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9-08-07 14:13
자사고 재평가를 통한 일반고 전환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다. 일종의 분리교육이라 할 수 있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 등을 비선발형 고교로 전환하는 것은 사회통합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형평성(equity) 강화라는 큰 시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세계 주요국들 역시 사회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공정하고 포용적인 교육(inclusive education)을 강화하는 추세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에 맞물려 ‘일반고 살리기’, ‘일반고 정상화’의 요구가 강하게 일고 있다. 당연한 흐름이다. 그런데 ‘일반고 살리기’란 무슨 의미일까? 이를 자사고·특목고를 선택한 부모에 물어본다면 ‘일반고의 수업 분위기가 자사고·특목고에 비해 좋지 않아요. 공부는 학원 가서 하고 학교는 잠자는 곳이 되었잖아요. 수업의 질도 높지 않고, 진도빼기 수업이 일상화되어 있구요. 상위권 대학의 입학 준비를 제대로 못해주고 있죠.’ 등의 불만을 토로하며 이런 점을 개선하는 것이 ‘일반고 살리기’라 답할 가능성이 높다. 또 어떤 이는 ‘일반고 살리기’의 내용으로 ‘교육과정 다양화’를 포함시킨다. 혹자는 ‘고교선택제 확대를 통한 일반고 살리기’를 말한다. 현재의 입시준비교육 체제 속에서 ‘교육과정 다양화’와 ‘고교 선택제’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 사회의 ‘일반고 살리기’에 대한 논의 수준이 지금과 같다면 진정한 ‘일반고 살리기’는 요원한 꿈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1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은 문제의 정의에 쓰고 나머지를 해결책에 쓰겠다”는 말을 했다. 만약 한국의 ‘일반고 정상화’에 대해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면 그는 똑같은 조언을 해줄 것 같다.
‘일반고 정상화’나 ‘일반고 살리기’를 논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논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이런 논의가 ‘일반고 살리기’를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의사가 환자를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잘못된 처방으로 치료할 경우 진정한 치료의 기회를 놓치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의 경우 ‘일반고 살리기’가 워낙 이상하게 이해되고 피상적 수준에서만 논의되는 터라 바람직한 모델을 살펴보면서 ‘일반고 정상화, 일반고 살리기’의 진정한 의미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반고 살리기’는 고교 교육의 목표부터 바로 잡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고교 교육의 목표를 아래와 같이 잡는다고 상상해보자.
“각 개인의 강점을 기반으로 타고난 잠재력을 최대치로 키운다.
이의 실현을 위해 공정하고 포용적인 교육(educational equity)을 추구한다.
아울러 아동의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 인지적 웰빙(well-being)을 증진한다.
이런 변화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교육에 대한 공신력(public confidence)을 높인다.”
이상의 내용은 비단 고교뿐만 아니라 초중고 모두에 적용할만한 매우 훌륭한 교육목표다. 이에 토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와 똑같이 학교교육의 목표를 잡은 곳이 있다.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다(위 목표는 사실 온타리오 주 교육목표를 풀어서 쓴 것이다). 이런 교육의 목표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이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는 또 다른 난제로 남는다. 그런데 온타리오 주가 이런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온타리오 주의 경우 교육과정 운영이 하향식과 상향식이 공존하는 형태라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래서 온타리오 주의 교육 개혁은 한국이 ‘일반고 살리기’를 위해 참고하기에 적합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온타리오 주는 이민자가 30% 가량이나 되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다. 2005년 당시 정상적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비율이 60%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005년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이라는 비전을 수립한다. 그리고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고 학생 간, 지역 간, 출신 문화 간 학력 격차를 줄이며 고교 졸업률을 75%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들의 접근은 한국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은 상위권 학생들을 집중 지원하지만 온타리오 주는 정반대로 하위 30% 아이들의 지원에 개혁의 초점을 두었다. 온타리오 주는 중등학교 학생의 약 27%(2018년 기준)를 특수교육 대상자로 분류해 질 높은 개별화 교육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의 기초학습부진을 해결하는데 큰 시사점을 줄 것이다. 개혁의 성과는 전반적으로 놀라웠다. 예상과 달리 특수교육 대상 아동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의 성취도가 향상되었다. 영어로 수업하는 공립고, 카톨릭 학교, 불어로 수업하는 학교들이 각각 13%, 11%, 20% 향상되었고, 일반 학생과 특수교육 대상 학생 간의 격차도 줄어들었다. 졸업률도 86.5%(2016년 기준)로 크게 향상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온타리오 주는 교육개혁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세계 주요국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온타리오 주가 ‘모두를 위한 교육’이란 비전을 우수하게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고유한 신념과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특수교육 대상자들에게는 필수적이고 그 외 아동들에게도 유익한(Essential for Some, Good for All: ESGA)”이란 목표 달성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비전 달성을 위해 필요한 높은 내적 동기를 “모든 아동은 성공적일 수 있다”, “격차를 줄인다”라는 신념과 높은 도덕적 목적(moral purpose)에서 이끌어 낸다. 한국의 경우도 ‘일반고 살리기’라는 낡은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육 목표와 신념으로 새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구호에 머물지 않으려면 어떤 역량과 전략이 필요한지 치열하게 공부부터 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공동 번역한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Fullan, 2015)란 책에 답이 다 들어 있다. ‘수많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이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원인 분석과 해법에 관한 책이자 ‘교육변화의 이론과 실제에 관한 혁명적 교과서’란 평을 받는 명저다.
