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8-07-18 09:44
1. 시작말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교육 개혁 안 중 하나가 고교 학점제 도입이다. 교육부는 금년부터 2021년도까지 학점제 도입 기반 마련을 위해 연구 및 선도학교를 운영하고자 한다. 현재 1차(’18~’20)로 연구학교 54개(일반고 31, 특성화고 23), 선도학교 51개(일반고)를 지정하여 시범 운영 중이다. 그 결과를 참고해 2022학년도부터 전국적으로 고교 학점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작년 정부가 발표한 고교 학점제의 추진 일정은 아래와 같다.
<표 1> 고등학교 학점제의 단계별 추진 일정(안) (교육부 보도자료, 2017.11.27)

교육부는 학점제를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로서, 학점을 기준으로 학사 제도가 설계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교육부, 2017).
고교 학점제는 왜 하려고 하는가? 교육부가 밝힌 학점제 중장기 로드맵을 보면 그 목적은 아래와 같다.
<표 2> 고교학점제의 중·장기 로드맵(출처: 교육부 보도자료, 2017.11.27)

고교 학점제 도입은 학교 교육이 마주한 심각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법정 출석 일수만 채우면 진급과 졸업이 가능한 지금의 무책임 교육을 해결하고, 고교 수준에서까지 학생이 배울 내용의 대부분을 국가나 학교가 결정함으로 인해 학교교육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학생 수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유급 제도는 학습에 대한 강력한 외적 동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 내용을 배울 수 없고 자신이 배우기 싫은 것도 강제로 배워야 하는 현재의 고교 교육과정 운영 상황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고교 학점제를 제대로 연구하고 준비해서 잘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고교 학점제 도입은 한국 학교교육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고교 학점제 도입에는 넘어야 할 많은 산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가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고부담 표준화 시험이다. 수능 100% 정시전형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제대로 된 고교 학점제 도입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도입하더라도 입시준비 교육 최적화를 위한 학점제를 넘기 어려워 그로 인한 부작용이 매우 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8월 초 국가교육회의가 내놓을 예정인 2022학년도부터 적용할 대입전형 안의 수능은 선발 목적인 고부담 시험이란 점이 큰 문제이다. 고교 학점제 도입을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뿐이 아니다. 고교 학점제 도입은 2015개정 교육과정의 대폭 개정을 필요로 한다. 학점제 선진국들의 장점을 한국의 고교 과정에도 적용하려면 국영수사과 교과의 편제를 전면 재구조화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수능시험의 변화를 요한다. 그런데 이처럼 대입전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고교 학점제는 뒤로 제쳐두고 2022학년도부터 적용할 대입전형 체제를 오는 8월 확정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서양에는 “짐마차를 말 앞에 두다(Put the cart before the horse)”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일의 순서가 거꾸로 되었을 때 사용되는 말이다. 말은 짐마차 앞에 서서 끄는 것이 정상이다.

지금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는 끌고 갈 짐마차 뒤에 말을 세우고 있다. 대입전형의 사회적 논의 이전에 고교 학점제를 먼저 논의하든가 최소한 동시 논의라도 했어야 했다.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는 일을 완전히 거꾸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고교 학점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하고 대입전형과는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2. 고교 학점제 도입의 의의
고교 학점제를 도입하는 취지는 ‘학생의 진로선택과 학습능력에 따라 원하는 과목과 수준을 선택하는 선택형 교육과정의 운영’이고 이는 원론적으로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악마는 항상 디테일 속에 숨어 있다. 고교 학점제의 실제적 의미는 무엇일까? 각 이해당사자들에게 고교 학점제 도입의 의미와 영향은 아래와 같이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표 3> 고교 학점제 도입의 실제적 의미

이상의 <표 3>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교 학점제를 도입할 경우 새롭게 연구하고 준비할 것이 매우 많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현재 진행 중인 2022학년도부터 적용할 새로운 대입제도 중 수능 체제는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고교 학점제가 도입되면 고교에는 다양한 진로별 트랙이 형성될 것이고 이를 뒷받침할 수능체제는 지금 공론화위원회가 논하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치 앞은 내다보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부의 행태를 비판하기보다는 이에 가담하는 개인이나 단체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의 상황은 교육촛불을 통해서라도 정부의 잘못된 추진을 막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야 할 상황이다.
