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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교육 아닌 교육만 손대다 만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351 강태중,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25.08.20
‘진짜 대한민국’을 향한 ‘나침반’을 표방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나왔다. 교육 부문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AI 인재 양성’ 등의 국정과제를 내세웠다. 이런 과제 묶음이 교육을 제대로 걱정한 결과인지 의구하며, 그런 계획으로 국정 목표인 ‘기본이 튼튼한 사회’에 다가가려는 것은 무모하다고 비판한다. 현재 상태로 국정운영 계획은 교육 부문을 빼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꾸짖는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구도부터 진부(陳腐)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이 나왔다. “대한민국 5년의 나침반”이며 이재명정부 “국정운영의 설계도”이고 “국정을 관리하고 평가하는 기준점”이라 표방됐다. 나라에 중대한 계획이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언명한 대로, 과연 “작은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 진짜 대한민국을 향해” 갈 수 있을지 좌우할 문서이다. 아직은 조목으로 굵게 나열한 상태라 계획이 확연하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최종판이 아니고 의견을 더 듣고 확정한다니, 세심히 살펴보고 의견을 낼 이유는 있겠다.

 

계획은 ‘국가 비전’ ⎯ ‘3대 국정 원칙’ ⎯ ‘5대 국정 목표’ ⎯ ‘123대 국정과제’ 등의 위계로 짜여있다.1 구도로는, 체계적인 체로 걸러낸 핵심 국정과제들이 총체적 정합성을 지니도록 조직되었을 줄로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은 서로 맞물리리란 보장도 없는 퍼즐 조각들이 ‘5대 국정 목표’라는 구획을 따라 분류만 되어 있는 듯한 상태이다. 사실, 정치적으로 구성된 팀(‘국정기획위원회’)이 3개월 정도 시간에 큰 그림과 세세한 계획이 면밀하게 맞물리도록 국정 청사진을 그려 내리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국정과제를 나누어 규합하는 범주인 국정 목표에서부터 설익고 진부한 됨됨이 엿보인다. “①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 ② 세계를 이끄는 혁신 경제, ③ 모두가 잘사는 균형 성장, ④ 기본이 튼튼한 사회, ⑤ 국익 중심의 외교 안보”가 그것들인데, 123개 국정과제를 분담해 향도할 지향을 표시하고 있다. 목표들은 서로 대등한 격으로 한 차원에 대치 병렬되어 있지만, 실제 국정에서는 필경 그 선후나 위계를 달리하도록 재구성해야 할 것이고, 목표들 사이 경계도 쉬이 투과되도록 트여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목표는 다른 것들에 대해 대체로 선결 조건일 터라, 한 격 높게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국정 계획에 진정(眞正)한 교육 고심의 자취 없어

 

교육 부문으로 국한해 계획을 살펴보면 국정 전망은 더욱 혼미하다. 발표된 계획이 앞으로 국정 5년의 ‘나침반’으로 기능한다는데, 어디를 가리키는지조차 읽어내기 어렵다. 교육에 대해선 4개 국정과제(“① AI 디지털 시대 미래인재 양성, ② 공교육 국가책임 강화, ③ 학교 자치와 교육 거버넌스 혁신, ④ 지역의 교육력 제고”)가 마련되어 있고, 이들은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국정 목표를 겨냥하는 ‘전략 7’에 속해 있다. 전략의 지향은 “각자의 가능성을 키우는 교육”이라 내걸려 있다.2 이런 구도가 어떤 청사진을 그리는지 짐작해 볼 도리가 없다.

 

교육 분야에 관한 한, ‘목표→전략→과제’로 짜인 계획 서술의 형식이 정합적인 국정 청사진을 반영한다고 해석하는 건 무리이다. “각자의 가능성을 키우는 교육”을 추구한다는 ‘전략’에 따라 4개 국정과제를 선정했고, 이 과제들을 이행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기본이 튼튼한 사회”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구상이 교육 국정의 청사진에 들어있다고 설명한다면 지나칠 테다. 짐작건대, 논리와 과정이 어땠든, 먼저 국정과제를 선정해서 그럴듯한 ‘전략’ 구호로 묶고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식의 진부한 국정 목표 구도 속 무난한 자리에 배치했음 직하다. ‘기본이 튼튼한 사회’가 어떤 사회이며, ‘각자의 가능성을 키우는 교육’이 왜 그리고 어떻게 필요한지, 어떤 국정과제로 그런 교육을 도모할 수 있을지 숙고한 기미는 행간에도 보이지 않는다.

