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교육의 개혁을 가로막는 잘못된 믿음 15 (3)
교육정책의 실패 원인은 정책결정자 및 영향력이 있는 집단의 잘못된 가설(assumption)이나 믿음 때문인 경우가 많다. 지난 칼럼 ‘학교교육의 개혁을 가로막는 잘못된 믿음 15 (2)’에 이어 이번 칼럼에서도 학교 현장을 기반으로 한 미시적 측면에 바라본 학교교육 개혁과 관련된 잘못된 믿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 잘못된 믿음11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학생 참여 중심 수업’, ‘학생 주도, 활동 중심 수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학교교육에서는 학교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학생 참여 중심 수업’, ‘학생 주도, 활동 중심 수업’을 강화해 왔다. 하지만 그런 변화의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수업이 형식적인 경우가 많고 교육 불평등을 증가시킨다는 비판적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EBS의 10부작 다큐멘터리 <다시, 학교>가 1, 2부에서 이런 문제를 집중 다룸으로써 이런 수업 방식의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한 상태다.
먼저 ‘학생 참여 중심 수업’을 보자. ‘학생 참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참여’의 의미는 놀거나 배제되는 사람이 없이 전원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의 참여는 여러 수준이 있을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참여는 ‘학생에게 무엇을, 어떻게 배우고 배운 것을 어떻게 발표하는가에 대해 선택권이나 결정권을 주고, 학생을 평가에 참여시키며, 학생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영역을 확대하는 것’, 나아가 ‘기획자로서의 학생, 의사결정자로의 학생’의 역할이 부여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낮은 수준의 참여는 마지못한 수동적 참여나 마음의 참여는 없고 몸의 참여만 있는 것을 말한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설계한 모둠활동 수업에서 학습부진 학생은 교육적으로 별 의미 없는 역할을 맡는 것이 전형적인 예다. ‘학생 참여 중심 수업’은 물리적 참여 여부보다는 명확한 목표와 이를 달성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참여하는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을 말한다. 이런 수업은 학생의 필요, 흥미, 의견이 적극 반영되는 학생 주도적인 수업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목표와 열정이 없는 혹은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형식적 참여, 비자발적 참여는 진정한 참여라고 할 수 없다.
또한 ‘학생 참여 중심 수업’ 및 ‘학생 주도, 활동 중심 수업’의 또 다른 문제점은 교과의 학습 목표와 긴밀히 연계되지 않거나 활동을 위한 활동에 가까운 수업이 많다는 점이다. 교과 진도 나가기에도 빠듯한 상황에서 억지로 프로젝트 수업 등을 끼워 넣는 경우 이는 깊이 없는 형식적 활동에 그치고 말 수 있다. 따라서 활동을 하고 나면 이를 통해 새롭게 창출된 지식을 기존의 지식 체계에 통합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이렇게 지식의 습득과 지식의 활용이 선순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EBS 다큐멘터리에서 소개한 바 있듯 이런 수업은 학업 성취도를 낮추게 한다. ‘학생 참여 중심 수업’, ‘학생 주도, 활동 중심 수업’은 진보적 학습관의 하나로서 “제대로” 추진될 경우 의미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학업성취도를 낮추고 성취도 격차만 증가시킬 수 있다. ‘학생 참여 중심 수업’ 및 ‘학생 주도, 활동 중심 수업’의 경우 기본적인 교과지식이 뒷받침되지 않는 학생들은 방황하게 되고 제대로 활동에 참여할 수 없으며 이를 통해 배우는 것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활동과 관련된 기본적인 지식이 준비되지 않은 학습자는 수업 과정 중 뇌에 인지과부하가 일어나 제대로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
효과적인 학생 중심 수업은 교사의 역할을 여전히 중시한다. 영국의 교육정책이 2010년 과제 수행을 중시하는 역량중심교육을 포기하고 교사의 직접 지도(direct instruction: DI)와 지식의 습득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전면 선회한 것에 대해 우리도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경험중심, 과정중심, 학생중심 등을 유행을 따르듯 추구하고 있는 면은 없는지 깊이 성찰해볼 때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식의 습득을 경시하는 경향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대표적인 오해가 “지식은 인터넷에 있으니 이제는 지식의 활용이(역량 교육이)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충분한 지식 스키마의 축적 없이는 어떤 과제의 수행이나 해결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기초지식의 확실한 습득(개념적 이해 수준에 이르는)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생 참여중심 수업과 교사의 직접 교수, 지식의 구성과 지식의 습득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 잘못된 믿음12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의 ‘과정중심평가’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의 ‘과정중심평가’는 형성평가를 넘어 총괄평가까지 포함하는 등 용어의 의미와 실제의 내용이 다르게 쓰이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쓰이는 보편적 평가 용어가 아니며 일종의 변종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형성평가와 총괄평가의 조화를 지향한다. 중요한 것은 과정보다는 교육의 최종 결과이기 때문이다. ‘과정중심평가’라는 표현의 사용은 총괄평가 결과에 대한 책무성 개념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다. 역량중심교육이 지식기반교육을 경시하는 풍조를 나은 것과 같다.
