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2-01-26 14:54
1. 어쩔 수가 없는 일
올 겨울방학은 유독 짧다. 1월 한 달 남짓으로 방학은 끝이 난다. 물론 2월에 짧은 봄방학이 보름가량 있겠지만, 겨울방학은 예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도 다 코로나 때문이다. 코로나로 세상 좋았던 것은 다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그 짧은 방학도 이제 얼추 끝나간다. 맛만 본 것 같은데 벌써 끝이다.
그런 방학 동안 거의 5시 반이나 되어서야 센터에 얼굴을 드러내는 아이가 있다. 실은 방학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근 반년이 다 되도록 그러고 있다. 아이는 학교 선생님께서 ‘남아서 공부를 하고 가라’고 했다면서 그러고 있다.
최근 초등학교 학생들 중 기초학력 부진을 겪고 있는 학생들과 관련하여 학교책임제, 담임책임제와 같은 교육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는 줄 안다. 아이는 아마 이런 정책의 혜택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물론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학교도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고, 보호자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아이는 아예 이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작만 할 따름이다.
짐작이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그 아이를 가르쳐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공부하기를 몹시 싫어한다. 관계 맺기와 감정조절도 어려워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남의 이야기를 통 들으려 하질 않는다. 어려운 학교 숙제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해야 할 판인데도, ‘답을 내놓든지 아니면 그 입을 다물든지’ 하는 식이다. 물론 아이들이 조금씩 그런 면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어려운 수학 문제 앞에서 답은 알려주지 않고 “이 등호의 쓰임새는 무엇이냐?”, “나눗셈은 무엇이냐?” 등등의 원리적인 질문만 하고 있으면 터져 버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글쎄 답이 뭐냐고요? 그걸 알려달라고요? 모르겠다고요!” 하지만 그 아이처럼 대놓고 언성을 높이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이의 태도가 ‘극심하게’ 좋지 않게 된 것도 코로나 때문이라고 하면 어떨까? 온라인 학습을 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아이의 온라인 의존이 더 심해진 것 같아 보이기에 해보는 소리다. 학교와 센터에서의 감염자 발생으로 집에서 근 보름을 머물게 되면서 아이는 하루 종일 유튜브 시청과 게임을 즐긴 눈치다. 한부모 가정의 외동인 처지므로 오랜만에 거칠 게 없이 실컷 즐긴 눈치다.
그랬던 것이 방학 직전의 이야기다. 실은 파랑새도 신년을 확진자 발생과 함께 맞았다. 때문에 길지도 않은 방학의 첫 주를 아이들은 센터에 와보지도 못한 채 보내야 했다. 도시락을 나르고, 아이들과 줌으로 ‘수수께끼 맞추기 대회’ 등을 하면서 겨우 그 첫 주를 넘겼다. 그동안 아이에게는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 유튜브 시청은 되지만, 연락은 되지 않는 태블릿만 가지고 있는 아이는 도시락을 가져가면 그래도 반가운 얼굴을 잠시 보이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런 시간이 겨우 지나고 모두들 반가운 얼굴로 바쁜 방학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아이만 저녁을 먹기 직전에야 겨우 모습을 드러낸다. “담임샘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라고 해서 남아서 공부하고 집에 가서 잠깐 쉬느라고 지금 온 거에요. 못 믿겠으면 담임 선생님한테 전화해 보든가요!” 할 일을 마치고 오는 것인데 뭐 어쩌라는 거냐? 당당한 태도다.
처음에는 설마 하는 마음도 들었다. ‘방학 중에 담임선생님께서 너를 불러서 5시가 넘도록 공부를 하고 가도록 하셨다고?’ 하도 보기 드문 일이라 살짝 믿음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긴 지난 학기 때 처음 이런 일이 벌어질 때도 그랬다. 6시가 다 되어 나타난 아이가 지금까지 공부를 하고 오느라 늦었다는데 처음에는 통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시간까지 담임교사와 함께 있었으니 못 믿겠으면 전화를 드려보라 해서 부끄럽지만 전화를 드렸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담임교사는 미처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후 ‘누구누구가 다니는 지역아동센터 교사‘라고 문자를 드려보았으나 아무런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종종 이런 교사들이 있다. 학교 밖 인력들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교사들 말이다. 서로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당하고 보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댁과는 나눌 이야기는 없다’는 식이다. 이런 일을 한두 번씩 겪고 나면 슬그머니 상처가 생겨 아예 이런 조짐을 보이는 교사들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리기도 한다.
물론 정히 궁금하면 학교까지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물을 수도 있겠으나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였다. 아이의 말이 사실이어도 그렇고 또 사실이 아니란 것을 확인한다고 해서 센터에서 딱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것을 믿을 수밖에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게 나쁜 것도 아니다.
