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1-11-03 12:10

2015 교육과정에서 역량이 도입되자 교사들과 교육청은 백워드 설계, 즉 이해중심교육과정에 관심을 보여 왔다. 이해와 역량을 비슷하다고 보고 역량을 학습하는 구체적인 수업모델로 백워드 설계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의 실태를 보면 ‘백워드 설계를 통해 학생들에게 역량이 발휘되었는가?’는 몹시 의심스럽고, 교육 바깥의 사회구조에 비추어보더라도 ‘실효적이고 적정한 수업 모델인가?’에도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본 소고로는 백워드 설계모형을 도입한 배경과 교수학습에서의 목표를 개관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이어 다음 소고에서는 백워드 설계 방식을 설명하고, 초·중·고 수업에 적용했을 때 나타났던 오류를 분석함으로써 수업설계모델로서의 의의와 한계를 살피려고 한다.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학습방식의 전환이다
백워드 설계는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과 밀접하다. 즉 포스트 포디즘에 부응하는 지식과 기술을 갖춘 노동자를 학교에서 양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생산방식의 변화를 규명하지 않고서는 백워드 설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포스트 포디즘을 이해하기에 앞서, 이전의 생산방식이었던 포디즘을 살펴봐야 한다. 포디즘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본주의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도입한 생산방식으로 ‘획일적 대량 생산’, ‘낮은 임금과 저렴한 원자재 가격’, ‘넓은 상품시장’을 특징으로 한다. 이 방식은 소위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열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데 효율적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비해 자본주의 국가의 전반적인 소득수준을 크게 높아지게 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에 이르러 자본주의는 위기에 직면한다. 선진국에서 기업 이윤이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1973년 중동에서 시작된 석유 파동은 치명적으로 포디즘을 위협했다. 기업의 이윤은 자본주의 역사상 전례 없이 줄었으며, 투자는 위축되었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당시 유럽의 실업률은 1960년대 2.2퍼센트에서 1970년대 4퍼센트, 1980년대 9퍼센트, 미국은 1960년대 4.7퍼센트에서 1970년대 6.4퍼센트, 1980년대 7.1퍼센트로 늘어났다. 또 친환경적이지 않은 대량 생산은 온실 효과 등 ‘생태환경의 위기(Ecological Crisis)’로 발전했고 화석 에너지를 원자력 에너지로 대체하려고 했지만 원자력 발전소 신축을 반대하는 여론 때문에 그 효과는 미미했다. 더구나 포디즘은 경영자나 상층 노동자만이 작업을 기획, 설계했고 다수 노동자는 설계된 직무를 따라 상품을 생산해 왔으므로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저항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 또한 평균 소득수준이 상승하자, 취향이나 기호를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상품에 대한 구매를 더 이상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생산된 상품은 점점 팔리지 않았으며, 실업자는 늘어났고, 경기 침체의 그늘은 깊어졌다.
정부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상품 가격을 낮춤으로써 소비를 늘리려고 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의 포디즘에 대한 믿음은 여전했고, 더 많은 빚을 지더라도 확장적으로 경기부양을 하면 실업은 해결되고 경제성장도 지속될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현실 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정부가 시장에 돈을 푸는 등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을 했는데도 높은 실업률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1970년대 중반에 이르자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최악의 경제문제인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나타났다.
이 현상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선진국들이 갖고 있던 포디즘의 일시적 위기라는 낙관적 현실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 즉 곳곳에서 머지않아 자본주의 시스템이 파산할 것이라는 경고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국가와 자본가들은 포디즘을 대신할 새로운 생산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유연생산체계라 불리는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을 잇달아 도입하여 체제적 위기를 극복했다.
포스트 포디즘은 조직에서 기획과 실행이 분리되지 않고, 자본가와 노동자들은 협업적으로 상품을 생산하며, 고용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생산방식이다. 이를테면 자동차 공장에서 획일적 생산 방식을 보여주던 컨베이어 벨트는 사라졌으며, 포디즘처럼 기계를 써서 부품을 조립하고 상품을 분류했지만 최종 조립은 숙련된 노동자가 직접 처리했으며, 노동자가 협업적으로 작업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직무를 수평적으로 조정했으며, 각 작업팀은 생산과 관련된 사항들에 대해 더 크고 넓은 자율권을 누리도록 했다. 공공 부문 역시 포스트 포디즘을 도입하여 직무 수행에서 효율성을 높여나갔다. 그러므로 노동시장에서 포디즘 체제와 다른 새로운 능력이 취업자나 예비 취업자에게 요구되었고, 이 능력을 개발하는 역할이 학교의 교육과정으로 편성되어 운영되었다. 즉 백워드 설계모형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물질적인 축적 방식이 바뀜에 따라 교육에서 나타난 수업방식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 1970년대와 1980년대 비교적 실무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채로 현장에 들어간 학생은 점점 커지는 우려의 대상이었다. 전통적으로, 학생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성인이 성공적으로 노동하는데 필요한 것에는 엄청난 단절이 있었다. 1990년 Elizabeth Dole(당시 미국 노동부 장관)은 SCANS(필수기능 성취에 관한 장관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현장의 요구를 검토하고 젊은 사람들이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할 준비가 될 수 있도록 학습을 구조화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위원회는 여러 가지 일을 요청받았다. 그들은 취업에 필요한 기술과 마음의 습성을 정의해야 했다. 이것은 학생이 직장을 준비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 필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작업하는 데 필요한 특성을 포함했다. 위원회는 또한 숙달의 허용 수준을 제안하고, 교사가 이것을 평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이러한 숙달을 학교에서 가르치기 위한 전략을 개발하도록 요청받았다.
