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8-12-28 17:29
새해를 맞았는데도 교육에 관한 한 반가운 소식이 없다. 연말부터 어두운 얘기만 쏟아져 나왔다. “공교육 정상화 ‘길’을 잃었다”란 한 일간지 헤드라인(경향신문 2018년 12월 26일)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얼마 전 모임 자리에서 모 대학의 교수가 “이 정부는 교육으로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사람들도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며 맞장구를 친다. “서울대생 절반 우울증세”라는 기사(매일경제 2018년 12월 1일) 제목도 눈길을 끌며 한숨을 자아낸다. 이런 기사 내용들을 두고라도 이미 한국의 학교교육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내놓은 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의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 얼마나 처참히 실패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사회자본에 대한 교육의 역할과 정책방향(김희삼, 2017)’이란 연구에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4개국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사회적 신뢰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분실지갑회수 실험, 국민의 사회적 규범 준수 비율, 고용유지비용 분담 의사, 준법정신, 협력정신, 봉사정신’ 등에서 모두 한국이 최하위이다. 이를테면 ‘분실지갑회수 실험’은 “귀하가 귀국에서 귀하의 연락처와 현금 100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현금이 든 그대로 지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중·일·미 4개국 대학생들이 어떻게 답변하는지를 비교해본 것이다. 한국은 응답자의 13%만이 지갑이 그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57%, 미국과 일본은 각각 24%, 22%였다. 이는 한국이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가 비교국 중 가장 낮다는 점을 나타낸다. 교육의 목적이 지적이고(be smart) 품성이 좋은 사람(be good)을 기르는 것이라면 한국은 특히 후자의 교육목표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기존의 낡은 개혁논의 중단해야
기존의 낡은 개혁 논의란 ‘표준화(standardization)’와 ‘표준화시험’ 그리고 이것이 만들어 내는 ‘경쟁’이란 틀 속에 갇혀서 여전히 수능, 학종, 변별력, 사교육 경감 등과 같은 의제에 매몰되어 더 큰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또한 기둥이 무너지고 지반이 꺼질 위기 상황 속에서 한가하게 “저기 서까래 하나가 썩었다”, “저기 지붕에 물이 샌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작년 한 해를 돌이켜 보라. 한 해 내내 대입시 제도와 관련해서 답도 없는 학종과 수능의 공정성에 대해 온 사회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는가?! 이는 우리 사회의 문제해결능력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논의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지만 문제해결의 방법이 크게 잘못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학교교육과 대학입시의 미래방향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서 큰 방향을 먼저 정하고 그 속에서 2022년도 대입제도를 그 외의 관련 요소들과 통합적으로 검토·논의했어야 했다. 그런 지엽적인 논의에 먼저 초점을 맞추게 되면 자칫 교육이 나아갈 큰 방향을 놓치거나 그런 방향과 맞지 않는 제도를 만들게 된다. 이웃 나라 일본은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최근 몇 년에 걸쳐서 총체적으로(예: 고교와 대학의 연계, 대학교육 개혁, 교육과정 개혁, 대입시험 및 내신평가 개선, IB 도입 등) 제대로 개혁하고 있는데, 그 사이 한국은 대학입시 하나만 달랑 떼 내서 논의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도 아무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지 않는가?!
지난 20-30년간 우리가 주목했던 교육개혁은 주로 교육과정 개정, 입시제도 변경 등이었다. SKY 대학의 졸업장이 여전히 높게 평가 받고, 입학의 문이 좁으며 직업의 귀천의식이 강하고, 고졸-대졸 간의 임금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한 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입시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고 생각된다.
대학입시를 향한 경쟁교육 문제해결의 2가지 접근법
대학입시가 교육과정을 대체하는 상황, 본질에 충실한 교육을 하려고 해도 모든 것이 입시중심교육으로 환원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개선책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어느새 많은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 같다. 아예 솔직하게 “교육에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론 때문에 ‘교육에 희망이 없다’는 얘기를 하지 못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학교교육의 고질적 문제인 대학입시를 향한 경쟁교육에 대처하는 방안은 매우 제한적이다.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수능과 같은 표준화 시험의 질을 높이고 시험 결과의 영향력을 줄임으로써 수능의 교육과정 지배력을 줄이는 접근이다. 아직 문제가 많은 학종의 보완재로 수능 같은 표준화시험을 유지하되 논·서술형으로 바꾸고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등급수를 지금보다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아울려 수능 100% 전형을 폐지하고 수능 성적은 여러 전형자료 중 하나로만 쓰이게 해야 한다(예: 서울사범대-영어 교육과 영어 1등급 이상만 지원가능). 또한, 고교 과정과 수능의 출제 내용을 완전히 일치시켜 내신과 수능 준비란 이중부담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런 수능은 논·서술형 위주의 5등급 절대평가나 IB(국제바칼로레아)처럼 7등급 절대평가가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동점자 처리는 추첨을 포함하여 전공에 따른 교과 성적, 면접 등을 활용함으로써 대입경쟁 완화와 학교교육 내실화를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작년에 논의했던 수능 9등급 절대평가로는 여전히 줄세우기가 너무 심하여 학교에서 본질에 충실한 교육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절대평가를 위한 성취수준을 9가지로 나누어 서술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의 영어과목처럼 난이도를 조정해서 매년 등급별 학생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 한다면 이는 상대평가이지 절대평가가 아니다. 수능을 이렇게 바꾸자는 제안은 상위권 대학을 향한 교육열이 상당기간 줄어들기 어려워 입시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받아들이되 교육적인 경쟁을 하게하자는 것이다. 이는 또한 한국의 수능도 IB(국제 바칼로레아)처럼 성취수준(평가기준)이 수업을 이끌더라도 교육의 질은 높게 유지해보자는 전략이다. 이런 접근에도 해결해야 할 크고 작은 문제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와 개인의 생존의 문제가 걸린 고등사고력 신장을 위해 어떻게 해서든 해결할 과제이지 미루거나 포기할 사안은 결코 아니다. 한편, 대학입시를 향한 경쟁교육 문제해결의 제3의 방법으로 오랫동안 주장되어 왔던 대학 공동선발·공동학위(대학평준화) 제도는 해결방법의 하나로 고려하지 않았다. 입시경쟁이란 외적 동기가 없는 한국의 중고교 교실을 교사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현실적 이유 때문이다.
