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2-07-19 16:39
| 본 글은 2021년 ‘서울시교육청’의 학습성장스토리 공모전 사례집인 <사랑으로 꽃피는 아이들>에 게재되었습니다. |
요즈음 우리 반 학생들이 수행평가 팀별 과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했다. 종례가 끝나고, 점심시간에, 쉬는 시간에, 심지어 조회가 끝나고도 상담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담임 교사 입장으로는 하소연을 듣고 해결방안을 어떻게든 쥐어짜서 그들에게 또 다른 과제를 얹어주는 꼴이 될 뿐, 보족한 대책은 없었다. 그들에게도 ‘내가 이렇게 답답한데 고작 그 말뿐?’, 나에게도 ‘내가 그렇게 들어줬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이런 식의 서로가 갑갑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던 걸까. 부서에서 실시한 스트레스 지수 검사 결과가 18로, 상담이 필요한 범위에 속해 있었다. 여학생들의 숨은 기 싸움, 은근한 비꼼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알아챌 수 있다. 학교폭력은 아닐지라도 담임 반 학생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선생’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고, ‘난 왜 이 상황을 현명하게 마무리 짓지 못할까.’라는 찜찜한 마음에 휩싸인다. 나는 ‘이번 해에 신규 교사로 부임해서 이 정도 학급경영이면 정말 만족하고, 그들끼리 일어난 일을 내가 완벽히 손볼 수는 없다.’라는 생각으로 잠시 위로를 한다. 하지만 스스로 하는 위로는 한계가 있다.
어떤 작가가 이야기한 ‘추구의 플롯’1 측면에서 보면 나는 ‘외면의 목표’는 도달했을지라도 ‘내면에서 추구하는 목표(진정으로 모든 우리반 모든 학생들이 행복하게 생활하는 것)’는 이루지 못한 느낌이었다.
한동안 그런 느낌을 갖고 있다가 ‘토닥토닥 키다리샘’(이하 키다리샘)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게 되었다. 프로그램 이름을 들었을 때 딱 2가지가 생각났다. ‘토닥토닥’ 그리고 ‘우리 반 A와 B!’
키다리샘은 교과 또는 담임교사가 정서적, 학습적으로 관심이 필요한 학생들을 소규모로 함께 문화체험, 상담, 교과학습 등 여러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담당교사가 주어진 예산으로 활동계획을 짜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에게 주어진 일도 벅차다 싶어 최대한 무관심하게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마음대로 교육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나의 교과에 대한 활동이나 경험을 선정된 학생들과 진행하면 교직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프로그램 취지에 맞는 학생을 선정하고 그 학생과 친밀히 지내는 학생 B도 간신히 설득해서 시험 기간에는 모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과 상담을 했다. 먼저 무엇이 고민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자고 했지만 역시나 그들의 대답은 “모르겠어요.”, “아무거나요.”, “없어요.” 였다. ‘그래 그럴 것 같았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건 A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B는 수학 공부도 하고, 좋은 곳에 가서 영화도 보고 미술관 전시회도 갈 거야. 알았어?” 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싫어? 별로야?” 나의 채근에 그들의 “좋아요.”라는 3글자 대답을 듣고 계획을 이리저리 짜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3명이 한날에 모이는 날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두 번째 날은 바로 계획을 실행하면 아쉽잖아? 카페 갈래?”
A와 B는 선생님에게 나서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길게 대답하지 않는, 자신의 세계를 누리는 학생들이다.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친해지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학교 근처 카페에 갔다.
“이거 먹을래?”
“저거 먹을래?”
“이건 무슨 맛이야?”
누군가를 알기 위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한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들에게서 한 문장 이상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렇게 어물쩍 첫 번째 활동이 끝나고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 미술실에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노래를 틀고 간식도 먹고, 때로는 카페도 다니면서 한 달을 꼬박 채웠다.
두 번째 달이 될 무렵 A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어떻게 대답하지?’ 하면서 귀로 듣고 흘리고 있을 때, B가 나서서 마음속에 있는 해결책을 차근차근 요목조목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B가 이렇게 말을 잘하고 생각이 깊은 학생이라는 걸 몰랐다. 조회 때 폰으로 게임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만 끝내면 그만인 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B는 친구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나보다도 더 심오한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걸 이야기로 풀 수 있는 학생이었다. 고민 상담 시간을 계기로 우리한테는 알 수 없는 미묘한 친근감이 생긴 느낌이었다.
주말에는 영화관과 전시회에 갔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장면은 무슨 뜻이었어? 이 내용은 전 영화 이 부분과 관련된 거였어?”라고 계속 물었다. ‘영잘알’(영화를 잘 알고 있는)인 B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영화 시리즈를 옮으면서 이야기를 해줬고 나는 들었다.
A도 맞장구를 치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나는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말을 적게 하고 있어! 난 듣고만 있는 중이야!’ 일찍 마친 평일에 우린 사진전에 갔다. A는 핸드폰을 충전해야 해서 사진을 못 찍었고 내 옆에서 “너무 이뻐요.”를 연발했다. B는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런 아기자기한 전시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B는 “저 여기 다녀온 적 있어요. 거긴 정말 좋았어요! 왜 서울에는 없을까요?”와 같은 대화를 먼저 걸어왔다.
마음속으로는 정말 감동이었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나한테 말을 하다니! 유명한 사진전이라고 해서 나도 보고 싶은 마음에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나한테 사진은 중요하지 않고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자주 만나니까 내가 많이 편해진 거구나.’라는 감동이 먼저 밀려왔다.
인상 깊었던 사진에 대해 이야기하고 저녁 메뉴는 무엇을 먹을지 의견을 나누면서 더 친해진 기분이었다. 비바람이 불고 추웠던 초겨울 날이었지만 우린 차가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도 한여름 국화빵처럼 마음이 따스해지는 걸 느꼈다.
비록 두 달쯤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회초년생 신규 교사인 나로서는 A, B와의 추억쌓기를 통해 교사로서 한층 성장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말을 적게 하고 있어!
난 듣고만 있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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