고교 학점제 도입에 대한 저항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연구와 준비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또한 유급제도의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교사들의 저학력자와 미도달자 지도 부담이 크고 학생의 선택을 받게 되는 상황을 교원단체나 노조가 반기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또한 과목 선택을 본인의 흥미나 장래 진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 대입에 가장 유리한가에 맞출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고부담 수능 시험을 이대로 두고 고교 학점제의 도입이 불가능하거나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고교 학점제 도입의 진정한 의미
고교 학점제 도입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위 <표 3>의 내용이 실제적 의미라면 당위론적인 의미는 아래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고교 학점제 도입의 의미는 개인과 사회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 돼야 하며, 이를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 부여와 교육과정의 질관리로 규정하고 소통하는 것은 너무 협소한 생각임. 생산인구 감소로 인해 지속가능한 발전이 위협받고 있는 시점에서 모든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시키는 것은 출산률 증가보다 더 중요하고 선결되어야 할 과제임.
• 고교 학점제 도입은 학생이 설계하는 학생 중심 교육과정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표준화된 교육에 대해 성찰하고 개인화 학습과 개별화 교육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것으로, 이를 통해 모든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교육, 모두의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시키는 교육을 실현함. 고교 교육과정에서까지 국가와 학교가 배울 내용과 수준을 강제하는 것은 맞지 않음. 국가와 교육자들은 ‘가르치면 배울 것이다’라는 잘못된 가설을 버려야 함. 학습자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배우고자 함. 자신의 미래 삶을 준비해주지 않고 무기력감만 키우는 학교를 거부하는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임.
“교육 변화의 성패는 교육자와 학생, 기타 학습자들이 배우는 내용과 학습 방식에서 얼마나 개인적인 의미를 발견하는가에 달려 있다. 특별히 집단 구성원들 간에 공유될 수 있는 의미가 중요하다.”
출처: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2016)
• 법정 출석일수 2/3만 채우면 졸업시키는 무책임한 교육 관행의 개선; 다수 학생들의 수업불참 문제의 개선과 학생 다수가 잠자는 교실에서 교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자괴감,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것; 교육자들의 도덕적 사명감(moral purpose) 제고
• 졸속개정, 땜질식 수시 개정으로 누더기가 된 현재의 교육과정을 전면 정비할 계기와 동력으로 삼음.
• 저학력자나 인지적 학습보다 다른 것이 강점인 학생들의 학교 밖 학습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제도의 정착으로 교육과정의 실질적 다양화 모색과 평생학습시대를 여는 동력으로 삼음.
이상의 내용은 “고교 학점제를 왜(why) 하려는가?”란 질문의 답에 관한 것이다. 학점제 도입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정리하고 이를 이해당사자들이나 일반 국민과 소통할 때 학점제 도입은 성공가능성이 높아진다.
4. 고교 학점제에 성공하려면
고교 학점제는 충분히 준비해서 반드시 도입해야 할 과업이다. 이는 고교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강력한 동인(動因)이자 동력(動力)의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고교 학점제를 아예 도입할 수 없게 만들거나 도입하더라도 실패하게 만드는 요인이 매우 많다. 어떻게 해야 고교 학점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고교 교육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 현재 한국의 고교 교육은 학생의 진로를 고려한 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홍후조, 2018. 김진숙 외, 2018)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고교 교육이 다양한 진로별 교육과 학습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하지만 고교 교육을 교양교육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는 공통으로 배우는 과목(예: 2015개정 교육과정의 공통과목)을 두더라도 자연스럽다.
