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학교 대전환> -새로운 수능은 응시 영역 설정부터 시작해야 한다-

by gyobasaNPO | 2022-01-11 15:11

역대 최대로 복잡한 2022학년도 정시모집 원서접수가 끝났다. 논리와 근거가 희박한 제각각의 ‘깜깜이 배치표’가 난무한 올해 정시모집에서 최대 관심사는 교차지원의 영향력이다. A대학 자연계에 지원할 성적이면 그보다 더 합격선이 높은 B대학 인문계에 붙을 수 있다는 설이 돌아다닌다. 아직 규모와 범위를 정확히 모를 뿐, 실제로 ‘이과의 문과 침공’은 올해부터 하나의 뚜렷한 경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명목상 문·이과 구분이 없는 수능은 2015 개정 교육과정과 더불어 2018학년도 입시에 처음 적용되었어야 했는데, 지난 정부가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하는 바람에 결정이 미뤄졌고, 현 정부 집권 이후 극심한 논쟁 끝에 올해 수능이 태어났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수학 미적분/기하 + 과학 과목’을 선택한 학생이 ‘수학 확률과통계 + 사탐’을 선택한 학생보다 우위에 서는 현상이 가시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문과 학생이 불리해졌지만, 이는 현 수능 체제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문·이과가 동등했다가 이과 우위의 대학 입시로 전환되는 변곡점이 대두되었다는 것이 2022학년도 입시의 특징이다. 변별력이 높아질수록 이과 우위는 가중된다. 대학도 학과별 모집에서 단과대학별 모집으로, 단과대학별 모집에서 인문자연계열 통합 광역 모집단위 설계로 대응해야 할 상황이다. 서로 다른 학생을 선발했던 인문대와 공대가 같은 학생을 두고 경쟁하는 새로운 현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논의는 배부른 대학의 투정으로 보일 만큼, 대학은 지금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정시모집이 끝나고 2월이 되면 대학들은 대학의 생존 지표 즉 학생 충원율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학생 수가 줄어들어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데, 지난 10년 남짓 동안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12월 22일 교육부는 각 대학의 정원을 줄이는 “자율혁신계획”을 내년 5월까지 제출하라고 대학에 요구하며 이 계획(학생 충원율)을 일반재정지원사업과 연동한다고 발표하였다. 1조 1,970억 원을 지원하는 일반재정지원사업에 탈락하면 사실상 그 대학은 학생 모집에 치명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교육부 사업의 핵심은 대학정원감축이며, 아마 30%~50%까지 정원 감축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록금을 올리지 못하고, 입학생은 줄어드는데 정원까지 줄이면 대학 재정은 어떻게 되겠는가. 대학별 평균 40억 남짓 규모의 교육부의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의 재정 파탄은 이미 심각하며 파산은 시간문제이다. 게다가 국립대학을 무상교육으로 전환하면 어떻게 될까. 교육부는 대학의 파산을 재촉하고 있는 듯하다. 십 년 내 많은 대학이 망할 것이다. 어떤 대학은 폐교되고 어떤 학과는 없어지거나 통합되며, 모든 대학은 대학 파산과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는다. 학생을 충원하는 대학과 학과는 생존하고, 그렇지 못한 대학과 학과는 구조조정의 대상이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학의 교육과 연구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사치에 가깝다. 대학 파산이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는 현실에서 대학이 연구와 교육을 돌아볼 여유가 있겠는가. 당연히 교육과 연구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고등교육 생태계의 몰락이고, 지방의 소멸이며, 결과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모든 대학을 살릴 방도는 없다.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도 단지 잠깐 연명할 뿐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망할 대학이 다 망한 뒤 간신히 살아남은 대학에 무슨 경쟁력이 남아 있겠는가. 대학이 망한 뒤에 정부가 고등교육에 재정을 투입하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대학이 교육과 연구라는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려면, 정부는 대학이 본격적으로 파산하기 이전 적절한 시점에 개입하여 대대적인 재정 투입을 해야 한다. 학생이 줄어드는 상황을 보면 아마도 2025-26년 즈음이 되지 않을까. 학생을 모집하지 못하는 대학부터 파산, 통폐합, 재생사업의 대상이 될 것이다. 중앙정부-지자체-기업-대학이 연계된 새로운 클러스터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 여러 대학을 통폐합하여 경쟁력을 갖는 하나의 대학으로 특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학재생사업도 도입될 것이다.

