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2-11-17 10:16
1. 그 날은….
서울 한복판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안타까운 참사가 일어난 데 대해 책임을 묻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태의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다. 책임을 묻는다 할지라도 일선 경찰이나 소방관들이 그 짐을 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이후의 사태를 예방하고 적절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인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 뿐이다. 그리고 참사가 있었던 날 파랑새가 보냈던 하루의 모습 속에서도 많은 것들이 겹쳐져 이래저래 마음도 심란하다.
파랑새도 평소 같았으면 “할로윈인데 우리도 뭐 해요!”라는 아쉬운 소리나 들으며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지역의 한 중학교 부속 건물에 마련된 ‘다가치학교’란 이름의 청소년자율활동 공간에서 ‘할로윈 파티’를 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역 아동들 누구나 오고 싶으면 오라고 초대까지 한 것이다. 차를 타고도 한참을 가는 곳이라 평일이면 아예 엄두도 내지 못 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토요일이고, 토요일은 늘 아이들과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참이라 “이번에는 할로윈 파티다”하고 반가운 마음에 소식을 전했다. 더욱이 파랑새의 고학년 친구들 대여섯 명은 다가치학교에서 ‘놀벤져스’라는 프로젝트형 활동에 참여하고 있던 터라 어차피 아동들을 인솔하고 다녀와야 하는 길이기도 했다. 다른 토요일 같으면 하다못해 실습생이라도 있어서 아이들 인솔을 부탁했을 터지만, 그 날은 공교롭게 혼자서 근무를 해야 할 상황이 되어 다가치학교는 어쨌든 다녀와야만 할 상황이기도 했던 것이다.
아이들도 저 좋은 날이면 당연히 더 모여든다. 정확한 유래나 풍습은 모르지만 분장을 하고 사탕을 받는 날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어서 할로윈 파티란 말을 입 밖에 내자마자 아이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게 저 좋은 것도 좋지만, 남이 좋아하는 것을 보는 것에서도 못지않은 기쁨을 얻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 토요일에 할로윈 파티 가요? 정말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뭐가 그리 좋은가 싶으면서도 실은 나도 좋았다. 아니 점점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들께 부탁을 드려 보자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다이소 같은 저렴한 잡화용품점에서는 할로윈을 겨냥해 그럴듯한 것들을 팔기 시작한 줄 안다. 하지만 그냥 보자기를 모아서 아이들과 함께 망토도 만들고, 드레스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못하는 재봉질을 부랴부랴 배우고 손바느질까지 더해 전날 새벽까지 열 벌도 넘는 망토를 지었다. 보자기 두 개를 겹치고 끈만 매다는 간단한 수준의 만들기지만 일이 서툴고 재봉틀도 낡을 대로 낡은 것이어서 그마저도 새벽 참에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도 그런 식으로 흥분하고 설레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무도 오늘 하루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그날의 태양이 떠올랐다. 날씨도 화장한 날 첫 수업은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공원에서 ‘찾아가는 놀이터학교’란 이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족히 20여 분은 넘게 걸어야 하는 공원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오전 9시 30분쯤 아이들과 구청 앞에서 만나 그곳까지 함께 걸어가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차를 타지 않는 것이 훨씬 안전하므로 어지간한 거리는 걷을 수 밖에다.
아침나절에 모인 아이들이 20여 명이 다 되어 간다. 안전도 그렇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방해도 될 수 있으니 일단 두 명씩 짝을 짓고 줄을 세워 함께 걸어가기로 한다. 하지만 두 명씩 만족스럽게 짝을 맞추기란 너무도 어렵다. 그래서 올해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는 문제도 ‘어떻게 짝을 지을 것인가?’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어른들 사회에서도 너무도 고민스러운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겨우 짝을 맞추고 걷기 시작한다. 이때 교사가 대열의 맨 앞에 서서 아이들을 이끌지 아니면 뒤에서 아이들을 따를지 잠시 고민이 앞선다. 이 두 경우는 각각 ‘척후파’와 ‘후방파’라고 나누어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갈 곳이 많은 바쁜 날이나 길을 잘 모를 경우에는 그래도 척후파가 낫지 않을까 싶다. 교사가 둘만 되어도 고민할 일도 못 되지만, 한 명밖에 없는 날에는 그마저도 심각한 고민거리다. 일단 오늘은 척후파로 가기로 한다. 척후병처럼 앞에서 아이들을 이끌 때면 절대 앞으로 나오지 말고 뒤를 잘 따라오라고 이르고 출발한다. 그러면 뒤에서 잠시 후부터 난리가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앞에서는 길을 찾느라 정신이 없어 때로는 제대로 뒤를 살피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사전 답사 등이 부족한 채로 일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왕왕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 살피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마음만 바쁘지 실은 그리 효과적인 방식도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인솔해야 하는 날에는 툭하면 소리를 지르게 된다. 대부분 “애들아 빨리 와”하고 재촉하는 소리다. 특히 건널목 등에서는 목청을 올린다. 그러면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거나 언짢게 바라볼 때도 있다. 20~30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진풍경이라, 그 앞에서 냅다 소리를 질러대는 교사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정말 무안한 일이다. 물론 지적을 당한 아이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럴 때 화들짝 놀라서 얼른 달려와 주면 말은 안 하지만 고맙기 그지없다. 대부분은 “왜 나만 갖고 그래요?”로 언짢은 마음을 표현한다. 