대학입시를 향한 망국의 경쟁교육을 해결하는 또 다른 한 가지 접근법은 교육과정의 탈표준화(post-standardization)를 시도하는 것이다. 즉, 가장 기본적인 것만 국가가 공통으로 관리하고 나머지는 각 시도교육청에 맡기는 방식이다. 교과서도 없애고 IB처럼 개인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교육자치가 뿌리내린 나라들처럼 국가가 최소한의 국가수준공통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17개 시도교육청마다 서로 특색 있는 지역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지나친 입시중심교육을 막을 장치는 필요할 것이다. 이런 교육자치가 실현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현재와 같이 변별력이 높은 수능은 존재하기 어렵다. 17개 시도교육청에 속하는 학교마다, 개인마다 교육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표준화된 교육과정 운영을 포기하면 즉, 배울 내용, 수준, 평가 방식을 국가가 강제하지 않으면 진정한 학생 성장 중심 교육과정 운영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위의 두 가지 접근은 이미 현실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전자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후자는 IB) 시험이 고부담(high-stake)이 아니며 학교가 본질에 충실한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접근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대학이 고교교육과정을 철저히 존중해 신입생을 뽑아야 하며 수학능력을 갖추었다고 인정되는 학생 수가 모집인원을 초과할 때는 추첨이나 내신·수능·면접을 포함한 종합전형을 실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수능을 자격고사에 가깝게 운영함으로써 살인적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학교교육을 내실화할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교육을 포기하고 무한 경쟁을 방치함으로써 개인과 국가의 장기적 존망을 위태롭게 할 것인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현실은 너무 안타깝다. 한국 사회는(그것도 교육부 주도로!!) 후자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들은 긴 안목에서 교육을 바라보아야 한다. 당장 눈앞의 사적·정치적 이익에 눈멀어 국가의 존폐를 위태롭게 만들고 반인성적인 면을 강화하며 수많은 학생들을 우울증 환자로 내모는 교육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인격을 키우는 일과 아동의 웰빙을 교육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는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정할 때 지난해의 공론화처럼 여론에 기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여론 속에는 사적 욕망과 비전문가의 근시적 관점이 내포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학교교육이 나아갈 새로운 길 모색
한국의 학교교육이 나아갈 새로운 길(New Way)은 무엇일까? 학교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세계의 주요국들 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탁월하고(excellent) 공정하며 포용적인(equitable)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그 나라 구성원이면 출신배경, 피부색과 상관없이 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문해력과 능력을 갖추어주고 각자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키워주는 교육을 의미한다. 세계의 주요국들이 이런 교육을 추구하는 데는 배경이 있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혁명으로 인해 부의 편중과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인구의 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잦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난민의 증가와 출산률 저하로 인한 외국 인력의 유입이 대표적인 요인이다. 공정하고 포용적인 교육(inclusive education)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며 끊임없는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성장에너지를 다 소모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도 빠르게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교실 내 학생들의 다양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이런 21세기 사회에 한 국가가 건강하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려면 모든 구성원들이 존중받고 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식·기능·역량을 고르게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일은 필수적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의 학교는 매우 이상한 병원을 닮았다. 멀쩡한 환자만 돌보고 진짜 환자는 내팽개치는 병원 같은 곳이 한국의 학교다. 이는 매우 야만적이며 비윤리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에 대해 눈감고 있다. 대통령, 교육부장관, 국회의원, 교원들에게 묻고 싶다. 왜 이런 이상한 병원 같은 학교를 방치하는가? 적어도 이것이 큰 문제라고 발을 동동 구르며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는가? 또한 한국사회는 출산률이 낮다고 아우성치면서 정작 낳아놓은 아이들은 돌보지 않는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학교교육은 지금까지 걸어왔던 낡은 길(Old Way)을 청산하고 이제 윤리적이며 희망이 있는 새로운 길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하그리브즈와 셜리 교수가 공저한 『학교교육 제4의 길』①②(2009, 2012)에서 제시한 제4의 길과 같은 새로운 길이다. 현재와 같이 학생이 배울 내용, 배울 수준, 배우는 속도, 심지어 평가방식까지 국가가 다 정해주고 학교로 하여금 이를 그대로 따르게 하는 길은 낡은 길이다. 