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할 수 있어요 – 지적장애학생들의 고군분투 한글 해득기

by gyobasaNPO | 2022-11-16 15:19

1. 안 된다는 믿음

 

지적장애학생들은 작업기억의 결손 및 주의력의 부족으로 인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수교사로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안 될 것이다.’라는 믿음이 더 커지기도 한다. 학부 때 배웠던 통글자 지도방법을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친숙하고 흥미 있는 단어를 지도하더라도 스스로 글자를 읽는 학생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활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놀이도 적용해 보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의 한글해득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몇 년 전 사랑이(가명)를 만났을 때, ‘사랑이가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할 때까지 한글을 읽게 된다면 내가 정말 대단한 교사’라고 생각했다.

 

사랑이는 지능 45점 정도에, 발음이 부정확한 학생이었다. 사랑이가 ‘화앙시 가고 시어요.’라고 말할 때면, 여러 번 다시 되물어야 화장실이라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사랑이를 1학년 때 처음 만나고, 기본교육과정과 공통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친숙한 단어를 따라 읽도록’ 하거나, ‘단어를 따라 쓰도록’ 했었다. 그림카드와 단어카드로 여러 날 연습을 하고, 한 학기 동안 가르쳤다. 하지만 사랑이는 아빠라고 쓰인 글자를 보고 빠아, 빠아라고 보고 썼다. 이렇게 쌓여가는 실패로 인해 나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2. 할 수 있다는 경험

 

한글 지도 중에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다가, 우연하게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에서 진행하는 ‘한글지도방법’ 연수를 듣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발음중심 지도방법’과 ‘읽기자신감’이라는 교재를 알게 되었다. ‘읽기자신감’은 입모양을 활용하여 글자의 ‘소릿값’을 지도하는 교재이다. 신기하게도 입모양만 보면, ‘아, 어, 오, 우, 으, 이, 에, 애’ 모음의 소리가 바로 생각났다. 학교로 돌아가 사랑이에게 입모양을 보여주고, 소리를 내보도록 했다. 다른 읽기 교재로는 시도조차 하지 않던 사랑이가 입모양을 보고 소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치 ‘보물찾기’ 하듯이 모음의 소리를 하나씩 모아갔다. 사랑이가 모음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글자를 예쁘게 색칠해서 우리 반 뒤에 게시해 두었다. 사랑이가 처음 모음을 모두 읽고 ‘아아어어’, ‘오오우우’, ‘이이어어’라고 정확하게 읽었을 때 반 아이들 모두가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 날이 우리 반의 잔칫날이었다. 모음을 모두 배우는데 1학기 정도 걸렸지만 그 이후로 자음을 배워가면서 사랑이에게 큰 변화가 생겼다. <그림 1>에서처럼 자음과 모음을 알고 난 뒤부터, 자음과 모음을 합성하여 받침 없는 글자와 단어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읽어내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지적장애학생의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전이와 일반화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림 1> 사랑이의 한글 평가 결과

사랑이의 변화는 ‘한글읽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학년 때만 해도 발음이 좋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사랑이의 말을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한글을 입모양을 통해 ‘발음중심’으로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발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1학년 때 사랑이 담임선생님도 사랑이의 변화가 정말 놀라웠다고 설명했다.

 

“사랑이가 1학년 때는 문자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발음도 부정확하여서 화장실 가겠다는 말도 몇 번 확인해야 알았는데. 2학년이 된 지금은 문자를 지각하여 읽고, 발음이 정확해서 좀 더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가 1학년 때 글을 못 읽고 말도 잘 못하니까 많이 주눅 들어 있었는데 이제는 눈에 띄게 밝아지고 정말 많이 발전한 것 같습니다.”

[사랑이 1학년 담임교사]

 

사랑이는 3학년 2학기가 될 무렵 한글을 해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동화책을 펴서 읽고, 처음 본 책을 모두 읽었다. 그리고 나에게 ‘선생님 비녀가 뭐예요?’라고 질문도 했다. 한글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읽기’를 넘어 학생의 삶을 변화시켰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혀주는 귀한 선물이 되었다.

