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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전 능률교육 대표 이찬승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교육개혁 연구와 실천운동을 하는 공익단체(NPO)입니다.

학교폭력의 근본 대책이라는 ‘인성교육’의 정체

#891 강태중,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2023.04.06
정부가 학교폭력의 논란을 매듭짓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 근절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다시 ‘근절대책’이라며 내놓을 텐데, ‘인성교육’은 그 근본이라며 발표안에 포함될 것이다. 학부모나 관료는 물론 정책 참여 학자들도 ‘근본적으로는 인성교육이 정답’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이 글에선 ‘과연 그럴까?’ 묻고 있다. ‘학폭’ 대책에 담겨 온 인성교육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며, 그곳에 함축된 통념을 짚어본다. ‘인성교육’은 인성을 함양하기보다 되레 그 함양을 훼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성교육이 정답’이라는데

 

지난 한 달 우리는 학교폭력(‘학폭’) 문제를 격렬하게 논했다. 사고가 거듭 불거지는 마당에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논자들마다 더 낫다고 여기는 나름의 대안들도 내놓았다. 그러나 과거와 달라진 바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논점이나 정책 제안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없어 보인다. 최근에 오간 이야기들을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학교폭력을 막는 일이 ‘엄벌주의’만으로는 안 되지만,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 가해 학생들에 대한 처벌은 강화해야 한다. 가해자만 주목하기보다 피해자의 ‘회복’을 더 중시해야 하고, 나아가서 진정한 ‘화해’를 도모할 필요도 있다. 학교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심리 상담 전문가들도 충분히 배치하고, 제도적인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성교육’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

 

최근 얘기들에서 이전에 없던 단어들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미 거론됐던 의견이나 대안을 ‘질적으로’ 넘어서는 통찰을 볼 수는 없다. 특히, ‘인성교육’이 학폭을 예방하는 궁극적인 대책이라는 데 입을 모으는 데서 그렇다.

 

교육부장관과 국가교육위원장부터 인성교육이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지난 3월 15일,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는 ‘학교폭력 근절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인성교육 전문가 간담회’를 공동으로 열었다. 이 자리에서 국가교육위원장은 “지난 10여 년간의 대책을 되돌아보고 보다 나은 교육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라며, 출발점으로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교육부장관도 “인성교육은 학교폭력을 대응하는 데 근간이 돼야 한다”고 호응했다고 보도됐다.1

 

교육감들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이름으로 ‘새로운 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대책 수립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했는데(3월 29일), 결론적으로 ‘인성교육’을 역설했다. 입장문은 이렇게 매듭짓고 있다. “학교폭력의 근본적 예방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과 공존하는 삶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시민단체의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30년 가까이 ‘학교폭력 전문 청소년 NGO’로서 활동해 온 ‘푸른나무재단’이 ‘대책 촉구 성명문’을 발표했다(3월 22일). 그 마지막 문단에는 이런 요구가 있다. “이제는 교육정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 학교는 입시를 위하여 교과수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성을 키워주는 본연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

 

교육정책을 좀 더 전문적으로 논의하리라 기대되는 교육학자들 역시 다름없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2 교육부의 학교폭력 정책을 오랫동안 뒷받침해온 이화여자대학교 학교폭력예방연구소는 지난 연말에 2012년 이후의 ‘학교폭력 예방 및 대응 정책’을 회고하는 포럼을 열었다. 이 행사 기조 강연에서 연구소장은 정부 정책의 성과로 “인성교육 중심의 학교폭력 예방 강화”를 가장 먼저 꼽았었다. 역시 같은 연구소가 지난 3월 10일에는 “학교폭력 대응 패러다임 변화 방향 세미나”를 열었는데,3 연구소 부소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진 학폭 패턴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세미나 토론자로 참여한 다른 한 교육학자는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행동 교정을 위한 교육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스포츠클럽 활동 등의 효과를 예시했다고 한다.4 교육부의 ‘미래교육’ 정책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래교육연구소’의 소장인 또 다른 교육학자는, 한 신문 칼럼에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 인성교육이 가장 좋은 답”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5

 

 

주장하는 사람마다 제각각, ‘인성교육’에 명료한 접점 없어

 

학폭 예방의 근본 대책이라는 인성교육은 도대체 어떤 교육인가? 간명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다. 인성이라는 용어부터 형이상학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정의마다 특정한 ‘철학’을 담기 마련인데, 그것은 실증적인 검토의 경계 너머에 있다. ‘객관적으로’ 더 타당한 정의에 합의하는 일이 애당초 어렵다. 인성교육에 대해 여러 정의가 지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겨루겠지만, 그 결판이 모두 수긍할 수 있게 내려지기는 어렵다.

