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이 실력주의교육의 혁신적 대안으로 수용되려면?

by slowalk | 2019-08-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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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보교육감을 중심으로 공교육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고 초중고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된다. 한국사회에 굳건한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를 극복해보려는 취지이다. 메리토크라시에 대해 비판적인데 한국사회에서는 권력, 지위, 부 등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는 중요한 기준인 실력이 불평등하게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즉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 그리고 부모의 배경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격차가 크고 결국 개인 간의 실력 차이와 사회적 자원의 분배격차로 이어지는데 교육이 그 중심에 있다고 본다. 더구나 그처럼 불평등하게 분배된 사회적 자원은 다시 후대의 실력수준을 정하는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한국교육에서 지금 같은 실력구조가 교육적 가치기준으로 이어지면 계층 간 불평등 현상은 점점 커지며 사회이동은 전근대 사회처럼 구조적으로 제약된다고 규정한다. 결국 한국교육이 구태적인 메리토크라시적 교육에 집착하면 ‘모든 시민이 평등한 존엄성을 인정받는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고 본다.

 

메리토크라시적 병리현상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교육적 패러다임을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이라고 지칭한다. 그 취지는 한마디로 ‘좋은 시민’의 양성이며 대상은 초중고 학생에 그치지 않고 평생교육 차원에서 접근한다. 다만 학교교육과 관련지어 보면 단지 학생들을 정치적 인간으로 교육시키거나, 교육에서 기회균등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고 학생 개개인의 독립성과 고유성을 존중하고 그 잠재력을 계발하는데 초점을 둔다. 즉 교육은 모든 아이가 다양한 방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인정하며 저마다 좋은 삶을 사는데 필요한 준비를 하는 사회화 과정으로 학교는 그 가능성을 실험하고 실현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학교교육은 학생들에게 좋은 삶이란 삶에 대한 자기 창조와 그 성과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만 가능하며 누구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식을 각성하게 해주는 활동”이라고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은 모든 아이가 학교에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그만의 좋은 삶을 성찰하고 찾아내서 추구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역량만큼은 절대적으로 갖추도록 매진하는데 있다. 물론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에서도 학생이 교육기본법에 표현된 자주적 생활능력을 갖추는 일을 부정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에 대한 개개인의 관심을 가장 중요하게 규정하지만 그 내용이나 과정은 학교교육이 능력자를 추려내는 경연의 과정이 아니라 모든 사회성원이 자신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토대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그 누구라도 잠재력을 최대한도로 계발하여 자아실현을 이룰 기회를 실질적으로 얻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한 아이라도 특정한 능력이 모자란다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모욕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학교의 교육과정이 학업성적이나 학력 등에만 매달리는 메리토크라시적 능력의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학교의 교육과정은 서열로 평가되는 ‘지능’이나 ‘성적’과 같은 좁은 의미의 능력이 아닌 모든 사람이 각자 가진 나름의 잠재력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능력을 모든 측면에서 존중하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잠재력 평가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으로 어떤 학생이라도 그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 안에서도 나름의 인간적 성취를 보이려고 하는 노력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나 진보교육감은 메리토크라시의 병폐를 개선하여 ‘실질적 메리토크라시(신 실력주의)’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시행 중이다. 능력에 따른 메리토크라시의 원리를 인정하지만 모든 학생이 더욱 철저하게 실현되도록 기회균등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기 위해 ‘자사고의 폐지’, ‘무상교육 등의 교육복지의 강화’, ‘소외계층 학생들에 대한 교육복지수당의 수혜대상자와 금액 증가’ 등 실질적 지원을 확대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책과 제도가 오히려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무시, 그리고 그들에 대한 자의적인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대안으로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이 나왔으며 진보교육청은 그 패러다임을 초·중·고에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취지를 살리려는 의지가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에서 주장하듯이 학교는 학생들의 자주적 생활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 학업성적이나 학벌적 학력에만 매달리지 않아야 하지만,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기본학력’은 필수적인데도 오히려 후퇴한다. 