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owalk | 2018-05-03 14:01
1.
대입제도 개편을 위해 교육부가 방안의 얼개를 짜서 넘겼고, 그것을 받은 국가교육회의는 전국을 돌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좋은’ 안을 결정해 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회니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위원회니 하는 기구 구성도 마쳤습니다. 일이 이렇게 진척되는 데 대한 우려와 비판은 작지 않습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지적은 위원회 구성이 잘못 됐다거나 논의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오히려 사소한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편안이 제대로 마련될 가능성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교육부가 내놓은 ‘이송안’과 이 안을 전제로 이루어질 국가교육회의의 ‘공론화’ 구상을 그대로 두는 한, 바람직한 방안이 나올 여지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비유로 말하면, 교육부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데도 국가교육회의는 남은 단추들을 계속 끼워가겠다고 하는 형국입니다. 단추를 다 끼우고 나면 대입제도의 멋진 매무새가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상태에서는 궁극적으로 단추가 단정하게 다 끼워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종국에 그 옷매무새는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이 될 게 뻔합니다. 결국 이번 대입제도 개편 작업은 또 한 번의 시행착오에 불과한 것이 되고, 우리는 곧 다시 ‘개혁’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앞으로 일어날 범국민적인 감정의 소진 그리고 시간과 재정의 낭비를 헤아려보면, 최근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가 보여주는 행태는 무척 안타깝고도 해로운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일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2.
교육부 ‘이송안’이 안고 있는 결함은 많습니다. 많은 결함 가운데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우선, 교육부 안은 학교교육에 대한 철학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이송안에서는 교육 정상화를 지향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미래를 위한 학교교육이 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마는, 정작 그런 지향에 부응하는 대입제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톨 고민의 흔적이나 언급도 비치지 않습니다. 교육부 안은 이를테면 이런 논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이 ‘교육정상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것이 ‘금수저 전형’이라며 수능 전형을 늘려야 ‘공정’해진다고 주장하며 싸우니, ‘그러면 여론에 맡겨 결정합시다!’ 하는 식입니다. 양쪽 주장이 얼마나 맞는지 따져보지도 않습니다. 더 낳은 제3의 방안을 찾아볼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그냥 두 갈래 전형의 상대적 비율을 ‘공론화를 거쳐’ 결정해달라고 국가교육회의에 문제를 ‘이송’했을 뿐입니다. 학교교육의 ‘정상성’이나 ‘공정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며, 그런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입제도가 필요한지, ‘철학’을 먼저 세웠어야 할 마련이지만, 교육부는 대립하고 있는 시중의 여론을 추려 또 다른 ‘여론 수렴’ 절차로 넘겼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단순 무지하게 대입제도 문제를 처리하려 듦으로써, 교육부는 스스로 의식하지도 못한 채, 또 다른, 더욱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학교교육 문제를 가치와 당위의 문제가 아닌 이해타산의 문제로 전락시켜버렸습니다. 교육부는 학교교육을 국민 모두가 개인의 이익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수단’이라고 사실상 규정하고 있으며, 학교교육은 결국 그 싸움이 원만히 타결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학교교육에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공공선의 가치나 다른 어떤 것에 빌붙지 않는 교육 그 자체로서의 가치에 대해서는 일말의 자각도 보이지 않습니다. 놀랍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3.
교육부장관은 말합니다. 교육부 안을 가지고 “국민들께서 참여하여 숙의 공론화”하면 “공정성과 타당성, 그리고 현장수용 가능성이 높은 개편안”이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어린이도 이렇게 순진하게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염전에서 소금 만들어 파는 사람과 도시에서 우산을 파는 사람에게, 날씨가 맑으면 좋을지 비가 오면 좋을지 한 쪽으로 합의하라면 합의할 수 있겠습니까? 교육부가 이송안을 내놓자마자 이해 당사자들은 벌써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공론화’ 과정은 이미 시작한 이런 싸움의 연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공론화 위원회’가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인사로 구성됐다고 해서, 그 위원장이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한 경력”을 가졌다고 해서, 싸움의 성질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 싸움은 세력 싸움이고, 세력 싸움으로 ‘정상적이고 공정한’ 학교교육을 구축할 수는 없습니다.
철학 없이, 가치에 대한 고민 없이, 어떻게든 싸움의 결론을 낸다고 해서 대입제도가 좋아질 리 만무합니다. 이번에 결판을 낸다고 대입제도를 놓고 일어나는 갈등이 완전히 해소될 리는 더욱 없습니다. 이번 여론전에서 이긴 편은 좋아하고 진 편은 분해하는 ‘휴전’의 기간을 잠시 갖고는, 조만간 싸움을 다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대입제도의 역사가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싸움을 쉬는 동안에도 학교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꾸준히 훼손될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이번 ‘개편’은 학교교육이 요컨대 싸움의 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국민에게 더욱 깊이 각인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교육부장관은 말합니다.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려면, 지금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꿀 적기”라고 합니다. “우리 교육의 정상화와 미래 가치를 실현하는 대입제도 방안”을 도출하겠다고 합니다. 너무도 진부한 안을 내놓으면서 이런 장담을 하니 말문이 막힐 뿐입니다. ‘교육 정상화’가 무엇인지, ‘미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도 해보지 않은 채, 그저 시중 여론을 모아 선택형 문제를 출제하듯 안을 만들어 놓고 우리 교육의 정상화와 미래를 거론하는 것은 자가당착입니다.
교육부는 이송안에서 여전한 입시위주 교육을 우려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육을 지양하는 데서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찾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법합니다. 2015년 교육과정이 제시한 6개 ‘역량’을 ‘미래 인재상’과 관련시켜 서술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역량을 키우는 교육을 표방하고 있을 법도 합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이송안에서 요청한 대로, ‘학종과 수능’의 비율에 대해 여론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수능 점수 표기 양식으로 ‘등급제’(‘절대평가’ 또는 ‘상대평가’)와 ‘원점수제’ 가운데 어느 것을 채택할 것인지1 결정해낼 수 있게 되면, 입시 위주 교육이 해소되고 6개 역량을 제대로 배양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인지 묻게 됩니다.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는 학교교육의 미래를 위해 무슨 고민을 했는지 묻게 됩니다.
5.
이대로 가면 8월 말의 대입제도 개편안 결정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과 논란의 시작일 뿐일 것입니다. 교육은 여전히 ‘비정상’일 테고 학생과 학부모들은 바뀐 게임 규칙에 맞는 전략을 찾아 이곳저곳 ‘컨설팅’ 하느라 더욱 분주해질 것입니다. 흙수저-금수저 편 가르기도 여전할 것입니다.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정부라면 행여 대입정책의 적폐도 청산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도 국가교육회의도 적폐를 더 두텁게 쌓으려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대로 가도록 놔둘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첫 단추’ 끼기로 돌아가, 논의를 제대로 시작해야 합니다.
숙의니 공론화니 하는 말장난으로 연막 치며, ‘여론의 결정’ 뒤에 숨어 면피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교육으로 구현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대입제도에서는 그 가치가 어떤 구도로 번안되어야 하는지, 새롭게 묻고 새롭게 답하려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되묻게 됩니다. 시한은 무엇을 위해 정해놓은 것입니까? 이대로 가서는, 개편안 결정 시한을 지켜서 얻는 것보다 잃을 게 훨씬 더 많을진대, 그래도 가야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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