모들은 돈 내고 수영교육을 시킬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 다른 예체능교육도 그렇지만 수영교육은 생존과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삶의 기술로서 무상의무교육의 일부가 되어야 맞다. 수영교육은 심신의 발달단계를 고려할 때 초등학교 3학년은 돼야 배우기에 적당하다. 초등학교 3학년 교육과정에 수영이 들어가 있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25미터를 거뜬하게 헤엄칠 수 있는 수영실력을 길러주려면 5회의 서울모델이 아니라 20회의 오산모델이 정답이다. 서울모델보다 오산모델이 더 바람직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서울교육청이 단독으로 수영교육을 전면 실시한 서울과 달리 오산에선 시청과 교육청, 시민사회의 협력으로 수영교육을 전면 실시했다. 학교가 아니라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면 여기서도 오산모델이 서울모델을 능가한다. 요컨대, 수영교육의 메카는 ‘최초’와 ‘단독’에 안주하며 실질을 채우지 못한 서울보다 ‘최고’와 ‘협력’을 지향하며 실질을 채운 오산이다. 내게는 다소 불편한 진실이지만 한국교육을 위해서는 이렇게 변방에서 진행된 소규모 혁신이 빛이 날수록 좋다.
(오산모델의 성공에는 오산을 지역구로 둔 안민석 국회의원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부기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서울법대와 펜실베니아대 로스쿨에서 수학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교수로 재직하며 노동법, 사회보장법, 공정거래법, 인권법을 가르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과 사무총장을 역임했으며 5.18 시민상을 수상했다. '행복한 교육혁명'을 가치로 2010년 6월 2일 서울교육감으로 선출돼 공교육의 표준 교체와 교육행정 혁신을 시도했다. 대표적 교육정책으로는 체벌금지와 학생인권, 문/예/체 교육과 혁신학교가 꼽힌다. 인사, 사학, 시설, 구매 등 모든 교육행정에서 시민참여와 투명성을 북돋으며 사회적 책임을 불어넣기 위해 애썼다. 701일이라는 짧은 교육감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공교육 2.0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2014년 4월부터 펙트TV에서 '곽노현의 나비프로젝트, 훨훨 날아봐'로 진보적 관점의 교육전문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징검다리 교육감> 등이 있다. 본래 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법치주의의 전사였으나 이제는 교육계 사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