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끝난 자리의 아동 돌봄 (2) –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로서의 문제의식

by gyobasaNPO | 2022-04-20 15:47

1.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선거철만 같아라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원회가 국가의 기틀을 짜고 있는 지금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서 공중에서 흩날렸던 그 많은 말들은 조용하고 무겁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언뜻 침묵의 봄이 다시 와 버린 느낌이다. 그나마 지자체장과 교육감의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살포시 말들의 향연이 또다시 펼쳐질 낌새가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그 뒤로 감당해야 할 좌절과 무기력의 긴 시간을 현재 함께 겪고 있기도 해서인지, 아니면 아직 선거판이 충분히 흥행 가도를 달리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흥이 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역시 표 한 장 든든하게 손에 쥐고 나설 때가 좋다. 그때만은 국민인 것도 같고, 시민인 것도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선거철만 같아라’라는 소리가 한숨처럼 새어 나온다. 그런 관심이 뻔한 것임을 알면서도,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 씁쓸한 뒷맛에 며칠은 혀를 차고 다닐 것을 알면서도, 이 숨 막히는 관료주의적 돌봄과 교육제도 안에서 때로는 발작적으로 비명을 지르듯 선거철에는 잠시 미쳐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2. 무엇을 내지르고 싶은가?

 

인간은 대체 무엇을 가장 큰 고민거리로 삼는가?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현장에 선 사람들에게는 ‘정체성’의 고민이 적지 않다. 즉, ‘아이들을 길러내는 데 기여하고 있는 우리들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고민이다.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가 이 고민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본질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을 우선 살펴보며 이런 질문의 다양한 측면들을 우선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선 방과후 돌봄에 종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처우가 불안정한 편이다. 물론 이는 우리 사회의 일반적 특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나마 초등학교 돌봄교실의 일부 종사자들만이 공적으로 그리고 상대적으로 안정적 처우를 보장받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종사자들은 아무런 보장책이 없다. 정부로부터 종사자들의 급여체계조차 보장받고 있지 못한 지역아동센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마치 너 좋아서 하는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잘 해보라는 식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 한 가지 전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지역아동센터를 만들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 정부가 아이들에 대한 지원에 너무도 미온적 태도를 보이니 초기 협상에 참여했던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이 모든 걸 희생해서라도 아이들에 대한 지원만은 보장받으려 하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을 너무 미화한 이야기라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가 돌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던 정부의 태도를 생각하면 이런 이야기가 전혀 이해되지 못할 바도 아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시작하게 된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은 지금에 이르러 매우 불안정한 사회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겉으로 언뜻 보면 제 처지를 좀 좋게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은 이 문제가 본질적 측면에서는 공공성(公共性)이란 문제와 맞닿아 있다.

 

즉,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 공적인 일을 하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승인하고 지원하게 되는가? 이런 질문들과 맥이 일치한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공적 체계를 거쳐 선별된다. 스스로 자임을 하더라도 사회가 일정한 거름망 장치를 마련하여 공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고, 그들이 역할과 기능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정돈된 체계를 마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은 좀 그렇다는 것이다. 그냥 지역아동센터를 스스로 설치하여 그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니, 사회구성원들이 보기에는 좀 의아하기도 하고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눈치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는 법이 없다. 들어올 때는 자유였을지 모르나 일단 들어오면 손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있어 보겠다고? 그렇다면 어디 한 번 감당해 보시지…” 뭐 이런 식이다. 즉, 공공적인 인간으로 살겠다면 어디 한 번 살아내 보라며 평생 그 모서리를 갉아낸다.

 

그렇다고 모든 공공 부분의 종사자들이 선발이나 선출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공무를 자임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일종의 공유지 경작에 힘을 쏟는 사람들로 대체로 공동체에 대한 투철한 봉사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헌신적 활동이 사회적으로 크게 의미를 내면 낼수록 이들이 하는 일은 공공부문의 정식 업무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진다. 예를 들어, 지역아동센터가 한때 크게 관심을 기울여왔던 빈곤 아동에 대한 지원들이 지금은 고스란히 공공부문의 드림 스타트 업무로 전환된 것이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서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큰 사람들이다. 그리고 실은 우리 지역아동센터들 역시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 사회가 아동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쏟아야 한다는 신념이 투철했던 사람들이 싹을 틔운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지역아동센터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 그런 정신이 얼마나 온전히 남아서 어떤 결실을 맺고 있는가는 또 다른 자리에서 논의가 필요한 문제지만, 그 시작점에 공공성이 커다란 동기로 존재했다는 점만은 강조해서 말하고 싶다.

 

 

3. 시작은 창대하였지만 끝은 한참 구부러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공의식을 제도화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역량과 책임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아동, 노인, 장애인, 병자 등 사회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책을 ’사회서비스‘라는 명칭으로 제도화하고 있는데, 이 사회서비스 안에는 주거나 교통, 교육이나 의료 등이 함께 포함되어 있으며 이중 돌봄은 주요한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실은 이러한 거대 영역 혹은 주요 영역들이 어떤 틀과 관점에서 제도를 실현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돌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공공성이 강조되지만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며 일정한 이윤 추구가 허용되는 의료나 교통, 거대 사교육 시장을 가진 우리 사회가 돌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어쩌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우리들은 다음 세대를 돌보고 기르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공공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식되지 못하고, 이 틀의 영향을 받아 그저 단순히 ‘돌봄 서비스 제공자’로만 인식되기도 하는 현실 지형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조안 C. 트론토가 「돌봄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강조한 것처럼 ‘시민’이 다른 ‘시민’을 돌보는 시민성이 투철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공공재원을 좀먹는 ‘사회적 생산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처럼 그렇게 오인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돌봄을 행하는 자’라고 하는 보호막이 잔인하게 찢겨버린 채, 우리들은 돌봄 서비스의 수요자임을 자처하는 아이들 앞에 돌봄 서비스 제공자로 즉 ‘공급자와 수요자의 프레임’이 덧씌워진 채 가혹한 돌봄의 시장 안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런 구부러진 현실을 조금이라도 되돌려보고자 선거판의 가녀린 한 줄기 빛에 희망을 걸어보고 있는 지금이다. 사실 희망 따위는 품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공유지를 가꾸기는커녕 밤새 그득그득 쌓이는 쓰레기 더미에 당장이라도 압사해버리고 말 것 같은 현실을 감당해 내기도 벅찬 것이 지금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 그런 고민과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지고 있는 판인데 말이다. 선거라고, 그래서 무엇인가가 바뀔 수 있다고 그렇게 희망을 품어보는 것이 과연 가당찮은 일일까 싶다가도 끝없이 샘솟아 오르는 ‘나는 누구이며, 우리들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옳은가?’하는 질문들의 파고를 외면할 수는 없어 또 다른 선거를 앞둔 지금 조용히 ‘판’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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