 

교육 부문에서 특별히 부각시킨 정책과제를 음미해 보면 국정 계획 구도의 가식성을 더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보도자료나 언론 기사의 톤으로 보면, 교육 영역의 국정과제에서 으뜸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지역인재 양성”과도 엮여 있다)이며, “AI 인재 양성”도 제법 비중 있게 자리한다.3 이런 과제들을 교육 부문에서 앞장세워 계획한 데에 어떤 교육관(문제의식)이 스며있을지 짚어보면, “기본이 튼튼한 사회”나 “각자의 가능성을 키우는 교육”이란 구호에 그런 과제들을 엮어 놓은 계획 문서의 구태(舊態) 겉치레를 확인할 수 있다. 교육을 위한 진정한 고심의 자취를 찾아보지 못할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고 AI 인재 양성해서 ‘진짜 대한민국’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교육 고통과 비용’을 낮추려는 계산에서 나온 과제이다. 서울대가 1개뿐이라 경쟁의 ‘병목’을 좁혀 진학 경쟁을 한층 치열하게(그래서 고통도 비용도 커지게) 만드는 만큼, 10개로 늘려 그 병목을 넓히면 많은 문제가 완화되리라는 타산이다.4 과연 서울대를 10개로 늘릴 수 있을지, 늘릴 수 있다 하더라도 늘리는 게 바람직하기는 한지 등 따져보아야 할 문제는 많지만,5 우선, 늘리기로 작정한 국정과제의 바탕에 어떤 철학이 있는지 보자.

 

국정운영 계획에서는, 말하자면,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경쟁에 따르는 고통과 비용을 꼽았다. 경쟁을 완화하는 것이 ‘교육에서’ 가장 절실하며, 그 ‘교육적인’ 과제가 바로 서울대를 10개로 늘리는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과정에서 경쟁이 어떤 성질의 교육을 빚어내며 그 성질은 바람직한지 따져볼 염은 없었던 듯하다. 이를테면, 경쟁이 인격 함양을 어렵게 만들고 세계를 바로 볼 지성의 안목을 키울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다. 사교육비 지출이 늘고 서울 편중 현상이 악화하는 사태야말로 인격과 안목을 갖추게 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사태보다 ‘더 중한’ 교육 문제라 여겼다.

 

또 하나, ‘AI 인재 양성’을 핵심 과제로 내건 데서도 교육이 인격이나 안목을 배양하는 과업이라는 인식은 퇴화해 있다. 이젠 타성이 되었지만, 교육의 구호로 ‘인재 양성’을 내거는 행태는 ‘사람 키우는’(교육) 과제를 도구나 재료를 고급화하는 사업 전략 정도로 치환하는 것이다. AI라고 ‘응용 분야’를 특수화하는 데서는 그 전략적(수단화) 속내를 대놓고 드러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비판하면, 으레, ‘인재’ 양성이라 하여 인격이나 지성의 안목을 무시하는 건 아니잖느냐 반박한다. 그렇게 벗어나 보려 한대도, ‘인재 양성론’이 인격보다 쓸모를 추구하고, 전인교육보다 ‘특성화’를 표방하며 교육 파편화를 부른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과연 ‘교육은 인격과 지성의 안목을 키우는 과업이어야 마땅한가?’라고, 냉소적이고도 근본적으로 반문하는 이도 있다. 국정의 사태에서는 이런 도발의 질문도 당연히 집합적인 숙의 과제이어야 할 터이다. 한 나라가 어떤 교육을 추구해야 할지를 특정 형이상학의 당위로부터 연역하여 규정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그 노선 결정은 그야말로 국민이 지혜를 모아 선택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그렇게 교육관 선택이 숙의의 과제로 열려 있다고 해서, 교육의 가치 준거를 교육 ‘밖’에 두어도 좋다고 허락되지는 않는다.

