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2-11-16 10:55
[기획칼럼 – ‘2028 대입제도’]
이 기획칼럼은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다루며, 격주로 연재합니다. 구태에 갇힌 ‘개편’ 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공론의 길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교육을 ‘술책의 게임’으로 전락시켜 온 대입제도를 되짚으며, 학교와 교육의 의미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 [요약]
현재 진행 중인 대입제도 개편 작업이 뜻있는 결과를 낳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고 정리한다. 내신 평가가 절대평가 쪽으로 조금 기울거나 수능의 과목 구성이 지금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기본 틀이 유지되는 한, 학교 교육이나 대입전형의 속성이 달라지는 바는 거의 없으리라고 예견한다. 개편을 시작하게 만든 취지에 충실할 경우 국가시험과 학생부를 조합하는 전형과 같은 다소 급진적인 대안이 나올 수도 있지만, 정부는 후폭풍을 겁내서 그런 수준의 시도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의 한계
앞서 세 꼭지의 글로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이 어떻게 갈지 예견했다. 요컨대 큰 변화가(더욱이 혁신적인 변화는) 없으리라 전망했다. 했던 전망은 간략하게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수시의 학생부 위주 전형과 정시의 수능 위주 전형이라는 대입제도의 핵심 구도에 변화가 없을 것이다.
② 정시 모집 인원을(적어도 ‘주요 대학’에 대해서) 늘리라는 압력이 계속 작용하여 정시 비중이 커질지 모르나, 그렇더라도 증가는 대단하지 않을 것이다.
③ 수시의 학생부 위주 전형과 논술 위주 전형에서 실감이 클 만한 변화가 일어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충실히 추진하려 든다면 ‘성취평가제’(이른바 절대평가)가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학생부 위주 전형의 외연에 큰 변화가 없더라도, 안으로 학교와 학생에게 꽤 큰 파장이 미칠 것이다. 논술 위주 전형은 그 전형 방식이 타당해서라기보다는 부차적인 이유1로 유지돼 온 점이 있기에, 그런 삿됨을 정리할 수도 있다.
④ 수능 체제에도 괄목할 만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나마 생긴다면, 피하기 어려운 두 과제에 관련해서 일어날 것이다. ‘문·이과 통합’ 논란을 조율해야 하는 과제와 ‘탐구 영역’의 선택 구도를 재구성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 과제를 다룬다고 수능 성격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은 매우 요란스러울 수 있다.
⑤ 수능 문제 유형에서도, 교육부가 그동안 서·논술형 도입 얘기를 많이 했지만, 변화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에 크게 기대할 게 없으리라고 예견한 데 대해 교육부는 좀 달리 생각할 것이다. 변화가 있더라도 사소한 데 그칠 것이라고 여기에 정리했지만, 교육부로서는 그런 변화가 사소하지도 않고 실지로 이루어내기도 매우 어렵다고 항변할 수 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사실, 위에서 일어날지 모른다고 적은 변화만 만들어 내려고 해도 교육부로서는 꽤 큰 소란을 견뎌 내야 할 것이고, 전형의 성질상 작은 변화라 해도 학생(학부모)이나 학교(대학)에 미칠 영향은 작지 않을 터여서 반향도 버텨내기 만만찮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론을 겁내는 정부라, 그리고 개편 자체만으로도 사회적인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지 않겠기에,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개편에서마저도 소극적으로 움직일지 모른다.
실지로 제도 변화가 어느 정도로 일어나건, 위에 적었듯이, 이번 개편 과정에서 적어도 두 가지 현안을 비껴갈 수는 없다. 학생부 위주 전형과 관련해서 내신 평가 방식을 새롭게 결정해야 하고, 수능에 관련해서는 시험 과목들을 새롭게 짜야 한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이 교육과정 개정과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대입제도가 적어도 새로운 교과 편성과 평가 양식에 조응하도록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학생부와 수능의 기본 틀을 건드리지 않을 게 거의 확실하다면, 남아 있는 변화 여지는 그 각각의 틀 내부를 교육과정 변화에 맞게 조정하는 데 있다. 그 과정이 어떨지 그려 보면서 변화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갈지 짐작해 보자.
