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 이제야 살 것 같아요

by gyobasaNPO | 2022-08-10 14:40

본 글은 2021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게재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고등학교로 발령받은 1년 차 새내기 교사입니다. 학교로부터 과목을 배정받은 후,꿈꿔왔던 학교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제 나름대로 정말 열심히 수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몇몇 친구들을 보며 제 수업을 돌아보기보다 그 친구들을 탓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기본학력’ 관련 연수 공문을 보았습니다. 사실, 기본학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고등학생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연수를 들을지 말지 고민했지만, 작년에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눈여겨보았던 주제라 신청하였습니다. 연수를 듣고, ‘이미 늦었다’는 제 생각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본학력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방법을 시도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며, 저도 무언가 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2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통합사회 8〜 9등급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교과서 한 페이지를 보여주고는, 모르는 단어를 체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기여,상응하다,불합리,호소하다,막론하고,보편적,취급하다,분배, 이룩하다,도달하다,조화롭다”

 

14줄의 문장에서 아이들이 체크한 단어들입니다. 이 아이들은 학문적 개념이 문제가 아니라 개념을 풀어서 서술한 문장 속 단어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확인하고 나니 저는 학생들을 탓했던 1학기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교과서 단어를 몰라 수업 이해가 안 되는 것인데, 수업을 안 듣는다고 잔소리를 했으니, 학생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억울했을까요?

 

그렇게 저는 이 친구들과 함께 교과서 속 단어를 공부해보는 ‘문해력 수업’을 방과후 수업으로 개설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열심히 수업을 설계해보았습니다. 제가 설계한 수업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이들은 교과서 두 페이지 정도를 읽고 모르는 단어에 모두 동그라미를 칩니다. 둘째로, ‘그 단어들’과 ‘사전을 통해 찾은 그 단어들의 뜻’을 제가 나누어준 학습지에 옮겨 적습니다. 자신만의 교과서 용어 사전을 만드는 것이죠. 셋째, 짝꿍과 공통으로 몰랐던 단어들을 찾아 직접 예문을 만듭니다. 만든 예문을 모든 친구들과 공유하고, 저는 아이들의 예문이 적절한지 피드백해 주었습니다. 이 단계를 통해 아이들이 그 단어의 쓰임새를 정확히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넷째, 교과서를 다시 읽고 자신의 말로 정리하여 짝꿍에게 설명합니다. 단어를 풀어서 설명하기도 하고, 예시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는 등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문장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들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는 보조자 역할만 수행하였습니다.

 

첫 수업 때 아이들이 동그라미 친 단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아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계획했던 진도에 한참 미치지 못한 채 수업을 마무리했었죠. 방향성을 잘 잡은 것인지 궁금하여, 수업을 마치고 한 친구에게 “이 수업 어땠어?”라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의 답을 듣고 저는 이 수업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살 것 같아요.”

 

수업 때는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하나하나 자기가 찾아보니까 처음으로 교과서가 읽혔다고 합니다. 저 말을 듣는데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이후 수업을 지속해서 진행하며 저는 학생들의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2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요즈음 이 친구들이 교과서 한 페이지에서 모르는 단어는 5개 미만입니다. 정말 많이 성장하지 않았나요? 뿐만 아니라,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졌고, 다른 과목에도 욕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교사가 간단한 발디딤대만 놓아주어도 알아서 띔틀을 넘을 수 있나 봅니다. 앞으로 교직 생활을 하며 많은 친구를 만날 텐데,‘왜 못하지?’에서 더 나아가 ‘어떻게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겠습니다. 둘째로, 기본학력이 나비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단어의 뜻만 공부했을 뿐인데, 아이들의 변화는 다방면에서 나타났습니다. 어떤 학생은 교과서 내용을 기반으로 친구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어떤 학생은 수학과 영어 공부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친구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던 학생은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교우관계가 좋아졌으며, 어떤 학생은 학교 생활이 즐거워졌다고 합니다. 이런 나비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앞으로도 아이들의 기본학력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본학력은 공교육만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제 방과후 수업을 듣는 친구들은 모두 학원이나 과외를 다닙니다. 학원이나 과외 수업은 이해가 되냐고 물어보면, 안타깝게도 아니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교육이 개별 맞춤형이라 할지라도 기본학력이 부족한 학생까지 끌어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의 첫 방과후 수업은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우리 학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함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수업을 열심히 준비는 하지만, 아직 신규라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 수업들을 보고 배우며, 더 좋은 교사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교사를 꿈꾸던 몇 년 전 즈음, 한 드라마를 보며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었습니다. 바로 ‘블랙독’이라는 드라마인데요. 그 드라마의 대사 일부를 적으며 글을 마칩니다.

 

“상위권 방과후에 못 들어가는 애들을 좀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 세상에 전교 1, 2등 같은 애들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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