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yobasaNPO | 2021-06-30 14:38
최근 야당 대표 선거 이후 다시 “공정”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정의의 의미와 가치를 놓고 인간은 이 천년 넘게 논의해왔다. 최근에는 대학입시의 공정성과 남녀의 차별 문제를 두고서 사회적 논쟁이 있었다. “공정”은 고전적인 이슈이면서 가장 뜨거운 현재 이슈이다. 이처럼 자유, 평화, 정의, 민주 같은 오래된 용어는 비어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면 그(녀)가 부여한 의미가 단어에 채워진다. 마찬가지로 공정(公正)이라는 단어의 소리와 의미도 일대일 대응 관계가 아니라 일대다의 관계이며, 이는 언어가 지닌 본질적 측면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내포될 수 있다. 특히 그 단어가 정치인의 수사(修辭)가 되면 서로 반대되는 의미까지도 포괄할 수 있을 만큼 비어있는 언어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 이 비어있는 단어의 의미를 선점하고 그 의미를 구현할 정책 수단을 만들면 이 단어의 주인이 된다. 어느 정치인이 “불공정”을 가치로 삼겠으며, 그들이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 사람의 공정과 저 사람의 공정은 의미도 같지 않고, 공정을 구현할 정책 수단도 같지 않다. 그래서 정치 행위와 선택은 이 사람의 공정과 저 사람의 공정 사이에서 단어의 의미를 정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차별을 심화시키는 “공정”은 정의로운가. 나의 “공정”을 위해 아이들의 “밥”을 버리는 선택은 공평한가. 가진 자의 배려는 시혜(施惠)인가 의무인가. 우리가 여기에 답할 시간이 머지않아 다가온다.
지난 글에서 필자는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를 위한 총체적 교육개혁과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가 순차적으로 성찰할 주제라고 하였다.
1) 내신의 공정성과 타당성
2) 수능 문항의 타당성과 점수 체제의 공정성
3) 대입 수시/정시 구조와 안정적 거버넌스
교육과정과 수능과 대학입시를 한 방향으로 정렬하지 않으면 학교 교육의 변화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내신은 학교 내에서는 타당한 평가 도구지만, 서로 다른 학교 학생을 비교하여 모든 학생을 줄 세우는 수단으로는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학교 간 학력 격차를 논외로 하더라도, 현재 영재고, 과학고, 일반고 학생을 섞어놓고 기계적인 내신 평가를 통해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없다. 영재고는 성적 표기 방식이 다르고, 과학고는 이수 과목이 다르다. 성취도 평가가 대폭 확대되는 2025학년도 이후에도 영재고, 과학고, 일반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기계적인 내신 평가는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수시모집 교과 전형은 일부 학생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으며 내신은 보편적인 선발 도구가 되기 어렵다. 바로 여기서부터 대입전형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국가 표준시험인 수능은 모든 학생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선발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수능도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다. 과학고와 영재고 교육과정은 수능을 준비하는데 무용지물이므로, 학생들에게 수능으로 대학에 가라고 요구하면 교육과정은 파행되고 그 결과 과학고와 영재고는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1 수능은 모든 학생에게 통용되는 선발 도구가 아니고, 재수생과 고3 학생이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지 않는다. 2025학년도 이후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되어도 과학고와 영재고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내신과 수능 점수를 기계적으로 산출하는 선발 방식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그래서 현재처럼 2028학년도에도 여러 개의 대입전형이 필요하다. 영재고 학생을 위한 교과 전형, 과학고 학생을 위한 교과 전형, 일반고 학생을 위한 교과 전형 그리고 수능 전형. 이 모든 전형을 같은 기간에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물론 영재고 내, 과학고 내, 일반고 내 학력 격차가 없다는 전제로 말이다. 하지만 이 경우 전형 간 선발 비율은 자의적이며, 교과 점수 외 다른 소질과 역량을 반영할 수 없다. 고등학교는 점수만 관리하게 되고, 아이들은 그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전형 별 선발 비율을 대학 자율로 하고 위의 네 전형을 하나의 전형으로 묶어서 선발하게 하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아마도 사회는 비율을 공개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커서 이 방식 역시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이미 다양해진 고등학생 풀을 놓고 기계적으로 선발할 방법은 없으므로 어떤 점수든 모든 학생에게 적용하면 타당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앞으로 학생 선택권이 확대되면서 고등학생들의 교과 이수 유형은 지금보다 더 다양해진다.
