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독서활동 이야기

by gyobasaNPO | 2021-06-17 10:44

Views: 2,359

1. 그 책을 읽고 깜짝 놀랐다.

 

점점 더 죄여오는 업무에 최근에는 거의 짬을 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도서관에 가는 일은 늘 가슴을 뛰게 한다. 세상의 지혜와 아름다움과 쓰레기를 잔뜩 모아놓은 도서관의 책들을 바라보면서 어딘가 이야기 책 속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나도 이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몽땅 읽어볼까?’하는 엉뚱한 열망을 불태워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열정으로 잔뜩 빌려갔던 책들은 늘 고스란히 반납대에 다시 오르고 말 뿐이다. 연체료라도 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책을 읽는 일은 그만큼 에너지가 드는 일이고, 또 읽는다고 해서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열정은 열정으로만 남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이제는 눈마저 흐려지고 보니 책 위에 손을 갖다 대면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이 책 내용이 고스란히 뇌 속으로 옮겨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엉뚱한 상상이나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학교 속의 문맹자들’이란 책을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서 보고 맹렬히 탐독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들락거림이 가져다준 행운이기는 했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이란 책 제목을 보고는 처음에는 ‘정말 문맹자들에 대한 이야기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어 집어보게 되었다. 그러나 ‘문맹’이든 혹은 ‘문맹에 가까운 심각한 기초 학습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든, 양자의 문제가 모두 지역아동센터에서 흔하게 존재하고 시급한 해결을 요하는 일인지라 일종의 실마리를 얻고 싶다는 생각에서 얼른 책을 집어 들고 단숨에 읽게 되었다.

 

책을 읽고 주변의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에게도 소개를 했는데, 모두가 공감하는 바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교사들은 책의 주요한 내용을 기반으로 삼아 일종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열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정작 책을 소개한 나는 크게 공감하는데 머물고 일부 방법을 채택하는 것에서 그칠 뿐이었다. 그런 실천활동을 바로 시작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부족해 보여서 저자를 만나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생각에 더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 저자에게 연락을 취해보기도 했지만, 먼 곳으로 일을 보러 가셔서 지금은 만나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 말았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문맹자들이란 ‘기능적 문맹자’였다. 말하자면 구조적으로 쉽게 만들어진 한글의 낱자를 파악하고 이를 어느 정도 읽어내는 것까지는 가능하나,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기능적으로만 읽어낼 수 있는 숨어 있는 문맹자들을 말한다. 책이 나온 것이 거의 10여 년 전의 일이고 그 후 사회 전반적으로 문해력에 관한 이해들이 높아져 갔기에, 이제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읽을 수 있지만 읽어도 무슨 내용을 읽은 것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과 실천의 실마리가 너무도 절실했던 당시의 나에게는 마치 커다란 영감의 원천을 발견했던 것처럼 책의 내용들 하나하나 모두 놀랍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후 책을 몇 권 사서 센터의 교사들과 함께 책의 내용을 상세히 살펴보는 등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 후로 변명같이 매우 바빴고, 꾸준히 실천 활동을 하지 못하면서 소중하다던 책도 책꽂이 한 귀퉁이에 잘 모셔두고 한참을 잊고 살았다.

 

 

2.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러던 중 최근 아이들과 책읽기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센터 내에는 읽기에 유난히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이 늘 대여섯 명 정도가 되는데, 그 중 한 아이가 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어 다시금 이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3학년 때까지 거의 읽을 수가 없어 고군분투를 하던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읽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책읽기를 많이 즐기는 아이가 되었다. 물론 책에서 말하는 기능적 문맹자인지 여부를 가릴 필요는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되지만, 아예 문맹이나 다름없던 아이가 떠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어내니 그것만으로도 교사에게는 큰 자극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 아이를 필두로 서너 명의 아이들의 책읽기를 지도하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센터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은지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1:1 혹은 서너 명의 아이들과 조용하고 집중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발견되었다.

 

교사들과 하는 아이들의 활동은 늘 눈길을 끌기 마련이고, 교사나 참여 아동이 집중하고 있으면 집중할수록 그것은 다른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 같았다. 책읽기라는 힘든 작업을 지속하게 하려고 교사가 보이는 추임새나 반응 역시 다른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요소가 되어 어느 틈에 몇몇 아이가 옆에 붙어 서서 진행 과정에 참견을 하고 나서는 경우가 너무 흔하기에 하는 말이다.

