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2-10-19 17:34
“어린이”에 대해 우리가 통상적으로 갖고 있는 이미지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학문 활동으로서의 어린이 연구는 심리학, 소아학, 사회학, 인류학과 교육학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으나 사실 교육학을 제외하고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유아교육은 심리학을 포함한 여러 다양한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어린이 연구의 성과들에 빚을 지게 되었고 다양한 이론들은 유아교육의 이론과 실천을 구성하는 데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어린이의 특성에 대한 설명, 아동중심/놀이중심이라는 개념, 어린이 연령에 맞는 교육방법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Kennedy(2006)는 아동기 개념변화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한 저서 『Changing conceptions of the child from the Renaissance to Post-modernity: A philosophy of childhood』를 통해서 유아교육과정과 페다고지의 전통에서 “어린이”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를 하고 이를 표현을 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음을 언급하였다. 유치원의 창시자인 낭만주의 프뢰벨에서 시작해서 최근의 레지오 에밀리아 유아교육의 철학과 실천에서만 유일하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유아교육 분야에서는 사회과학 전통에서 보여주는 어린이에 대한 상징적 이해와 심리학적 해석을 여전히 아동기 연구의 중요한 토대로 간주해 왔으며 유아교사 교육에서 사용되는 많은 관련 저서들은 이를 일종의 진리로 수용하면서 “어린이”에 대한 헤게모니적인 개념을 형성해 왔다.
최근 굳건하게 형성되어 있는 어린이에 대한 개념과 형상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비판이론을 토대로 하는 비판교육학자나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을 수용했던 재개념주의자를 넘어서며 포스트철학-포스트휴머니즘, 신물질주의, 관계적 존재론 등을 선택한 사회과학자와 교육학자들이다. 본 칼럼에서는 최근 어린이에 대한 재형상화 움직임에 동참하며, 지금까지 어린이 연구에서 어린이 개념 형성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 온 이론과 사조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본 후 이에 대한 대안적 철학인 관계적 존재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소외된 타자인, 어린이
고대철학에서부터 어린이는 존재론적 타자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이를 동물, 노예와 여성과 같이 분류하며 도덕적 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존재로 구분하였다. 이후 서구 가부장적 전통에서도 ‘어린이’라는 형태는 여성, 노예, 원주민과 마찬가지로 타자(Other)로 소외되었다. 계몽주의를 거쳐 모더니즘 사회로 오면서, 국가가 고도로 이성화되면서 성인 남성 중심이 기준이 되었고, 이로 인해 어린이라는 주체성에 대한 이론과 철학적 성찰이 매우 부족하게 되었다.
• 성인 안의, 어린이
유치원이 처음으로 시작된 시기인 19세기 초기 이후의 “어린이”에 대한 연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최초의 유치원은 프뢰벨의 낭만주의와 자연주의가 기반이 된 아동중심, 구성주의 교육으로 최초의 제도화된 기관이다. 낭만주의의 어린이는 이후 아동기의 갈등이 성인 자기 이해의 열쇠가 된다는 프로이트의 등장으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과 실제는 성인에 남아있는 “아동기의 잔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며, 어린이에 대한 상징적 이해에 큰 기여를 하였다. 아동초기 경험을 연구한 프로이트는 교육, 특히 유아교육에 큰 영향을 미쳤고 심리적, 사회적, 인지적 발달을 위한 애착과 어린시절 관계의 중요성에 알렸다.
20세기 초중반은 과학의 실증주의 승리의 순간들로, 덩달아 어린이에 대한 연구도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개념들을 넘어서게 되었다. 대표적인 연구성과가 피아제를 비롯한 인지심리학자들의 연구로, 피아제의 어린이의 사고에 대한 연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 인지적 결핍의, 어린이
어린이를 인식론적으로 불완전하게 보는 시선은 인지심리학자인 피아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이를 비합리적이고, 논리수학적 사고가 부족하며, 상상적 사고를 하는 발달적으로 결핍 내지 부족한 존재로 보는 관점은 발달에 적합한 교육을 통해 정상아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침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보는 개념을 형성시켰다. 여전히 많은 인지발달론자 사이에 남아있는 이 인식론적 관점은, 어린이는 점진적이며 위계적인 일련의 단계에 의해 발달한다는 것으로 결국, 이는 객관성과 정상성을 가정하는 것으로, 그것은 과학이 그린 그림이다. 모더니즘 사조하에 오늘날까지 피아제의 강력한 어린이에 대한 발달론적 깨우침은 ‘객관적’ 준거이자 기준으로 강력하게 남아있다.