어떤 방향을 택해야 하는가? 정부나 학교는 ‘가르치면 배울 것이다’란 잘못된 가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은 특히 이성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한 고교생은 국가가 강제로 배우게 한다고 배우지 않는다. 물론 졸업자격 요건을 갖추기 위해 오직 점수를 따기 위해 공부할 수는 있다. 이는 의미 있는 진정한 배움이라 할 수는 없다. 그저 점수를 따기 위한 고통스런 과정일 뿐이다. 고교 수준에서는 고교 과정이 진로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보든 교양과정으로 보든 선택은 개인이 하고 개인이 책임지게 하는 것이 옳다. 고교 교육의 성격이 분명할 때 공통필수와 선택의 판단도 자연스럽게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표준화 시험의 영향력을 줄인다. 현재와 같은 수능 시험을 이대로 두고는 고교 학점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표준화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동일한 기간에 동일한 내용과 동일한 수준, 동일한 방법으로 수업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론화 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대입전형 안은 수능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자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고교 간의 학력차가 크고 내신 성적의 객관성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능 같은 표준화 시험을 무작정 없애기는 어렵다. 적어도 5등급 절대평가를 통해 자격고사 수준으로 그 영향력을 낮추어야 한다. 이런 변화 없이 고교 학점제 도입을 통해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셋째, 고교 교육과 대입시를 긴밀히 연계시킨다. 2030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금 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널리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덕체를 포함한 전인교육을 기반으로 개인의 성공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정의 교육, 민주시민 교육, 세계시민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그런데 학교와 학생들은 “이런 교육에 충실하면 대학 진학에도 유리할까?”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이다. 수능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으려면 혁신적인 수업, 학생중심 수업보다는 전통적인 교사 중심의 문제풀이 중심 수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수능시험 100% 정시는 없어져야 할 전형이다. 대신 수능을 자격고사 정도로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최근 일본이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중고대 교육의 새로운 목표 즉 새로운 학력을 일치시키는 접근을 했고 새로 도입하는 대입 표준화시험(‘대입공통시험’이라 부름. 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도 이에 맞추어 설계했다. 학교교육과 대입시가 따로 놀지 않게 한 것이다. 한국도 이런 접근을 해야 한다. 현재의 수능이 측정하는 내용은 학교교육이 추구하는 교육의 목표와는 그 괴리가 너무나 크다. 이런 의미에서도 현재 수능시험 100% 정시 전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잘못된 접근이다.
넷째, 교육과정을 전면 재설계한다. 정부의 로드맵에 따라 2022년도부터 학점제를 도입할 수 있기 위해서는 2015개정 교육과정의 대대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학점제 선진국들이 하는 방식으로 하려면 필수과목의 구성이 현재 한국의 방식과는 많이 달라져야 한다. 학점제를 잘 정착시키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하나의 교과군에 여러 수준과 내용의 개별 교과가 존재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원하는 교과 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공동필수와 선택과목의 개념이 전 근대적이다.
“예컨대, 호주의 교육과정에서 공통필수 교과와 선택 교과라는 것은 사실상 ‘교과군’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영어 교과의 경우, 학생들의 배경과 수준 등을 고려하여 5개의 과목으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해당 시간에 학생들은 각자의 과목 교실로 이동하여 수업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수준별 수업과 비슷한 원리로 보이지만 사실상 동일한 교재와 내용을 수준별로 진행하는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진행하는 5개의 분반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개의 수업은 모두 ‘해당’ 학년의 ‘영어’ 교과로 인정된다.
뿐만 아니라, 11-12학년에서의 언어 영역과 수리 영역에서도 교과군 별 4-5개의 과목이 제시되어 학생들은 자신들의 성취수준에 따라 과정을 결정하여 선택적으로 이수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선이수 과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경우에 따라 한 학기에 하나의 교과군에서 두 개의 과목을 듣기도 한다.”
“더욱이 11-12학년에서의 공통 필수 교과의 경우, 사실상 교과가 아닌 교과군으로 제시되고 있어, 학생들은 시간표에 동일한 교과를 이수한다고 하여도, 실제로 학생들이 수강한 과목은 교과군 내에서 다양할 수 있다.”
(손민호 외, 2017 p301-302)
이상의 인용 내용에서 보듯이 공통필수는 현 2015개정 교육과정의 공통과목들처럼 모든 학생이 동일한 내용, 동일한 수준의 교과를 같은 기간에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교 학점제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교과 재구조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다섯째, 학습자 주도 학습 문화를 먼저 정착시킨다. 학습자 주도 학습이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고교 학점제 도입을 위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할 인프라 요소이다. 교사가 떠먹여주는 교육으로는 학생들이 자신의 강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기 어렵다. 중학교 과정부터 고1에 이르기까지 학습자 스스로 결정하고 시행착오도 겪어보게 해주어야 한다. 또한 고교 학점제 도입을 위해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교육과정을 만들 수 있는 안목을 먼저 길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세계 주요국들처럼 개별화 지도(Differentiated Instruction: DI)와 개인화 학습(Personalized Learning: PL)에 대한 교사 전문성을 높이고 이를 정착시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다. 교사 중심 지식전달식 수업에 대한 다수 교사들의 확고한 믿음이 너무 강고하다. 이를 어떻게 깰 것인가가 큰 과제이다.