 

학폭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러 학자나 정책결정자 그리고 기관(단체)들이 ‘인성교육’이라는 같은 이름의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말에 담는 생각들은 달라 보인다. 그러나 이때 차이를 살펴보기 어려운 것은 입장들이 형이상학적이어서보다는 모호해서인 점이 더 크다. ‘인성교육’이란 용어를 쓰면서 그 의미를 명료하게 제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인성교육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잘 알지 않느냐’고 전제하는 듯하다. 각자 암암리에 품은 정의가 달라서 사실은 공분모가 없는데, ‘성인교육’이란 용어만 공유하면서 ‘근본 대책’이라 입을 모으는 듯하다.

 

교육부장관과 국가교육위원장의 발언만 비교해 보아도 ‘인성교육’이 모호한 상태로 운위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함께 가진 ‘인성교육 전문가 간담회’를 앞에서 언급했었는데, 거기에서 교육정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지닌 두 사람이 인성교육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는 이미 얘기했다. 그런데 인성교육을 거론할 때 그들이 암암리에 담은 의미는 판이해 보인다. 그들의 발언이 짤막하게 보도되긴 했지만, 차이를 확인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먼저, 국가교육위원장은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우리는 학생들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전인적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대했다”며 “가정과 학교에서 거듭거듭 가르침으로 체화돼야 한다”고 말했고, 논어의 사자성어 ‘극기복례’(克己復禮, 자기의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른다)를 언급하면서 “교육의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강조했다고 보도됐다. 반면, 교육부 장관은 위원장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면서, “2012년에 기본 대책을 만들 때도6 인성교육이 포함돼 스포츠 클럽이나 학교 오케스트라 등 예체능 교육부터 다양한 인성교육 캠페인을 했다”고 자신의 과거 업적을 내비치면서, “그때를 되돌아보면 인성교육을 시작했지만, 만개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얘기한 것으로 보도됐다.

 

비교해 보자면, 국가교육위원장은 인성교육이 교육과정 전반에 관련된 것이라 전제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예의범절’을 따르도록 이끄는 과업이 그 핵심이고 또 ‘교육의 기본’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장관은 일반적인(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하는) 학교 교육과 구분되는 인성교육을 얘기하고 있다. 2012년에 비로소 자신이 인성교육을 시작했다고[그것이 과거에는 없었다고] 발언하고 있으며, 그것은 스포츠 클럽이나 학교 오케스트라 같은 활동이나 ‘캠페인’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유의 차이들은 인성교육이 거론되는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장이나 논의들이 단편적이고 모호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차이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암암리에 전제하는 가정이나 함축하는 뜻이 서로 같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포착할 수 있다. 이런 작지 않은 차이들이 인성교육 논의에서는 인지되지 못하거나 간과되고 있다. 인성교육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거나 그 ‘교육’ 프로그램이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지만, 그것들 사이에 내용상의 접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인성교육’이란 같은 이름을 다는 데는 합의를 이루고 있는 듯하니, 기이한 모습이다.

 

 

‘인성교육’은 외려 도덕성 발달을 막아

 

서로 생각을 달리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책을 결정할 때 그것이 바르게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형국이다. 형편이 그러한데도 학폭 대책에서 ‘인성교육’은 빠지지 않았었으며, 또 이번에도 포함돼 나올 것이다. 요란한 논란과 정책 절차를 거쳤어도 의견들은 여전히 어수선할 테지만, ‘의견수렴’은 분명하게 이루어진 듯이 정책은 발표될 것이다. 결국 ‘펜대’를 잡은 정부가 ‘수렴안’을 작성할 것이며, 그 안에서 인성교육의 정의도 덩달아 내려질 것이다. 여기에서의 정의가 결국, 명시적이고 명료하게 진술되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 인성교육의 공식적인 정의가 된다.

