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2-09-21 11:13
1. 기후 위기 속의 지역아동센터
양천구의 기린청소년전용지역아동센터는 이사를 가야 한다. 지난 8월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낡은 지역아동센터가 심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기린처럼 훌쩍 큰 이 센터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어려운 상황을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이제 기린을 더 이상 우리들의 놀이터로 삼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다. 낡은 건물 틈새로 들어오는 찬바람은 어찌 견뎌볼 수 있었으나, 퍼부어대는 비 앞에서는 이 용감한 아이들도 기가 꺾인 모양이다.
이제 전 세계의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기후 위기에서 지역아동센터도 절대 자유롭지 못하다. 기후 위기는 돌봄 전반에 다양한 문제점들을 불러오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적절한 해법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고민하지 못하고 있다.
2. 기후 위기 속의 돌봄 문제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부분은 아동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한 다양한 재난 앞에 아동들은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돌봄 시설에서도 폭염, 폭우 등으로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많다. 현재 대부분의 돌봄 시설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내에 활동이나 놀이를 위한 충분한 시설이나 여유 공간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경 변화로 인해 아동들이 조절된 환경 속에서 더 오래 머물러야 할 필요성이 현저해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돌봄 공간이 아동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기후 변화와 관련해서 돌봄 공간의 안전성도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 학교나 공공 기관에서는 시설 마련을 공적으로 책임지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덜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아동센터와 같이 민간에서 시설을 직접 조달하는 경우에는 벌써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양천의 ‘기린청소년전용지역아동센터’가 바로 그러한 예이다.
지역아동센터는 민간에서 시설 관련 비용을 일체 조달하기 때문에 공간을 마련하고 유지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시설을 마련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이는 단지 비용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청소년보호법 등 관련 법령을 준수하여 시설을 마련하려면 설치하고자 하는 지역아동센터 반경 50m 이내 유흥주점 등 청소년 유해시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최근 소방법도 강화되어 관련 설비도 적법하게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또 복지부의 운영지침에 따라 최소 25평 이상의 전용 공간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서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어지간한 지역에서는 모두 하늘의 별 따기다. 따라서 멀쩡히 제 역할을 잘 하던 지역아동센터도 이사를 가야 할 상황에 맞닥뜨리면 슬금슬금 센터를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에 빠지게 된다.
관련하여 지역아동센터의 이용 만족도를 조사한 관계 기관의 연구를 보면 시설의 쾌적성에 대한 만족감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공적 비용의 투여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민간에서 시설을 자체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시설을 임대하여 센터를 운영하는 곳들 대부분이 이런 문제를 첨예하게 보이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는 앞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다양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므로 비용과 주변 환경의 여건 때문에 일단 상업지구를 피하게 된다. 그러나 주택가로 가기도 어려운 것이 아동들이 장시간 머물며 소음 등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편안하게 활동을 해도 눈치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주변에 신경 쓸 것이 없는 곳을 고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대부분 학교 인근의 조금 낙후된 지역의 비용부담이 덜 되는 가능한 넓은 공간을 찾게 된다. 물론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곳들도 속속들이 재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마치 남아 있는 얼음을 찾아 헤매는 북극곰처럼 지역아동센터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찾아 방황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넉넉한 비용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기후 위기가 닥치면 닥칠수록 사회적 취약계층을 감싸줄 수 있는 공간들의 사용 연한이나 기능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공공에서 돌봄 시설을 설치할 때도 관련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돌봄 시설의 확대가 위축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무엇보다 내부의 안전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비바람과 햇빛 그리고 미세먼지를 막아줄 수 있는 네 벽과 지붕을 마련하는 게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3.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상상력
이제 ‘기린’은 어디로 가야 할까? 걱정을 하던 참에 그나마 이주를 할 만한 시설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임대 보증금을 지금의 배가 되는 2,000만 원으로 올려주어야 하고, 아이들의 밥을 해먹이기 위한 부엌 시설도 다시 해야 하니 그런저런 비용을 갑자기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고 한다. ‘후원의 밤’을 한다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걱정이 크다.
지역아동센터를 위해 딱 한 번 정부가 실시한 임대 보증금 지원사업이 있었다. 정부가 복권기금을 통해 전국 몇 군데의 지역아동센터에 5,000~8,000만 원씩 보증금을 지원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단 한 번 지원을 했었고, 그로써 그만이었다.
정부의 기금이기 때문에 이런 지원을 받아 지역아동센터가 시설을 임대한다면 계약의 당사자는 해당 자치구의 자치구장이 된다. 그리고 사업이 종료되면 기금은 회수된다. 그런데 이런 기금을 서울시나 정부가 한 번 더 마련하면 안될까?
어차피 지금은 월세가 부동산 시장의 대세를 이루고 있으니 보증금이 거액일 필요는 없다. 1,000~3,000만 원 정도를 무상이나 저리로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일정하게 기금을 조성하거나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기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상당 기간 보증금으로 예치해두어야 하는 것이 기금의 의의를 떨어뜨린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상당한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런 기금이 있다면 ‘기린’도 비 새는 낡은 놀이터를 훌쩍 떠날 수 있으련만…. 어째서 그런 상상력은 실현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눈만 꿈벅거리며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자치구의 우리 센터를 담당하는 과장님을 만났다. “과장님 저희 좀 도와주세요. 저희 지역아동센터도 공립으로 전환하고 싶어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인사도 마치기 무섭게 속의 말이 불쑥 나와버렸다. 그랬다. 사실은 우리도 비가 샜던 것이다. 한 대야는 아니고 한 바가지지만 말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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