 

 

3. 쌓여가는 증거들

 

사랑이의 한글 읽기 지도 이후, 어떻게 지도해야 지적장애학생에게도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지적장애학생일지라도 낱자의 소릿값을 입모양이나 다감각적 방법을 통해 지도하고, 자모를 합성하여 읽는 방법을 통해 처음 본 글자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이 지도 후에는 4명의 지적장애학생을 대상으로 발음중심 방법을 통한 한글지도를 실시했다. 1, 2학기에 걸쳐 2단계 연구1를 진행한 결과 4명 중 3명의 학생이 받침 있는 단어수준까지 읽을 수 있는 ‘한글 해득수준’까지 향상되었으며, 사전검사에서 모음 아, 이 2개만 알고 있던 학생은 받침 없는 단어 수준에서 100% 정확도로 읽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학생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읽기에 대한 자원이 쌓이면서,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다. 수업 시간에 5-10분도 앉아있기 힘들어하던 학생이 처음 한글 모음을 모두 읽더니, 스스로 칠판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고, ‘선생님, 한글 공부해요!’라고 제안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을 통해서도 가정에서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A가 요즘 간판도 몇 개 읽길래… 글밥 적은 동화책을 읽어 봤습니다. 1문장 정도 글이 들어가 있는 것이요. 그랬더니 받침 없는 것은 제법 읽더라구요! 온 가족이 축구 골 넣은 것 마냥 기뻐했습니다. 본인도 으쓱하더라구요.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2018년 7월 13일 학부모 면담]

 

이러한 변화는 우리 학급에만 그치지 않았다. 여러 선생님들이 발음중심 지도방법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면서 많은 지적장애학생들에게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요르단으로 코이카 교육봉사를 가 있던 동료 선생님의 사례이다. 동료선생님께서 우연히 요르단에서 지적장애가 있는 한국 학생을 지도하게 되었는데, 한글지도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지 부탁해왔다. 먼저 해당 학생의 사전검사부터 진행했다. 한글과 단어, 글 수준 읽기에 대한 검사였다. 안타깝게도 해당 학생은 연령은 중학생이었으나, 오랜 해외 생활로 한글을 배울 기회가 매우 적었기에 모음 수준 읽기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렇게 동료 선생님께 온라인으로 찬찬한글 등의 교재를 보내주었고, 선생님 스스로 읽기자신감을 해외 특송으로 구매하여 학생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1년간의 지도를 통해 한글 읽기 정확도가 향상되었다. 모음 80%→100%, 자음 78.5%→100%, 받침 없는 글자 28.5%→100%, 받침 없는 단어 30%→100%, 받침 있는 단어 0%→100%, 문장 읽기 14%→77%, 쓰기 0%→85%로 받침 있는 단어까지 스스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한글 읽기에 어려움을 겪던 지적장애학생에게도 이러한 방법이 한글 읽기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또 다른 예로 A 교육청 교사 대상으로 한글 문해교육 전문가과정을 실시한 뒤 지도 학생에 대한 사전-사후 결과를 확인하였다. 이때 교사들이 지도한 학생 중 지적장애 및 경계선 지능의 학생이 전체 70%를 차지하였다. 해당 학생들의 사전-사후 결과는 <표 1>과 같다.

 

<표 1> 지적장애 및 경계선지능학생 한글검사 사전-사후 결과

사전 사후 사전–사후
변수 N M SD M SD M SD Z p
한글해득

수준검사

11 49.55 22.21 82.73 7.34 33.18 21.85 -2.936b** .003
KOLRA

해독원점수

11 21.27 18.47 48.82 15.40 27.55 17.18 -2.845b** .004
KOLRA

해독표준점수

11 28.55 28.37 73.36 23.53 44.82 27.02 -2.845b** .004
KOLRA

유창성원점수

11 8.87 9.73 15.25 10.40 6.37 4.83 -2.845b** .004
KOLRA

유창성표준점수

11 55.27 17.75 65.73 13.88 44.82 27.02 -2.756b** .006

 

지적장애 및 경계선 지능 학생은 모두 11명이었고, 사전-사후 결과는 비모수검정인 wilcoxon 부호-서열 검정을 통해 확인하였다. 한글해득 및 한국어읽기검사(KOLRA)의 검사 해독 및 유창성 소검사에서 모두 P 값이 유의수준 .01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향상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주목할 점은 한국어읽기검사(KOLRA)에서 표준점수 70 이하를 심각한 지체로 판단하는데, 사후 검사 결과 단어수준 읽기인 해독의 표준점수에서 평균 73.36점으로 더 이상 심각한 지체 수준이 아닐 정도로 향상된 것이다. 해독 표준점수는 사전 28.55에서 사후 73.36으로 총 44.82점이 향상되었다. 이렇게 많은 증거들을 통해 지적장애학생일지라도 한글을 체계적으로 지도한다면, 충분히 읽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적장애 학생의 삶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 찬찬히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할 수 있어요!