언짢아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삐쳐서 아예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공연히 마음만 바빠서 혼자서 서두르다가는 일을 더 그르치기 십상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그랬다. 10시에 시작하는 줄 알고 서둘러 가느라고 뒤에서 늘어질 대로 늘어져 천천히 따라오고 있는 아이를 “얼른 오너라” 하고 재촉하는 소리를 질렀는데, 아이 기분이 냅다 나빠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는 목적지에 도착하고부터 아프기 시작한다. 제 말로는 어젯밤 어머니께서 핫도그를 전자렌지에 넣어 두고 깜박 잊었던 것을 아침 식사로 먹고 와서 그런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나대로 나 때문은 아닌가 속이 상한다. 어쩌면 몸이 안 좋아서 잘 따라오지 못했을지도 모르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마음에 그런 것도 살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자책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곤 정신없이 간호를 하다, 프로그램 진행을 보조하다 짬을 내어 점심 먹을 장소를 찾아 주변을 헤매기 시작하였다.
평소의 토요일보다 서넛이 늘었을 뿐이지만 아이들은 20명을 훌쩍 넘어 서고 있었다. 점심은 가까스로 주변의 어지간한 중국집을 찾아내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꺼번에 20여 명이 자리를 잡는 건 어려운 일이어서 다른 손님들과 합석도 하고, 의자를 구해오고 난리를 친 후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짜장면 하나로 통일할 수 있어서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한 실습생은 20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햄버거 가게에서 각자의 것을 주문하고, 각자의 햄버거를 찾아 근 30여 분간 난리를 치는 것을 본 후 문화적 충격이 작지 않았다고 후일담을 전해오기도 했다. 게다가 그런 일이 한두 달에 한 번만 되어도 애교로 넘어갈 수 있다. 한두 명이 일할 수밖에 없는 토요일마다 놀 거리, 먹을 거리, 배울 거리를 어김없이 마련한다는 것은 때로는 정말 적지 않은 스트레스다. 그중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이동에 대한 스트레스다. 특히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야 할 상황이 되면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특히 타고 내릴 때는 특히 그렇다.
그 날은 중간 정거장에서 3명을 더 태워야 할 상황이었다. 3명을 무사히 태우고 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또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내려야 할 정거장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다. 남 탓을 할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도 미리 정거장을 일러주었고 몇몇 아이들은 매주 가는 곳인데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내려야 할 정거장 근처에서 오늘 참석을 못 한다는 다른 아이 어머님의 연락을 받고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이를 어쩌지?’ 하는 사이에 서너 정거장이 또 훅 지나가 버렸다. 원래는 하루에 3곳을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아침 한나절을 치르고 진이 다 빠져 한 곳은 빼먹기로 했었는데, 귀신같이 그곳 근처에서 내리게 되었다. 염치가 없어 차마 말은 못 하고, 마치 처음부터 갈 마음이 있었던 마냥 행사장으로 아이들을 이끌었다. 세상에! 까마득한 계단 저 위쪽에 있는 행사장을 뻘뻘 힘을 들여 올라갔더니 행사는 이미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어 파장 분위기가 역력했다. 아이들도 별 볼 것이 없으니 그냥 가자고 성화를 하여, 고분고분 말을 듣는 것처럼 힌 번 휘 둘러보고 바로 나왔다. 그나마 행사라고 분장을 한 사람들이 아이들의 흥미를 잠시 끌어주어 불평이 덜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엉뚱하게 길을 잘못 들어 고생을 더 하고, 행사장에 핸드폰을 놓고 온 아이가 생겨 부랴부랴 다시 행사장을 들렀다 와야 했다. 할로윈이고 뭐고 모두 기력이 다 빠져 일단 원기보충용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아이스크림조차 원하는 것이 원하는 수만큼 있어 주질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하여 약속 시간을 조금 넘겨 겨우 마지막 장소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그날 밤 소식에 비하면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코웃음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드디어 할로윈 파티장! 아이들은 망토를 펄럭이며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다. “이제 그만 갈까?” 몇 번 찔러봐도 절레절레다. 조금만 더 있다 간단다. 그러다 고학년 아이들 몇이 6시 30분부터 시작하는 특별 파티 시간에 꼭 참석을 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손을 모은다. 하지만 5시를 넘기면서 저학년 아이들의 인내심은 차츰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위의 어둠이 짙어가기 시작하자 흥도 한풀씩 꺾여간다. 묻지 말고 때맞추어 돌아갈 결정을 내렸어야 했는데, 괜히 사람 좋은 척하다 때만 놓쳐 버렸다. 6시가 다 되어가자 몇몇 아이들은 더 싫은 티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벌써 마음을 빼앗긴 고학년 아이들은 가자는 소리가 나올까 봐 기겁을 한다. 그저 자신을 탓할 밖에다. 그나마 부모님들께 계속 상황을 설명해드리고 있었던 참이라 몇 분이 퇴근길에 인솔을 도와주겠다고 와주셨다. 그 덕에 아이들 반쯤을 덜어내고 나니 비로소 집에 갈 용기가 생겨났다. 물론 마지막까지 한 아이가 버스 요금함에 교통카드를 떨어뜨리는 안타까운 실수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쯤으로 하루가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하루가 좀 사납다 싶어 집이 좀 먼 아이 둘을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센터로 복귀하여 마무리를 하고 나니 9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정말로 사나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2. 그 날부터….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내 계속되는 뉴스를 보면서 점점 더 충격이 실감되기 시작했다. 고인과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소식은 발밑을 무너져내리게 하는 충격이 되어 다가왔다.