학생부 쪽에서는 내신 평가가 ‘절대평가’ 방향으로 살짝 움직이는 정도
먼저, 학생부와 관련해서 교과(내신) 평가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 보자.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십분 살리려 한다면 교육부는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주요 교과2에까지 확대 적용하려고 들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 크게 두 문제를 처리해야 할 것이다. 내신 평가에서의 부패 문제와 고등학교 ‘서열화’ 문제이다. 이 문제들은 우리 사회가 전에도 경험했고 논란했었다. 전자는 기본적으로 학교와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로, ‘내신 부풀리기’라고 손가락질 됐었다. 학생들의 대입 경쟁력을 높여주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학생에게 높은 등급(성적)이 돌아가도록 평가에 ‘물을 타는’ 등의 행태가 학교에서 자행될 수 있다는 것인데, 여전히 우리는 이런 우려를 떨치지 못할 것이다.
후자의 문제는 현재 논란 중이어서(특히, 정권이 바뀌어서 이전 정책을 뒤집는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말들이 돌고 있어서3) 사회적으로 더욱 예민한데, 이른바 고교체제 문제 또는 자사고·특목고 문제라고 거론되는 것이다. 소위 우수 학생들이 몰린다는 자사고와 특목고에 재학하는 것은 내신 평가가 ‘상대평가’ 방식으로 이루어질 때 대입에 불리하다고 여겨진다. 우수한 학생들끼리 서열을 다퉈야 하므로, 우수한 학생이 적은 학교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신이 절대평가로 처리된다면 상황이 바뀐다고 여기게 된다. ‘우수 고교’에 다니는 것이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일반’ 고등학교에 비해 성적을 올리는 데 유리할 뿐만 아니라, 절대 점수에 따라 평가받으면서 학교 안에서의 순위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내신 불리’ 문제가 사라진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계산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성취평가제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면, 자사고·특목고로의 진학 경쟁에 불이 지펴질 수 있고, 필경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리라 짐작해야 할 것이다. ‘좋은’ 학교와 일반 학교의 격차도 더욱 벌어져 ‘고교 서열화’라는 골칫거리도 다시 부상할 수 있다.
서열화 문제는 자사고·특목고에 국한되지 않고 더 번질 수 있다. 이른바 우수 학군의 학교들에 대해서까지 일반화될 수 있다. 서울 같은 경우, 대학 진학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한다는 말들이 떠돌기도 할 것이다. 결국 ‘우수 학생’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학교들이 무너진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된다. ‘일반고 황폐화’라는 말이 그런 맥락에서 나왔었다. 교육부는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성취평가제를 확대 적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이나 반향을 감안하면서 선뜻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자사고·특목고의 ‘일반고 전환’ 결정을 놓고 논란하는 와중이어서도 그렇게 짐작되고, 사교육비 증가에 더없이 예민한 정책 관성을 감안해도 그렇게 보인다. 그렇기에 성취평가제를 확대한다 해도 기존 상대평가 양식과 병행시키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앞서 예견했듯이, 결국 명목적인 개편에 그치리라 전망하게 된다. 그래도 예견이 빗나갈 가능성은 늘 열려 있고, 앞으로 정부 움직임을 지켜볼 포인트이다.
수능에서는 ‘공통+선택’ 구조를 폐기하거나 탐구 과목을 재구성하는 정도
수능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우선, 현재 국어와 수학의 이른바 ‘문·이과 통합형’ 양식을 손본다고 치자. 그런 시도가 일어난다면 아마도 ‘문과 침공’이라는 말로 통념적인 이목을 끈 이슈 때문일 것이다. 언론 매체들이 거듭 떠들고 있듯이, 수학에서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흔히 ‘이과’로 분류되는) 수험생들이 ‘확률과 통계’를 선택한(‘문과’로 분류되는) 수험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2022학년도부터 시행된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실패했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어 왔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점수를 얻은 이과생들이 문과 모집 단위에 지원하여 문과생들을 몰아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피상적이고 과장된 데가 있다.4 그렇지만 세간의 수긍을 바탕으로 이슈는 뜨거워졌고, 교육부는 이 논란을 못 들은 체하지 못할 것이다.