 

수능은 정시모집에서 대학 합격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학 입장에서는 입학생의 성적보다 등록률이 더 중요하다. 수능은 소수 대학을 위해 변별력 기능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고, 그 변별력도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공정이라고 착각하며 부여잡고 있다. 올해와 같은 선택형 수능(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통과목 + 선택과목이 조합된 수능)을 도입할 때 두 가지의 조건이 달라져야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긴다. 한 가지는 한 학생이 선택하는 응시 영역과 과목의 축소이고, 다른 한 가지는 대학 모집단위의 광역화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현 수능을 설계할 때 고려되지 않았고, 우리 사회는 단지 절대평가/상대평가의 변별력 논란에만 부질없이 매달렸다. 어렵게 출제하면 절대평가로도 학생 선발에 필요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현재 수시모집에서 과반이 넘는 학생이 수능과 무관하게 대학에 진학하고 있으므로 그만큼 많은 대학은 수능과 관계없이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수능으로 선발하든, 내신으로 선발하든, 추첨으로 선발하든, 많은 대학은 선발 도구가 아니라 학생 충원이 중요하다. 수능은 사실상 소수 대학에 한정된 선발 도구이며, 그 소수 대학은 수능이 아니더라도 논술과 면접 같은 다른 선발 도구를 활용하여 학생을 고를 수도 있다. 전형요소로서 수능이 다른 요소로 대체될 수 있고, 수능과 무관하게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면 수능의 활용도와 효용이 낮아졌다는 뜻이 된다. 고등학교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고교학점제를 위한 새로운 교육과정이 예고된 상황에서 현 수능은 교육과정과 충돌하고 변별력도 과도하다. 교육과정은 학생의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는데, 수능에서는 특정 과목으로 모여 있어야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절대평가 방식의 내신 성취도 평가가 확대되는데 수능 상대평가가 유지된다면 대학 입시는 20세기로 회귀하고 교육을 통한 미래 인재 육성도 공염불이 되고 만다. 정부가 예고한 대로, 현 수능은 태생적으로 오래 유지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올해 새 정부가 들어오면 2028학년도부터 적용될 새로운 수능을 설계하기 시작한다. 이때 논의할 첫 주제는 수능 응시 영역이 되어야 한다.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 사회, 과학, 제2외국어, 직업탐구 과목은 수능 응시과목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백지 위에서 한 과목씩 따지고 성찰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교육적인 논리와 교육 외적인 논리가 복합적으로 개입할 것이다. 영어가 수능에서 제외되어야 말하고 듣고 읽고 쓰는 진정한 영어 능력을 학교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다는 주장과 영어가 수능에서 반영되어야 그나마 최소한의 영어 능력이라도 갖출 수 있다는 주장이 대립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당위론도 대두될 것이고, 더 확장하면 우리 주변 나라의 역사나 세계사도 알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심지어 수학이 수능에서 제외되어야 진정한 수학적 사고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국어에서도, 사회 교과군에서도, 과학 교과군에서도, 제2외국어와 직탐 영역에서도 과목 간 이해관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교육적 논쟁을 하자. 수능에 반영되어야 학생이 공부하고 그래야 담당 교과가 영향력을 갖는다는 생각은 교사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이 논의야말로 국가 단위 표준시험으로서 수능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이며, 그래야 교육과정이 수능과 연결된다.

 

수능 응시과목을 정하면, 다음으로 학생이 그중에서 몇 과목을 응시하게 할지 논의하자. 국영수사과를 수능 영역으로 설정했다면 그중에서 학생이 5개 모두를 응시할지, 4개 혹은 3개 혹은 2개를 선택할지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결정하자. 대학은 학생의 최대 응시과목에서 몇 개를 반영할지, 학생을 선발할 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스스로 정하면 된다. 지금까지 학생은 최대한 많은 과목에 필수적으로 응시하고 대학은 최대 과목을 반영하는 방식이 통용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선택과목 체제에서는 학생의 수능 응시과목이 줄어들어야 마땅하다. 수능 응시과목 수는 평가 방식과 연동된다. 응시과목이 늘어나면 절대평가를 택하고, 응시과목이 줄어들면 상대평가를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수능 응시과목이 많아지면 출제영역은 공통과목으로 축소되고, 응시과목이 줄어들면 출제영역은 선택과목까지 포괄하여야 한다. 새로운 수능의 응시 영역과 학생의 최대 응시과목이 결정되면, 사실상 2028학년도 대학 입시는 논리적으로 대입기본계획을 구성하는 기술적인 사항만 남게 된다.

 

입시전문가에게는 수능의 공정성이 금과옥조일 수 있고, 재수생을 둔 학부모나 내신이 좋지 않은 학생의 학부모에게는 수능이 희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로 접근하면 새로운 수능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수능을 만들어가는 준거는 다른 무엇도 아닌 교육과정이어야 하며, 그래야 새로운 학교 교육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 원칙을 세우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역할을 하지 않으면 새로운 수능이 아니라 겉모습만 달라진 ‘변종 수능’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학교 대전환도 없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교육부라면 차라리 그 책임을 교육부에서 떼어내는 게 미래를 살아갈 학생을 위해 바람직할 것이다. 2028학년도 수능이 2023년 여름까지 만들어질 것이다. 과거 경험에 얽매이지 말고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다는 교육 본연의 입장에서 판단할 일이다. 고교학점제 정착을 위해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 적용을 배제하는 조치도 올해 2월까지 이루어져야 하고, 2028학년도 수능 이전에 적용할 좀 더 단순한 방식의 일회성 수능 개편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조금씩 모래성을 허물어 가면 학교 교육 대전환은 시나브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리라 생각한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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