그러면서 아무에게도 말은 안 했지만 ‘어쩌면 우리도…’ 하는 현실적 공포가 새삼 몰려왔다. 공연한 소리를 한다 나무랄 수도 었겠지만, 우리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은 늘 기웃거리고 있기에 하는 소리다. 더욱이 참사가 일어난 곳은 사람들이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니는 골목길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안전하지 않은 징후들이 보이곤 했다고 하지만, 서울은 사실 그런 곳들이 적지 않다. 그런 곳에서 게다가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니 삶의 기반이 죄 뒤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날 나도 하루 종일 25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함께 저녁이 다 되도록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여기저기 길을 헤매고 돌아다녔는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망토가 든 가방을 서너 개나 들고 있다가 결국 하나는 잃어버리기까지 했는데, 그런 것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었다. 그래도 아무도 그렇게 하라고 한 일이 아니어서 더한 일이 벌어져도 누구에게도 하소연조차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누가 너보고 거길 가라고 했냐, 누가 너보고 그렇게 하라고 했냐?” 일이 터지면 그런 소리나 들을 게 뻔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맞다고 다시금 증명이라도 하듯 사고인지 참사인지 설왕설래가 많다는 소식이 뒤를 이었다.
생각해 보면 언젠가부턴 또 ‘설마…’하며 살아온 게 사실이다. ‘이 정도 조심하면 되겠지..’하면서 대충 생각하기도 했다. 특히 안전은 개인과 사회 모두가 함께 신경을 써야 할 것이므로 사회도 우리를 충분히 보호해 주리라 또 그렇게 믿었었다. 그래서 바다가 아닌 땅 위에서는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적당히 조심하면 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해 왔다. 아직은 ‘조심에 또 조심’이 충분히 몸에 배지 않아 툭하면 긴장감을 놓쳤다. 물론 개인 탓만을 하는 게 옳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사회가 그런 줄 알면 스스로 더 조심해야 한다면서 생각은 자꾸 스스로를 책망하는 쪽으로 흘렀다.
그래서 토요일에도 꼭 필요한 아이만 센터에 나오도록 아이들 수를 제한할 생각을 왜 못 해봤냐고 자신을 나무랐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만 핑계 대며 교사 혼자서 몇 명이나 되는 아동들을 돌보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그냥 두도록 한 스스로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다녔던 생각을 하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혼자서 아이들을 인솔할 때 들었던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설마…’하고 다녔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진땀을 빼면서도, 우리도 보고 싶다는 마음만 내세워 무리를 하기도 하였다.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은근히 우습게 생각한 사람이나 기관도 있었다. 정작 일이 벌어지면 감당도 못 할 거면서 그렇게 살아왔었다.
한 달에 30만 4천 원을 주면서 이것으로 토요일 운영은 알아서 감당하라는 정부의 방침이 쉽게 바뀌질 않으리란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종사자가 2~3명 밖에 없는 지역아동센터들이 차라리 토요일 운영을 안 하는 것이 어쩌면 현실적인 답일 수도 있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운영을 하지 말라는 주위의 권고가 적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고민도 하고 있는 참이다. 부모님들과 아동들의 요구가 간절하다고 생각하여 아직은 이러고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마음을 내어주는 교사들이 있어 아직은 이러고 있지만 현실은 늘 “누가 너희더러 하라 그랬니?” 이런 소리나 듣는 것만 같아서 참 뒷맛이 씁쓸하다.
그러게… 누구 말처럼 다정도 병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던 대로만 하고 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망설여지는 한 자락이 남아 있어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제 일상은 재난과 재난 그 사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아직 어떤 것들을 제대로 우리의 책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럴 때 개인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이 이번 참사의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9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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