 

교육은 인류가 다른 종들과 길을 달리해 진화하게 된 생물 특성의 핵심 표징일 것이며, 오늘의 인류 문명으로 귀결해 온 문화 전승의 요체일 것이다. 교육은 사람의 사람다움을 고양하는 데서 비롯해야 하며, 인류 문화를 순전하게 이어 가는 데 진수를 두어야 할 터이다. 인격이니 안목이니 하는 말들은 교육의 생물학적이고도 문화적인 내포를 드러내는 데 쓰여 왔을 뿐이다. 교육이 이럴진대, 국가 수준에서 그 과업을 진학 경쟁 조율이나 경제 동력 수단 정도로 ‘실용화’하려 든다면, 과연 그런 국정운영 계획이 지향한다는 ‘진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병목이니 AI니 외치는 상투(常套)로는 교육 계획 세울 수 없어

 

입시를 안다는 사람들은 ‘자사고’를 정시형과 수시형으로 분류하곤 한다. 자사고에는 상대적으로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입학하므로 소위 ‘내신 따기’가 어렵다고 계산된다. 그래서 개별 학교는 ‘정시형’을 추구하는 운영 전략을 취하게 된다. 내신이 미흡하더라도 수능 성적을 높이면 좋은 대학 진학을 노릴 수 있을 테기에, 모든 재학생이 수능 준비에 ‘올인’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몰아넣는 것이다. 반면, ‘수시형’ 학교는 수능보다 내신(학교생활기록부)을 노리도록 이끈다. 학생부 프로파일을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교사들도 학생부 기록에 ‘전략적인’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대입제도는 해마다 바뀌고 학교나 학생의 전략도 따라서 변해야 하지만, 학교들이 나름의 대입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현실은 여일하다. 특히 ‘명문’으로 부상하려는 학교에서 전략 놀림은 잽싸며, 실지로 그런 재치로 명문교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국정운영을 계획하면서는 이런 현상, 즉, 우리 사회가 선망하는 학교들이 ‘전형별 특성화’에 능한 학교라 또 알려지려 기 쓰는 현상에 무심했다. 으레 그래왔듯, 교육 경쟁에 따라오는 사교육비나 심리적 부담에 대해서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그런 부담이 진정 교육의 사안인지부터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프로그램이 비용과 심리 부담을 초래하기는 하지만 교육 면에서는 바람직한 효과를 낳는다고 상정해 보자. 이 경우, 부담을 이유로 학교(국가)가 교육 효과가 있는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대신, 효과가 미미하거나 심지어 부정적이더라도 부담이 없거나 덜한 프로그램을 채택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물론 자명하지 않다. 그러나 바른 결정을 위해서는 부담의 무게나 주체를 따지기보다 교육 효과의 의미와 크기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다. 이때 ‘부담’은 교육 ‘밖’에 있으며, ‘효과’는 교육 ‘안’에 있다.

 

괴이하겠지만, 비용이 가외로 들어가는 ‘사교육’을 통해서만 인격도야가 가능하고 무상의 ‘공교육’으로는 도저히 고매한 인품을 함양할 길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교육이 되고 안 됨은 순전히 인격 도야의 수준에 비추어 가늠된다고 전제한다.6 이때 교육 효과는 ‘사교육’에서 얻어지고 있으므로, 부담은 가중되지만, 교육은 그 부담스러운 ‘사교육’ 쪽으로 길을 잡아야 할 것이다. 부담스럽다고 사교육을 버리고 부담 없다고 ‘공교육’을 잡는다면 ‘효과’를 얻을 길은 없다. 즉, ‘부담’이란 ‘밖’의 준거로 공교육을 선택하는 계획에는 교육이 안중에 없는 셈이다. ‘효과’라는 ‘안’의 준거로 사교육을 선택하는 계획에서라야 교육을 수확할 수 있다.

 

교육이 부담과 관계없다거나 부담에 대해서는 냉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부담에 대해서도 마땅히 국정 대책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그 계획은 교육 효과를 얻어내기 위한 계획에 버금해야 마땅하다는 말이다.