기계적인 선발 방식의 한계는 종합평가 방식으로 극복된다. 현재는 기계적인 선발 방식과 종합적인 선발 방식이 혼용되고 있지만, 종합평가 방식은 2028학년도 이후 모든 학생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선발 방식이 될 수 있다. 종합평가 방식을 사용하는 미국 대학들은 시기가 다를 뿐 전형은 단일 전형 체제이다. 그런데 현재의 종합평가 방식인 학생부종합전형이 앞으로의 보편적인 전형이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 이유는 사회적 신뢰와 수용 문제, 즉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의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학교 밖 활동과 수상 기재, 일부 학생의 학교 내 수상의 독점 현상, 진위를 확인하지 못하는 독서 활동,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기소개서 등에서 비롯되었다.2 그래서 정부는 대학에 제공하는 학생부 항목을 조정하여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이미 제거했거나 2024학년도까지 제거한다고 공지하였다. 그렇다면 학생부종합전형은 사회적 신뢰를 회복했을까. 개별 교사와 학교가 학생부 기재 역량이 다르고 학교마다 교육 역량이 다르니 학생부는 학생 개인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는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 수능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교육 컨설팅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도, 부자에게 유리하다는 주장도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 이익과 불이익의 문제로 보자면, 학생부종합전형의 선발인원이 늘어나면 재수생을 비롯한 수능 우수자가 불리하고 이와 연관된 사교육 기관의 이익이 줄어든다. 수능 우수자가 많은 지역과 학교도 불리해진다. 반면 정시모집은 고3 학생에게 불리하고 재수생에게 유리하다.3 다른 비판은 불투명성인데 이는 전형의 본질이며 관점에 따라 장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될 수 있다. 정보 부족 문제도 고교-대학의 협력과 정보 공유를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명목상으로는 의구심이 해소되었다. 교육부 감사도 있었고, 학생부 기재 내용도 바뀌었다. 그러나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문제는 이해관계의 덫에 걸려 있으며, 언제든 재점화될 수 있다. 기계적 선발 방식에는 한계가 있고, 종합적 선발 방식에는 사회적 신뢰 문제가 있으니 현재의 대입전형은 수시모집 교과 전형 + 학생부종합전형 + 논술전형 / 정시모집 수능 전형으로 다양하게 혹은 복잡하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학생이 선택하도록 만든다. 대학입시의 공정성 문제를 풀어가려면 고교-대학-정부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논리와 주장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공정성을 담보하는 정부 기구를 만들어서 사회가 고등학교와 대학을 신뢰할 수 있도록 보증해야 한다.4 대학은 기존의 학생부종합전형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종합적 선발 방식을 찾아야 하고, 고등학교는 대입 선발 도구로서 내신과 학생부의 타당성을 높여서 사회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우리가 새로운 대입제도를 만드는 목적은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역량을 학교 교육을 통해 키우는 데 있으며, 모든 아이가 자신의 소질과 역량을 발견하고 주체적으로 키워가도록 온 마을이 도와주고자 함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교육과정이 발표될 예정이고 고교학점제도 도입된다. 지난 2월에 발표된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종합추진 계획이 전면 시행되면, 새로운 내신 평가 체제로 인해 아마도 현재의 학생부종합전형은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고, 수능 체제에 큰 변화가 생기면 논술이나 심층 면접도 사라지거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이 사회적 대 전환기라면, 우리는 새로운 학교 교육을 위해 내신의 타당성을 높이고 수능의 영향력을 낮춰야 한다. 내신의 타당성 제고는 새로운 수업과 평가를 교실에 도입하여 내신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함이고, 수능의 영향력 축소는 학교 교육이 이전의 80~90년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함이다. 새로운 대입전형 설계의 출발점은 교과 평가 방식이고, 결정적인 선택은 수능 체제이다. 이 두 가지가 결정되면 대입 제도는 거의 기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대학입시는 새로운 학교 교육의 장애물이 아니라 지원군이 된다. 이를 위해 필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고교학점제 사업과 별개로, 내신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한 가지는 학교 내에서 할 일이고, 다른 한 가지는 교육청에서 해야 할 일이다.