백워드 설계와 수업 전문성(Harriet lsecke, 46쪽) |
이러한 변화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전통적으로 노동과 자본이 중요한 생산요소였지만, 지식이 더 중요한 생산요소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특히 지식과 정보의 생산 속도가 빨라진 탓에 지식을 선별하고 과제에 적용하는 능력이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학교는 더 이상 지식을 반복적으로 훈련하거나 회상하는 곳이 아니며,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생각하도록 가르치라는 사회적 요구가 교육적 책무로 주어졌다. 요컨대 백워드 설계모형이 도입된 배경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학습방식의 전환이며, 수업 목표는 숙련된 노동자가 보여주는 지식과 기술을 미리 경험하고 그 수준에 이르도록 학습하자는 것이다.
전문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르칠 수 없다
백워드 설계에서, 수업 목표를 ‘학생들을 과학자, 역사학자처럼 사고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로 둔 것은 완벽한 설계처럼 보인다. 그리고 설계된 수업을 보면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주제통합 수업을 운영하는 등 학생들을 전문가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업 목표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백워드 설계를 하더라도 초·중·고 아이들을 전문가 수준으로 가르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오히려 장밋빛 목표는 설계과정이나 수업 활동에서의 문제를 가리는 상징조작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전문가는 초보자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우선 전문지식은 단편적인 사실적 지식이나 절차적 지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제의 핵심 개념이나 주요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조직된 지식과 정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는 지식과 정보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아이디어의 틀을 갖고 있으며, 습관적으로 그 틀에 맞춰 새로운 정보를 부호화하고, 효과적으로 정보를 인출하여 전이함으로써 과제를 해결하곤 한다. 반면에 초보자는 주제에 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사실이나 수치를 회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보 사이의 깊은 관련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인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므로 문제를 충분하게 이해하지 않고 빨리만 해결하려고 하며, 고도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정보 탓에 기계적인 해답을 자주 내놓게 된다.
이렇게 보면 교사는 지식과 기능을 협소한 맥락으로 가르치지 않아야 하며, 정보를 유의미한 패턴으로 조직하여 전이할 수 있도록 사실과 공식 뒤에 숨어 있는 유도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 또한 학생들에게 학습한 내용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하고, 배운 것을 적용하는 학습 시간도 줘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장기기억 속에 엄청난 배경지식과 업무 수행 절차가 저장되려면 수년간, 혹은 그 이상의 학습 시간이 의식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이나 신속한 전략은 없다. 그런데도 전문가 수준에 도달하도록 수업 목표를 세우고, 과정을 설계하는 수업은 그 실효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학생들이 초·중·고에서 특정한 영역만을 집중적으로 학습하지도 않는다. 초·중·고 시기는 국어, 영어, 수학 등 다양한 과목에 실린 기본 지식을 넓게 교육하는 과정으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게 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볼 수 없다. 교사가 직접 사고 기술을 보여주며 복사하듯이 가르치더라도 전문가처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가에게 보이는 뛰어난 사고 기술은 교사의 시연(試演) 탓이 아닌 전문가의 장기기억에 저장된 특별한 지식과 기술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전이를 위해 사실과 공식 뒤에 숨어 있는 유도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하지만 지식인 사실과 공식이 더 중요한 전이 요인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서법을 안다고 해서 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서법은 글을 대강 훑어보기, 특정 정보 찾기, 주제 찾기 등으로 되어 있으며 모든 종류의 텍스트에 적용될 수 있다고 믿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책을 읽고 잘 이해하는 사람은 많은 것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폭넓은 배경지식이 다양한 분야의 텍스트를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우수한 독자일지라도 잘 모르는 주제의 텍스트를 읽거나, 배경지식, 책에 나온 어휘, 문법적 요소 등이 부족하면 쉽게 텍스트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백워드 설계에서 사실적 지식 그 자체보다는 유도 원리에 집중하여 가르치라는 것에는 숨은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교과별로 지식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간접적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사고 기술을 가르쳤는데 전이에 효과적이지 않았다. 