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에 질렸지만 있어 보이고는 싶어

by slowalk | 2019-04-30 11:52

나는1 군대에서 2년간 공군 헌병으로 복무했다. 헌병 중에서도 초소를 지키는 경비소대에 속했는데, 남정네 2명이 초소를 5시간씩 지켰다. 그 무료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꿈에 대한 20대의 생각과 그 근원에 있는 무의식적 욕망을 파헤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학습자로 하여금 ‘원하는 삶을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었으니… 그래서 복무 기간 동안 초소에서 약 50명 정도의 초병들과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중에서 45~6명 정도의 초병이 답변하는 유형이 매우 유사했다. 그 대화의 얼개를 소개하며 교육에 대한 나의 고민을 펼쳐 보고자 한다.

 

 

일단 돈을 많이 벌고.. 되면 여행이나 하지

 

a : 꿈이 뭐야?
b :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는 거?
a : 하고 싶은 게 뭔데?
b : 음… 여행?
a : 그럼 여행만 다니려고? 그리고 여행 다니면서 살려면 돈도 많이 필요하지 않아?
b : 음… 그렇겠지? 그래서 일단 돈을 많이 벌려고.
a : 그러다가 돈 버는 것에 너의 삶의 대부분을 쏟아야 할 수도 있잖아. 돈 버는 게 하고 싶은 건 아닐텐데?
b : 음~, 그렇지. 그런데 요즘 먹고 사는 게 힘들잖아. ‘일단’ 먹고 사는 것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a : 그러니까 소위 자아실현은 먹고 사는 걸 해결하고 여가시간을 잘 즐기는 건가?
b : 음… 그렇지. 여행 다니면서 다른 문화도 접하고 새로움을 느끼면서?
a : 그런데 일하면서 자아실현을 할 수는 없는 거야?
b : 음… 아무래도 돈을 좀 벌려면 그럴 것 같은데?
a : 아, 그렇구나. 근데 돈 많이 벌고 여행 다니면 ‘잘 사는2’ 걸까?
b : 음… 그럴 것 같은데?
a : 왜 그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
b : 음… 그러게.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니까?
a : 근데 돈 많이 벌어서 여행 다니는 게 왜 하고 싶은 게 됐을까?
b : 음… 그냥?
a : 그냥이 어딨어? 한 번 잘 생각해 봐.
b : 여행 다니면… 재밌잖아.
a : 그러면 여행 말고 재미있는 건 또 없어? 왜 하필 여행이야?
b : 음… 그러게. 아, 너무 힘들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여기서 “그만하자”라고 대부분의 ‘우리’들이 말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는 것도 싫어한다. 자신을 고민하게 하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워낙 겁에 질려 있기 때문에 도대체 ‘잘 사는 것’이 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조차 두렵다. 그렇게 고민해서 나오는 여러 선택들을 끈질기게 밀고 나갈 용기도,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을 멈춘다. 지금의 불안하지만 안정적인 ‘무지’의 상태로부터 벗어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다

 

요즘 우리는 겁에 질려있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그런데 그렇게 벅찬 와중에도 소위 워라밸3 이란 걸 유지하고 싶다. 시간 내서 여행을 하면 자아실현도 하는 것 같고… 어쨌든 뭔가 ‘있어 보이고’ 싶다. 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니, ‘일단’ 돈부터 버는 삶을 상상한다. 도대체 다른 삶을 상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당장 눈앞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을 한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일단 돈을 꽤 벌 수 있을 것 같은 선택을 한다. 별 생각 없이 상경계를 노리거나 공대를 간다. 그나마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50대라고 별 거 있겠는가? 때론 어쩔 수 없이 치킨집을 차리기도 한다.

 

 

긴 안목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데 그런 선택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긴 하는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지금 잘 나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실제 5년, 10년이 지나면 완전히 빗나간 선택이 될 수도 있다. 회계사 자격증을 따서 10년 후에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가? 알파고의 무서움을 봤다면 그런 말은 하지 못하리라.

따라서 좀 더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 미래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 당장의 유망한 직업을 고르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까? 끊임없이 시대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것을 요구할 터이니, 우리는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이때 용기 있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하는 동력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탐색, 내면에서 샘솟는 욕구가 아닐까? 따라서 긴 안목을 갖는다는 것은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겁에 질려 있으니, 그 고민의 회로마저 스스로 차단해 버린다. 누군가 질문을 던지려고 하면 그만할 것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그 누군가를 진지충(?) 프레임에 가둔다. 게다가 속은 빈 강정인데,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사회의 욕망을 제 욕망인 양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본인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고민해야 할 지 알 도리가 없다. 정말 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우리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잘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하려면 교육자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교육 만능주의가 아닐까?

 

일각에선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이 뒤엉켜 있어 교육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저성장, 일자리 부족, 양극화, 주거확보의 어려움 등등 때문에 우리들이 겁에 질린 것인데, 교육 만능주의를 주장하며 모든 책임을 교육에게 떠넘기는 것은 몰상식한 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을 제외하고도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문제점들이 우리를 겁에 질리게 만드는가? 그런데 교육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아이들이 이렇게 겁에 질린 채로 있어 보이는 삶을 맹목적으로 쫓는 것을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

대학생 때 한 친구를 열심히 학습 멘토링한 적이 있다. 성적도 꽤나 올라 나름 원하는 대학에 간 그 친구는 ‘있어 보이는 삶’을 맹목적으로 쫓는 중이다. 물론 나에게 그 친구의 삶을 재단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그러려고(?) 내가 그 친구의 성적을 올리려고 애쓴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닭 쫓다 지붕 쳐다보는 개가 된 기분을 씁쓸히 곱씹는 경험을 하신 분들 꽤나 많으실 것이다. 교육자의 목표가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는 것은 아니니까.

 

 

원하는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교육?

 

그 당시 함께 초소에 있던 친구들도 대한민국에서 공부 꽤나 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마저 별 고민 없이 있어 보이는 삶을 맹목적으로 쫓고 있다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그래서 미칠 듯이 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었다. 많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사회가 원하는 삶이 아닌,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기를 더 강렬하게 욕망하게 됐다.

이전부터 나와 비슷한 욕망을 품은 선배 교육자가 매우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대체 원하는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게 만드는 교육이 뭘까? 이 거대하고도 막연한 문제에 많은 분들이 지레 포기했거나, 간만 보고 도망쳤으리라. 하지만 도망치기엔 이게 교육의 근본적 목표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이 거대하고도 막연한 문제를 잘게 쪼개어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제로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4년이 지났다. 구체적인 문제들로 쪼갠 여러 단계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책을 성장의 단계로 엮어냈다. 물론 내가 구한 해법이 온전한 해법일 리 없다. 다만 여러모로 부족한 나의 해법을 디딤돌 삼아 다른 분들도 함께 묘안을 궁구했으면 좋겠다.

 


* 이 칼럼은 총 2회로 구성됩니다. 이 원고(1회)는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 겁에 질려 사회의 욕망을 제 욕망인 양 쫓고 있는 10~20대의 실태와 교육적 어려움에 대하여 썼으며, 2회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을 다룰 예정입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각주

  1. 필자 정준민(wjd1wns2als3@naver.com)은 성남 구시가지 <함께여는청소년학교>에서 12명의 아이들로 시작하여 11명의 고1 아이들과 10개월 째 만나고 있습니다. 취약한 환경이 가져다주는 역설적 축복인 존재를 고민하는 힘과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 내고 싶은 필자의 욕망 때문입니다.
  2. well-being의 의미다.
  3. Work & Life Ba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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