내신의 타당성 제고를 위한 제안
1) 단위 학교 내 수행평가의 공정성과 변별력 제고
복잡한 대입 논의의 출발점이 될 고등학교 교과 점수산출 방식이 지난 2월 16일에 발표된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종합추진 계획』에서 공개되었다. 비록 (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으나, 이 (안)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마도 내년 고시에서 최종 확정되리라 생각한다. 1학년에서 배우는 공통과목은 상대평가 9등급을 유지하고, 2~3학년에 배우는 선택과목은 성취평가제(절대평가)를 적용한다. 모든 과목의 원점수, 성취도별 학생 비율, 과목 평균, 수강자 수도 대학에 제공된다. 지난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새로운 내신 평가 방식은 지금보다 변별력이 떨어지지만 많은 대학은 여전히 교과 전형을 유지할 것이다. 간편한 학생 선발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 교과 전형을 시행하는 대학 중에 일부는 교과 전형을 시행하지 못하게 된다. 내신의 타당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학생을 골라서 뽑으려는 대학이라면 교과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서울대처럼 앞으로 어떤 대학은 학생부종합전형만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학생부 기재 방식도 달라지고 교육과정도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과 다른 새로운 학생부종합전형이 만들어질 것이다. 내신의 타당성 제고는 학교 교육 중심의 새로운 대학입시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대학의 입장에서는 내신의 활용도를 늘려야 하고, 고등학교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적용하며 학교 간 비교가 가능한 내신 평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은 새로운 학생부종합전형을 만들 수 있고, 학생 중심의 교육도 한 단계 더 성장할 계기를 만들 수 있다.
내신의 타당도를 높이기 위한 한 방법은 다름 아니라 수행평가의 활용이다.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과 학생 개개인의 주체적 학습 과정을 도와주는 선생님. 이런 수업과 평가를 정말 실행해보자는 것이 필자의 제안이다. 7차 교육과정부터 학교에서 수행평가를 해왔으니까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수행평가는 사실상 pass/fail 평가라고 할 수 있으며, 단지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은 형태로 운영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였을 것이다. 하나는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민원 제기, 다른 하나는 교사의 부담이다. 그래서 내신의 변별력은 지필고사에 의해 만들어진다. 내신이 지필고사에 의해 만들어지고 수능도 지필고사 형식이다. 변화가 내신에서 성취도 평가 확대로 시작되었으니, 먼저 수행평가의 변별력을 성취도 평가 수준으로 높이고 이를 위해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적 장치를 단위 학교에서 만들어야 한다. 교육청이 지침을 만들면 더 수월할 수도 있지만, 학교가 자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더 바람직하다. 공정성을 확보하면 변별력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수행평가의 질이 높아진다. 교사가 수업과 평가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학교와 교육청은 협력하여 교사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 교육청은 감사에 대비하기 위한 불필요한 증빙서류와 행정문서를 없애고 학교 자치를 실질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학교 내에서도 업무와 행정 조직을 재조정하고, 관례적인 행사와 활동을 없애거나 축소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수행평가의 질을 높여서 학생 중심 수업으로 전환하고 학생부 기록을 충실하게 만들 수 있는지는 학교 선생님들이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학교 내에서 선생님들이 수행평가의 정상화를 합의할 수 있다면, 이미 반은 실현한 셈이다.