또한 학생이 자신의 교육과정을 짤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자기주도학습 능력의 향상 외에 학교가 관련 상담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나는 누구인가(Who am I?)’에 대한 체계적 활동을 유치원 때부터 해서 이에 관한 정보가 쌓이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교육자들이 도덕적 사명감(moral purpose)을 갖춘다. 도덕적 사명감이란 “타인의 삶에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한 헌신적 자세와 강렬한 동기(Fullan, 2016)”를 말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래와 같은 신념과 이를 실천하려는 강한 동기를 말한다.
① 모든 학생은 (배우는 내용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수준과 속도가 적합할 경우) 성공적으로 배울 수 있다.
② 도움이 더 필요한 학생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모든 학생들이 자신이 타고난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한다(Excellence through Equity).
③ (학습 부진이 누적되었거나 학습이 느린 학생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격차를 줄인다.
④ (성공사례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타 학교와 타학군을 돕는다.
이상과 같은 4가지 신념의 공유는 교육변화의 핵심성공요인의 하나이다. 이는 학교의 문화를 바꾸는 작업이다. 고교 학점제란 제도만 우선 도입하고 보자는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마이클 풀란은 『학교개혁은 왜 실패하는가(The New Meaning of Educational Change)』(2016)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개혁이란 단순한 최신 정책의 시행이 아니다. 교실과 학교, 학구, 대학 등의 문화를 바꾸는 작업이다.”
교직자들의 도덕적 신념의 변화 없는 고교 학점제, 대입전형 제도의 도입은 모두 교육의 겉만 바꾸고 교육 불평등만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5. 맺음말
세계 주요국들에서는 기존의 학교제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현 정부는 2030년을 향한 교육비전 아래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려는 생각은 않고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의 대입전형 제도만 떼 내서 만지작거리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학점제 도입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는 순간 8월 확정 예정인 대입전형 안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학점제는 현재 후보로 검토 중인 수능체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을 완전히 거꾸로 하고 있는 교육부의 한심한 작태는 도를 넘어도 너무 넘었다.
2022년부터 실행에 들어갈 대입전형 체제를 확정하기 전에 2022년부터 도입할 예정인 고교 학점제를 먼저 논의하고 확정했어야 했다. 과제의 성격으로 봐도 고교 학점제가 대입전형보다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교육과정 재설계(교과 전면 재구조화 포함), 내신평가 제도 변경(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병행), 진급과 졸업 자격의 재설정(초등교육까지 영향을 미침), 심지어 고교체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일을 완전히 거꾸로 하고 있다. 대입전형을 확정짓고 나서 고교 학점제를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왜 이런 비 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국민 참여형 대입개편이란 해외 토픽 수준의 국제 조롱거리를 만들어냈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다.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입전형과 직결되는 학점제 논의, 내신평가 제도 논의, 교과 전면 재구조화 등은 건너뛰고 수능을 포함한 대입전형만 별도로 떼어 내어 논의하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크고 교육개혁의 실기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런 졸속 개혁은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교육부는 국민으로부터 더 잃을 신뢰도 남아 있는 게 없다. 아, 이를 어찌해야 좋은가?! 한국의 학교교육은 얼마나 더 문제 풀이 중심 입시교육을 해야 하는가? 고교 수준까지 배울 내용을 국가와 학교가 강제함으로써 학생들이 학교교육에서 의미를 못 찾는 상황을 얼마나 더 방치해 두어야 하는가? 미래 한국교육의 침몰의 참상은 나 몰라라 하며 당장 상위권 대학에 누가 들어갈 것인가란 문제를 놓고 쌈박질만 하게 만들고 있는 정부의 이 작태를 어떻게 중단시킬 수 있는가?
우리 사회가 하루 빨리 이성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2030년 모두의 열망을 담은 교육비전을 먼저 만들고 이쪽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제도와 대입전형 제도를 설계하는 성숙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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