한국의 ‘과정중심평가’는 정의부터 문제가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에 기반을 둔 평가 계획에 따라 교수·학습과정에서 학생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자료를 다각도로 수집하여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평가’로 정의하고 있다. 과정중심평가는 진단평가와 형성평가를 기반으로 한다. 이는 학습자의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목표와의 갭(gap)을 확인한 다음 이 갭을 줄이기 위해 적절한 피드백을 제공하고 교사의 교수법을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학습에 관련된 평가를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이 3가지로 나눈다.
① Assessment for Learning
일종의 형성평가로서 학습자의 지식·기능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수업지도 방법 개선에 활용하기 위한 것
② Assessment as Learning
일종의 형성평가로서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을 되돌아보며(상위인지의 활용) 자기평가·동료평가 등을 통해 자기 학습을 조절해 나가기 위한 것
③ Assessment of Learning
총괄평가로서 학기 중 학업성취의 최종 결과로서 학부모 등에 보고하거나 학생 간 비교하기 위한 것
이들은 진단평가(diagnostic assessment), 형성평가(formative assessment), 총괄평가(summative assessment)의 새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두 가지 Assessment for Learning과 Assessment as Learning은 ‘학습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비해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의 ‘갭을 줄이기 위해 교수법을 어떻게 바꾸고 학습자의 자기조절학습 능력과 상위인지 능력의 발달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목표를 두는 형성학습(formative learning)이다. 전통적인 평가에서는 총괄평가인 Assessment of Learning을 가장 중시했지만 지금은 Assessment as Learning을 가장 중시한다. 이것이 학습의 향상에 가장 기여도가 크기 때문이다. 학습의 질 향상을 위해 아래 평가 피라미드처럼 평가의 중심 이동이 필요하다.
<그림 1> 평가 피라미드의 중점 이동
위 그림은 메타인지와 자기조절학습(Assessment as Learning), 학습을 위한 평가(Assessment for Learning)가 총괄평가에 비해 차지하는 피라미드의 상대적 면적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높은 학업 성취는 질 높은 형성평가에 달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총괄평가는 소홀히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총괄평가는 목표 달성 여부를 확인하거나 책무성 관리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현행 과정중심평가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왜 잘못된 믿음인가? 한국의 현행 ‘과정중심평가’는 피드백의 제공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형성평가가 지향하는 <교수법 개선, 현 위치와 목표 간의 갭 줄이기, 자기조절학습 능력과 상위인지 능력의 향상> 등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정중심평가가 학종의 평정 근거를 만들기 위한 수단(고교의 경우)이나 총괄평가의 근거를 생산하는 수단, 학습자의 의도에 반한 외적 동기 강화제나 학생을 통제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이 현실적 역할이라면 이는 문제 있는 교육활동이다. 현재의 과정 중심 평가는 총괄평가 결과에 대한 학부모의 민원을 대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일부 교사들의 자조 섞인 비판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기존의 과정중심평가는 ‘학습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비해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의 갭을 줄이기 위해 교수법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며, 자기조절학습 능력과 상위인지 능력의 향상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과정중심평가에는 위선적인 측면도 있다. 진정한 과정중심평가가 되려면 가령 수학 문제 풀이에서 과정이 옳으면 답이 틀려도 제 점수를 주어야 하나 현재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 잘못된 믿음13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답이 하나뿐인 객관식 선다형 문제는 사라져야 할 평가방식이다.
21세기 접어들어 객관식 문제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답이 하나뿐인 시험문제는 비교육적이기 때문에 퇴출되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이런 흐름에서 나온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교육청의 선다형시험 폐지 시도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지난해 발표한 수업·평가혁신방안에서 금년부터 서울 모든 중학교가 국어·영어·수학·사회(역사와 도덕 포함)·과학(기술가정과 정보 포함) 등 5개 교과군 가운데 최소 1개를 택해 선다형(選多型) 시험 없이 논·서술형 시험과 수행평가로 학생을 평가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선다형 문제가 서술형에 비해 비판적 사고능력의 개발에 도움이 되는 정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식의 발달 체계 관점에서 본다면 가장 먼저 사실적 지식(factual knowledge)을 탄탄히 갖추고 이의 적용 노력을 통해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을 발전시켜야 궁극적으로는 깊은 이해를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개념적 지식(conceptual knowledge)에 이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사실적 지식의 습득과 이의 확인에는 선다형 평가가 효과적이다. 선다형 시험은 성적 산출의 공정성이 높은 장점도 있다. 사실적 지식의 확실한 습득은 비판적 사고력과 같은 고등사고능력을 뒷받침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따라서 고등사고력이 강조되는 시대에 선다형 문제는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학습한 지식을 장기기억에 저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다형 문제를 통한 인출 훈련은 매우 효과적이다. 이는 학습과학이 최근 밝혀낸 중요한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선다형 문제, 단답형 문제, 논·서술형 문제 모두 각각의 쓸모가 다를 뿐이지 모두 유용한 평가유형이다. 다만 선다형 문제라 하더라도 정답이 없는 경우, 정답이 복수인 경우, 선택지를 5~7개로 늘리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도입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잘못된 믿음14
외국의 제도는 우리와 처한 맥락이 달라 참고할 가치가 없다.