2) 일부 과목에 학교 간 내신 공동평가제 도입
지난 2월에 발표된 고교학점제 교육과정(안)의 얼개는 국가 교육과정과 교육청 교육과정의 융합이며, 필자는 이를 아래의 표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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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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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수준 | 교육청 수준 | |||||
| 보통교과 | 전문교과 | 고교-대학 연계 과목 | ||||
| 공통과목
*대체이수 과목 |
선택 과목 | |||||
| 일반
선택 |
진로선택 | 융합
선택 |
전공
일반 |
전문
공통 — 전공 실무 |
||
이제 각 교육청이 스스로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로 선택, 융합 선택, 전문교과는 주로 국가 교육과정에서 고시한 과목으로 구성될 것이지만, 학교의 필요나 지역 사회의 요구 등으로 교육청이 새로운 교과목을 개발해야 하는 경우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 과목들은 학교 내에서 개설되거나, 학교 간 공동교육 과목, 학교 밖 지역협력 과목, 온라인 수업(온·오프라인 블렌디드 수업) 형태로 운영된다.
필자는 내신 타당성 제고를 위해 2022년 이후 학교 간 내신 공동평가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학교 간 내신 공동평가제는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 교육청 자체 교육과정, 학교 밖 교육과정, 온라인 교육과정 수강 과목을 대상으로 지역 단위로 혹은 참여 학교들을 묶어서 공동의 평가 교사진을 구성하여 성취도 평가를 하고 학생의 동기·과정·결과를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기록하는 것이다. 기존에 단위 학교가 소속 학생에게 가르치던 과목은 그대로 유지하고, 새롭게 도입되는 선택과목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개별 학생을 평가할 때 적용한다. 평가를 담당할 선생님들은 별도의 준비와 훈련을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세종시(市) 교육청 혹은 부천시 교육지원청 혹은 고교학점제 시범지구에서 지역 학생 대상 공동교육과정으로 『영화의 이해』 혹은 『탄소와 에너지』 같은 과목이나 『화학 실험』 과목을 개설하여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자. 교육청은 교과서, 수업 자료, 수업안, 평가 기준 등을 만든다. 시 교육지원청에서는 수업과 평가에 참여할 교사를 선정하여 수업과 평가 훈련을 진행하고, 학생 수요 조사를 거쳐 이 과목을 운영한다. 방과 후 과정 혹은 방학 중 집중과정 혹은 토요 학교에서 오프라인 혹은 온라인-오프라인 혼합수업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처음에 1~2개 과목을 개설하여 교사와 학생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고,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된 이후에는 소수가 이수하는 정규 교육과정 과목으로 확대한다. 그리고 공동 평가과목은 학생부에 별도로 표시한다. 이 방식은 내 아이는 내가 평가한다는 선생님의 일반적인 인식과도 충돌하고, 평가자로서 교사의 부담도 추가로 생긴다. 그런데 새로운 교육과정이 적용되면 현실이 될 일이고 누군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공동 평가라는 새로운 시도는 학교 내 평가로 맡겨두었을 때 사실상 무의미한 평가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수업의 질도 낮아져서 수업이 학생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 그래서 공동 평가는 평가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며, 학교 간 비교가 어려운 내신의 한계를 넘어설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이 학교 간 공동 평가 방식은 IB 디플로마 과정의 평가와 유사하다.
