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교과서만으로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 가능한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이루어진 ‘통합’의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
우리학교 ‘통합’ 이야기
필자는, 본교 선생님들의 커뮤니티에 스승의 날 주간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애도수업과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참여에 관해 토론하고 실천하는 통합수업을 함께 합시다’라고 제안했다. 늦은 밤 많은 선생님들 사이에 울림이 전달되었고, 그 다음 주에 곳곳에서 통합수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교장선생님께서도 지리선생님과 팀티칭으로 통합수업을 진행하셨고, 학부모님 중 좋은교사운동에서 세월호 애도수업을 전개하고 계신 어머님이 오셔서 학부모특강을 진행해 주시기도 했다.
이 외에도 학교 곳곳에서 ‘통합’이 자리매김 되는 것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진수’라는 자율적 교사연구동아리에서는 ‘빛’이라는 주제로, 미술, 과학, 수학, 국어, 역사 선생님들이 함께 집단지성으로 1년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고등학교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통합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과목마다 독서와의 통합을, 체험학습을 통해 도시농촌의 통합을, 학교철학과 교과와의 통합을, 평화주간을 두어 시대적 사명인 남북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고전과 STEAM을 시도하는 융합과학수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통나무라는 교사동아리는 영국그랜드투어를 진행하고 있는 등 학교 곳곳에서 ‘통합, 융합’이 넘실거리고 있다.
이 과정에 교과서는 없다. 굳이 없어도 된다. 선생님들이 모여 집단지성으로 토론하고 기획한 내용이 곧 교육과정이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고 있다.
‘문·이과 통합’ 논란의 소용돌이
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는 “현 교육과정에서 양적축소 실패, 시험과 암기 위주, 학생들의 높은 학습 부담과 낮은 흥미도 등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시대적인 변화인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배경과 목표”라고 방향을 설정했다. 발표 후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먼저, 문이과 통합이란 용어로 생긴 오해가 일자 “정확하게는 문과와 이과의 통합이 아니라 주요 교과 영역의 균형적 이수를 의미한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에서는 해명을 무색케 할 정도의 강경한 어조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 10개 단체가 ‘문·이과 구분 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주제로 ‘창조경제시대의 미래인재 양성교육 국민대토론회’를 9월 초에 개최하려 준비 중이다. 개정교육과정에서 과학과목 비중축소를 도마 위에 올리려는 의도다. 주최 측은 “교육부가 문·이과 통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실질적으로는 수학·과학교육을 포기하는 ‘이과 폐지’에 가까운 국가 교육과정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전자신문 2014.08.31).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정’ 공개토론회에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측은 교육과정 전면개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전교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이미 현 교육과정은 ‘누더기교육과정’”이라고 표현하며, “교육과정 전면 개정에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은 2009개정교육과정에서 없앤 고등학교 공통교육과정을 다시 부활하고 수능체제로 강화하는 것”이라며 “교육과정의 문제라기보다 수능체제 변화가 근본적”이라고 논하였다(주간교육신문 2014.08.29).
과학기술계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현장의 과학교사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여러 과학선생님의 의견을 구했는데, 지난 수년간 가르쳤던 ‘융합과학’이란 교과로 인해 경험한 당혹감과 무능감을 표출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 주로 배우는 ‘융합과학’ 교과서는, 첫째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을 제대로 이수한 학생만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어렵다는 점과 둘째, 융합과학을 제대로 심도 있게 통합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이 극히 드물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나마 물리, 생명과학, 지구과학, 화학 교사들이 분절적으로 가르치거나, 한 사람이 맡아서 얕은 수준에서 가르치고 있다. 원래 취지인 융합형 교육과정이 추구하려는 본질인 ‘융합’을 현장에서는 전혀 구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교과서로 창의적인 융합인재를 기를 수 있나?
목적에 대한 당위만은 인정할 수 있다. 다음세대를 ‘창의적 융합인재’로 양성하겠다는데 누가 반론하랴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령모개(朝令暮改)하는 교육정책의 일관성 없음에 우리들은 모두 지쳐버렸다. ‘2015 문이과 통합형교육과정’. 현장의 교사들은 이젠 새 교육과정에 관해, 새 교과서에 관해 그다지 기대감이 없다. 가르치는 주체들의 기대가 없다면 이미 실패한 교육과정이다.
필자는 6차 교육과정이 시작될 때, 모출판사 편집인으로 교과서를 직접 기획·편집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듬 해 사립교원으로 해당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료교사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과학-사회-기술 통합(STS)과 같은 6차 교육과정 과학교과서를 제작한 방향과 의도가, 현장 동료교사들에게서는 낯선 이물질처럼 다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늘 그러했듯 교육당국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그리고 교육정책’으로 교육현장을 바꾸려한다. 어쩌면 국가교육이라는 큰 책무성을 가진 교육당국으로서,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통제방법일 것이다. 허나 백전백패(百戰百敗)다.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자녀교육을 해본 대한민국의 학부모라면 누구도 알 수 있는 그 까닭 때문이다.