예를 들어 교사 중 일부는 수업에서 분명하고 장기적인 학습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교재 전체 또는 교재에 실린 지식을 송두리째 가르치려고만 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의 결과로서 학생이 지녀야 하는 깊고 영속적인 이해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은 채로 곧장 수업을 시작하는 등으로 인해 학생들은 능동적인 사고 기술을 기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학생들이 흥미로운 주요 아이디어에 대해 숙고하고, 주제에 관련된 기저 개념을 바탕으로 고유의 의미를 구성하고, 전이를 통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의미 있게 높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주어진 지식이나 정보에서 이유와 결론을 찾아내는 기술, 가정을 찾아내고 평가하는 기술, 표현이나 생각을 분명하게 하고 해석하는 기술, 지식이 받아들일 만한지, 특히 신뢰할 만한지를 판단하는 기술, 설명을 제시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기술, 추론하는 기술, 관찰하는 기술, 실제로 사고 기술을 사용하는 태도 등을 배울 수 있도록 단원을 설계하여 수업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어나 개념을 살피면 유도 원리의 근간이 사실적 지식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전개하도록 하며,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없으면 삶에 대해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즉 언어는 사고, 느낌, 욕구, 경험 등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그들도 우리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서로를 결속하여 관계를 맺게 한다. 언어는 사고와 접한다. 언어는 사고를 반영하며 사고는 언어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므로 언어를 잘 사용하는가는 사고 기술이 얼마나 능숙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명료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언어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다. 불명료한 사고를 할 때는 우리가 상황에 대해 명료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이러한 사고를 표현할 올바른 언어를 알지 못할 때가 많다. 삶에서 과제를 해결하는 사고 구조가 정말로 명료하고 정교하다는 것은 과제에 대한 적합한 언어를 알고 있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념은 우리의 사고를 조직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 관념이다. 개념은 특수한 개체를 지시하는 이름과 다르다. 어떤 집에서 코코라는 개를 기르고 있다고 하자. 코코는 개념이 아니라 특정한 개를 나타낸다. 반면에 개념은 특수한 사물이나 개체를 포괄하는 일반 유형을 보여준다. 낱말이 언어의 단위에 속한다면 개념은 사고의 단위에 속한다. 그리고 낱말을 포함하여 많은 언어는 개념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것이 지식이다. 개념은 사물을 확인하고, 다른 사물과 구분하게 하며, 사물을 설명하게 하며, 사물 간에 관계를 맺게 한다. 특히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관계 지어 의미 있는 유형으로 조직하는 전이는 새로운 개념(지식)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이해하려면 관련된 개념을 찾아야 하고, 선택된 개념이 올바르게 적용되는 조건이 사건에 들어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개’라는 개념을 선택했다고 하자. 그러면 사건에는 동물이고, 보통 네 개의 다리와 하나의 꼬리를 갖고 있다는 조건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생을 문다는 조건은 불필요하다. 개가 대학생을 물 수 있지만 물지 않더라도 여전히 개인 것이다. 또한 네 개의 다리와 하나의 꼬리를 갖고 있더라도 개가 아닐 수 있다. 고양이 역시 그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문가의 자질인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의미 있는 유형으로 능동적으로 조직하는 능력은 개념, 즉 지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만 발휘된다. 물론 개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조직될 수 있다. 마치 같은 공간에 있는 가구와 장식을 사람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는 것과 같다. 같은 수업을 들은 학생이 같은 주제에 대해 보고서를 쓰더라도 그 내용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지식과 정보를 관계지어 조직하는 유도 원리로 연대순, 비교, 유비, 인과 등 무엇을 쓰든지 간에 지식이 재료이며, 명료한 언어로 구성된 개념(지식)일수록 좋은 재료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경험을 개념화하고, 개념화를 기초로 믿음을 형성하고, 지식을 획득하고, 그 지식을 전이하며 삶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적 지식 자체보다는 유도 원리에 집중하여 가르치면 학생들은 전문가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수업 목표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수업을 백워드 방식으로 설계하기만 하면 정교한 사고의 틀을 갖게 되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미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 배경에는 기술의 발달로 지식과 정보가 차고 넘침에 따라 그것들을 선택하고 조직하는 사람들의 손끝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지식관이 숨어 있다. 즉 사실적 지식의 학습은 쓸모없는 활동이라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한국사 수업에서 ‘고구려는 몇 년에 멸망하였는가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라고 반문한다. 물론 수업에서 이러한 종류의 사실 하나만을 기억했다가 끄집어내도록 하며 평가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실적 지식을 학습하는 목적은 단지 하나의 사실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할 때 도움을 주는 지적 틀인 ‘스키마(schema)’의 재료를 배우는 것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연도만이 아니라 가야, 신라, 백제, 고려, 조선 등이 멸망한 사건을 잇달아 배우고 각 국가의 멸망한 원인과 함께 연대순으로 조직한다면 새로운 개념을 도출하여 문제 상황에 전이할 수 있다. 