 

거기에 일상적으로 투입해야 할 행정 업무가 많아 아이들의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얼마나 부족한지는 말하면 입만 아플 정도다. 정말 매일매일 남아서 밤 10시까지 행정 업무를 해도 겨우 그 날 지출한 결의서를 밀리지 않고 작성할 수 있을 정도이고, 여기에 상세한 관찰일지나 프로그램 일지 등을 밀리지 않고 작성하려면 아이들과의 활동은 대부분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때로는 아침부터 행정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일에 몰두해서 오늘 아이들과 이런 일을 해봐야지 하고 계획했던 활동을 슬그머니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행정 업무는 잘못하거나 미루어두면 금방 탈도 나지만, 시시각각으로 요청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가지치기를 잘 못하면 결국 아이들이 그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도 그런 북새통 속에서 짬짬이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책읽기를 진행하면서 다시금 ‘신 문맹자’와 그리고 그 속에 섞여 있는 ‘진성의 문맹자들’의 문제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중국에서 이주해온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런 현상이 보다 실질적인 관심을 끄는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한 글자, 한 글자를 힘겹게 배워가고, 읽어가는 그 과정이 지금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금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작은 사건 하나 때문에 나는 얼른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조바심을 내고 있다.

 

 

3. 보이는 대로 읽는다.

그것 역시 책읽기와 관련된 일이다. 아이들이 막 학교를 다녀와 그래도 센터가 조금 조용할 때까지 몇몇 아이들은 내 곁에서 소리 내어 그림책을 읽는다. 그림책이라도 어떤 책들은 내용이 어렵고 양이 많아서 중간에 끼어들어 내용을 확인하고 싶은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워낙 읽기 자체가 어려운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욕심은 당분간 내려놓고 읽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읽기를 진행하다 보니 어떤 아이들은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데 규칙적 어려움을 갖고 있단 걸 알게 되었다. 이는 특히 이제 막 책 읽기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문제이다. 예를 들어 책에 나와 있는 문장이 ‘소는 풀을 뜯어 먹었어요’라고 한다면, 어떤 아이는 이 문장에 공을 들여 ‘먹’, ‘었’, ‘어’, ‘요’라고 또박또박 한 글자씩 소리 내어 읽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먹었어요’란 단어의 ‘어’란 낱자는 ‘ㅇ’의 음가에 모음의 소리가 없이 앞에 있는 낱자의 받침소리가 그래도 연음되어 ‘써’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것은 웬만큼 책을 소리 내어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터이다. 하지만 아직 어리거나 책읽기가 서툴러 글자 자체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이런 경우 글자 그대로 고스란히 ‘어’로 발음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힘도 더 들고, 듣기에도 어색하지만 ‘어’를 ‘어’라고 정직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그런 어색함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눈치다.

 

물론 학교 학습을 잘 따라가는 어느 2학년 여자 아동은 그런 현상을 콕 집어서 의문을 제기하고, 희미하게나마 우리말 발음의 특징을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사람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라도 지금 막 책을 읽기 시작한 아동은 그런 법칙이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곁에서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며 그런 단어가 나올 때마다 아무리 교사가 ‘어’, ‘요’가 아니라 ‘써요’란 사실을 외쳐 보아도, 그 ‘정직하고 충실함’이 좀체 기세를 잃지 않을 눈치다.

 

다른 아이들의 경우를 보니 읽기나 학습도 어느 정도 임계점이 넘어가야 이해가 줄줄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는, 즉 학습자의 수용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을 보이게 되는 것 같았다. 따라서 지금은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니고, 아직 학습량 자체가 부족하다는 데 집중을 해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런 일이 힘든 건 교사지 아이는 아닌 모양이다. 아이는 멀쩡한데 나는 글자 그대로 책을 읽고 있는 아이 때문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아이가 쉽게 변화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왜 이렇게 멋대로 발음을 바꾼 거야?’하고 엉뚱한 원망도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느 사회나 발음은 보다 편한 방식으로 변화해가기 마련이고, 세상의 법칙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은 그런 법칙을 이해할 수 없어 고생을 하는 것이구나 하고 엉뚱한 데까지 생각을 뻗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던지 책 내용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아이들도 좀 더 관찰하고, 공부도 좀 더 해가면서 이 미지의 세계를 보다 더 탐구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게… 왜 ‘했어요’라고 쓰고 ‘해써요’라고 읽어야 하냐고 말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Source URL: https://21erick.org/column/6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