 

인성교육의 ‘공식적인’ 정의는 어떤 것일까? 정부가 내놓았던 학폭 정책(그리고 이번에도 기본적인 변화 없이 반복되리라 짐작되는 정책)에서 추론해 보아야 한다. 정책 과정의 문서나 대안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뒤에 부연하겠지만, ‘인성교육’은 정부가 정한 규범이나 규칙을 따르도록 학생들을 선도하는 활동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학생이(특히, 최근의 사건들이나 ‘사회 전환’을 감안할 때)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적인 덕목 또는 규범이 있는데, 인성교육은 그런 규범을 학생들이 행위 기준으로 삼아 실행하도록 지도하는 것이란 의미이다.

 

‘정신교육’의 의미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언설을 찾아보자. 교육부장관이 ‘2012년의 대책’을 언급한 사실을 앞에서 인용했는데, 거기에 ‘인성교육’을 시작했다는 언급이 있다. 바로 그 ‘인성교육’이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인성교육 비전 수립을 위한 정책 연구’를 발주했었다. 10개나 됐던 그 연구 과제들 가운데 ‘총론’이었던 ‘인성교육 비전 수립 및 실천 방안 연구’의 보고서는 ‘인성과 인성교육의 개념’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정리했(41쪽).

 

… 인성, 혹은 인성교육은 ‘인간이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처럼 영원한 숙제다. 하지만 이제는 인성과 인성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을 구하기보다 불완전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대체로 긍정할 수 있는 약속을 정해야 한다. … 21세기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함양하기 위한 노력과 그동안 추상적이고 불분명하게 사용되었던 인성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하며, 우리 사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실천 지침이 필요하다.

 

인성교육은, 말하자면, “우리 모두 대체로 긍정할 수 있는 약속”을 바탕으로 21세기가 요구하는 역량을 함양할 수 있는 “실천 지침”을 설정하여 그것을 따르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되는 ‘교육’에 대해 품게 되는 의문은 한두 개가 아니다. “우리 모두 대체로 긍정”하는 바를 누가 어떻게 정리해 내는가? 21세기가 요구하는 역량은 또 어떻게 찾는가? 찾는 데 근거가 될 실증적인 바탕이 있기는 한가? 설사 역량을 도출해 낸다 한들, 그것들을 함양하는 지침은 또 어떤 근거로 마련할 것인가? 실증적으로나 윤리(논리)적으로나, ‘약속’이나 ‘지침’을 규정할 보편적이고 타당한 길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인성교육’을 위해 모든 학생이 행동 지표로 받아들여야 할 ‘사회적 약속’과 ‘실천 지침’을 정부가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못 박았다.7 인성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의 행동이 그런 약속과 지침을 따르도록 이끄는 데 있다고 규정한 셈이다.

 

하지만 ‘사회의 약속’이란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주입하는 것은 참된 교육일 수 없다. 그런 행위는 교육보다 세뇌에 가깝다. 교육학자들은 ‘맹목적인 교육’(‘盲敎’, indoctrination)이라는 조어로 그런 행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도덕성 발달에 관련된 이론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런 주입 행위는 이를테면 학생들을 ‘인습 수준’(conventional level)에 고착시키려는 것이다. ‘밖’에서 주어지는 규율을 좇는 것(인습 수준) 이상으로 도덕성을 높게 함양할 여지를 인성교육이란 이름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교육’에서는 학생 스스로 나름의(‘내적인’) 윤리관을 정립하며 인품을 높여가는, 더 높은 수준(post-conventional level)으로의 도덕성 발달이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인성교육의 이름으로 교육의 본연을 훼손하게 되는 셈이다.

 

 

‘경험과 실천’ 프로그램이 인성 함양의 바른길?

 

‘인성교육’이 개념상(정의상) 원천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 프로그램들 역시 매우 허약한 기반 위에 있다. 인성교육 프로그램들은 ‘참여적’이고 ‘경험적’이며 ‘실천적’이어야 한다는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그것들은 가능한 한 일상의 생활과 실천의 맥락에 근접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학교 수업(교과교육)이 인성교육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다. ‘말만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 아닌, 참여 행동의 실천 연습이나 훈련을 통해서라야 인성이 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때 인성이 어떻게 키워지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실증은 물론 없다. 그냥 그렇게 믿고 프로그램들을 고안한다.

