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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중·고 통합학교, 미래학교의 새로운 모델

#999 김경범, 전 서울대학교 교수 2024.01.02
“‘미래학교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새로운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새로운 인구 구조하에서 압도적으로 커진 사회·경제적 부담을 짊어져야 할 세대들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본문 발췌)

 

 

2022년 정부가 바뀌면서 정부와 교육청 문건에 새로 등장한 용어가 미래학교였다. 용어가 무엇이더라도 필자는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인구감소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급격한 인구감소가 가져올 많은 사회 문제를 “저출산 문제”에 국한하여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저출산”에서 “저출생”으로 용어와 정책이 바뀌었지만, 사실상 인구의 마이너스 기울기를 일으켜 세울 대책이 없었다. 현 정부도 다르지 않다. 2022년 합계출산율 0.78은 충격적인 수치였고, 곧 발표될 2023년 합계출산율은 그보다 더 낮아진 0.70 전후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 사회는 급격한 인구감소를 이미 정해진 미래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 바닥이 어딘지 모르지만, 새로운 인구 구조로 변환되는 과정의 여파는 50년 이상에 걸쳐 진행될 듯하다. 저출생 대책만으로는 국가적 재난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정부가 올해 당장 추진해야 할 일은 외국인 노동자 관리 같은 표피적 대책이 아니라 총체적인 사회제도의 대전환이다. 그렇게 하려면 사회 각 영역에 걸쳐 인구 구조 전환기에 생겨날 문제들을 논의하고 새로운 미래 방향성과 정책 과제를 설정하는 새로운 사회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시대적 과제이며,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보고서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교육제도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기존 학교와 행정 체제로는 인구감소라는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더구나 과거처럼 한 줄 세워서 승자와 패자를 나누어서는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그것은 산업화가 시급한 백만 학생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이다. 우리는 지금 그런 사회에 살고 있지 않고, 우리의 미래도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있다. 정부와 교육청은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해야 하지만, 실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우선한다. 그래서 미래학교라는 용어를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미래란 자신감과 책임감의 결여를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다. 미래학교가 무엇인지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진정성도 없으니, 미래학교 설계는 사회적 논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정부의 정책 사업에 그치고 만다. 교육부에서 미래학교라는 용어는 예산을 투여할 정책 사업의 명분이고, 새로운 예산은 주로 에듀테크 기업의 상품을 학교 현장에 적용하는 데 쓰인다. 거칠게 말하자면 현 정부의 미래학교는 에듀테크가 도입된 학교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미래학교의 개념과 정책이 부재하여 일부 교육청에서는 미래 교육을 연구하는 조직과 부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육부가 내놓은 문건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학교 개념을 어느 교육청이 만들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미래학교가 무엇인지 모른 채 단지 예산 집행을 위한 사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 정부와 새로운 교육감은 임기를 시작한 지 세 번째 해를 맞고 있다. 네 번째 해에는 미래학교가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을까?

 

‘미래학교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새로운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만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아이도 새로운 인구 구조하에서 압도적으로 커진 사회·경제적 부담을 짊어져야 할 세대들이다.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환경, 생태, 기후라는 전 지구적 문제, 각자도생과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사회적 불평등이 가져올 공동체의 위기, 학교가 가르치는 국영수사과로 충분하지 못한 지식, 매우 축소된 교사의 역할과 경계가 희미한 교사의 책임, 학교라는 공공재의 파괴, 상명하복과 면피성 개인주의가 뒤엉킨 교육행정, 학교의 자율과 책임 등 도대체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현실 문제가 눈앞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해결책을 찾기보다 어른들을 위한 예산과 사업을 만들고 집행하며 허수아비 게임을 한다. 대표적인 허수아비 게임의 사례가 대통령이 없애겠다고 나섰던 ‘수능 킬러 문항’이다. 대통령은 기득권 카르텔을 없애겠다며 대치동 학원들을 세무 조사하고 수험생을 혼란스럽게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부 국장까지 경질했던 올해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수능 직후 ‘킬러 문항’은 없었다고 교육부 눈치를 보는 교육과정평가원과 학원가가 입을 모았지만, 학생들은 재수를 위해 벌써 학원으로 몰려가고 있다. 대통령은 사교육 의존도를 줄이려고 ‘킬러 문항 배제’를 말했지만,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한 ‘불수능’은 학생을 학원으로 몰아세웠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대치동 학원 홍보만 해준 셈이다. 국민은 ‘킬러 문항’을 교육과정 출제 여부가 아니라 어려운 문항으로 이해하는데, 정부는 교육과정 내 출제에 집착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으니 파행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풀 수 있는’이라는 구시대적 문구를 정말로 믿었는지도 모른다. 설마 그걸 리가 없겠지만, 교육과정 내 출제가 ‘책임회피용’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능 문항이 교육과정 내인지 아닌지는 정부가 결정한다. 수능 사교육을 줄이려면 난이도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수능 응시 영역을 줄이면 될 일이다.

