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2-10-19 17:02
1. 효율성과 효과성
돈을 쓰면 늘 두 가지의 고민이 뒤따른다. 바로 효율성과 효과성의 문제이다. 교육이나 돌봄도 예외는 아니다. 둘 다 사회서비스 범주에 포함되고 국가정책으로 많은 예산이 투입되므로 효율성과 효과성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고, 효율적인 것과는 어떻게 다른가? 두 말은 잘 구분해 써야 한다. ‘효율’은 투입비용 대비 산출결과의 비율 값을 말하는 것이므로 대체로 유통되는 ‘가성비’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효과’는 본래 의도한 바를 얼마나 잘 이루었는지 그 목표달성 자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개념은 대체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들을 측정하는 것도 그만큼 쉬운 일일까? 예를 들어 지역아동센터와 초등 돌봄교실에서 제공되는 돌봄서비스 간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서로 비교해 보고 싶다면 말이다. 이들은 모두 학령기 아동들을 대상으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공통점을 잘 활용한다면 무엇이 더 효과적이거나 효율적인지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따라서 만약 두 서비스 간의 효율성을 따져보고 싶다면 우선 이런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시설에 1년 동안 투입된 예산 대비 돌봄을 받은 아동 수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예를 들어 초등 돌봄교실은 학교 건물을 사용하고, 학교의 각종 인프라를 활용하여 운영되는 점이 지역아동센터와는 다르다. 따라서 지역아동센터에 투입된 예산 중에서 공공요금이나 공간 유지 등에 지출된 예산의 규모를 따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올바른 비교를 위해서는 두 시설에 투입되는 예산 항목을 서로 동일하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결과를 얻는 데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값으로 살펴볼 아동들의 상태는 어떠할까? 현재의 추세를 보면 초등 저학년들은 대체로 학교의 초등 돌봄교실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반면 초등 고학년과 중·고등학생들은 지역아동센터를 많이 다니는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이런 차이 역시 비교에 적절히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면 왜 그런지 그 역시 적절한 설명이 필요한 지점이다. 그래야만 돌봄을 받은 아동들 모두를 동일하게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가중치 등을 두는 방식으로 서로의 차이를 반영할 것인지 그 방법이 결정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이나 효과성의 문제들은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국가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이런 논거들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 중에서 효율성은 대부분 예산 절감이 필요할 때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어떤 일들은 너무도 효율성을 추구한 나머지 어떤 임계치를 넘어서 버리고, 그 결과 결국 효과성조차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효율성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하는 말이다.
2. 자칫 효율적이지 못한 이유
세간에 공무원을 두고 ‘일이 되게 할 수는 없어도, 일이 안 되게 할 수는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쩌면 효율성이 딱 그 짝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니 일이 안 되게 할 수도 있는 공무원을 무시할 수 없는 것처럼, 현장에서도 효율성을 나 몰라라 할 수만도 없다.
그러면 이런 효율성이나 효과성은 어떻게 측정하게 될까? 정식 연구자가 있는 경우에는 연구자가 정확한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가정책으로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에 연구자들이 모두 관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이때는 보통 현장의 실무자들에게 자료를 주고 그에 부합하는 내용들이 있는지 이를 적어내도록 한다.
보통 오전이나 전일 오후 늦게 메일이 온다. 오늘 오후 몇 시까지는 혹은 내일 오전 12시까지 3년간이나 5년간 혹은 10년간 자료 중에서 해당하는 것이 있으면 제출하라고 날벼락이 떨어진다. 그쪽에서 먼저 날벼락을 맞고 이쪽으로 집어던진 것이니 할 말은 없다. 원망해야 할 것은 날벼락을 내리지도, 피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뿐이다.
부랴부랴 허겁지겁 자료들을 뒤지며 난리가 난다. 원하는 자료가 있어서 척척 써낼 수 있는 날은 감지덕지다. 그도 아니면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질문을 이해하기만 해도 황공하다. 때로는 질문이 뭔지 몰라 엑셀만 노려보고 있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또 어떤 날은 어찌어찌 질문까지는 이해를 했는데 답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라 난감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년간 토요일에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을 받은 아동 수를 적어내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치자. 이런 예는 현장에서 실제 받는 질문들 중에서는 좀 평이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평이한 질문에도 답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첫째, 우리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동 수가 전체 37명이고, 대략 평균 15명 정도가 토요일에 돌봄을 받고 있으므로 15명이라고 쓰는 방법이 있다. 둘째, 그 15명이 한 달에 4주, 12개월에 걸쳐 돌봄을 받았으니 15명×4주×12개월=720명이라고 쓸 수도 있다. 물론 첫 번째 답을 월평균 15명이고 썼다면 이는 정확하게 두 번째 답과 동일한 것이 된다. 셋째, 지난 1년간 토요일에 나온 아동들의 실인원 수를 파악하여 적어낸다.