새로운 교육과정이 내년부터 부분 적용되고 2025학년도부터 전면 시행된다. 새 교육과정은 국가 교육과정과 교육청 단위 지역 교육과정으로 구분되고, 특히 융합과목과 진로 과목에서 교육청 단위의 새로운 교과목 개발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학교 간 내신 공동평가제는 학교 단위의 한계를 넘어 학생 선택형 새로운 교육과정을 실현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특정 학교 학생만이 아닌 모든 학생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선택한 학생에게 새로운 경험을 부여할 수 있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한 곳에서라도 내신 공동평가제가 시행될 수 있다면, 모든 아이가 우리 모두의 아이가 되는 교육혁신의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수능 논의의 주제와 관점
올해 2022학년도 수능이 처음 시행되고, 2028학년도에 적용될 “더 새로운 수능”이 논의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지난 2월에 “더 새로운 수능”을 올 연말까지 연구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언론에 보도되었듯이, 대입 연구의 전문성이 없는 민간 업체에 연구를 의뢰했다. 아마도 교육부 관료들은 “더 새로운 수능”이 다음 정부의 이슈라고 여기는 듯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현 정부의 고교학점제가 되었든 혹은 다음 정부가 가져올 뭔가 새로운 정책이 되었든, 새로운 학교 교육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은 “더 새로운 수능”이고, “더 새로운 수능”은 현 수능보다 학교 교육과 대입에 미치는 영향력이 현저히 낮아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익숙하지 않은 수능 개념이고 공정성과 변별력을 두고 논의가 무성하겠지만, 수능의 영향력을 줄이지 않으면 사실상 학교 교육개혁은 없다. 수능이 달라지면 그야말로 모든 게 달라진다. 수능 논의는 수능의 변별력, 평가영역과 응시자 수, 문항 형태, 응시 횟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이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수능의 영향력을 줄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수능의 변별력을 낮추고 and/or 대입전형에서 수능 적용 범위를 줄이며 and/or 응시 인원을 줄이고 and/or 최대 응시 과목을 축소하고 and/or 제공되는 평가지표를 제한하는 것이다.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실상은 단순한 이슈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필자가 8년 전부터 제안했듯이, 수시모집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적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수능을 활용하고 싶은 대학은 수시모집을 줄이고 정시모집을 늘리면 된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대학과 학과는 현실적으로 별로 없다. 학생 수가 줄어서 수시모집 선발인원을 축소하면 학생 모집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 고등학교는 사실상 대부분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진학하므로 학생과 학교의 수능 의존도가 대폭 낮아진다. 대부분 학생은 수능에 응시할 필요가 없다. 학생은 수능 응시 과목에 연연하지 않고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수업의 형태도 문제 풀이 위주에서 개별화된 탐구형 수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수능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이미 많은 대학과 학과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폐지하고 있다. 현 정부에서도 대입 기본계획을 바꾸거나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의 조건으로 요구하거나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수시모집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제거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어지면, 수능은 사실상 재수생을 위한 “두 번째 기회”(second chance)라는 성격을 갖게 되므로 학교 교육에 미치는 수능의 영향력은 대폭 줄어든다. 그리고 학생은 수능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대학입시는 학교 교육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현행처럼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이 분리되어 있고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존재하는 경우 수능 논의는,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변별력, 평가영역과 응시자 수, 문항 형태, 응시 횟수를 두고 복잡한 매트릭스의 장단점과 유불리를 따져가야 한다. 이런 논의의 결론은 대개 왜곡이다. 그 결과 수능의 역사는 왜곡과 왜곡의 왜곡으로 이어지는 질곡이다. 이제 개별 주제의 내용을 보도록 하자.
1) 수능의 변별력
변별력은 결단의 문제이다. 사회적 통념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단할 사람은 결단하지 않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결단되어지기를 바라니 아무런 결정도 없었다. 점수는 원점수, 표준점수, 백분위, 변환표준점수, 상대평가 9등급, 절대평가 9등급이라는 선례가 있고, 절대평가 5등급 혹은 7등급이라는 선택지가 있다. 모든 점수는 그 자체로 장단점이 있는데, 우리가 기존에 활용해 왔던 점수 중에서 가장 변별력이 낮은 절대평가 9등급도 문항의 난이도를 운영하기에 따라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점수의 변별력은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우리는 변별력이 부족한 점수를 사용한 적이 없다. 2008학년도 수능도 변별력이 있었다. 그러므로 변별력을 낮춘다면 지금까지 활용하지 않았던 점수를 쓰거나, 아니면 문항 수를 줄여야 한다. 2022학년도 수능에서 국어 45문항, 수학 30문항, 영어 45문항, 한국사 및 탐구과목 20문항, 제2외국어/한문 30문항이 출제되므로 학생은 최대 210문항을 풀어야 한다. 제2외국어/한문을 제외해도 180문항이다. 산술적으로 180문항이 모두 문항 당 같은 점수라고 하더라도 180개 등급이 만들어지는데, 현 수능에서는 문항 당 점수가 서로 다르다. 국어, 영어, 한국사, 탐구과목은 2점과 3점 문항으로 구성되고, 수학은 2점, 3점, 4점 문항, 제2외국어/한문은 1점과 2점 문항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원점수만으로 평가해도 변별력은 확보된다. 다만 과목 간 난이도 조절이 어렵기에 총점 환산 방식의 타당도가 떨어진다. 사실 현 수능 체제에서 총점 환산 방식은 그 어느 것도 완전한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기계적으로 하나의 줄을 만들지 않고, 수능 점수를 하나의 전형 자료로 삼는다면 타당성 문제에서 벗어난다. 그러므로 새롭게 시작될 수능 논의가 하나의 줄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계적 공정성의 강박에서 벗어나면, 수능은 활용 가능한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점수를 쓸 것인가를 논의할 게 아니라, 하나의 줄을 세우지 않고 수능 점수를 활용할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는 게 수능 점수의 타당성을 높이는 길이다. 선택형 수능이란 과목 선택에 그치지 말고, 활용 방법도 선택적이어야 한다.