‘자. 율. 성’
교육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기에, 강요로 진행된 무엇이든 ‘화석화’ 된다. 강요로 할 수 있는 것은 곧 기계적인 움직임일 뿐이다. 우리교육의 체질은 교육과정 고도비만에 이미 경직되어 자동으로 움직이기조차 힘든 녹슨 기계몸이 되어버렸다.
교육에 ‘자율성’이란 살아있는 숨을 긴 시간동안 불어넣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은 영원히 기계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교육주체들 스스로 교육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조언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적극 지원해주는 그런 열려있는 교육당국이 어디 있었던가? 자신의 성공담화를 교육정책에 투영시켜 자신의 업적으로 삼으려는 성과주의의 당국뿐이었다.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던 자신만만하던 교육부 주체들 중, 존경받는 이가 어디에 있던가?
전방위적 통합교육을 위한 5가지 제안
교육당국은 현 교육과정개정논의를 유보하고,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교육지대계(敎育之大計)를 정치지형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어떤 간섭으로도 보호된 정치중립지역에, 이 시대의 존경받는 교육계 원로들과 선진적인 현장교육전문가로 구성된 ‘(가칭)한민족 미래교육지원부’를 설립하는 전향적 탈바꿈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한국교육이 가야할 지속적이며 점진적인 ‘창의융합인재’를 위한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세우고, 현장문제를 올바로 바라보는 혜안(慧眼)을 키우며, 교육주체들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자율적인 풀뿌리 교육운동의 지원센터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율성’을 교육주체들에게 환원해주는 것이다. (물론, 자율성이 국가이념이나 헌법의 질서에 기초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전제다)
이 큰 틀에서의 제안과 더불어 ‘통합형 교육과정’에 관하여서는 일갈하고 싶다. 결코 교과서만을 통해서 통합하려는 시도는 단순공식임을 깨달아야한다. 통합에 관한 교육과정이나 다양한 교재들의 지원은 당연히 필요하며, 이를 포함한 ‘전방위적인 방법으로’ 통합교육을 추진해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본교에서 실제로 이러한 시도가 교사들 상호간에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 한 두 명의 교사가 통합형 교과서를 가르친다고 창의적인 융합인재가 탄생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먼저 ‘통합’의 가치를 국가의 위정자들이 정치로 보여줘야 하고, 모든 교사들의 삶으로 가르침을 내면화하고, 함께 모여 통합에 관해 고민해야하고 통합수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집단지성을 발현해야한다. 문화토양전반을 기경하고, 거름을 뿌리고 그 숙성된 토대위에서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통합’의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교육당국이나 교육학자나 정치인들이 각 자의 게토(ghetto)화된 ‘분절의 이념과 학문’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면서 ‘통합형 인재’을 키우겠다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음세대들이 무엇을 따르고 배우겠는가?
전방위적인 통합교육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다음을 제안한다.
1. 현재 교육과정 중 상당부분을 축소해야 한다. 암기하고 이해한 지식들 대부분이 대학에 가면 속히 잊혀 질 뿐이다. 교과서의 지식양이 감축되더라도 충분한 교육적 효과를 이룰 수 있다. 배움의 속도가 느린 ‘배움찬찬이’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다.
2. 깊은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심화선택교육과정을 동시에 배치해야한다. 특히 진로적성과 관련된 교과목을 심층적으로 배우려는 학생들 역시 소외되지 않도록, 진로에 따른 학생선택권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결국, 학생선택권을 보장하는 학점제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3. 교과 간 통합이 시도되도록, 선생님들이 함께 자율적으로 통합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창의재량시간을 늘여야한다. 교과서 전면개정보다 먼저, 선생님들이 통합적 사고를 하며 토론하는 교사연구동아리들을 활성화시키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풀뿌리운동을 하는 연구동아리를 지원하는 행·재정방안도 마련되어야한다.
4. 전방위적인 통합교육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앞서 본교에서 진행된 다양한 활동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5. 각 학교마다, 교육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조율하는 교육과정 연구지원센터(가칭 혁신연구소)가 설치되기를 제안한다. 관료화되고 상명하복구조의 경직된 행정조직에서 교육과정의 상당부분을 과감히 분리할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이 관료조직에 종속되는 순간 교육주체가 ‘통합’이라는 방향으로 자율적으로 나가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정라인과 별도로(2 Track system) 학교의 철학과 교육과정만을 전담하여, 자발성에 기초한 교육과정 풀뿌리운동을 지원하고, 조율하고, 추진하는 센터인 혁신연구소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 창조적이고 통합적인 학교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존경받는 선생님들, 전문성과 열정 있는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 교육과정운동의 새로운 핵심엔진 역할로 기여하게 하자. 교육의 본질을 위해 삶과 열정을 다하는 선생님들이 혁신연구소로 모여, ‘자율성’에 기초한 풀뿌리교육과정운동을 함께 펼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좋은학교연구소 부소장, 소명중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