 

경험과 실천을 내세우는 ‘인성교육’이 언명으로는 ‘실제 사태’를 중시한다지만, 정작 그 사태 자체에 대해서는 오인하고 있다. 도덕적인 행위가 일어나는 사태를 너무 단순하게 상정하고 있다. 학생이 특정 가치나 덕목을 발현해야 하는 도덕적 사태에는 늘 하나의 규범이 연루되어 있다고 간주한다. 이를테면, ‘정직’이나 ‘배려’와 같은 덕목이 사태마다 단일하게 결부된다고 본다. 그리고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면에서마다, 어떤 덕목을 실천해야 마땅한지 행위자도 알고, 그의 행위를 보게(평가하게) 되는 제삼자도 안다고 전제한다. 그런 사태에서는 ‘거짓말을 했나 안 했나’(정직했나 못했나), 또는 ‘자리를 양보했나 안 했나’(배려했나 못했나)만 보면 되는 것처럼, 객관적이고도 단일한 잣대로 행위자의 인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현실에 그렇게 단순한 사태는 거의 없다. 일상의 행위 사태에서는 으레 복수의 규범(가치)이 관련될 뿐만 아니라, 목하 어떤 규범이 관련되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어떤 부모가 시장의 음식을 훔쳐다 굶주리던 자녀에게 먹였다고 예를 들어보자. 경찰이 찾아와 자녀에게 이런저런(도둑맞은) 음식을 먹었는지, 또는 자녀와 함께 있었다는 부모의 알리바이가 사실인지 묻는 사태가 생길 수 있을 터이다. 이때 결부되는 규범은 어떤 것인가? ‘정직’(거짓말하지 마라)이나 ‘준법정신’(법을 지키라)과 같은 규범이 개별적으로 적용될 사태인가? 결코 아니다. ‘정직’, ‘준법정신’, ‘효도’, ‘이웃사랑’ 등, 생각하기에 따라(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규범의 내용과 수는 달라질 수 있다. 문초를 받게 된 자녀가 그 사태에서 어떤 규범을 가지고 적용(선택)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인성교육’ 교재에서는 사태마다 적용되어야 마땅하다는 규범을 단일하게 특정하곤 한다. 그러나 실제 사태에서 몇 개의 규범이 고려 대상에 떠오르고 그 가운데 어떤 규범이 행위로 선택될지는 당사자의 ‘도덕성 수준’에 달렸다.

 

현실 사태에서 분명한 것은, 행위자가 서로 갈등하는 복수의 규범을 두고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순간적으로라도) 번민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특정한 규범을 실행에 옮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단순한 번민 사태가 아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실제 사태에서 개인의 윤리적 판단(번민)이 일어난다는 것이고, 그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행위의 도덕적 의미가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성교육’에서 암암리에 상정하듯, ‘핵심가치·덕목’을 낱낱으로 가르치면 학생들이 경우마다 정해져 있다는 듯이(교육자<정부>의 기대대로) 특정 덕목을 행동화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행위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사태에는 으레 여러 가치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행위자 내면에서는 여러 덕목이나 규범이 행동화를 향한 우선순위 다툼을 벌이게 되기 마련이다. 개인은 가치 선택을 위해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이다. ‘인성교육’이 지시한 규범을 법규처럼 받아들여 따르려는 학생이 없지는 않겠지만, 사회의 통념(‘인성교육’이 설정해놓은 가치나 덕목)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에서 고심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8 이때 수준은 학생의 윤리학적 안목이 결정할 것이고, 그 안목은 학문적인 성장(제대로 이루어지는 교과교육)을 통해서 키워질 수 있다. 이른바 ‘경험과 실천’ 중심의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도덕 행위의 뿌리가 학문적(교과교육) 바탕에 닿아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학력 신장’과 ‘인성교육’의 쌍두정책?