한국은 상당히 오랫동안 핀란드, 덴마크 등 유럽의 교육제도를 선망해왔고 많은 이들이 그 나라들로 교육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최근에는 캐나다의 온타리오주로 교육 탐방을 가는 교육청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토론회 등에서 외국의 사례를 예로 들면 “외국의 사례는 우리나라 사정과 맞지 않는다”는 반론과 외국 사례 무용론이라 할 만한 반응을 접할 때가 종종 있다. 심지어 “이제는 핀란드 교육의 얘기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태도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핀란드의 한 전문가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핀란드는 미국이 개발해 놓은 많은 교수법을 핀란드로 가져와 이를 참고해 핀란드 교육을 혁신했다고 한다. 우리가 외국의 우수한 교육시스템을 탐방하는 것은 그들의 것을 그대로 한국에 옮겨심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한국 교육혁신에 시사점을 얻기 위한 것이다. 화가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공부하려 하는 것은 그것을 베끼기 위함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핀란드 학교교육이 잘하는 것 중 하나는 국가의 역할이다. 교육과정을 상세히 만들되 이를 그대로 따르게 하지 않는다. 단위 학교에서 이를 지키지 않아도 벌주지 않는다. 또 특수교육을 잘하는 핀란드, 온타리오주 등에서 한국이 배울 점은 매우 많다. 다만 기존의 국내외 해결책에만 의존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인 것은 맞다. 자신이 처한 고유한 맥락을 고려해 ‘비판적 소비자’가 될 필요가 있다.
“묘책을 바라는 유혹에 빠지지 말라. 문제해결이 급할 경우 기성의 해결책에 의존하기 쉽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들여온 해결책은 대부분 실패했다. 외부 아이디어에 대해 비판적 소비자가 되는 것이 바로 해결책이다. 문제해결은 지역의 고유한 맥락을 이해하고 바꾸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여기가 아닌 저 다른 곳에’ 완전한 답이 있기를 기대하지 말라.”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 169쪽)
외국의 성공적인 교육제도나 학습법은 언제나 학습하고 참고할 대상이다. 외국의 다양한 사례를 아는 것은 상상력을 키워주고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하며 열린 사고를 돕기 때문이다.
• 잘못된 믿음15
사교육은 악이며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
이 신념에서 문제는 ‘사교육은 악’이란 인식과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는 부분이다.
이 세상에 선과 악이란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 당연히 사교육은 역기능 외에 순기능도 있다. 학교에서는 진도를 나가기 위해 모든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찬찬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 심화된 문제를 추가로 배우고 싶어도 이를 가르쳐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교육 기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학교수업의 바로 이런 측면 때문에 사교육이 설 자리가 생기고 유지되는 측면이 크다.
사교육을 악으로만 모는 것이 우리 사회에 이득이 될까? 사교육이 성행하는 것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이 없어지지도 않고 없앨 수도 없는 것이라면 이를 학생의 교육에 더 이롭게 기능하게 할 길이 없을지 연구해볼 만하다. 가장 먼저 성취기준 하위 30% 아동의 맞춤 학습을 사교육이 돕게 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 교사들 혼자의 힘으로 하위 30% 아동에게 질 높은 개별 맞춤 교육을 제공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의 학업을 돕는 일에 사교육이 힘을 합칠 수만 있다면 교육 격차 해소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는 방과후 교실 운영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국가가 사교육 기관을 공교육 기관처럼 질 관리를 할 수는 없지만 사교육이 공교육의 보완재로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물론 이런 발상은 형평성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사교육 기관이 없는 농산어촌의 경우 학생들은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한다’라는 부분에 대해 살펴보자. 물론 공교육의 질이 높아지면 사교육이 줄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줄어드는 정도는 매우 미미할 가능성이 높다. 사교육이 성행하는 것은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좁은 것과 관련이 크기 때문이다.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대학입시 경쟁을 줄이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며, 고등학교만 나오고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차별받지 않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바른 접근일 것이다. 사교육을 악으로만 몰지 말고 윤리적 마케팅을 하도록 유도하고 이들을 유익한 사회적 교육기관이 될 수 있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 생활을 경험한 후 지금의 능률교육(NE능률)을 창립하여 30년을 경영하면서 영어교과서와 참고서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다. 2009년 회사를 매각하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이란 비영리 공익단체를 설립하여, 현재 이 단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국가 교육시스템 재 디자인과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동, 청소년들도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개혁에 특히 관심이 많다. 수업혁신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학습과학의 연구와 전파, 그리고 교원 연수에도 힘쓰고 있다.
- 이메일 : eduinnovator@21erick.org
평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똑같아 놀랬습니다. 그리고 너무 잘 표현을 해주셔서 읽기가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