그래서 지금 학교 교실에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학교폭력이 심한 것도 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지금의 표준화, 시험, 학교선택,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교육개혁 방식인 GERM(Global Education Reform Movement)도 낡은 길이다. 학교교육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제4의 길)은 모두가 함께 성장하고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하는 새로운 비전이어야 한다. 이의 핵심은 이렇다: 국가는 교사가 변화를 주도하고 앞장서 의사결정을 하며 각종 혁신을 주도하게 해야 한다. 앨버타 주가 거의 모든 학교와 학구를 대상으로 15년에 걸쳐 학교개선앨버타구상(Alberta Initiative for School Improvement: AISI)을 성공시키고 이것이 금자탑 같은 세계적 현장연구 사례로 칭송받게 된 것은 교사를 변화의 주체로 세워 혁신을 이룬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학교교육 제4의 길』의 저자 중 한 명인 데니스 셜리 교수가 한국에 와서 한 말 중에 “어떠한 정책을 설계하건 간에 매일 교실에서 수업을 이끌어가는 교사들은 학생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라는 대목은 학교교육이 나아갈 새로운 비전의 핵심을 말해주고 있다. 제4의 길은 보다 포용적이고 안전하며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번영·기회·창의라는 사회 및 교육 비전을 중심으로 정부정책, 교사전문성, 대중의 참여를 통해 이루려는 교육변화의 새로운 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막 출범한 국가교육회의 2기의 역할이 크다.
국가교육회의 2기 출범에 부쳐
국가교육회의 2기가 꾸려졌다. 내년에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위한 준비는 물론 굵직한 교육정책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중장기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 한다(경향신문 2018년 12월 26일). 솔직히 우려가 앞선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은 기대하는 성과는 내지 못하면서 교육행정을 더욱 복잡하게, 비효율적으로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교육위원회처럼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합의제(合議制)는 매우 위험하다. 의사결정(국가교육위원회)과 집행(교육부)을 분리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다. 현 정부는 중간리더십(Leadership from the Middle)이 성과를 내며 퍼져나가고 있는 시대에 정반대의 낡은 구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교육개혁을 이렇게 구조적 변화 차원으로 생각하고 있다. 세계적 교육컨설턴트인 풀란이 “교육변화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문화를 바꾸는 작업이다.”라고 한 말을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문화 바꾸기의 핵심은 관계와 신뢰 구축이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든다고 학교문화가 바뀔 리가 없다.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든다고 교육 주체들 간의 관계가 좋아지고 신뢰가 구축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변화의 핵심은 경쟁을 완화하는 일이고 교사와 학생들에게 임파워링(empowering)하여 학교문화를 바꾸는 일인데 국가교육위원회의 설립은 이 두 가지 핵심성공요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한 확실한 변화는 권력의 이동, 불확실성의 증가, 비효율, 복잡성 등의 증가뿐일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통해 한국의 학교교육을 개혁하겠다는 발상은 대표적인 잘못된 행동이론(theory of action)이자 가설로 판명될 것이다. 5점 척도로 가설의 타당성·의미성·실현가능성·검증가능성을 평가해보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교육변화의 핵심은 학교, 교육청, 중앙정부 3자가 학습조직으로 거듭나고 3수준이 함께 변화하는 것이다. 이때 ‘변화’란 집단적 학습, 집단적 리더십, 집단적 책임감, 집단적 자신감으로 교육의 3수준이 함께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방식의 국가교육위원회 안은 신중히 재검토해보기 바란다. 그동안 범사회적으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찬성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던 것은 교육부의 정책 독점과 거듭된 실패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지 국가교육위원회가 가져올 다양한 후유증을 생각해보고 나서 형성된 여론이 아니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도의 변화를 통한 과거 20-30년간의 교육변화는 대부분 실패하였기에 이제는 학교의 수업 변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OECD의 경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와 제2기 국가교육회의에게 당부한다. 어떤 정책적 결정을 내리기 전에 교육부와 교육회의는 지난 20년간 세계적으로 축적된 교육변화의 지식과 원리부터 공부하기 바란다. 교육변화의 실패요인 중 하나가 교육변화 이론에 대한 무지와 이미 나아갈 방향을 정해놓고 반대자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책결정자의 혁신에 대한 집념이란 풀란(Fullan)의 경고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아울러 교육변화에 지난해 대입개편안 마련을 위해 교육부와 교육회의가 공론화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려 했던 그런 무지하고 무책임한 행태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 정부의 깊은 성찰과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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