 

‘경험과 실천’을 강조하며 ‘지식’(교과)의 가치를 부인하는 ‘인성교육’의 경향은 기존 정책에서 만연해 있다. 이미 확인한 대로, 교육부장관은 클럽활동이나 캠페인 같은 프로그램을 중요한 인성교육 방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은 이미 10년 이상 시행돼 오고 있는데, 인성교육은 ‘지식’ 교육과 별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교육자치를 주도하고 있는 교육감들에게서도 같은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경기도 교육감은 “교육의 기본은 인성과 실력”이라고 강조한다. “부모들이 인성보다 실력을 더 원할 수 있으나”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미래인재”를 육성하는 게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는 보도가 있다. “지식을 증대시키는”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었다.9 역시 인성교육이 별도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부산시 교육감도 “인성교육과 학력 신장이 최우선 과제”라고 정책 기조를 잡으면서, 경기도 교육감과 똑같은 인식을 보였다. 인성교육은 ‘아침 체육활동’이나 ‘해양 수련’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학력 신장은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학력향상지원시스템’을 통해 도모할 수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정책을 설명했다.10 인성교육과 교과교육을 서로 연결될 이유 없는 별개의 과업으로 병립시키는 아이디어는 이제 교육정책에서 지배적인 통념이다.

 

인성과 지식(교과)이 유리돼 있다는 인식은, 짐작건대, ‘전인교육’의 실패를 개탄해 온 역사 속에서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우리는 ‘단편적(주입식) 지식 교육’(또는 ‘입시 위주 교육’)으로 전인(全人)을 키우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한탄해 왔다. 이런 담론의 누적은 결국 (전인의 핵심적인 요소인) ‘인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지식 교육이 아닌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리라는 생각을 낳았고, 인성교육을 교과교육에서 ‘독립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의 전개에는 심각한 논리적(실증적) 비약이 들어 있다. 지식 교육으로는 인성(전인)이 키워질 수 없다고 결론을 짓기 전에, ‘단편적’이지 않은(입시 위주가 아닌) 지식 교육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과정을 빠트렸다. 교과교육이 달리(제대로) 이루어져도 과연 전인 양성이 불가능한지 엄밀하게 검토했어야 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과교육이 단편적 지식 주입의 양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그래서 교과교육으로는 바른 인성을 키우지 못한다고) 섣불리 전제한다. 이른바 ‘실천과 경험’ 중심의 활동이 인성을 함양시킬 정곡의 대안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인성교육이 성공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이성(지식)과 행위(인성)가 분리된 주체(자아)를 상정하는 교육론(‘인성교육’)이 성립될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일상에서 종종 ‘생각 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여겨질 법한 행동을 보게 되기는 한다. 이성의 작용 없이,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으로 나오는 듯한 행동들이 있다. 어쩌면 부지불식간에 깊이 ‘사회화’된 행동들일지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에게 존댓말을 쓰는 행동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행동들은 ‘지식 교육’ 이전에 체화(내면화)되었고, 일상에 참여하는 것만으로(교과교육에 무관하게) 암암리에 학습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성을 함양하는 과제는 그런 행동들까지 포함해서 자신의 행위를 꾸준히 성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며, 자신의 인품이 더욱 고매해지도록 나름의 윤리의식을 정립해 가는 과업이다. 이런 과업에 이성이 작용하지 않으리라고 상정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리이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행위가 윤리적으로 합당한지 판단하고 행동하는 데는 삶의 세계를 바로 볼 안목이 요구된다. 세간의 도덕률을 주입되는 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재검토하고 다듬으며, 자신의 고유한 윤리학을 구축해 갈 수 있는 사유의 기반이 요구된다. 그런 기반은 기본적으로 인류 문화의 정수인 교과(지식)의 교육으로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인성교육과 학력 신장’을 분리해 병립시키는 정책론을 다시 들여다보자. ‘학력 신장’이란 어떤 시도인가? 점수는 올리려는 것이다. 그런 정책은 필경 ‘아는 체’하는 교과 학습을 부추긴다. 