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9-01-16 16:25
정무란 “정치나 국가행정에 관계되는 사무”를 뜻한다. 정무적 판단이란 “정치에 관한 사무적, 행정적인 것을 인식하여 특정한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단을 하는 인간의 사유 작용”을 말한다. 최근 들어 어떤 사람을 높은 자리에 임명할 때에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표현보다 정무적 감각이나 정무적 판단 능력을 고려했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정무적 판단과 교육정책 결정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당 노동시간과 최저 임금, 탈 원전 등과 같은 정책은 우리 사회가 선진 복지국가가 되려면 반드시 지향해야 하는 정책이다. 다행히 현 정부의 철학과도 맞아서 정부가 이미 실행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제상황, 중국 발 미세먼지의 생명 위협 등으로 이런 정책을 지금 실행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하루라도 더 빨리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공공선을 지향한 정책, 사회적 상황, 정책 실행 시기 간의 긴장감이 상승하고 있다.
위 정책들은 무엇이 일차적인 준거가 되어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했을까? 일반 국민 특히 노동자들의 피폐해진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와 다른 모든 생명체와 함께 전 인류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동참하려는 선한 의지가 발현된 정책이다. 따라서 정치적 판단이나 정무적 감각에 의한 판단이 우선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백년대계라는 교육정책은 무엇이 더 우선적인 준거가 되어야 할까.
지난해 칼럼에서 유아교육보육 정책이 저출산과 같은 위기 요인이 작용한 점도 있지만, 정치적 판단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전 정부가 시작하고 전 정부가 전격 확대한 유치원과 어린이집 유아 대상의 소득과 무관한 무상교육보육 정책이 대표적이라고 예를 들었다. 당시 전문가와 담당 행정부서는 각 가정의 소득을 고려한 차등액 지원 방식의 무상교육보육을 제안했다. 그러나 지난 정부들은 선거를 앞두고 전 유아 대상의 동일 지원액 전면 지원을 결정했다. 이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재원과 근거법 마련 등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교육정책의 발표는 대부분 회오리바람을 몰고 온다. 지난해에도 교육정책과 관련된 큰 소동이 있었다. 유치원 영어교육과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교육, 대입을 학종(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 두 가지 중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유아기 영어교육은 전문가와 학부모의 상반된 주장과 요구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교육부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아주 초보적인 실용 영어부터 시작하고, 재미있는 놀이 방법으로 가르치겠다고 기존의 입장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그러나 교육부의 발표가 있은 후에도 학부모들이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청와대에 건의를 하고, 언론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계속 이슈화 하였다. 그러다 마침내 새 장관이 부임하여 유아교육 현장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초등 방과후 영어교육을 다시 실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지난 주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에 유아기 영어교육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올 3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한 아이는 영어학원에 일년 반을 다녔다는데 읽기도 잘하고 작문도 잘한다고 했다. 반듯하게 쓴 영어로 자신의 희망을 적은 글은 나의 영어 메일 글 수준을 돌아보게 할 정도였다. 아이의 영어 실력을 자랑하는 어른들의 표정은 엄청나게 비싼 등록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했다. 다른 아이 이야기는 영어학원의 유치부 아이들이 민속박물관에 견학을 와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 남자 아이가 바지에 소변을 쌌는데 그 이유가 기가 막혔다. 절대로 우리말을 해서는 안 되는 규칙을 지키느라고 소변이 급한 남자 아이가 영어로 화장실을 묻지 못해 바지에 소변을 싸고 말았다는 것이다. 유아기 영어교육에 대해 인터뷰도 했던 나는 질문을 했다. 영어 잘하는 여자 아이가 영어 그림책만큼 우리 말 그림책도 좋아하는지를. 소변을 싼 남자 아이의 표정이 어떠했는지를.
유아기와 초등 1,2학년의 영어교육 재개, 이 결정은 무엇을 준거로 한 것일까. 모국어나 제 2외국어와 같은 언어 발달, 언어를 담당하는 뇌의 측두엽 발달 시기와는 다른 결정이고, 조기 영어교육으로 인한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고려한 결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영어 사교육비 증가와 소득별 영어교육의 격차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졌으니 아마도 이런 점들이 고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부모의 사교육비 증가는 정부가 나서서 줄이는 것이 당연하고,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격차는 더 강력하게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 결정에서 당사자인 아이들의 발달, 모국어 습득의 가치, 유아기의 즐거운 현재 삶은 후 순위가 되었다. 이런 결정을 정무적 판단이라고 해야 할까?
대입 전형은 또 어떤가. 다양한 층위의 성인들을 모아 숙의 과정을 거친 후 결정을 하는 방식을 택했지만, 장 담그는 것보다 구더기를 먼저 잡으려는 결정을 하고 말았다. 개별 학생의 발전을 인정하는 가치보다 여전히 상대적 경쟁을 더 우위에 두고 있고, 즐겁고 활기차고 탐구적인 일상을 지낸 청소년들은 대학을 가기 더 힘들게 되었다. 어느 것 하나 실수해서도 안 되고 놓쳐서도 안 되는 노심초사의 학교생활을 더 하게 만들었다. 우리 때보다 대학가기가 더 힘들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이 결정의 준거는 무엇일까. 공정성 추구, 객관성 담보, 정의로운 대입 제도일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정무적이다.”는 정치적 업무를 잘 처리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정치적이다.”는 정치적인 능력과 수완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로 나와 있다. 내가 느끼기에 두 단어는 뉘앙스가 좀 다르다. “정치적이다.”란 말은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고, “정무적이다.”란 말은 긍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말보다 정무적 판단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면 왠지 더 높은 차원의 능력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느끼는지, 정부의 높은 자리에 누구를 임명할 때에 그 사람의 역량을 나타내는 말로 정무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표현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교육과 관련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는 어떤 준거가 우선되어야 할까? 진정으로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정무적 감각이나 정무적 판단 능력은 아니어야 할 것 같다. 당사자인 유아, 학생들의 삶을 우선 준거로 정책을 이끌어내고 추진할 교육적 소신이 우선이어야 할 것 같다. 만약 시대적 상황이 걸림돌이 된다면 적어도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는 분명히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실망이 계속되겠지만 새해, 작은 희망을 적어본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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