 

 

국정은 교육의 비정상성부터 바루어야

 

‘부담’에만 신경 쓰는 교육관으로 국정을 이어간다면 우리 사회에서 학교와 교사의 의미가 뒤틀리리라는(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으리라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테다. 수시형이든 정시형이든, ‘좋은’ 학교들에서 교사는 어떤 사명으로 교직에 임하게 될지 생각해 보자. 제자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하도록 돕는다는 사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 사명을 위해 심지어 교육적이지 못한 ‘점수 낚기’ 전술을 훈련하고 학생부를 거짓되게 기록할 수도 있다. 학생이나 학부모도 교사의 그런 둔갑을 당연하게 기대하고 또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학교는 오직 진학을 위한 기관으로 규정되어 갈 것이다. 사실 오늘의 현실이 거의 그렇다.

 

지금 국정운영 계획은 이런 현실을 ‘정상’으로 용인하고 있다. 교사와 학교가 오직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있다는 교육관을 오히려 강고하게 고착시키고 있다. 이런 관념은 사실 꽤 오랫동안 우리 문화를 지배해 왔으며, 그런 문화로 주조되어 온 우리 ‘교육’이 바른길을 벗어난 지도 오래다. 이번 계획에 미루어 보건대, 앞으로 5년의 국정에서도 오롯한 교육으로 바루어 갈 수 있길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새 정부가 ‘기본 사회’를 외치고 교육 부문 국정과제도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받치도록 틀거지를 세웠지만, 상궤(常軌)를 벗어난 교육으로 기본 사회를 지탱하려는 계획은 무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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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국민보고대회’를 위해 내놓은 문서를 보면, ‘이재명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국가 비전-국정 원칙-국정 목표’로 이어지는 위계적인 논리로 작성되어 있고, ‘국정 목표’ 아래 ‘123대 국정과제’를 분류해 정리하고 있다. 구도를 요약하면 이렇다. [국가 비전: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 → [3대 국정 원칙: ① 경청과 통합, ② 공정과 신뢰, ③ 실용과 성과] → [5대 국정 목표: ①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 ② 세계를 이끄는 혁신 경제, ③ 모두가 잘사는 균형 성장, ④ 기본이 튼튼한 사회, ⑤ 국익 중심의 외교 안보]. 국정 목표 각각에는 15~37개(모두 123개)의 국정과제가 딸려 있다.
  2.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5대 국정 목표’ 각각에는 복수의 ‘전략’이 열거되어 있으며, 각 전략 아래 그것에 결부된 것으로 보이는 국정과제들이 정리되어 있다. 교육 분야로 특정된 과제(본문에 소개한 4개 과제)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네 번째 국정 목표에 들어있는 “전략 7: 각자의 가능성을 키우는 교육” 아래 포진되어 있으며, 교육부 소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부에 주어진 과제는 그 외에 하나 더 있는데,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이다. 이것은 “모두가 잘사는 균형 성장”이라는 국정 목표에 속해 있고, “자치분권 기반의 균형 성장”이라는 전략의 난에 배치되어 있다.
  3.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지역의 교육력 제고”라는 국정과제 안에 들어있고, ‘AI 인재 양성’은 교육 분야의 첫째 국정과제이다. 주 2)에 적었듯이,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이라는 국정과제가 교육부 소관으로 표시되어 있으면서 다른 국정 목표(“모두가 잘사는 균형 성장”이라는 국정 목표)에 배치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도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핵심 요소이다.
  4. 이런 심산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제목의 책에도 밝혀져 있다.
  5. 이 점에 대해서는 지난 7월 23일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의 저널에 게재된 글 <‘서울대 10개 만들기’, 환상을 털고 순수해져야>에서 논의한 바 있다. http://21erick.org/column/15866/
  6. 사례를 ‘괴이하게’ 꾸민 데는 물론 비틂이 있다. ‘사교육’과 ‘공교육’을 운위하는 교육정책이나 상식부터 괴이한 한국 현실을 비틀어 사고 실험을 인상 깊게 꾸며보려 했다. 그러나 교육이 근본적으로 인격 도야의 과업이라는 전제까지도 괴이하거나 작위적이라고 넘겨지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앞에서 교육의 ‘안팎’을 나누어 이야기한 데서 시사했듯이, 여기 붙인 전제는 교육의 본연에 일관한다고 믿는다.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강태중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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