문항이나 질문이라는 ‘큐’에 응해서 ‘정답’을 적거나 발화할 수 있으면 그만인 학습이다. 교과에 들어 있는 지식의 진정한 의미나 정신을 느끼거나 깨닫는 단계까지 이르러야 할 이유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학습이다. 그런 학습으로는 인성 함양을 뒷받침할 ‘윤리학’의 안목이 틔워질 수 없다. 그런 학습을 조장할 ‘학력 신장’ 프로그램은 ‘인성교육’과 단순히 병렬되는 데 그치지 않고, 교과교육의 본연을 뭉개면서 인성 함양의 기반도 훼손한다. 그렇지 않아도 ‘인성교육’이 길을 잘못 든 마당에, 학교 교육을 총체적인 난국으로 몰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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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중앙일보. 2023. 3. 15. 이주호 “인성교육, 학교폭력 대응하는 데 근간 돼야”; Newsis. 2023. 3. 15. 국교위원장, “학폭 기본으로 돌아가야 … 인성교육 중요”
  2. ‘교육학자들’을 한통속 집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물론 온당하지 않다. 교육학자 가운데는 인성교육을 달리(좀 더 근본적으로) 논의해 온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언론의 보도로 보면, 학교폭력과 관련된 정부의 논의에 가담해 온 학자들은 주로 학교 제도에 관련된 ‘행·재정’에 관심을 두는 이들인 듯하다. 이들이 교육의 ‘본질’을 사유하는 경우는 드물다.
  3. 두 개의 행사는 모두 교육부가 ‘주최’하여 학교폭력예방연구소에 ‘주관’을 맡긴 것이었다.
  4. 한겨레신문. 2023. 3. 10. 코로나 이후 학폭 늘고 유형 다양화… “처벌 강화 정책 경계해야”
  5. 중앙선데이. 2023. 3. 19. 학폭 해법, 정답은 인성교육
  6. 학생의 자살 사건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중대한 이슈로 부각하여, 2012년에 정부가 ‘근절대책’을 내놓았었다. 현재 교육부장관이 당시에도 장관으로서 그 대책을 발표했었다.
  7. 의문을 나열한 대로, 그런 의구심이 해소될 길이 없다면, 연구보고서의(정책으로도 수용된) 주장은 연구자들이(정부가) 그때그때 상황에 구속된 상태에서 임의적인 논리로 정당화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정부가(소수 연구자가) 임의로 행위 규범을 결정해 학생의(국민의) 행위를 선도하려는 정책 시도는, 그것을 교육의 이름으로 포장하더라도, 개인의 기본권을 건드리는 심각한 움직임이다. ‘국민교육헌장’이나 ‘국민정신 9대 덕목’을 윤리(교육) 지표로 강요했던 과거의 전제적 정치 행태와 성질상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문제는 ‘2012년 학교폭력 대책’ 이후(2015년)에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에서 더 분명해지고 심각해졌다. 학교폭력이라는 특수한 사안을 넘어서, 그 법은 ‘일반적으로’ ‘인성교육’을 시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학교에 대한 인성교육의 목표와 성취 기준”을 교육부장관이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0조). 이때 ‘목표’가 되는 것은 “핵심가치·덕목”을 뜻한다고, 인성교육을 정의하는 조항(제2조)에서 먼저 규정하고 있다. 이런 법제나 정책들이 함축하는 개인과 사회(국가)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과연 온당한 것인지) 엄밀하고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정책이나 법의 집행이 느슨한 상태여선지 모르지만, 지금 ‘인성교육’은 그 속성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검토 없이 안이하게 지속되고 있다.
  8. 학교폭력을 지적받은 ‘가해’ 어린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장난일 뿐이었다고 대답하는 경우나, 청소년들이어도 자신의 ‘폭력’ 행위가 왜 잘못인지 수긍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아울러, 과거 정부가 ‘국민윤리’나 ‘국민정신’ 덕목을 교육내용으로 부과했을 때, 그것의 가치를 의구했던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상기해 보자.
  9. 기호일보. 2022. 12. 28.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교육의 기본은 인성과 실력”
  10. 조선에듀. 2023. 3. 20. 하윤수 교육감 “인성교육과 학력신장이 최우선 과제”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강태중

‘교육사회학’ 선생으로 일했다.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며,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더 공부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교육과 학교에 대해 어떤 신화(상식)를 만들고 품는지, 그리고 그런 신화는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분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인류 역사와 사회의 구분을 따라, 교육의 관습과 제도로 드러나고 또 변전해 온 신화들을 캐며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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