단순하게 이 문제만 본다면, 대응은 두 방향 가운데서 찾게 될 것이다. 문과 이과 시험을 이전대로 분리해버리는 방향과 선택을 통한 구분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는 방향이다. 이를테면 수학의 경우, 예전처럼 ‘가형’ ‘나형’을 구분하거나, 지금의 ‘선택’을(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을) 없애 하나의 ‘수학’ 과목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교육부가 이번 개편에서 시도한다면 후자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이니 인공지능이니 하며 수학의 ‘일반적인’ 중요성을 띄워 온 마당에 정책을 문·이과 분리 쪽으로 몰고 가기는 앞뒤가 맞지 않다고 여길 듯하다. 물론, 현재의 구분을 그대로 두는 덜 시끄러운 대안에 머물 가능성은 늘 있다.
만약에 교육부가 통합을 시도한다면 물론 시끄러운 조정 단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에도 다툼이 격렬했던 것처럼,5 통합할 때 이익이 침해된다고 여기는 집단에서 만만찮게 반발할 것이다. 이를테면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등의 영역은 현재 선택 체제에서 독립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수학이 하나의 시험 과목으로 통합된다면 현재의 지분을 유지하기 어려우리라고 계산할지 모른다. 통합 쪽으로의 개편에 강하게 저항할 수 있다. 그런 저항은 ‘탐구’(사회, 과학, 직업) 영역과 제2외국어/한문 영역을 재구성하려고 할 때 더욱 거칠게 일어날 것이다.
문·이과 구분을 지양하여 ‘통합적인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교육부가 여전히 그런 구호를 견지하려면, 수능의 선택 과목 구도를 비교적 크게 개편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수학이나 국어에서 공통-선택의 구분이 없는 통합을 시도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탐구 영역의 선택에서 전통적인 문·이과 경계가 무너지도록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하려면 끝내는 시험의 수준을 ‘기초’ 쪽으로 다소 낮추어야 할 것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용어로 말한다면, 시험 과목을 ‘진로 선택’ 쪽보다는 ‘일반 선택’ 쪽에 축을 두고 구성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문과든 이과든 특정한 진로를 염두에 두고 이수하게 되는 교과가 ‘진로’ 선택이라면, 소위 문·이과 통합은 그 이전(즉, ‘일반 선택’) 단계에서라야 이치에 맞게 된다.
이를테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수학의 미적분Ⅱ, 기하, 경제 수학 등이 ‘진로 선택’ 범주에 들어가 있고, 사회에서는 정치, 경제, 법과 사회 등이 그 범주에 속하며, 과학에서는 역학과 에너지, 화학반응의 세계, 생물의 유전 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이런 과목들을 수능 출제 범위에 포괄하려면 시험 과목을 무리하게 늘려야 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과목을 늘어놓은 체제에서 지금처럼 2개 과목 정도를 선택하도록 한다면, 새로운 교육과정이나 고교학점제는 바로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물론, 수능이 이제까지처럼 대학의 모든 모집(전공) 단위에서 최종 전형 자료로 기능하도록 하려면 진로 선택 수준의 교과들을 시험 범위에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가는 경우 ‘통합 수능’이나 ‘선택 중심’ 교육과정과 같은 정책 지향은 희생시켜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수능 선택 과목을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일반 선택’ 수준에 맞춰 구성하려고 들 때, 불만을 터뜨리며 저항할 집단은 무수하다. 지난 수능 개편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학, 과학 분야를 약화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이 거듭될 것이고, 사회 탐구 영역에서 소외될 수 있는 분야의 저항은 더욱 거셀 것이다. 만약 제2외국어/한문 영역까지 포괄하여 수능 재구조화를 시도한다면 그 모든 분야까지 저항에 가담해서 개편 과정은 매우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과연 교육부가 이런 성가실 길을 가려고 할지 모르겠다. 가능하면 피하려 할 듯하다. 위에서 혹시 하며 여지를 두었던 개편 가능성마저도 실현되기는 끝내 어려울 수 있다.