 

작년 여름을 달구었던 서이초 사태도 학교폭력과 민원 처리 절차의 변화에 그쳤고, 오히려 학생인권조례로 이슈가 옮겨가면서 퇴행했다. 아이들을 위한 학생인권조례 폐지인지, 아니면 어른들의 정치적 이해가 걸린 일인지, 답은 자명하다. 새로운 교권 보호 입법이 3월부터 시행되고 학폭 관련 조사를 학교전담경찰관(SPO)이 담당하지만, 학교 교육은 달라지지 않을 듯하다. 새로운 입법이 ‘아이들을 위한 더 좋은 학교 교육’과 큰 관계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유보통합과 고등교육 재생도 사회적 논란으로 소란스러웠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는 사안이었다. 유보통합을 위한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었지만, 정부가 어떤 형태의 유보통합을 지향하는지 알 수 없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공립과 사립, 정규직과 비정규직, 자격, 시설, 지역 격차 등 무엇 하나 쉬운 일이 없고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다. 대학구조조정과 재생을 위한 재정지원사업도 결국 망하지 않는 일부 국립대 지원사업이자 지역 배려사업이었다. 교육부의 글로컬 사업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은 아무 도움도 얻지 못했고, 과반수의 대학은 파산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대학은 각자도생해야 한다. 유보통합과 고등교육 정책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국가적 과제인데 정부는 말만 요란할 뿐이었고 정작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2028학년도 대학입시도 마찬가지였다. 내신은 상대평가 그대로고, 수능의 불확실성은 커졌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엉망이 되고, 고교학점제는 형해화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새로운 수능 문항 예시가 나오면 중학생을 위한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고등학교에서는 절대평가가 적용되는 융합과목을 수능 대비 과목으로 파행 운영할 수도 있다. 9월 수시모집이 사라지고 수능 이후에 대학입시를 시작하면 정부가 발표한 방안이 지금 대입제도보다 더 좋은 제도가 될 수 있지만, 국가교육위원회의 수/정시 통합 검토 제안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나중에, 국가교육위원회가 하세요’라고 발표했다. 지난 정부에 이어 이런 대입 논란과 부작용은 과도한 정치적 개입의 산물이다. 교육부는 이런 안으로 정말 미래에 ‘아이들을 위한 더 좋은 학교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왜 대통령과 정부는 아이들의 미래를 방기(放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올해에는 뭔가 기대할 만한 정부 정책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필자는 중·고 통합학교가 ‘아이들을 위한 더 좋은 학교 교육’을 만드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고 통합학교가 미래학교이자 새로운 학교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전국적으로 초·중 통합학교는 60개, 중·고 통합학교는 57개, 초·중·고 통합학교는 6개가 있다. 아래 서울시교육청 자료는 2022년 기준으로 총 123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역

교육청

총

합계

시도 별 설립 별 학교급 별 형성 별
시 도 공립 사립 초–중 중–고 초–중–고 신설 지정
서울 3 3 3 2 1 2 1
부산 3 3 3 3 3
대구 2 2 2 1 1 1 1
인천 7 7 7 2 1 4 3 4
광주 1 1 1 1 1
대전 1 1 1 1 1
울산 2 2 2 2 2
세종 1 1 1 1 1
경기 11 11 11 9 1 1 3 8
강원 5 5 5 1 4 1 4
충북 10 10 10 10 2 8
충남 20 20 17 3 6 14 20
전북 16 16 16 6 9 1 16
전남 13 13 13 6 7 1 12
경북 16 16 12 4 9 7 16
경남 6 6 6 3 3 2 4
제주 6 6 6 5 1 6
합계 123 20 103 116 7 60 57 6 17 106