2.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일
그런 생활은 방학 중에도 변함이 없었다. 다른 아이들은 아침부터 나와서 북새통을 이루는데, 아이는 5시 반이 다 되어 삐죽삐죽 나와서 얼른 저녁만 먹고 휙 가버린다. 채 1시간도 머물지 않은 센터가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스럽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가끔 이런 아이들이 보인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는 공식적으로 가정 돌봄이 허용되기도 하여 어떤 아이들은 센터에 적을 두고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이를 그만두게 할 권한은 센터에 없다. 그래서 그런 아이와 보호자를 설득하여 센터를 그만두게 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리기도 하였다.
어떤 아이들은 센터에 오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마냥 기다리고 있는데, 또 어떤 아이들은 오지도 않으면서 이름만 올려놓고 있는 지금의 체계는 말이 안 된다 싶다. 이런 현상은 방과후 돌봄이 일종의 공식적 서비스가 되면서 훨씬 더 심해지고 있다. 물론 거기에 코로나가 한몫을 하고 있음도 틀림없다.
정부는 늘 지역아동센터가 돌봄서비스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영 신뢰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래서인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지역아동센터 아동들은 3시간 이상 머물면서 돌봄을 제공받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길들여진 나 같은 사람은 지금처럼 자기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돌봄을 받겠다고 하는 아이들의 의지가 때로는 낯선 것도 사실이다.
학교와 교사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를 하고 있다는 점은 감사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아이가 센터에 올 수 없다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생기면 ‘저 아이는 그래도 돌봄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드는 게 사실이다. 센터가 학교를 우선할 수는 없으니 결국 그 생각의 끝은 센터를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도 계속 이런 식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면 센터를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물론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는 도리질을 쳤지만, 그래도 이렇게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센터에 나와서 밥만 먹고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설득을 계속했다. 아이는 울먹이며 “선생님이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하고 오는 건데… 그럼 어떡해요? 6학년이 되면 안 그러겠지요?”하고 자기도 억울한 소리를 한다. “그런데 아침부터 학교를 가는 건 아니잖니? 보니까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오후에 학교에 다녀오는 모양인데, 그럼 그냥 이렇게 집에서 지내면 되지 않을까? 다른 아이들은 지금 센터에 오고 싶어도 못 오는데, 네가 이렇게 이용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이번에는 네가 그만둬 주는 게 맞을 것 같다.” 최대한 감정을 섞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을 이어본다.
혹시라도 아이가 늦게 온다고 그것을 가지고 협박을 일삼으려는 마음이 일까 두려웠던 까닭이다. 결국 그렇게 보이기 십상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최대한 노력해볼 생각이다. 물론 센터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태도에 가끔은 상처도 받고 좌절감도 든다. 그래서 울컥 ‘그럼 그만두라’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 때가 없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넌 여길 못 다닌다’고 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런 권리를 우리는 아예 갖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이럴 것이면 다른 필요한 친구에게 양보를 해주면 어떻겠는가?’라고 물을 수는 있다. 물론 그때도 아이가 싫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가 공적 돌봄으로 자리를 잡아갈수록 그래서 공공성과 공익성이 중요한 문제가 되어갈수록 구성원 모두가 이런 점에서 자유로운 입장이 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파랑새에서는 그렇다.
정부의 세금과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 곳을 제대로 이용도 하지 않으면서 자격만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이들과 우리에게는 그런 공공의 문제에 답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고 있다. 그것이 비록 학교가 열정을 다하느라 그런 것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아이의 아버님에게도 정중히 해당 문제를 말씀드리고 퇴소를 부탁드렸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지만 아버님도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부탁을 해오신다. 이렇게까지 하면 아이에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아침 일찍 센터를 나오고 있다. 내일 학교를 가야 하면 전날 그런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다. 아이의 정중함이 고마워서 역시 정중하게 응대를 하고 있다. 물론 그래도 공부만은 사절이란다. 학교에서 지긋지긋하게 하고 왔으니 센터에서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는 투다.
센터에서 공부로 아이들을 지겹게 하고 있다니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도 든다. 그리고 학교와 교사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지역아동센터가 마치 트집을 잡는 것처럼 보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서로 이해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아 벌어지는 일이라 여기고 이해를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고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 이런 문제는 해결이 될까?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 지역아동센터 교사들도 학교 담임교사들과 아이들 문제를 함께 의논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후보들도 작은 행복을 위한 공약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과연 이런 작은 행복에도 마음을 쓰는 후보들이 있을까? 학교 안과 학교 밖의 조화로움을 고민하는 그런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없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런 대통령을 한 번 만나보면 정말 좋겠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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