제도 개편 취지를 그나마 살리려 한다면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에 핵심적인 주체인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혁신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교육부는 교육과정 개정이나 고교학점제 추진 과정에서 대입제도를 함께 궁리하며 준비해 오지 않았기에 혁신의 의제를 갖고 있지도 않을 듯하고, 남은 개편 논의 과정에서 공론이 ‘큰 목소리’가 불거질 정도로 뜨거워지는 것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여론의 수면에 이미 떠 있는 쟁점들이나 무난하게 다루는 선에서 일을 치러내는 게 최선이라 여길 듯하다. 처음 내걸었던 개편 취지를 관철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이제까지 보아 온 것처럼, 공청회와 ‘국민 의견 수렴’과 같은 불가피한 절차를 의례적으로 밟으며 형식상의 정당성을 갖추는데 더 주력할 것이다.
특히, 교육과정 개정(고교학점제 도입)과 대입제도 개편의 시점 사이에 정권이 바뀌면서, 앞의 일에서 따라오는 개편에 대한 열성도 정치적으로 식어버린 국면이다. 최근 교육부장관의 언사도 이런 낌새를 보여준다. 교육부장관이 새롭게 취임했는데, 취임식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대입제도 개편이 ‘소극적으로’ ‘미세조정’ 하는 데 그쳐야 하리라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고교학점제의 의의가 사라지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고민은 된다’ 정도로 답했다고 한다. 앞선 글들에서 대입제도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해 온 예상이 다른 이유로도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개편에서 바람직한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여러모로 접어야 할 듯하다.
큰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전 글에서 미뤄두었던 ‘만약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라도 짚고 넘어가자. 이 가능성 이야기는 물론 실지로 일어나리라는 것도 아니고, 일어난다면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교육과정 개정과 고교학점제라는 선행 요인이 이미 주어진 상태라면, 그리고 교육부가 선행한 제도의 취지를 십분 살리려고 든다면 그나마 ‘합리적일’ 대입제도 대안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는 것일 뿐이다. 현재로서는 현실성도 떨어지고 또 많은 사람이 수긍하지도 않을 대안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그려 볼 때, 앞으로 멀리 보며 더 깊이 대입제도를 논의해 가는 데 필요한 시사를 얻을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그것을 고등학교에 적용하는 운행 틀인 고교학점제는 학교 교육과 관련해서 핵심적으로 두 가지 원칙을 견지하려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학생이 ‘공통과목’ 수준의 학업을 이루도록 뒷받침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나름의 진로를 추구할 수 있도록 교과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이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전자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편적이고 표준적인(국가) 준거로 전체 고등학생의 성취를 평가 관리하면서 모든 학생의 공통 준거 충족을 기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반면, 후자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국 획일의 교과 이수 체제나 성취 잣대를 거두어야 할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고유한 선택을 존중하며 진로를 안내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평가할 때도 역시 학생의 개성과 진로의 특수성을 감안해 줘야 할 것이다.
대입제도의 맥락에서 위 두 원칙을 받든다면, 대입전형이 두 수준에서(그렇지만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구안해야 할 것이다. 국가 수준의 표준 잣대로 ‘공통’ 단계의 성취를 평가하는 일과 대학 수준에서 개개인의 전공 준비도를 평가하는 일이 조합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수능과 같은 국가 수준 시험에서는 공통과정에서의 성취를 평가하고, 그 공통과정을 넘어선 학습과 활동에 대해서는 각 학생이 지원하는 대학의 모집 단위에서 개인에 고유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표준적인(국가) 시험으로 기본 역량을 평가하고 학생부로 진로(전공)에 관련된 준비도를 평가하는, 일종의 종합 전형 구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대안을 최대한으로 밀어붙인다면, 수능은 ‘자격고사’처럼 범교과적이고 표준화된 시험으로 바꾸는 데까지 가야 하고, 학생부는 전국 획일 체제를 폐기하고 학교와 교사 나름의 평가와 기록을 허용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 개편이 그렇게까지 간다면 과연 혁신적이라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6
이와 같은 대안은 구도로만 보면 사실 크게 새로운 게 아니다. 수능 개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미 거론되어 온 이원화니 자격고사화니 하는 대안들이 모두 비슷한 생각에서 나왔다. 수능을 기초(자격, 공통, 통합) 시험과 고급(대학별, 진로별) 시험으로 구분해야 한다거나(이원화), 아니면, 기초적으로 대입 자격만 평가하는 시험으로 새롭게 자리 잡아야 한다고(자격고사화) 하는 주장들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이때 전자의(수능 이원화) 대안은 학생들의 교과 선택을 구속하지 말아야 하는 고교학점제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한편, 후자의(자격고사화) 대안은 이후 최종 당락 결정은 어떻게 할지 열어두고 있는데, 보통은 대학 자율에 맡기자는 안을 전제하는 것이라 본다. 이 경우 대학이 이른바 본고사를 시행하는 데 대해서는 경계한다. 본고사의 폐해는 수능의 경우보다 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 전형에서는 고등학교 공통 성취 표준에(국가시험 성적에) 근거해 지원자를 평가하면서, 대학 진로(전공)에 대한 그들의 준비도는 개개인의 교과 선택 이수 양상을(학생부를) 근거로 평가하길 기대하게 된다. 고교학점제를 염두에 둘 때, 학생부 전형이 아닌 ‘대학별 고사’를 도입하는 것은 용인되기 어렵다.