(2022. 12., 「저출생 시대! 유연한 학교 통합으로 현재와 미래의 학생을 잇는 이음학교 지정운영 추진 계획」)

 

중·고 통합학교는 이미 존재하는 학교이므로 행정적으로 굳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 필요가 없다. 체육 중·고 통합처럼 특별한 목적을 가진 학교도 있지만, 기존의 통합학교는 학생 수 부족 때문에 만들어졌다. 서울의 2022년 합계출산율은 0.59로서 전국 최하위였고, 세종을 제외한 지방 시군의 학생 부족은 학교 통폐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초·중 통합은 지역 학교를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나 재고해야 한다. 초등학교는 유치원과 연결하고, 중학교는 고등학교와 연결하는 방식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하면 지역에 따라 중학교가 없어질 수 있다. 기존 통합학교의 단점은 단지 행정적으로 학교를 통합했을 뿐이라는 데 있다. 거기에는 교육 서비스의 질적 제고가 없다.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교육을 추구하는 새로운 통합학교는 학교 교육의 질적 전환을 추구한다.

 

새로운 중·고 통합학교는 학교 자율과 책임을 두고 교육청과 협약을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 교육청이 학교에 자율권을 주면서 사실상 떠넘기는 방식이 아니고, 자율형사립고처럼 학부모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고 운영하는 방식도 아니다. 학교와 교육청은 상호 협약을 맺는다. 교육청은 완전한 자율권을 통합학교에 부여하며, 동시에 공유학교, 온라인+오프라인 융합 교육과정, 학교 밖 과정을 만들어서 원하는 학생이 한 달, 한 학기, 일 년을 이수할 수 있도록 제공한다. 학교는 학생 개인별 맞춤형 교육과 책임교육을 구현한다. 과목별 완전한 무학년 교육과정을 실행할 수도 있고, 2년 단위 무학년 교육과정을 실행할 수도 있다.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전학과 위탁교육도 자유롭게 운영된다. 학교 운영은 학년별 복수의 교장이 책임지며, 2년 단위 세 명의 교장이 있을 수도 있다. 공립도 운영할 수 있고 사립은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통합해야 한다. 학교 통폐합을 하더라도 서울형 모델이 있을 수 있고, 지역형 모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6년제 중·고 통합학교일까. ‘아이들을 위한 더 좋은 학교 교육’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중학교 교육은 학생을 사실상 방치하고, 고등학교 교육은 입시 위주로 진행된다면 학교는 단지 졸업장을 따고 친구를 사귀는 공간에 그치고 만다. 학교의 교육 기능이 축소되면 공적 시스템에 의한 사회적 격차 해소도 불가능하며, 아이의 소질과 역량도 학교 교육으로 키울 수 없다. 미래학교는 한 명의 아이를 위해 온 마을이 협력하는 맞춤형 교육 서비스, 책임교육, 완전한 자율, 학교 안팎의 연계, 교장 개방형 공모제 및 책임제, 새로운 학교 행정 체제, 온전히 수업에만 집중하는 교사 등 현행 학교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일을 시도하는 학교이다. 3년 단위 분절된 학제의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내적으로는 2년 단위로 책임교육을 구현하는 새로운 모형을 만들 수도 있다. 하나의 단위 학교에서 모두 같은 교과 수업을 받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가 자유롭게 여러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영역에서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미래학교를 구상하면 더 새로운 다른 미래학교도 만들 수 있다.

 

새해에는 미래학교를 논의하고 작게라도 실현해 보자.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 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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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서울대학교 교수 김경범

스페인 마드리드 꼼쁠루뗀세 대학 박사 (중세 및 황금세기 문학), 페루카톨릭 대학 석사,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학사, (전)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 기금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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