• 개인화된, 어린이
어린이를 이해하는 발달심리학 저변에 깔린 철학에는 전통적인 주체중심의 서구 개인주의 사상이 있다. 이는 인간 존재를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아 중심이며, 개별적인 주체로 본다. 이와 같은 존재론적 접근은 전통적인 존재론에 대한 해체를 언급할 때 여러 문헌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듯이, 이는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존재에 대한 유명한 태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비롯된다. 인간 존재의 이 개념은 서구 개인주의의 창발을 시작점으로 하여 인간발달과 성장을 연구하는 발달심리학 이론과 유아교육 분야에서 교수-학습원리를 연구할 때 뼈대가 되었고 지금까지 개인주의 존재론(individualisitc ontology, Bellefuille 외, 2017)의 렌즈가 유아교육 분야 전체에 작동하고 있다.
• 무비판적이었던, 교육이론
전통적인 교육과 학습이론이 보여주고 있는 인식론은 지식을 고정된, 주어진, 정해진 사실(fact)이자 진리(truth)로 간주하였고, 주체중심의 개인주의 존재론은 주체성, 독립성, 자율성 등을 강조하며 학습자, 교육내용, 교사 등을 분리시켜 보는 시선을 형성시켰다. 문제는 존재론을 포함한 철학적 가정들을 의심하지 않고 안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 결과 교육이란 교육과정을 통해 교사와 교과서에 의해 전달되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으로 개념화되었고 주체와 개체가 분리되어 개인주체가 개인 내에서 독립적으로 배우는 것을 학습으로 개념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철학적인 차원이 삭제되면, 교육과정은 어린이들의 실제 세계로부터 동떨어진 지식들로 구성되고, 가치-중립화되며, 논쟁, 비판적 사고와 철학적 대화 등은 그 의미를 잃는다.
즉, 현대 주체의 정상적 형태를 성인으로 가정하고, 성인과 어린이의 차이를 존재적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로 보며, 교육을 통해 성인으로 만들어간다는 가설이 성립하게 된다. 성인과 어린이의 관계에 대한 푸코의 분석을 살펴보면, 몸의 활동성이 활발한 “야생의 신체”인 어린이는 “유순한 신체”로 길들여지는 과정을 통해 루소의 용어인 현대사회의 시민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Kennedy는 이를 어린이 식민지화의 현대적 형태라고 칭하였다.
어린이에 대한 관점 형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간략하게 살펴보며, 전통적인 사회과학의 인식론과 연구결과의 기여를 인정함과 동시에 어린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이를 통한 재형상화가 시급함을 주장한다. 첫째, 어린이를 재형상화하고 둘째, 어린이들이 물질, 비인간 존재들과 만나고 관계를 맺는 현상, 즉 배움을 다르게 관찰·해석하고, 셋째, 어린이의 배움을 지원하는 교사의 역할과 페다고지를 새롭게 개념화하는 데 필요한 대안적 관점인 관계적 존재론(relational ontology)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관계적 존재론
“우리는 타자와 맺는 관계에 의해서 의미로운 특이성들로 존재한다. 우리는 관계성의 존재론적 개념의 공간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가는 삶의 경험들에 의해 우리 자신을 이해한다.” (Thrasher, 2015).
관계적 존재론은 일차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관계이며, 개별(individual) 인간 존재나 사물과 같은 실재가 아니라고 본다. 이 세계의 기본이 되는 현실은 관계이며, 관계들이 일차적이며 사물이나 개체들이 이차적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관계밖에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관계가 진짜 존재한다. 사물들은 상대적이고, 관계는 절대적이어서, 관계적이지 않은 존재는 생각할 수 없으며, 사유는 관계의 생산물이이라고 본다.
관계적 존재론은 근본적으로 관찰자가 맥락에서 자신을 떼어낼 수 없음을 인정한다. 즉, 데카르트의 철학 “나는 생각한다(I think)”, “고로(therefore)”, “존재한다(I am)”라는 명제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포기한다. 즉, 진정한 자아라는 전제, 유일한 정체성이라는 명제를 포기한다.
관계적 존재론의 뿌리는 20세기 Martin Buber로 거슬러 올라간다. Buber는 ‘나-너, 나-그것’이라는 두 개의 존재양식을 분리시켰고 이와 같이 분리된 두 가지 형태의 관계에 집중하며, 인간 존재가 관계가 있는 곳에 의존함을 보여주며 ‘interhuman’이라는 개념을 소개하였다.