이런 대안을 채택할 때 ‘후폭풍’이 막대하리라고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고등학교에서의 내신 부풀리기나 고교 서열화 또는 고입 경쟁 격화, 그리고 대학에서의 대입 비리 가능성 등 과거 이미 경험했던 것들이 여전히 예상할 수 있는 난제들이다. 이런 점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나마 위 대안이 낫다고 보는 이유는 미래에 이어질 개편에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있다.
현재 대입제도는 학교(교사)와 대학(전형)을 극도로 옭아매고 있다. 그들은 대입전형 자료를 생산하고 처리하는 전국 획일의 공정에서 하나의 톱니로만 기능해야 한다. 교육은 전문적인 과업이며 그래서 교육이 나아지려면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자율적인 성장 여지를 열어주어야 한다. 그들을 옥죄기만 해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번 개편에 대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런 틀을 재고하지 않고 출발한 데 있다.
대입제도를 바꾸는 데는 늘 거친 반향이 따르겠지만, 학교와 대학 그리고 교육자에게 스스로 성찰하고 개선을 모색할 전문적 재량의 여지를 언젠가는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경쟁에 따르는 갈등을 처리하고 학교와 대학의 일탈도 막을 문화적 불문율을 축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형식 치레로 삼는 ‘공론화’ 무대가 아닌, 진정한 공론의 장을 구축해야 가능한 일들이다. 대입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획기적인 대안 구상과 격렬한 토론의 과정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거듭 얘기하지만, 여기에 그나마 시도해야 할 개편이라고 정리해 보는 것은, 그게 당장 현실적이고 또 바람직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대입제도에 관심을 쏟을 계기가 생겼으니, 과격하지만 그나마 최선인 대안을 제물로 올려, 앞으로 더 나은 제도를 모색할 수 있는 공론의 제단을 구축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공론의 장이 열리고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공론의 장이 활발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가게 될까? 당장 여기에서 꾸며 본 대안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필경 학교와 대학에 자율을 주어도 될지 의구하며 논란하게 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학생부 제도를 전국 표준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그 혼란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우리 습관에 따르면 너무도 당연한 이의 제기에 당면해 논란하게도 될 것이다. 이런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그런 얘기를 시작하자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개선은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을 의심할 때 비로소 도모할 수 있다.
교육은 사회가 품는 가치를 조성하고 공유하는 과업이며, 사회 구성원의 속성과 정체성을 빚는 과업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학교 교육과 대입제도도 알게 모르게 어느 모로든 우리의 가치와 정체를 빚고 퍼뜨리고 있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 채워지고 있는 가치와 정체 의식은 어떤 것들일까? 과연 지금의 그 가치와 정체성을 품고 우리는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대입제도 그리고 학교와 대학의 교육을 의논하는 일은 이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질문이 심대하고, 그 답이 단출하게 나올 리 물론 없다. 그러나 그런 질문에 매달리느냐 않느냐는 우리 논의와 생각을 크게 좌우할 것이다. 끝이 없어 어렵고 지루한 길이겠지만, 꾸준히 가야 마땅할 길일 것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9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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