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9-06-07 13:44
얼마 전 부산에서 직접 혹은 간접으로 친구 사이인 교육계와 만화계 8인과 사업가 3인이 자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다. 친목 모임만 하기가 무료해서 사업하는 친구들에게 각자의 사업 환경과 현황, 전망을 얘기해달라고 청했다. 골재업, 선박장비제조업, 수입자동차판매업을 하는 세 친구가 각각 30분 넘게 신이 나서 사업 얘기를 들려줬다. 흥미진진했다. 몇십 년 동안 같은 사업에 종사해온 사업가 친구들은 자기 사업의 시장구조나 기술 특징, 업계 동향을 완전히 꿰고 있는 1급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의 얘기를 경청하며 배우는 동안 해당 사업의 속성과 가치에 대한 이해심은 물론 사업가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피어나는 걸 경험했다.
모래와 자갈을 채취해서 파는 골재업 얘기를 하나만 예로 들어보자. 모래와 자갈이 없이는 시멘트를 만들지 못하고 시멘트가 없이는 도로와 건물 등 어떤 구조물도 건설할 수 없으므로 골재업은 가장 오래된 기초소재사업이자 가장 정확한 경기바로미터이다. 강과 바다, 산에서 채취한 후 항구 등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운송해 쌓아놓고 수요처에 공급하는 게 주요 업무다. 모래는 원천에 따라 산모래, 강모래, 바다모래로 나뉘고 굵기에 따라 세사, 중사, 대사로 구별된다. 공정과 용도, 가격이 조금씩 다르다.
바다모래는 철근 골조 건축에는 사용이 금지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물로 소금기를 씻어내면 쓸 수 있으며 실은 바닷모래가 제일 양질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 밑 모래 매장량을 보여주는 모래자원해도가 따로 있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수십 년을 퍼다 썼는데도 대한민국 바다모래 매장량의 0.1%도 못 썼다니 골재자원은 무한대로 있는 셈이다.
당면한 최대 어려움은 바다모래 채취 때문에 근해어종의 산란가능지가 줄어들어 어족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어업계의 문제제기. 해수부가 이를 받아들여 작년 7월부터 1년간 바다모래 채취금지령을 내렸다. 아찔했지만 자기는 고용을 줄이거나 월급을 깎지 않고 1년을 버텼노라고 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사회적 책임을 다한 사업가의 자부심에 친구들이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이렇듯 본인은 물론 친구들도 모두 뿌듯해한다.
세 친구의 사업얘기를 듣는 내내 나는 우리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사업가들을 만나 다양한 사업 얘기를 직접 들을 기회를 많이 가질수록 교육적으로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 학생들은 바깥세상과 경제활동, 특히 농수축산업, 건설토목업, 제조업, 서비스업의 세계를 너무 모르고 산다. 정보통신, 인공지능, 나노기술 등 첨단산업의 환경과 구조에 대해서도 전혀 배우지 않는다. 국가경제와 세계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골목경제와 지역경제의 구체적 현장과 실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탐구할 기회가 없다. 한마디로 지금의 학교교육은 삶의 현장교육, 특히 산업과 경제교육이 너무 빈약하다. 이래서는 아이들에게 창업의 꿈과 역량은 물론 경제영역을 더 인간적으로 바꿀 경제시민의 꿈과 역량도 키울 수 없다.
교육, 예술, 사업으로 하는 일은 달라도 자리를 함께한 친구들은 모두 이 부분에서 한마음이었다. 나는 골재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골재업협회가 골재업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는 학생용 교육자료를 제작할 의향이 있을지를 물었다. 당장 골재업협회 회장단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마침 유명만화가들이 함께 했으므로 산업이해 교육만화 제작에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도 물었다. 당연히 긍정적이었다. 나는 현재로서는 교육부나 교육청이 주요 산업별 협회들과 손잡고 만화나 웹툰 형식으로 다양한 산업 이해 교육자료를 만들어내는 게 바람직하고 우리 친구들은 오늘의 산학 대화경험을 토대로 촉진자 역할을 하면 되겠다는 선에서 정리했다. 자리를 마치면서 함께했던 11인 모두는 우리 안의 산학 대화 자체가 몹시 유익했다고 입을 모았다.
나는 서울교육감 시절 모든 대기업과 중견기업, 강소기업이 학생들을 위해 경제교육센터나 진로직업교육센터를 운영하는 기업교육책임의 꿈을 꿨다. 나는 환경책임, 안전책임, 인권책임과 함께 교육책임 역시 기업의 사회책임이 요구하는 중요한 내용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어떤 산업이나 기술의 내용과 특징, 그 시장규모와 경쟁구조, 업계 현황과 전망에 대해 알고 싶으면 누구나 그 산업이나 기술의 대표기업의 학생교육센터에 가면 될 것이었다. 박물관과 미술관, 문학관뿐 아니라 대기업의 경제교육센터나 진로교육센터도 학교 밖 학교로서 훌륭한 교육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었다. 특히 당해 기업 은퇴자의 파트타임 자원봉사 일거리로 더없이 적합하다고 생각됐다.
경제이해교육은 민주시민교육과 함께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도 몹시 필요하다. 민주시민들이 경제를 제대로 모르면 경제를 어설프게 바꾸거나 못 바꾸기 때문이다. 경제민주주의를 달성하려면 경제이해교육의 실질화가 필수적이다. 어떤 산업과 기술, 품목이든지 관심 있는 두세 개만 골라서 관련 산업과 기술의 속성과 수급환경, 경쟁구조와 변화 전망 등을 제대로 학습하면 상당한 경제지식이 쌓일 뿐 아니라 진로선택에도 큰 도움이 된다. 산업이해교육은 진로직업교육이자 경제시민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진로직업교육과 경제시민교육은 민주시민교육과 함께 우리 교육이 향후 가장 발전시켜야 할 교육 분야다.
경제시민교육을 실질화하기 위해 교육청과 지원청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관내 기업인들과 중층적인 대화를 시작해서 상호의 기대와 요구를 공유하며 성공적이고 상생적인 협력 방안을 찾아내는 일이다. 둘째, 관내 상공회의소, JC, 라인온즈, 로터리 등 기업인 조직과 지속적인 교류협력관계를 만들어내서 학교교육에 도움을 받는 일이다. 셋째, 관내 주요기업들과 협력해서 다양한 산업이해교육 및 창업교육 교재를 하루바삐 만들어내고 최대한 학교교육에서 활용하는 일이다.
위와 같이 산학 대화와 협력이 제도화되면 첫째, 중학생들의 자유학년기간 중 진로체험교육이 실질화될 수 있다. 지역기업들이 사업장을 열어주고 교육역량을 갖춰야만 진로체험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가 학생들의 진로직업교육 강사 및 참고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누구든지 기회가 주어지면 자신의 경험을 청소년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셋째, 관할 특성화고의 산학협력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 특성화고 업그레이드는 책임 있는 관련 기업인과 손잡고 진행할 때만 가능하다. 학교가 기업인의 경륜에 학교 문을 활짝 열고 기업인은 사회책임으로 사업장의 문을 학생들에게 활짝 열어야 할 때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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