각각의 유형의 답들이 보이는 분포는 어떠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유감스럽게도 첫 번째 유형의 답을 적어내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오히려 가장 정확할 수 있는 세 번째 유형의 답을 적어낼 확률이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의 경험에 의하면 질문이 애매모호하거나 그 의미나 의의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 또는 질문에 답을 하기에 충분한 사람들이 에너지가 없을 때 무심하게 답을 적어낼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간의 자료 정리가 잘 안 되어 답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에 더하여 한 가지 특이한 이유를 더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는 특히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종종 포착이 되는 현상으로 위의 질문에 첫 번째와 같이 15명이라고 답을 적어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복지 이용시설이지만 아동들은 실제로 센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 구비 서류를 갖추어 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센터를 다닐 수 있게 된다. 그런 상황이고 보니 센터의 종사자들은 일정 수의 아동들을 ‘우리 아이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말하자면 “우리 아이들은 37명이 있는데, 그중 토요일에 돌봄을 하는 아동들은 대략 15명 정도가 되고, A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동들은 20명 정도가 되고, 급식 서비스 지원을 받는 아동들은 37명 전원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에게 ‘토요일에 연간 몇 명의 아동들이 센터를 이용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한 15명 정도 될걸요’하고 부지불식간에 대답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연간’이라는 말에 걸려 이를 세심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5’라는 답을 적어낼 가능성도 지역아동센터의 일상 문화 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순간 지역아동센터의 효율성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친다. 이는 현장의 독특한 인식과 문화가 효율성과 조응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비극이다.
3. 희망이음으로 가는 길
최근 정부에서 하는 이해하지 못할 일 중 하나가 ‘희망이음 사회서비스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이는 민관을 아우르는 사회복지계의 행정시스템 통합망을 구축하는 일로, 사회복지계로 보면 국가의 기초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절망이음’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시스템 개통에는 여러 진통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이런 시스템을 뭐 하러 만들려고 하는 것인가?”라는 볼멘소리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는 그간의 낡은 체계를 개편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민간과 공공의 자원을 함께 파악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 국민들이 보다 나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바람이 컸다고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로 꼽고 있는 것이 통계와 관련한 사항이다. 이번 기회에 기본 체계를 잘 세우고, 자원이나 서비스 등과 관련하여 무엇이 얼마나 어디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관련 통계 결과를 보다 분명히 할 수 있도록 기반 환경을 마련하는 데 새로운 체계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일단 하는 말이 그렇다는 것이니 다른 속셈이 더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추어도 돌봄 현장에서는 다른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국가정책으로 이루어지는 돌봄이나 교육 등과 같은 서비스는 대상자를 향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서비스를 제공한 이후 이를 재해석하여 기록하는 순간도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특정 시스템을 갖춘다고 해서 저절로 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누군가는 이를 기록해야 하고, 기록하는 이는 특정 순간을 다른 이들과 보편적으로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 순간의 특징을 명확하게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수업이 끝난 후 학생을 잠깐 남겨서 이야기를 나누면 그것은 모두 상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돌봄 시간 중 이루어지는 활동 중 어떤 것은 상담에 해당하고 어떤 것은 생활지도에 해당하는지 분명하게 구분하고 명확하게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것들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효율성은 제대로 측정될 수 있는 것이며 더불어 효과성도 비로소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기록하는 사람과 기록하는 방식의 통일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 이는 효율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나 바로 그 효율성의 명분으로 늘 무시되어 왔던 것들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한 걸핏하면 ‘달을 가리키나 손가락을 볼 뿐’이라고 핀잔을 듣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달조차 부질없는 소리일지 모른다. 통계를 잘 내면 그래서 효율성이 좋아지는 순간이 오면 뭐가 대수냔 말이다. 뭣이 중헌디? 누구는 또 그리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물레방아는 그저 돌고 또 도는 게 세상 이치라 그럴 수도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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