온타리오 주 교육개혁의 핵심성공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전문가 연구팀의 분석에 의하면 우수한 비전, 높은 교육적 사명감, 학생 각자의 강점을 살리는 개별화 교육, 이의 실행을 뒷받침하기 위한 주정부·교육청의 뛰어난 시스템 리더십, 하향식과 상향식을 절충한 중간리더십, 전략 간의 긴밀한 연계 등이 유효했다.
이들은 교육 변화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고, 교육변화에 대한 이해가 깊고 이를 실천해낼 남다른 실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개혁이란 단지 최신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과 학교, 학구의 문화 전체를 바꾸는 작업이란 점을, 또 개혁이란 시스템 전반에 걸친 역량 구축에 관한 것, 그래서 전문직(교사, 장학사, 교육감, 정책결정자 등)의 학습이 개혁 성공의 핵심이란 점, 또한 개혁이란 각자가 근무하는 환경에서 작동 가능한 올바른 동인들(right things)을 적용하는 것이라는 점, 어떤 규모의 변화든 변화가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난다 하더라도 지속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프라가 취약하거나 서로 충돌하는 목적을 지녔기 때문이란 점, 상향식 변화도 하향식 변화도 답이 아니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온타리오 주는 2014년부터 ‘탁월한 성취’란 비전 아래 새로운 학교개혁을 시작했다. ‘탁월한 성취’란 질 높은 개별화 교육을 통해 각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키워주는 교육을 의미한다. 이를 공정하고 포용적인 교육, 신체적·인지적·정의적·사회적 웰빙과 학교 공신력 제고란 교육목표 달성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다. 작년에 나온 성과보고서를 보면 여전히 긍정적 대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도 학교교육 변화에 대한 비전을 제대로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낡은 인식의 틀을 버리고 ‘일반고 정상화’, ‘일반고 살리기’의 의미부터 제대로 정립하고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다. 하위권 학생이 수업에서 일상적으로 배제되고, 입시준비 교육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일반고 정상화’를 얘기하는 것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일반고 살리기의 최우선 과제는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의 실현이다. 온타리오 주처럼 ‘모두를 위한 교육’이 실현될 때 하위권 학생도 수업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수업 분위기가 좋아질 것이다. 이게 일반고 살리기의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이제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학교교육의 비전을 제대로 수립하고 이의 달성을 위해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와 ‘이를 뒷받침하는 입시 제도를 만든다’는 사회 선언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제 학교교육이 대입시를 바꾸어야 한다. 대입시가 학교교육을 더 이상 종속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유자격자 추첨을 통한 대입 선발에 대해 깊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이 현재와 같은 견고한 서열을 유지하면서 시험성적으로 학생을 줄 세워 뽑는 한 ‘일반고 살리기’는 구호를 넘어 위선이고 국민 우롱에 가깝다. 진정한 학교교육의 변화를 이끌 진정성 있고 실력 있는 리더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일반고 살리기의 진정한 의미가 도출되고 일반고를 약 5-10년에 걸쳐 실질적으로 살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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