2) 수능 평가영역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탐구, 제2외국어/한문 영역이 있는데,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일수록 많은 응시영역을 요구한다. 그런데 만약 서울대가 학생이 선택한 두 영역만 반영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른바 전국 순위가 무의미해지고 학과 간 점수서열도 매우 옅어진다. 전국 의대가 수학과 과학 한 과목만 반영한다면, 어떤 대학은 또 어떤 학과는 국어로 선발하고 다른 대학 또 다른 학과는 한국사로 선발한다면 하나의 서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들이 최대한 응시하도록 요구하지 않고 최소한의 영역/과목만 응시하도록 한다면 수능 체제를 뒤바꾸지 않더라도 수능 점수를 복잡하게 산출하지 않더라도 수능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줄어든다. 대학의 습관이자 마음의 관성은 여전히 많은 과목에 응시하는 것인데, 그 습관과 관성을 바꾸면 대학 서열구조는 흐트러지고 수능의 영향력도 줄어든다. 오히려 선택지는 대학에 있다.
3) 문항 형태와 응시 횟수
현 수능은 5지 선다형이고 수학에서만 단답형 문항이 있다. 문항 형태의 이슈는 논·서술형 문항 도입이고, 논·서술형 문항이 도입된다면 현재 수학처럼 5지 선다형 문항과 병행될 개연성이 높다. 각 영역에 논·서술형 문항을 포함하고자 한다면 고등학교 내신부터 논·서술형 문항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취지는 사라지고 사교육비만 늘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만약 고등학교에서 준비를 시작하여 수능에 논·서술형 문항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영역에 논·서술형 문항을 부분적으로 도입하기보다는, 수능 영역을 구분하여 선다형 문항 영역과 논·서술형 문항 영역으로 나누는 게 학생과 학교 현장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수능 응시 횟수의 문제는 논의하지 않는 편이 낫다. 교육청과 학교 현장에서는 행정적 부담을 들어 극구 반대할 것이고,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고통은 한번, 그리고 짧을수록 좋다. 수능이 온라인 시험 체제로 전환되지 않는 한, 두 번의 선택 기회는 그저 허망한 수사일 뿐이다.
대개 수능을 논의할 때 수능의 타당성과 활용을 수능 자체만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왜곡이 만들어진다. 수능 논의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이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지 못한다. 삶의 목적이 삶의 목적을 아는 것이라면, 현재 시점에서 수능 논의의 목표는 수능의 목적을 아는 것이다. 점수 체제, 문항 형태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는 2028학년도 “더 새로운 수능”의 목적은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갈 역량을 학교 교육을 통해 키우는 데 기여하고, 모든 아이가 자신의 소질과 역량을 발견하고 주체적으로 키워가도록 온 마을이 도와주고자 하는 데 수능이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수능이 개인의 신분 상승을 위한 평가지표로 작동하지 않을 때, 드디어 우리 눈에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현 정부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이 먼저라고. ‘공정’의 의미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보다 ‘사람’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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