자아(self)에 대한 관계론적 개념을 살펴보면 자아를 분리된 개체 혹은 존재자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는 관계들 사이에서 연결의 수단이자 관계들이 갖는 하나의 특성으로 나타난다고 본다. 그러나 자아는 다양한 관계들에 연결점과 교차점만큼 일관성과 항구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색깔은 추상이다. 따라서 파란색은 없으며 파란 어떤 것만이 있다. 자아에 관계해서도 마찬가지이며 자아는 관계들이 갖는 하나의 특성으로 무게, 색깔과 같이 추상이다. 따라서 개별유아를 알려고 하는 것은 “파란색임(blueness)”을 알려고 하는 것과 같으며 상호작용 속의 특정한 관계에 대한 분석이 유일하게 자아의 의미를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교사가 관계들이 갖는 존재론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인식과 지식은 부분적이며 제한적이기 때문에 관계를 이해할 때 우리는 인식론적 어려움을 겪는다. 관계란 두 개 이상의 사물들 간의 의미 있는 연결이나 연합으로, 사물들 사이에(in between) 위치한다. 즉, 관계는 위치없이 존재하며 존재한다는 것은 관계의 한 형태이지 단일사물의 특성이 아니다. 관계는 복수성으로부터 오는 결과이며 차이가 만들어내는 긴장으로부터 오는 결과이다. 사유는 관계의 생산물이며, 어린이들의 대화는 그것으로 넘쳐난다. 이것이 관계중심 페다고지의 전형인 레지오 에밀리아 유아교육을 비롯하여 Lenz Taguchi, Davies, Murris, Sellers 등의 대안 담론 유아교육학자들과 캐나다 British Columbia 유아교육과정에서도 어린이에게 귀 기울이기(Listening to children)를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이다.
발달심리학, 학습이론과 다양한 교수모델의 발전은 어린이와 학교와의 교육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교육을 생각할 때, 여전히 혼자 서 있는 자아를 모델로 여겨왔기 때문에 관계 속의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실제로 귀를 기울이였는지는 충분하지 않다. 유아교사 교육과 훈련과정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의 임의의 상황들은 관계를 전제하지 않기 때문에 탈맥락화되어 있고, 인위적이고 평범할 수밖에 없다. 재현적 지식에 갇히지 않으려면 지금 만나는 어린이들의 다성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대화 가까이에 있어야 할 것이다.
철학적인, 발현적 대화가 넘쳐나는 유아교실을 꿈꾸며
나는 자기 전에 궁금한 것들이 100개가 넘게 떠올라.
블랙홀에 빠지면 어떻게 돼?
아주 옛날에는 글자가 없었는데 어떻게 책에 옛날 이야기들이 다 들어있어?
베토벤은 귀가 안들렸는데 어떻게 음악을 만들었어?
철학자인 어린이들의 대화는 재현의 지식을 찾는 과정이 아니어서, 그 길은 늘 새로이 만들어지고 구성된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이론이 구축될 때까지 세상과 관계 맺으며 묻고 또 묻는다.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며, 철학적이고 발현적이다. 다양한 목소리를 포함하며, 세계에 대한 상호작용적인 이야기이자, 세계에 대한 개인들의 생각에 관한 것이다. 관계적 존재론 관점에서 출발하는 교수-학습 페다고지는 개체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와 어린이 모두로 하여금 깊은 대화에 빠져들게 하고 자기-성찰을 일으켜 배움을 풍성하게 만든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참고문헌
• Aspers, P. (2010). Relational ontology: Being and order out of Heidegger’s socioontology. Relationale Soziologie: Zur kulturellem Wende der Netzwerkforschung, S. Mutzel and J. Fuhse (ed.) 257-272. Wiesbaden: VS Verlag.
• de Leeuw, S. (2014). State of care: the ontologies of child welfare in British Columbia. Cultural Geographies, 21(1), 59-78.
• Kennedy, D. (2006). Changing conceptions of the child from the Renaissance to post-modernity: A philosophy of childhood. Lewiston, New York: The Edwin Mellen Press.
• Kennedy, D. (2010). Philosophical dialogue with children: Essadys on theory and practice. Lewiston, New York: The Edwin Mellen Press.
• Murris, K. (2017). Reconfiguring educational relationality in education: the educator as pregnant stringray. Journal of Education, 69, 117-138.
• Sidorkin, A. M. (2002). chapter 7. ontology, anthropology and epistemology of relation. Counterpoints, Vol. 173, Learning Relations: Impure Education, Deschooled Schools, & Dialogue with Evil (2002), pp. 91-102 (12 pages). AG: Peter Lang
• Wu Shiu-Ching, (2016). On the priority of relational ontology: The complementarity of Heidegger’s being-with and ethics of care. Kemanusiaan, 23(2), 71-87.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9071/
Copyright ©2026 교육을바꾸는사람들 unless otherwise no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