따라서 학생 간의 서열화를 배제하더라도 각자의 잠재력을 포괄하는 넒은 의미의 능력이 계발되고 향상되는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진보적인 교육정책을 통한 잠재력 평가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인데 학생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 안에서도 나름의 인간적 성취를 보이려고 하는 노력 그 자체의 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오히려 사회적으로는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다시 말하면 잠재력인 ‘지성’, ‘감성’을 계발하고 사회적 능력인 ‘민주시민성’을 학교교육을 통해 기르려고 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기초학력의 미달학생 및 보통학력 미만학생의 숫자는 크게 증가하고 방치할 수 없는 교육문제로 부각되었다. 또한 한국교육의 고질적 병폐의 핵심인 대입제도와 관련해 서열적인 평가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하에 확산된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성은 교육 이외의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어 교육부는 전형기준을 매년 바꾸고 있으며 학교에서는 그와 관련된 범죄에 준하는 비리도 끊이지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이 메리토크라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더구나 실력주의가 여러 문제점이 있어도 진화적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해 동물성인 경쟁과 사회성인 협동을 상황에 따라 선택하며, 국가와 국가 간의 현실적 경쟁을 고려하면 실력주의에 가해지는 이론적 비판을 국민이 보편적으로 체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실력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대안으로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이 학교에서 굳건해지려면 ‘실사구시적인 동력’을 갖추어야 한다. 최소한 모든 학생이 국가교육과정에서 성취수준으로 지향하는 지적능력에 대해 일정한 성취수준에 이르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추진해야 한다. 가령 고교졸업시험을 통한 고교졸업자격제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단지 초등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이수했다고 해서 졸업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학력을 의무적으로 갖추도록 독일처럼 제도를 바꿔야 한다. 또한 진보학력인 새로운 학력이 역량 개념을 강조하고 서열화의 고리를 해체하겠다는 의도를 강조하다 보니 지식 중에서 사실적 지식을 소홀하게 다루어 왔고 그 바탕 위에 이루어지는 창의적인 지적 잠재력의 계발도 정체되었다. 그 뿐 아니다. 평가혁신을 도모하였다는 ‘학생부교과’ 및 ‘학생부종합전형’ 그와 관련된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각자의 상황에서 측정하려는 ‘성장평가제’는 사회적 자원의 분배기준이 갖추어야 할 절차적 공정성 및 객관성에서 현저하게 불균등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러다 보니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이 지향하는 가치가 현실에서는 역설적 딜레마에 빠져있다. 학생의 고유한 잠재력계발에 기여하기보다는 계발을 이끌어가며 그 성취도를 높이는 보편적 지적 능력을 저하시키고 있으며 교육적 가치나 사회적 가치의 분배가 불공정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자기계발 의욕은 악화되고 계층이동에 대한 사회적 활력은 크게 늘어나지 못했다. 교육이 사회를 긍정적으로 사회가 교육을 더욱 긍정적으로 견인하는 사회구조적인 선 순환적 시스템이 훼손되고 오히려 학생들은 학교교육에서 ‘절차적 지식’이나 ‘조건적 지식’에 치중하는 역량마저 효과적으로 갖추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메리토크라시적 병폐를 유지하거나 더욱 악화된 메리토크라시로 회귀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 병폐를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이 지향하는 가치가 현실적으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하며 기득권층을 넘어서 사회 보편적으로 기존의 메리토크라시를 차라리 더욱 수용할 수 있는 제도라고 받아들이는 계층이 늘어난다. 그런데도 진보교육측이 그 탓을 메리토크라시나 그것에 머물고 잇는 국민의식으로 돌리는 현상은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당위성을 강조할지 모르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고질적인 메리토크라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을 확산시키려고 하면 ‘지적 잠재력과 관련된 기초학력’의 심각성‘, ‘교육평가로서 성장평가제가 사회적 평가기준으로 가지는 추상성’, ‘학생부교과나 학생부 종합전형이 의도치 않게 불러온 사회적 불공정성’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그에 대한 반성적 사고 없이 이념적이거나 도덕적 선악구조에 매몰되어 단지 패러다임의 전환에만 골몰한다면 그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과 학교를 만드는 사회적 변혁보다는 단지 권력적 교체만 이루거나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진보적인 교육의 수호자들에게는 최근 상산고 자사고 자격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에서 교육부가 전북교육청의 상산고 자사고 자격 폐지에 대해 승인을 요청했지만 ‘부동의 판정’을 내린 사건을 의미 있는 반성적 사고의 출발로 삼기를 바란다. 자사고 폐지는 ‘실질적 메리토크라시’를 구현하는 길이며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에서도 요체이지만 전북교육에서 자사고 폐지 주체들이 법적 안정성을 무시하고 절차적 수단의 합법성마저 부정하며 치밀하지 못하게 추진하였기에 국민적 동의보다는 중산층 하단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이고 지역적으로 거센 반발에 직면하였다. 그 현상에 대해 메리토크라시적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이 정착하려면 어떤 과제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와 관련된 실질적 사례로 삼아 정교한 로드맵을 구안하며 제공해야 한다. 그 로드맵의 핵심은 상식적이고 주체의 도덕성마저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민주시민교육패러다임은 인간의 도덕적이고 역시사지(易地思之)적인 얼굴을 갖는 모습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그 속도를 늦추어서라도 노출된 여러 문제점을 고치면서 나아갈 때만이 교육과 학교개혁에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