 

발음중심 한글지도방법으로 지적장애학생들을 지도했던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시간이 걸리지만, 찬찬히 체계적으로 지도하면, 지적장애학생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지적장애학생들에게는 스스로 읽는 방법을 지도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평소에 많이 쓰는 기능어 위주로 재미있고, 실제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한글은 초성 19개, 중성 21개, 종성 27개만 알고 나면 이를 조합하여 11,172자를 읽을 수 있는 문자이다. 따라서 낱자의 소릿값을 알려주면 단순히 친숙한 단어 몇 가지를 외우는 것보다, 읽을 수 있는 단어의 수가 훨씬 많아지는 것이다.

 

실제로 자음과 모음의 창제원리를 통해 낱자-소리 관계를 지도하면 지적장애학생들도 그 원리를 이해하고,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자음 ㅋ는 ㄱ보다 바람이 많이 나오므로 획이 추가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ㅂ는 바람이 적게 나와서 획이 작게 추가되어 있다. 이러한 원리를 깨닫게 되면, 아래 <그림 2>와 같이 자음과 모음의 소릿값을 정확히 알게 되어 글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된다.

 

<그림 2> 자음 가획의 원리를 반영한 글자 지도

그리고 지적장애학생들의 한글지도 시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반복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보니 발음중심 지도방법으로 지도할 때 학생들이 기계적으로 따라하다 보면 흥미를 잃을까 걱정하는 교사들도 많다. 하지만 한글지도 시에 다양하고, 재미있게 반복 연습할 방법은 많이 있다. 특히 학생들에게 입모양을 활용한 카드놀이를 지도하거나, 소릿값을 바람의 세기, 힘의 세기, 몸으로 나타내기 등 다감각적으로 낱자의 소릿값을 지도할 수 있다. 또한 땅따먹기, 주사위 던지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모음 합성을 반복 연습할 수 있다.

 

<그림 3> 다양한 방법을 통한 한글 지도 방법

마지막으로 지적장애학생들에게는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계적으로 지도하기 위해서는 한글의 모음부터 지도 후 자음을 조음위치별(예: ㄱ,ㅋ,ㄲ)로 지도하고 자음과 모음을 합성하여 읽도록 지도한 뒤, 이중모음과 받침까지 지도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단어 수준 읽기와 쓰기까지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조음위치별로 지도하면 지적장애학생들이 비슷한 소릿값으로 혼동하지 않느냐는 우려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음의 경우 소릿값의 특성에 따라 가획의 원리(바람이 추가되면, 글자의 획도 추가), 병서의 원리(힘을 세게 내는 소리는 글자가 2개로 되어 있음)가 반복적으로 적용된다. <그림 3>2과 같이 자음의 가획의 원리와 병서의 원리는 ㅁ,ㅂ,ㅍ,ㅃ 뿐 아니라 ㄴ,ㄷ,ㅌ,ㄸ/ ㄱ,ㅋ,ㄲ/ ㅅ,ㅆ,ㅈ,ㅊ,ㅉ/ ㅎ에도 모두 적용된다. 2개의 원리가 계속 반복하여 적용되는 것이다.

 

<그림 3> 한글 자음의 창제 원리

그래서 지적장애학생 4명을 지도했을 때, 초반에 ㅁ,ㅂ,ㅍ,ㅃ을 학습하는데 약 6회기 정도 소요되었으나, ㄱ,ㅋ,ㄲ은 4차시, ㄴ,ㄷ,ㅌ,ㄸ은 3차시로 점차 지도 회기가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적장애학생일지라도 한글의 원리를 한번 깨달으면, 그 후부터 조음위치별 낱자-소리 대응관계를 배우는 것이 쉬워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체계적인 지도내용을 반영한 [찬찬한글]과 [읽기자신감]을 활용할 수도 있으므로, 현장에서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지적장애학생이기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찬찬히 체계적으로 학생들이 알 수 있게 반복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학급에서 멈추지 않고 각 교육청의 교사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더 많은 교사들이 지적장애학생들이 한글을 읽을 수 있도록, 이를 통해 평생 활용할 수 있는 읽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발음중심 지도방법을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1. 정가희, 이대식 (2019). 파닉스 중심 한글읽기프로그램이 지적장애학생의 한글읽기에 미치는 효과에 관한 사례연구. 지적장애연구, 21(1), 143-173.
  2. 찬찬한글(2017, 교육과정평가원), 찬찬한글 사례집(2019, 경기도교육청)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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