즉 개념적 지식이 조직화의 재료라면 사실적 지식은 그 재료를 구성하는 미세 재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적 지식이 의미 없거나 이를 가르치는 것이 학습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즉 사실적 지식은 인지 재료로서 백워드 설계가 지향하는 이해, 즉 설명, 해석, 적용, 관점, 공감, 반성에 필요한 스키마를 형성하는 효과적인 이해 도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배운 것을 조직하는 것에만 중심을 두고 지식을 많이 배우는 것이 전문가 능력을 개발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예를 들어 수업 설계에서, 많은 내용지식을 포함하면 연관이 없는 지식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거나, 학생들에게 깊은 학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게 한다거나, 지식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백워드 설계는 매우 주관적이고 위험하다. 무엇이 영속적으로 이해할만한 지식인지, 수업의 어떤 측면에 심오한 탐구가 필요한지, 지식과 정보 중에 무엇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설계하면 오히려 비전문가만 양산할 뿐이다. 즉 위긴스와 맥타이가 학습으로 도달하기를 바라는 이해에서 낮은 단계인 해석 능력조차 기르지 못하며, 응당 돌발적인 상황에도 전이할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이 정말 상위 인지능력을 발휘하는 전문가처럼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교사는 지적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지식과 정보를 많이 기억하는 방식으로 수업 목표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명한 심리학자 대니얼 윌링햄이 수업을 참관한 후에 한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어떤 방법의 수업목표를 두는 것이 좋은가는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 언젠가 4학년 교실에서 교사가 열대 우림에 살면 어떨지 생각해 보라고 안내했다. 학생들은 이틀에 걸쳐 열대 우림에 대해 토론했지만 배경 지식이 없는 탓에 “비가 많이 오겠죠.”라는 정도의 피상적인 답변밖에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 단원이 끝날 무렵 같은 질문을 다시 하자 이번에는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다. 열대 우림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단언한 학생도 있었는데 토질이 나쁘고, 흐린 날만 어어지는 곳이라 채식주의자인 자신도 하는 수 없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곱가지 교육미신(데이지 크리스토둘루, 53쪽) |
윌링햄이 제시한 위의 사례는 지식을 갖고 있을 때 전문가처럼 지식과 정보를 조직하여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한 학생이 나중에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그 학생이 열대 우림지역의 토질이 나쁘고, 계속 그늘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한 이 때문에 그 지역에서는 농작물 재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백워드 설계로써 지식과 정보를 정교하게 조직하는 사고 기술을 학생들에게 개발하게 하려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지식의 폭보다 깊이를 강조한 것,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직관으로부터 지식에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는 당위적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학습과학을 위배하는 처사이다. 교과서에 나온 지식을 송두리째 해치우려고 하는 수업방식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것도 지식과 정보를 조직화하는 사고 기술을 배우는 것만큼 중요하다. 영속적인 이해라는 사고 기술을 습득하는 것만으로는 학생들을 전문가처럼 사고하게 할 수는 없다. 생각을 잘하려면 우선 사실을 알아야 하고 배경지식이 풍부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글의 구성의 원리, 맞춤법, 띄어쓰기 등 글쓰기 하는 정교한 방법을 배우고 맥락에 따라 연습했어도 사실적 지식 등 내용 지식이 빈약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직관적 상식이다. 물론 주제와 관련된 특수한 배경지식이나, 기본 지식을 갖는 학생이라면 그 방법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작업 기억의 용량, 작업 기억의 유지 속도, 작업 기억과 장기기억의 관계를 보면, 지식을 조직화하는 방법에 치우친 수업은 오히려 많은 학생들을 전문가의 수준으로 높일 수 없는 수업 방식이다. 특히 교과내용을 통째로 가르치는 것은 학생을 계속해서 바쁘게만 하며 일부는 지식을 전이하는데 무관하거나 적다고 보는 전제는 더욱 옳지 않다. 정보를 범주화하여 처리하는 것이 작업 기억에서 인지 과부하를 줄이지만, 범주화에 속한 조직화나 정교화는 장기기억에 들어있는 지식과 연결된 인지과정이다. 그러므로 백워드 설계에서,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르치는 탓에 전문가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고 전제하는 것은 일종의 수사(修辭)일 수는 있으나 객관적 사실로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요컨대 백워드 설계에서 수업 목표를 ‘전문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가르칠 수 있다’에 두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또한 교사가 지식과 정보를 조직화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수업 설계의 한 필요조건으로 수긍할 수 있지만, 충분조건으로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은 부당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 본 글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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